RECORD
THEME RECORD
테마가 있는 추천 음반
쇼팽의 섬세한 피아니즘 속으로
쇼팽: 에튀드 Op.10 & Op.25
쇼팽: 후기 피아노 작품들
쇼팽(1810~1849)이 피아노 작품으로 이룩한 세계는 독보적이다. 200곡에 가까운 피아노 작품을 남기면서 전주곡·마주르카·폴로네이즈·녹턴 등 다양한 장르적 발전을 꾀하기도 한다. 건반과 건반 사이에 흐르는 쇼팽의 음악 언어는 잊고 지내던 섬세한 감수성을 일깨워준다.
노예진은 여러 쇼팽의 작품 중 에튀드에 집중했다. Op.10과 Op.25, 각각 12곡 씩을 포함해 총 24개의 전곡을 하나의 CD에 모두 담았다. 앞서 발매한 음반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 노르마의 회상’(NCM KLASSIK)을 통해 드러낸 음악적 역량의 연장선상에 있는 음반이다. 완벽한 테크닉을 추구하는 연습곡에서도, 노예진은 음악적 표현을 따라 자신만의 개성과 해석을 담아냈다. 특히 쇼팽의 에튀드 전곡은 여러 대가가 명반을 남겨온 바, 그 사이에서 노예진의 쇼팽이 차지한 위치를 가늠해보는 것도 좋겠다.
따뜻한 감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김정원 또한 쇼팽의 작품에 집중했다. 녹턴·마주르카·왈츠·뱃노래 등으로, 열세 개의 후기 작품들이다. 올해 6월 쇼팽의 나라 폴란드에서 녹음된 이 음반은 이제는 어느덧 말년의 쇼팽보다 열 살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정원의 시선이 담겨있다. 조금은 담담하게, 쇼팽의 음악이 주는 위로에 집중한다. 음반에 담긴 수록곡들은 10월, 김정원 전국 투어 독주회에서 실황으로도 만나볼 수 있다. 10월 22일~30일까지, 국내 5개 도시(광주·서울·대구·청주·부산)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허서현
가을날, 목소리의 아름다움
카이야 사리아호: 정찰
셰익스피어 노래집: 소리, 그리고 달콤한 노래
인성(人聲)의 다양성을 실감할 수 있는 두 음반을 묶어봤다. 서양음악 속 기악곡의 역사가 바로크 시대부터 선명해진다면, 성악곡의 역사는 음악의 역사, 그 자체와 세월이 같다. 그러니 인간사에서 가장 많이 개발한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일 수밖에.
지난 6월 우리를 떠난 핀란드 작곡가 카이야 사리아호(1952~ 2023)의 합창 작품이 음반으로 발매됐다. 고요한 방 안에서 헤드셋을 착용하고 감상하는 걸 추천한다. 음의 색채는 물론, 소리의 방향과 크기를 매우 섬세하게 계획했기 때문에, 눈을 감고 작은 숨소리까지 집중했을 때 그 효과가 급증한다. 음반의 제목은 수록곡인 합창과 타악기를 위한 작품 ‘정찰’에서 가져왔다. 전체 분량은 1시간 21분이지만, 신비스러운 목소리의 깊이 덕분에 그 시간 안에 온전히 완주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손이 간다.
소프라노 캐럴린 샘프슨(1974~)과 바리톤 로더릭 윌리엄스(1965~)가 부르는 37곡의 노래는 셰익스피어 시에 음악을 붙인 작품들이다. 27명의 작곡가는 성별·국적·시대를 다양하게 모았으며, 익숙한 슈베르트·슈만·볼프 등의 클래식 음악부터 존 댕크워스(1927~2010)의 재즈까지 장르적 폭도 넓다. 음반은 독특하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포함된 5막의 연극 구조로 되어 있다. 소프라노와 바리톤 듀오가 사랑의 가사를 노래하니 자연스레 머릿속에는 다정다감한 한 연인의 무대가 그려진다. 이의정
화제의 신보
NEW & GOOD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
감각적 선곡이 돋보이는 선우예권의 두 번째 데카 음반
PERFORMANCE INFORMATION
선우예권 피아노 독주회
10월 5일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6일 부산문화회관, 8일 김해문화의전당,
10일 대전예술의전당, 11일 성남아트리움, 13일 함안문화예술회관,
14일 익산예술의전당, 15일 안양 평촌아트홀, 18일 예술의전당,
20일 여수 GS칼텍스 예울마루
선우예권(1989~)은 한국인 최다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기록을 가지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한동안 그의 우승 이력에 따라붙었던 수식어는 ‘생계형’이다. 이는 선우예권 자신의 표현으로, 유학 시절 생활비를 위해 수많은 콩쿠르에 나가야만 했다는 것이다. 생계를 콩쿠르 우승으로 꾸려갈 만큼의 절박함과 실력을 갖춘 연주자인 그에게 음악은 이 땅에 발을 단단히 딛게 하는 버팀목이자 디딤돌이 되었다. 그가 석권한 8개의 콩쿠르 중 2017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선우예권은 예선 곡 중 하나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결선에서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며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라흐마니노프, 리플렉션’은 선우예권이 데카에서 두 번째로 발매하는 음반이다. 거장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1873~1943) 역시 생전에 피아노 연주로 생활하며 콘서트 무대를 위한 기념비적 작품들을 많이 남겼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라흐마니노프를 기리는 이번 음반은 라흐마니노프의 대표적 변주곡 2곡과 편곡, 그리고 전주곡으로 구성됐다. 변주곡과 편곡에는 코렐리·크라이슬러·쇼팽 등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이 라흐마니노프의 팔레트 안에서 섞여 진중한 색채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그늘이 드리워진 단조의 조성으로 애수가 흐르며, 미묘하고 풍부한 음영과 묵직하게 다가오는 울림을 즐길 수 있다.
성찰적이고 회고적 성격의 이 음반은 라흐마니노프가 말년에 창작한 최후의 피아노 독주곡인 코렐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42로 시작한다. 주제와 20개의 변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을 선우예권은 감성에 젖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접근한다. 흠잡을 곳 없는 모범답안을 제시하듯 착실하게 전개하다 마지막 변주에 이르러 광폭하게 폭발하며 반전을 선보인다.
마지막에 마주한 갑작스러운 심연에 서늘해진 마음은 다음 수록곡, 라흐마니노프가 편곡한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소품 ‘사랑의 슬픔’에서 위로받는다. 우수 어린 선율이지만 우아한 왈츠 리듬에 실려 슬픔의 무게가 덜어진다. 선율을 매만지는 선우예권의 손에서 다정한 온기가 전해진다. 저음의 전주곡들로 엮어간 이후의 네 곡도 흥미롭다.
짧지만 극적인 2곡의 전주곡(C♯단조 Op.3-2와 G단조 Op.23-5) 사이에 볼로도스(1972~)가 피아노 독주를 위해 편곡한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Op.19(3악장)의 애절한 안단테 악장을 삽입해 분위기를 절묘하게 전환했다. 첫 두 곡에서처럼 뜻밖의 편곡 작품으로 활력을 주며 작품 사이에 완급을 조절하는 구성력이 뛰어나다.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는 절제미와 균형감을 지닌 충실한 해석자의 면모는 마지막 연주곡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2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쇼팽의 장중한 프렐류드 Op.28-20을 주제로 한 라흐마니노프의 첫 대규모 피아노 독주곡인 이 작품은 라흐마니노프의 다른 성공작과 마찬가지로 장황하고 난해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비교적 덜 알려진 이 작품을 선우예권은 샅샅이 파헤치며 묻혀있던 아름다움을 발굴해 낸다.
각 변주의 특징을 잡아내는 예리함뿐만 아니라 전체 변주를 긴 호흡으로 잇는 노련한 솜씨가 돋보인다. 이 음반은 만년의 작품부터 초기작까지 신중하고도 정교한 손길로 되짚으며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세계를 반추한다. 음반이 미처 담아내지 못한 연주자의 생생한 숨결은 총 11회로 예정된 발매 기념 전국 순회 연주회에서 직접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서주원(음악평론가·음악학박사)
이 달의 추천 음반
SELECTED RECORD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2006년, 데이비드 맥비커(1966~)가 연출한 ‘피가로의 결혼’은 모든 역에 잘 어울리는 성악가를 배치하고 이들을 완벽하게 조화시켜 지금까지도 명공연으로 회자된다. 이 영상물에 담긴 2022년 공연 실황은 2006년 공연과 똑같은 것. 과거 공연의 감동을 다시 한번 불러일으키면서도, 비교적 젊은 가수들을 캐스팅해 2006년 무대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결혼을 준비하는 피가로와 수잔나, 수잔나에게 흑심을 품은 백작, 그런 백작을 골탕 먹이려는 백작 부인이 펼치는 유쾌한 이야기를 맥비커의 연출로 만날 기회다.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가 안톤 브루크너(1824~1896)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며,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실황 음반을 선보였다. 1972년부터 2012년까지의 공연 중 엄선된, 대부분 이전에 CD로 발매된 적 없는 연주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음반에는 오이겐 요훔(1902~1987)·마리스 얀손스(1943~2019) 등 지휘자 7명의 해석, 시대에 발맞춰 변화해 온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양한 판본 중 보편적으로 연주되는 판본의 연주가 수록돼 감상에 친근함을 더한다. 작품의 이해를 돕는 51쪽 분량의 상세한 해설지도 제공된다.
훔퍼딩크: 왕의 아이들
엥겔베르트 훔퍼딩크(1854~1921)는 바그너의 조수로 일했던 경력 때문에 그와 유사한 작곡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동화적 소재를 가졌기 때문에 그가 살았던 시대보다는 비교적 조성적인 화성을 사용한다. ‘왕의 아이들’은 귀한 신분이지만 천하게 살아온 소녀와, 귀하게 자라 온 왕자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연출은 레지테아터(대본을 완전히 해체하여 새롭게 해석하는 연출가)로 유명한 크리스토프 로이(1962~)의 새하얀 무대가 돋보이며, 주역인 테너 다니엘 벨레(1971~)와 소프라노 올가 쿨친스카(1990~)의 열연이 아름답다.
몬테카를로 발레: 코펠리아
몬테카를로 발레의 예술감독이자, 고전 발레를 신선하게 재해석하는 발레 안무가로 잘 알려진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1960~)의 2019년 신작이다. 인형 코펠리아에게 생명력을 넣으려는 코펠리우스 박사의 이야기가 인공 지능을 가진 A.I.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코펠리아는 원작 안무가 아르튀르 생 레옹(1821~1870)의 버전과는 다르게, 박사를 버리고 청년 프란츠를 사랑한다. 음악도 베르트랑 마요의 손을 거쳐 순서가 재구성됐고, 현대적 음향의 편곡도 거쳤다. 한마디로 희극 발레로 사랑받았던 ‘코펠리아’가 ‘21세기적 감각’으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