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그가 진화시킨 오보에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0월 10일 9:00 오전

COVER STORY

Albrecht

Mayer

오보이스트 알브레히트 마이어

알브레히트 마이어 ©Matt Dine

가을을 물들이는, 시간의 음악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최강 음악 군단의 일원이자, 오보에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소리의 보물들을 캐내고, 작품 편곡과 다양한 음반 발매를 통해 오보에의 반경을 넓히는 음악가. 오보에는 그로 인해 새로운 역사와 표정을 얻으며 진화 중이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알브레히트 마이어가 엘가와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으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만난다. 그의 음악으로 가을이 더 깊어질 시간이다.

송현민·홍예원 사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금호문화재단

 

INTERVIEW ① 알브레히트 마이어 │ 오보에와 음악은 그와 함께 진화한다 _송현민

INTERVIEW ② 함경·윤성영 │ 대가의 숨결을 느낀 시간들 _홍예원

 

 

INTERVIEW 1

 

베를린 필 수석 알브레히트 마이어의 과거와 현재

오보에와 음악은 그와 함께 진화한다

 

10년 전인 2013년은 베를린 필하모닉이 국내 음악계를 달군 시간이었다. 3월 클라리넷 수석 안드레아스 오텐잠머가 첫 내한(여자경/프라임 필하모닉)했고, 7월 트럼펫 수석 가보르 터르쾨비가 곽승/KBS교향악단과 함께했다. 11월에는 베를린 필 군단으로 몰려왔다. 단회 공연만 선보이고 비행기에 오르던 예전과 달리 사이먼 래틀은 양일에 걸쳐 각기 다른 무대를 선보였다.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의 최전방에는 악장 다이신 카지모토가 배치되었다. 베를린 필의 위력이 단원과 군단을 통해 확인되던 2013년이었다.

무엇보다 가보르 터르쾨비가 내한했던 7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KBS교향악단에 맞불을 놓았으니 바로 알브레히트 마이어 카드였다. 국립심포니와 함께 한 공연에서 마이어는 편곡자, 협연자, 지휘자로 일당백임을 보여주었다. 바흐의 칸타타 BWV49·105·107의 아리아를 한 악장씩 발췌해 편곡하여 협연했다. 헨델의 오페라 ‘알치나’ 중 아리아 ‘푸른 초원’도 오보에 협주곡으로 편곡해 선보였다. 후반부에선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의 지휘자로 포디엄에 올랐다. 그에게 당시를 회상해달라고 하자 “국립심포니는 각 곡에 대한 놀라운 적응력과 유연성을 보여주었다”며 “최고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교향악단”이라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묘한 주기라고 해야 할까. 2013년으로부터 10년이 흐른 올해도 베를린 필이 국내 음악계를 달구고 있다. 8월 오텐잠머가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의 예술감독으로 참여했고, 10월 마이어가 내한·협연하며, 11월 페트렌코/베를린 필이 내한한다). 강산은 변했고, 마이어의 시간이나, 오보에를 둘러싼 한국 음악계의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살펴보면 언제나 그렇듯 마이어는 꾸준히 음반을 발매했다. ‘바흐’2015 ‘보칼리제’2016 ‘이탈리아의 보물’2017 ‘낙원에 대한 그리움’2019 ‘모차르트: 오보에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2021 ‘바흐 제너레이션스’2023이다. 한국 드라마의 OST를 수록한 음반 ‘사랑의 그늘’2021도 빼놓을 수 없다. ‘육룡이 나르샤’ ‘도깨비’ ‘하얀 거탑’ 등의 삽입곡들을 그의 오보에가 노래했다. 자서전 ‘기적의 소리-음악의 힘이 나를 치유하기까지’2022를 출간하기도 했다. 2013년 베를린 필 카라얀 아카데미에서 마이어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함경은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거쳐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에서 활약 중이다.

2022

헤이디 프리드리히·알브레히트 마이어 자서전 ‘소리의 기적-음악이 나를 치유하다’

 

 

2023

‘바흐 제너레이션스’ DG 4864183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위와 같은 ‘10년’의 변화를 안고 이번 가을, 마이어가 국립심포니와 재회한다. 국립심포니의 예술감독·상임지휘자 다비트 라일란트가 지휘하고, 마이어는 한 무대에서 두 곡을 협연한다. 엘가의 ‘독백’,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이다.

 

©JHolger Hage / DG

음악이 바꾼 유년기

그의 자서전 ‘소리의 기적-음악이 나를 치유하다’(2022)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다. 1965년 독일 에를랑겐에서 태어난 마이어는 자신을 “창백하고 마르고 주근깨가 있고 말까지 더듬는 소극적인 소년이었다”고 추억한다. 하지만 음악을 배우며 달라졌다.

 

먼저 자서전 출간을 축하한다.

“팬데믹 시기에 모든 게 멈춘 상황에서 인생과 음악을 돌아볼 기회가 생겼다. 무엇보다 음악을 통해 변화되었던 내 인생을 말하고 싶었다. 별로 행복하지 않은 아이라 할지라도 음악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영감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보에와 처음 조우하게 된 계기는?

“밤베르크의 고등학교(ETA-Hoffmann-Gymnasium)에 다닐 때, 표현도 서투르고 말도 더듬는 학생이었다. 아버지께서 이를 개선할 방법을 찾고 계셨는데, 관악기를 배우면 이를 개선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듣고 오셨다. 교내 오케스트라에서도 오보에 단원을 찾고 있을 때였다. 형과 함께 오보에를 배우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효과가 있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관악기를 통해 언어 장애가 개선된다는 이론은 훌륭해 보이나, 실제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던 것 같다.(웃음) 당연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오보에가 내 인생에 들어오면서 내 어투가 아닌 삶이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가 어딘가에 필요한 사람이 되었고, 악기로 표현하는 소리를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러 사람과 음악을 함께 하거나, 합창단에서 노래하는 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시간이 삶은 물론 사회도 변화시키고.”

줄줄이 나오는 음반 속에서 자서전 출간도 의외였지만, 2011년 10월에 알브레히트 마이어 재단(Albrecht Mayer Foundation)을 설립했다는 것도 의외였다. 음악 사업을 하는 곳인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망막과 시신경 질환에 대한 연구와 치료법을 개발하는 재단이었다.

“내 공연에 꾸준히 오는 친구 중 프란츠 바두라는 트럼페터가 있는데 시각 장애가 있다. 어느 날 그가 내게 자신의 병에 관해 얘기하며, 우리가 함께 뭔가를 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그런데 우리 가족에게도 이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일을 당할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모른다. 그래서 재단을 설립해 연구와 치료법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베를린 필, 새로운 시작

마이어의 명성이 높아진 것은 뭐니 뭐니 해도 1992년 베를린 필 입단을 꼽을 수 있겠다. 밤베르크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는 1990년 밤베르크 심포니에 수석으로 입단했다. 호르스트 슈타인(재임 1985~1996)이 상임지휘자로 재직하던 때였다.

그가 베를린 필의 수석으로 이적한 1992년경은 카라얀의 장기 집권(1955~1989)이 끝나고, 아바도(1989~2002)가 악단의 색채를 한창 바꾸고 있던 때였다. 마이어의 이적을 전후로 1992년 크리스토프 하르트만(오보에), 1993년 에마뉘엘 파위(플루트), 벤젤 푹스(클라리넷), 슈테판 도어(호른)가 입단하며 관악군의 색채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아바도는 낭만주의적 음향에 심취해 있었다. 베이스 라인의 두터움을 강조했던 카라얀 류의 음향을 지양했던 그는 소리들을 섬세히 다듬고 투명도를 높였다. 특히 칸타빌레 풍의 폭넓은 연결부를 좋아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이어를 비롯해 파위, 푹스 같은 목관 단원들이 소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들은 아바도라는 전지전능자가 만드는 숲을 구성하는 나무였으며, 그 위를 날아다니며 숲을 울리는 종달새였다.

2004

‘모차르트의 발자취를 따라서’ DG 4762352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잉글리시 호른)/ 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2005

‘텔레만-신포니아 멜로디카’ DG E4775923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라이너 쿠스마울(지휘)/ 베를린 바로크 솔리스텐

 

2007

‘헨델-뉴 시즌스’ DG 4765681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신포니아 바르샤바

 

2007

‘무언가’ DG 476047-2 알브레히트 마이어(지휘·오보에·오보에 다모레·잉글리시 호른)/나이젤 케네디(바이 올린)/신포니아 바르샤바

 

“나는 늘 음악사 연구와 더불어 화보에도 신경을 쓴다”(음반 ‘낙원에 대한 그리움’) ©Harald Hoffmann / DG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라는 타이틀이 수석들의 독주·실내악 활동에도 레테르가 된다. 하지만 자서전에는 이적 후의 시간에 대해 ‘끔찍한 견습기’라고 했다.

“로타르 코흐(1935~2003)의 후임으로 1992년 입단했을 때 내 나이 스물일곱이었다. 상당히 젊은 나이에 정점에 오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 위대한 마에스트로들의 해석을 접하고, 훌륭한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실내악 앙상블, 독주자로서의 활동에 긍정의 영향을 많이 끼친 것 같다. 하지만 그때가 진정한 시작이었다. 수석에게도 어김없이 주어지는 2년의 시험 기간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칠 정도로 고된 시간이었다. 당시 동료들도 비슷한 시기였을 것이다. 밤베르크 심포니에 입단할 때만 해도 악단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가 내 손에 쥐어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밤베르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아바도는 어떤 지휘자였나?

“한마디로 음악적 아버지였다. 학구적이고 물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중시하는 그의 해석은 나의 음악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에게 배우며, 나는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아바도의 시간은 이제 전설이 되고, 페트렌코와의 시간이 현재와 미래를 만들고 있다. 필하모니커로서 최근 공연 중 인상 깊은 무대를 꼽는다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영웅의 생애’를 연주했던 무대다. 페트렌코와의 호흡은 물론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악장 비네타 사례이카-뵐크너와 함께 한 무대였다.”

 

음악을 고쳐 쓰는, 편곡

2000년, 즉 21세기에 나온 마이어의 음반들은 20세기를 풍미한 오보이스트들의 행보와는 확실한 차별선을 그었다. 베를린 필의 전임 로타르 코흐만 하더라도 모차르트의 오보에 협주곡과 실내악으로 대변되는 ‘정격’ 레퍼토리에 집중했던 반면 마이어는 음악사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텔레만(1681~1767), 바흐(1685~1750), 헨델(1685~ 1759) 등을 조명했다. 그 결과 2003년 바흐의 성악곡과 기악곡들을 조합한 ‘무언가’2007를 시점으로, 아바도/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모차르트의 발자취를 따라서’2004, 그리고 텔레만2005, 헨델2007 등의 작품을 수록한 음반을 발매했다.

이 과정에서 빛을 발한 것은 그의 선곡력은 물론 편곡력이었다. 오보에를 위해 태어나지 않은 곡들도 오보에로 흡수하는 야금술. 특히 오보에의 나무 리드가 내는 ‘목(木)소리’를 인간의 ‘목소리’를 위해 태어난 곡을 연주하는 데 빌려주는가 하면, 음반 ‘봉주르 파리’2011에서는 드뷔시·포레·라벨 등 소품의 선율이 그의 오보에를 타고 흘렀다.

 

2008

‘마이어 인 베니스’ Decca 4780313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뉴 시즌스 앙상블

 

2010

‘바흐의 목소리’ Decca 4782045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잉글리시 콘서트 & 트리니티 바로크

 

2011

‘봉주르 파리’ Decca 4782564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마티아스 뫼니우스(지휘)/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2015

‘바흐’ DG 4823494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신포니아 바르샤바

 

음반을 기획하면서 작품을 발굴하고, 기존 곡을 편곡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시하는 점은 무엇인가?

“사실 오보에 작품의 역사는 깊고, 작품 수도 방대하다. 플루트와 클라리넷, 트럼펫과 호른의 레퍼토리를 총망라해도 오보에를 위해 작곡된 협주곡이 더 많을 정도다. 오랜 역사를 지닌 악기가 지닌 특권이다. 오보에는 바로크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지만, 19세기 낭만주의기로 접어들면서 독주악기로서 입지가 좁아졌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악기로서의 역할이 확대되었기 때문이지 결코 오보에가 가진 매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음반을 기획·제작할 때마다 나만의 음반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래서 하나의 테마를 정한 뒤, 그에 맞는 여러 곡을 편곡하고, 조합·구상하고, 화보를 넣어 마치 팝 스타들의 음반과 같이 만든다. 내 음반의 제작 과정을 아는 이라면, 내가 최소 2년 전에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연구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근래에 내놓은 ‘바흐 제너레이션스’에서는 바흐의 고장 라이프치히의 음악학자 미카엘 마울(1978~)에게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바흐의 시대와 작품에 대해 지구상에서 누구보다 잘 아는 학자이다.”

바흐나 헨델의 성악곡처럼, 오보에를 위해 태어나지 않은 음악도 당신의 편곡을 통해 매력적인 오보에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다.

“성악곡에 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 악기가 그 노래를 부르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느끼고 믿는 경우도 많다. 사실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노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떤 악기를 연주하든, 심지어 지휘를 할 적에도 노래하는 것 같은 호흡과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팬들에게는 성악곡이나 다른 악기의 레퍼토리로 ‘여행’을 떠나는 점을 양해해주기를 바랄 뿐이다.(웃음)”

편곡된 곡을 악단과 함께 할 때는 편곡된 곡이 악단원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

“음악이 나오면 당연히 앙상블 멤버들을 내가 선호하는 길로 이끌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다.”

 

2015

‘로스트 앤 파운드’ DG 4792942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포츠담 캄머아카데미

 

2016

‘보칼리제’ DG 4796843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야쿱 하우파(바이올린)/ 모니카 라진스키(하프시코드)/마르쿠스 베커(피아노)/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신포니아 바르샤바/킹스 싱어즈/뉴 시즌스 앙상블

 

바흐와 바로크에 대한 애정

베를린 필의 전임 로타르 코흐는 카라얀 시대를 대표했던 수석인 만큼, 모차르트 레퍼토리에 주력했다. 이에 비해 ‘마이어=바흐’라는 도식이 떠오를 정도로 바흐에 집중하는 음반들이 눈에 띈다. 바흐의 음악은 어떤 존재인가?

“어린 시절 밤베르크 대성당 소년 합창단에서 활동했다. 바흐의 종교음악은 내게 ‘예술적 고향’ 같은 의미다. 밤베르크는 대주교가 다스렸던 가톨릭 도시로서의 전통이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때문에 가톨릭 신앙이 내 의식의 저변에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음은 당연하다. 물론 바흐의 음악 대부분이 루터교의 의례를 위해 작곡되었지만, 내 고향인 독일 프랑켄 지방이 가톨릭과 루터교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인 데다가 신앙이라는 큰 틀에서 볼 때 둘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바흐를 여러 색채로 연출하는 그만의 ‘바흐 사용법’도 남다르다. ‘바흐의 목소리’2010/Decca는 어린 시절에 접했던 바흐의 코랄들을 재구성한 음반이다. 올해 나온 음반 ‘바흐 제너레이션스’에서는 바흐의 두 아들 작품을 조명했다. 카를 필립 에마누엘 바흐(1714~1788),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바흐(1732~1795)이다. 두 형제 사이에 흐르는 ‘18년’이라는 시간을 축으로 삼아 “바흐의 아들이지만, 서로 다른 시기에 태어나 학습했던 만큼 미세한 차이점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2017년 금호월드오케스트라 시리즈 베를린 필하모닉 내한 공연

2013년 국립심포니 공연. 멘델스존 교향곡 3번 지휘

 

여러 곡을 편곡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어느 인터뷰를 보니 바흐의 작품을 편곡한 것을 놓고 평론가들의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비평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하지만 나는 평론가를 위해 편곡을 하지도 않고, 더 많은 청중을 위해 나만의 악보를 만들 뿐이다. 그들이 내 작품을 좋아한다면 나 역시 기쁠 뿐이다.”

마이어가 집중하는 인물이 바흐라면, 또 다른 관심은 바로크로 향한다. “오보에는 바로크 시대의 전성기를 누린 악기였다”라는 그의 말처럼, 마이어에게 바로크란 끊임없는 역사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시공간이다. 18세기 이탈리아 바로크기를 빛낸 비발디(1678~1741)를 축으로 삼아, 사각지대에 있던 조반니 삼마르티니(1700~1755), 도미니코 엘미(1676~1744), 조반니 알베르토 리스토리(1692~1753)의 오보에 협주곡이 수록된 음반 ‘이탈리아의 보물’2017을 추동한 것도 마이어가 심취한 바로크 미학이었다. ‘마이어 인 베니스’2008에서는 과감했다.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파트당 모두 한 명씩으로 소편성화 했다. 물론 최소의 편성이었음에도 류트, 쳄발로, 포지티브 오르간 등 바로크 음악의 특성인 ‘바소 콘티누오(통주저음)’ 파트를 유지한 것이었다. 정통성과 혁신이 공존하게 한 것이었다.

이러한 작품 발굴과 조명, 편곡과 변화 연출을 통해 마이어는 오보에의 역사와 미래를 진화시키고 있다. 특히 ‘오보에를 위해 태어난 곡’과 ‘오보에의 곡이 아닌 것’과의 만남과 야금술을 통해 오보에는 음악사의 맥락에서 새로운 관계성을 묻고 따지며 새로운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오보에 독주나 협주곡이 없어서 아쉬운 작곡가가 있을 것 같다.

“매우 어려우면서도 쉬운 질문인데, 바로 베토벤이 아닐까 싶다. 찾아보면 그가 남긴 오보에 독주곡이나 협주곡이 없기 때문이다.”

 

2017

‘이탈리아의 보물’ DG 4797144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이 무지치

 

2019

‘낙원에 대한 그리움’ DG 4836622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야쿠프 흐루샤(지휘)/ 밤베르크 심포니

 

2021

‘모차르트-오보에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들’ DG 4838232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브레멘 도이치 캄머필하모닉

 

2021

‘사랑의 그늘’ DG 4860413 알브레히트 마이어(오보에)/ 필립 윤트(플루트)/리처드 용재 오닐(비올라)/ 데이빗 필립 헤프티(지휘)/취리히 챔버 오케스트라 외

 

국립심포니와의 재회

국립심포니와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마이어의 마법 같은 구성력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엘가와 R. 슈트라우스가 마이어의 오보에를 다리 삼아 만난다. 두 곡이 한 무대에 오르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현악기나 피아노 협주곡에 비해 관악 협주곡은 그 분량이 짧다. 그래서 말러나 브루크너의 대교향곡을 앞두고 목관 협주곡을 커플링하곤 한다.

하지만 분량의 문제보다 낭만의 시선으로 이번 협연 공연을 살펴보면 ‘낙원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테마가 흐른다. ‘낙원에 대한 그리움’은 사실 마이어가 2019년 발매한 음반 제목이기도 하다.2019 음반에는 엘가의 ‘독백’과 R.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을 비롯하여 라벨 ‘쿠프랭의 무덤’, 구센스의 오보에 협주곡이 담겨 있다. 4곡을 관통하는 코드는 잃어버린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의 고향과도 같았던 밤베르크 심포니(지휘 야쿠프 흐루샤)가 함께 했다.

 

엘가의 ‘독백’과 R.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이 동시에 오르는 무대를 통해 우리가 느낄 매력이란 무엇인가.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은 다른 협주곡과 달리 한 마디만 기다렸다가 ‘곧바로’ 오보에의 독주가 펼쳐진다. 그래서인지 이 곡 앞에 붙는 ‘독백’은 슈트라우스 곡의 도입부 같다는 생각이 든다.”

R.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돈 후안’을 비롯하여 그의 교향곡과 교향시에는 남다른 오보에 활용법이 돋보인다. 악단의 일원으로서, 혹은 독주자로서 R. 슈트라우스 음악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의심할 여지없이, 그는 당대 최고의 작곡가 중 한 명이었다. 특히 관현악이나 교향시를 쓸 때도 각 악기에 대한 이해와 잠재력을 일깨우는 데는 최고였다. 그가 남긴 두 곡의 호른 협주곡이나 ‘영웅의 생애’ 등은 작곡가의 상상력과 연주자의 숙달된 기교가 합치될 때 더욱 빛이 나는 곡이고, 나 역시 매우 좋아한다. 나는 그의 열렬한 팬들 중 한 명임을 자처한다.”

그 외에도 교향곡을 통해 오보에의 매력을 발산시키게 하는 작곡가가 있다면 누구를 꼽고 싶나?

“슈만이다. 그는 오보에의 특성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1악장의 애수 어린 제1주제를 연주하는 오보에 소리를 떠올려 보라. 그런 의미에서 슈만의 영향 아래 성장한 브람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만년에 작곡한 클라리넷 소타나 같은 멋진 오보에 독주곡을 남기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교향곡 1번이나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오보에 독주가 브람스 역시 오보에를 잘 알았던 작곡가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잘 아는 19세기의 위대한 작곡가들은 오케스트라의 음향 속에서도 오보에가 빛날 수 있는 가치를 부여했다.”

R. 슈트라우스는 독일이 전쟁에서 패한 후 오보에 협주곡을 작곡했다. 외부의 시선과 달리 그에게 독일은 조국이었고, 조국이 전쟁에서 패하자,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듯 이 곡을 지었다. 이 곡을 연주할 때 어떤 생각이 떠오르나?

“오보에 협주곡(1945)은 호른 협주곡 1번(1883)과 마찬가지로 찬란했던 과거를 추억하는 작품이다. 물론 그가 역사에 남긴 행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전쟁기에 제국음악협회에서 권력을 지닌 회장이었고, 그로 인해 정권의 비호 아래 그와 가족들은 평온을 누렸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후 전쟁 전에 얻은 것들을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독백’은 어두운 중저음이 돋보이고, 이로 인해 두 곡이 함께 할 때 슈트라우스의 협주곡은 더욱더 밝게 느껴진다. 혹시 다른 색채를 연출하기 위해 각기 다른 리드를 사용하나?

“두 곡은 다르지만, 무대 위의 ‘같은 공기’로 두 곡을 연주한다. ‘같은 갈대(리드)’를 사용한다.”

녹음에 참여한 밤베르크 심포니는 수석으로 잠시 머무른 곳이었지만, 자서전에 보니 베를린 필의 입단 초기 시절에 어려울 때마다 떠올린, 한마디로 ‘낙원에 대한 그리움’을 품었던 곳이다. 이들과 함께 녹음할 때 어떤 기분이었나?

“너무나도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마도 이럴 때 라틴어 ‘프리무스 인테르 파레스(Primus Inter Pares: 동료 중 제1인자)’를 쓰는 게 아닌가 싶다. 그들이 머릿속에 품은 작품에 관한 상상력, 이를 현실로 보여주는 합주력으로 나 역시 좋은 순간과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었다. 내가 거친 곳이어서가 아니라, 그들은 이제 훌륭한 오케스트라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음반 ‘이탈리아의 보물’에서 ©Holger Hage / DG

 

마이어가 내한하는 10월, 가을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가을은 추억의 시간이다. 추억(追憶). 지난 일에 생각이 잠긴다는 뜻이다. 그의 오보에 소리와 함께 추억(秋憶)의 시간이 되기도 할 것이다. 추억(秋憶). 가을날(秋)의 생각(憶)이 깊어지는 시간.

한국의 가을은 아름답다. 끝으로 한국 팬들에게 남기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한국은 물론 한국의 음악가들은 모든 면에서 훌륭하다. 음악을 사랑하고,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한국에 빨리 가고 싶은 이유다.”

송현민(음악평론가·편집장) 사진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금호문화재단

알브레히트 마이어(1965~) 독일 밤베르크에서 성장해 밤베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입단 후(1990), 1992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이 되었다. 1994년 마르쿠스 베커(피아노)와 닐센과 슈만의 작품이 수록된 음반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0종에 가까운 음반을 발매했다. 2004·2007년 장윤성/프라임필하모닉, 2010년 마르쿠스 베커와의 리사이틀, 2013년 국립심포니와 협연 후 10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다.

 

Performance information

다비트 라일란트/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알브레히트 마이어)

10월 17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엘가 오보에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독백,

R. 슈트라우스 오보에 협주곡,

버르토크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Sz.116 BB.123 외

 

INTERVIEW 2

대가의 숨결을 느낀 시간들

1992년부터 베를린 필의 오보에 수석으로 활동한 알브레히트 마이어는 한국의 젊은 오보이스트들에게 거대한, 그야말로 대선배 같은 존재다. 유럽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 중인 오보이스트 함경(1993~)과 윤성영(1996~)에게 마이어와의 지난 추억에 관해 묻고 들었다.

 

오보이스트

함경


베를린 필 카라얀 아카데미에서 활동했을 당시, 마이어와 함께했던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카라얀 아카데미에서의 2년은 잊지 못할 뜻깊은 시간으로 남아있다. 마이어를 포함한 단원들이 베를린 필에서의 연주를 도와주고 응원해 주었다. 특히, 바비칸 센터에서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마이어와 시벨리우스 교향곡 전곡을 연주했던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사랑할 수 있게 한 연주이자, 오보이스트로서 크게 성장한 기회였다.

한 무대에서 연주하며 배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연주 전, 항상 일찍 도착해 연주 직전까지 리드를 체크하고 연습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연륜과 경험이 쌓여도 무대 위에서 항상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이 연주자로서 큰 자극제가 되었다.

최근 신보 ‘바흐’를 발매했다. 비슷한 시기에 마이어 역시 ‘바흐 제너레이션스’를 선보였는데, 오보이스트에게 바흐와 그의 작품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오보이스트가 바흐를 논하지 않는다는 건, 마치 ‘팥 없는 팥빵’을 먹는 것 같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보에는 바로크 시대에 가장 사랑받고 활발히 연주되었던 악기이고, 모든 음악의 기본이 되는 작품을 작곡한 바흐 역시 오보이스트들에게 굉장히 소중한 작곡가이다. 마태수난곡을 포함해 수많은 아리아와 오보에 협주곡, 파르티타와 소나타 등 그의 모든 곡이 소중하다.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를 거쳐 현재 핀란드 방송교향악단 제1수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이스트의 역할은 무엇인가.

다양한 지휘자, 솔리스트 그리고 동료 연주자들과 함께하며 매일 새로운 음악적 아이디어를 얻고 있다, 특히, ‘오케스트라’라는 큰 기계 속의 작은 부품으로서 내 역할을 잘 해냈을 때 느끼는 뿌듯함이 있다. 그중에서도 오보에는 오케스트라의 중심을 잡아주고, 악단이 추구하는 음색과 색깔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튜닝을 위해 연주하는 오보에의 A음만 들어도 그 오케스트라의 색깔을 알 수 있다.

오보이스트

윤성영


마이어에게 마스터클래스를 받은 경험이 있다.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면.

마이어의 건강 문제로 마스터클래스가 취소되어 아쉬워하던 도중, 그의 자택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다. 그 길로 한달음에 달려가 수업을 들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음악을 사랑하고, 연주하는 곡마다 세밀한 분석을 통해 작품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연주자였다.

후배 오보이스트로서 마이어의 연주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성악가의 목소리 같은 섬세한 비브라토가 아닐까. 그의 연주는 비브라토를 통해 많은 여운을 남기는데, 실내악·독주·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형태의 연주마다 그에 걸맞은 음악적 색채와 사운드로 바꾸어 연주한다는 점에서 만능 오보이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콩쿠르에 입상했는데, 오보에를 처음 접한 순간이 궁금하다.

사람의 목소리와 비슷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에 매료되어 오보에를 시작하게 됐다. 목관악기는 나무로 만들어진 악기에 숨을 불어 소리를 내는데, 연주자의 생각과 곡의 분위기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 악기의 울림과 감정을 객석에 또렷이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오보에의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가을부터 프랑스 페이드라루아르 국립 오케스트라 수석으로 활동한다.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준다면.

요리의 맛을 끌어올리도록 도와주는 소스 같다. 오케스트라에서 목관 파트 및 오보에는 솔리스트의 비중이 많은 악기이다. 솔로 연주를 통해 곡의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며, 곡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홍예원 기자 사진 파이플랜즈·금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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