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한 힙(H.I.P.)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1월 13일 9:00 오전

PERIOD MUSIC

예전의 고음악 이미지는 잊어라!
힙한

힙(H.I.P.)

음악!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romed Performance/H.I.P.)’,

줄여서 ‘에이치아이피’라고 발음하는 이 연주 방식은 보통 16~18세기의 오래된 작품을

연주합니다. 그냥 연주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를 재현하듯 오래된 서적을 읽고,

오래된 악기를 들고, 오래된 연주자들과 함께 하죠. 그럼 그들은 오래된 방식으로만 연주

활동을 이어나갈까요? 천만에요! 침대에 누워 유튜브 쇼츠를 무한히 돌리다가 만나버린

요즘의 색다른 고음악 이야기를 독자분들에게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기획·글 이의정 기자

 

INFORMATION 시대연주 악단, 21세기에서 살아남기

PERFORMANCE 오래된 명작에 접근하는 신 감각

HISTORY 시대악기 살펴보기 H.I.P.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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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연주 앙상블 ‘라 리티라타’(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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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FORMATION
시대연주 악단, 21세기에서 살아남기

고古음악의 신新마케팅!

시대연주 악단의 온라인 활용법

고음악, 원전연주, 정격연주, 당대연주, 시대연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연주(Historically Infromed Performance/H.I.P.)’라는 이 연주 방식을 부르는 용어는 무척이나 많습니다. 용어는 다소 복잡하지만 자주 보던 것보다 조금 화려하게 장식된 악기가 조곤조곤 작은 소리로 바로크 작품을 연주한다면 그게 바로 ‘힙(H.I.P.)’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용어의 크고 작은 의미 차이로 현재는 ‘시대연주’라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그렇다면 여러 단어를 제치고 이 단어가 대표적인 말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정격(正格)’, ‘원전(原典)’이라는 단어가 음악 해석에 정답과 오답이 존재한다는 뉘앙스를 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연주를 ‘변격’연주나 ‘사본’연주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든 ‘시대연주’라는 단어는 여전히 고지식한 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식’을 근거로 하는 음악이니 당연한 걸까요? 그러나 21세기의 시대연주 악단의 활동을 살펴보면, 딱딱한 이미지와는 살짝 거리가 있습니다. 시대연주를 떠올렸을 때 르네상스 시대의 명화, 낡은 교회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면, 그 이미지를 지워낼 악단들의 현대적인 활동을 둘러봅시다.

CASE 1

계몽주의 시대 오케스트라(OAE), 유머를 아는 악단

영국 런던에서 1986년에 창단한 이 단체는 이름(Orchestra of the Age of Enlightenment)대로 18세기 후반의 작품을 연주하는 것으로 출발했습니다. 자유로움을 가지기 위해 처음부터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았고, 고정된 레퍼토리를 주력으로 연주하기도 거부했습니다. 이들이 고집한 점은 오직 시대악기를 사용할 것. 그 외에는 다양한 것을 실험하기로 했죠. 이러한 실험이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영상 제작 활동입니다.

공식 유튜브 채널에는 다양한 영상이 있지만, 뮤직비디오 목록은 조금 튑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부르는 영상에는 길 한가운데를 걷는 한 남자가 마주 오는 사람들을 전혀 피하지 않으며 그들의 어깨를 모두 치고 지나갑니다. 사물도 이 남자를 가로막지 못합니다. 남자는 자신 앞에 놓인 자동차까지 밟고 지나가죠. 남자가 부르는 노래는 ‘당신이 저들을 부수리라(Thou Shalt Break Them)’로, 이 영상은 록 밴드 ‘버브’의 ‘비터 스위트 심포니’(1997)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뮤직비디오로 꼽히는 노래 중 하나를 패러디하니, 그 인상은 강렬하고 유쾌할 수밖에요. 이외에도 헨델 칸타타 ‘아폴로와 다프네’의 ‘친애하는 나무(Cara pianta)’를 부르는 영상은 록 밴드 ‘라디오헤드’의 ‘노 서프라이즈’를,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의 아리아 ‘내가 대지에 묻힐 때’는 밴드 ‘콜드플레이’의 영상을 패러디 했습니다. 두 영상을 서로 비교하면서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면 헨델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이른바 ‘숏폼’이 유행하는 요즘 시대, 그들이 만드는 유튜브의 ‘쇼츠’ 콘텐츠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미제 살인 사건: 이탈리아 작곡가 스타델라’ ‘헤미올라가 뭐예요?’ ‘쇼스타코비치, 시대 실로폰으로 연주하기’ 등의 제목도 호기심을 자극하는데요, 1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짤막하게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말해주거나, 음악 이론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거나, 시대악기를 소개하는 이 시리즈는 낯설다고 생각한 역사 지식을 재미있게 알려주는, 이들만의 개성 있는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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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E 2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 영상 생산에 진심!

바흐 음악 애호가라면 영상을 한 번쯤은 꼭 감상했을 겁니다. 네덜란드 바흐 소사이어티는 1921년에 창단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바로크 음악 연주 악단입니다. 대부분의 시대연주 악단은 1980년대에 등장하여 창시자인 예술감독이 현재까지도 활동하는 것에 비해, 이 악단의 예술감독 자리는 몇 번의 세대교체를 겪었습니다.

현재는 일본의 바이올리니스트 슌스케 사토(1984~)가 맡고 있죠. 누구든 한 번쯤 ‘영상’을 감상했다는 점이 이들의 성공적인 온라인 활동을 알려줍니다. 유튜브에 매주 꾸준히 올라오는 영상을 통해 바흐의 같은 작품도 다양한 연주로 들을 수 있고, 한 작곡가의 음악만을 다루는 만큼 바흐의 방대한 레퍼토리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다양한 인터뷰 영상으로 그들이, 또는 그들과 함께하는 연주자가 어떻게 바흐를 해석하는지도 들을 수 있죠. 이렇게 오래된 악단이 가장 활발하고 성실한 영상 활동을 보여준다는 점, 그 자체가 이들의 장수 비결이겠죠?

CASE 3

스프링 바로크·어텀 바로크, 다른 예술과의 결합

국내에서 활동하는 시대연주도 살펴봐야겠죠. 국내에는 올해 26회를 맞이해 가을에 열렸던 춘천국제고음악제도 있고, 다양한 단체가 함께하는 여러 바로크 음악제가 존재하지만, 이 지면에는 11월에 열리는 음악제 하나를 소개할까 합니다. 작년부터 시작된 스프링 바로크·어텀 바로크는 바로크 음악 연주자들이 꾸미는 국내의 정통 바로크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입니다. 이들은 다른 장르와 결합하여 친숙함을 더하거나, 현대적 예술 장르를 더하여 새로운 해석의 지평을 제안합니다.

첫 시동이었던 작년 봄 시즌에는 국내에서 역사의 고증에 따라 시대악기로 연주하는 앙상블인 ‘아니마코르디’를 이끄는 하프시코디스트 조성연이 참여했고, 재즈·현대무용과 함께하여 전통과 새로움의 이질을 보여주었죠. 이후 이어진 어텀 바로크에서는 아니마코르디 앙상블이 참가하여 ‘비바 헨델’이라는 제목으로 헨델 오페라와 현대연극의 결합을 보여줬습니다. ‘소사르메’ ‘알치나’ ‘리날도’ ‘줄리오 체사레’를 연결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는데요, 올해는 같은 내용을 다른 연주자가 선보입니다. 이번 가을의 끝자락엔 바이올리니스트인 김나연이 이끄는 바로크 음악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해 보는 건 어떨까요?

Performance information
어텀바로크2023 ‘헨델 헬로 헬’

10월 29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 11월 3·4일 부천아트센터 소공연장

 


CASE 4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재미있는 컬래버레이션

리코디스트인 조반니 안토니니(1965~)가 1985년 창단한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는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를 비롯해 몇 번의 내한을 가졌던 시대연주 악단입니다. 예술감독이 리코더에 정통한 만큼 바로크 음악을 전문으로 연주하는데, 이들의 음반 목록 사이에 눈에 띄는 음반 커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2019년 12월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한 바로크 성악 음반 ‘파리넬리’입니다.

음반에는 전설적인 카스트라토 파리넬리(1705~ 1782)가 실제로 불렀다고 하는 작품을 모았습니다.

브로스치(1698~1756), 칼다라(1670~1736), 자코모멜리(1692~1740) 등 낯선 작곡가가 가득하지만, 도발적인 음반 표지에 이끌려 버립니다. 카스트라토가 당시 남성의 가장 높은 성부였던 만큼 음반에는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처럼 화려한 기교가 가득합니다. 또한 수려한 연주를 선보이는 조반니 안토니니/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덕분에 음표가 촘촘하게 배치된 바로크 음악 세계에 입문하기도 적합합니다. 글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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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ORMANCE
고음악, 새롭게 해석하기

오래된 명작에 접근하는 새로운 감각

윌리엄 크리스티/ 레자르 플로리상이 들려줄 바흐의 ‘요한 수난곡’

11월의 끝자락, 아트센터인천에는 프랑스의 시대연주 전문 단체 레자르 플로리상이 찾아옵니다.

하프시코디스트이자 지휘자인 윌리엄 크리스티(1944~)가 1979년에 창단한 이 단체는 앙상블뿐만 아니라 합창단도 함께 있는 단체입니다. 바로크 시대 성악음악이 가진 큰 권위를 기악음악에 나눠주어 각자의 권위가 비슷해진 역사를 생각해보면, 시대악기 연주 단체와 합창단이 함께한다는 것은 그 어떤 단체보다 좋은 고증과 폭넓은 레퍼토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죠. 마침 이 단체가 국내에서 선보일 작품도 이에 걸맞습니다. 6명의 솔리스트와 합창단, 소규모 오케스트라가 필요한 바흐의 ‘요한 수난곡’이기 때문이죠.

‘요한 수난곡’ 작곡에 얽힌 이야기

이 작품의 특징 중 여러 연주자와 학자가 입을 모아 흥미롭다고 말하는 부분은 1724년에 완성됐다는 점입니다. 그해는 바흐가 라이프치히의 토마스 교회 음악감독으로 취직된 이듬해였고, 토마스 교회는 이 자리에 앉을 작곡가로 바흐가 아닌 다른 이를 원했기 때문이죠. 토마스 교회의 1지망은 그 시대 최고의 인기 작곡가 게오르크 텔레만(1681~1767)이었고, 2지망은 크리스토프 그라우프너(1683~1760)였습니다. 그러나 이 둘 모두가 거절하니, 직책은 3지망이었던 바흐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죠.

어쩌면 바흐는 자신의 능력을 교회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작곡한 것은 분명히 성공적인 어필이었을 거예요. 레자르 플로리상의 공동 연출가인 폴 애그뉴(1964~)는 이에 관해 “토마스 교회는 이 작품을 보고 그들의 옳은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겼을 겁니다”라며 이 작품의 뛰어난 완성도를 감탄했습니다.

완성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과 함께 이 작품을 네 번이나 공연했던 연출가 피터 셀라스(1957~)는 이 작품이 완성되고 초연한 1724년부터 작곡가가 죽는 1750년까지 여러 번 수정을 가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이는 당시의 연주자와 청중에게 ‘요한 수난곡’이 너무나 어려운 작품이었고, 필요에 따라 악기를 추가하거나 빼야 했기 때문이죠. 가령, 첫 판본에는 없었던 플루트나 류트, 비올라 다모레 등을 이후 판본에 추가한다거나, 너무 많은 반복을 피하기 위해 곡의 길이를 줄이거나 하는 것이었죠. 그러나 1749년 그가 죽기 전, 다시 작품에 손을 댄 것은 수정본을 처음의 판본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였습니다. 피터 셀라스는 이러한 바흐의 행적을 보고, 첫 번째 판본을 연구하는 것이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습니다.

이제는 알 수 없는 이 복잡한 바흐의 마음은 작품의 연주 방식에도 큰 차이를 가져왔습니다. 수난곡은 오라토리오와 유사하게 교회에서 부르는 드라마가 담긴 합창 양식이지만,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과 피터 셀라스 프로덕션의 경우 마치 콘서트 오페라와 같이 성악가에게 예수와 빌라도, 베드로의 노래를 아리아처럼 연기하며 부르도록 했고, 합창단도 당시의 군중을 연기했습니다. 계몽주의 시대 오케스트라는 연주 시작 전 교리와 관련된 독백을 추가하여 신성함을 더하는 방식을 선보이기도 했죠.

레자르 플로리상의 크리스티와 폴 애그뉴 역시 이 작품을 “굉장히 드라마틱한 작품”이라 말하며 예수의 수난기를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가창법을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11월에 내한하는 이들이 연주하는 판본과 연출 방식은 무엇일지 기대가 됩니다. 이날의 솔리스트로는 레자르 플로리상과 여러 번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소프라노 레이첼 레드몬트, 콘트랄토 헬렌 찰스톤, 테너 바스티앵 리몽디(복음사가 역), 테너 모리츠 칼렌베르크, 바리톤 마티유 발렌지크(빌라도 역), 베이스 알렉스 로젠(예수 역)이 함께합니다.

그들만의 바흐 해체 법

120장이 넘어가는 레자르 플로리상의 음반 사이에서 바흐를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들의 주력 작곡가는 바흐보다는 조금 더 앞선 시대이자 성악이 더욱 풍부한 몬테베르디, 퍼셀, 라모이고, 오라토리오와 오페라가 풍부한 헨델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들이 바흐에 취약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2016년 파리 필하모니에서의 실황을 담은 바흐 ‘B단조 미사’ 음반(2018)은 ‘가디언’ 지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됐고, ‘BBC 뮤직 매거진’에서 “크리스티는 바흐의 음악에 발레 슈즈를 신겨 그의 작품에 담긴 춤의 리듬을 유쾌하게 빛나게 했고, 이는 ‘바흐의 예술성에 담긴 인간적인 면모’를 표현하고자 한 목표를 달성한 것”이라고 평했습니다. ‘바흐의 인간적인 면모’는 20세기 만연한 이미지로 퍼진 ‘바흐의 독신자적 면모’에 대항하는 21세기 음악학의 해석으로, 단조로웠던 바흐의 인간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최근의 경향입니다. 크리스티는 올해 78세로 44년 동안 레자르 플로리상을 이끌어왔지만 여전히 그의 해석과 지평은 신선하고 깊이 있다는 반증인 것이죠.

‘B단조 미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들의 바흐는 당시의 가볍고 경쾌한 악기 소리를 반영한 듯합니다. 템포가 조금 빠르게 다가오는데, 크리스티의 노트에는 당시 춤음악이 크게 성행했다는 사실을 작곡가가 염두에 두었을 것이라고 적어놓았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프랑스 악단이 해석하는 바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국제적인 양식을 고루 갖추고 있었던 작곡가를 감안하면 크리스티의 해석이 오히려 흥미롭습니다. 시대악단이라 하면 박물관의 축음기에서 나오는 고루한 음악일 것 같지만, 오히려 가장 새롭게 생동하는 해석은 이들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아트센터인천

Performance information
윌리엄 크리스티/레자르 플로리상 11월 25일 오후 2시 아트센터인천 바흐 ‘요한 수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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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시대악기 살펴보기

옛날 악기, 함께 알아볼까요?

현대악기와 유사하면서도 다른 시대악기의 매력

시대연주의 기초는 시대악기라고 불리는 그 당대의 악기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그 음색과 조율 체계를 따라간다는 의미이죠. 즉, 시대연주가 다르게 들리는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하나, 악기 구성이 달라서, 둘, 악기 음색이 달라서, 셋, 현대와 조율 기준이 달라서입니다. 시대연주가 낯설다면 당대에는 어떤 악기가 사용됐는지 살펴보는 게 그 이해의 시작점이 될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고전시대 이전에는 지금처럼 오케스트라 편성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악단을 모집할 수 있는 대로, 혹은 가지고 있는 악기 대로 연주했기 때문에 명쾌하게 배치도를 펼쳐놓고 구성 악기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대신 현대 오케스트라 편성을 떠올리며 크게 현악기·목관악기·금관악기가 어떻게 달랐는지 알아보도록 하죠.

BOWED STRING: 찰현악기

바이올린족

바로크 시대에도 현대 오케스트라에서 쓰이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가 존재했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조금 더 널리 쓰인 것에 비하면 더블베이스는 조금 희귀했습니다. 이는 다른 저음 현악기들이 이미 존재했고, 작품의 음역이 지금보다 위·아래로 좁기에 더블베이스가 필요할 만한 작품이 적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작된 악기마다 가장 낮은 현의 음이 다르기도 해서 표준 규격으로 등장하는 것은 다른 악기보다 조금 늦지요.

이들은 지금의 악기와 다르게 양의 창자를 꼬아서 만든 ‘거트현’을 썼다는 것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현악기의 음색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부분이죠.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의 현악기들은 모두 거트현을 썼습니다. 류트, 하프, 기타까지 포함해서요. 저음의 거트현은 다소 두껍기 때문에 거트현에 ‘금속을 감은 개량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언제나 직접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지만, 그 소리 차이를 묘사하자면 금속으로 만든 현에 비해 깨끗하고 투명합니다. 배음이 더 풍부하게 울리고, 덕분에 더 깊고 복합적인 소리가 들리죠. 그러나 소리가 작고, 습도와 온도에 음정이 변할 정도로 내구성이 취약해서 20세기부터는 비교적 튼튼한 ‘금속현’이 대량으로 생산됐습니다.

또 다른 특징은 현대 악기보다 조금 소리가 낮았다는 것이죠.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면 오보에 주자가 부는 A음 소리로 모두가 조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현대에는 이를 440Hz에 맞춘다면, 이때는 조금 낮은 415Hz 또는 나라마다 그보다 낮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처럼 전 세계 표준 규격이 존재하지 않았고, 국가 간의 투어 공연이 지금보다 적었기 때문에 전 세계를 위한 동일한 조율을 만들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비올라 다 감바(비올)

바로크에 바이올린족이 있다면, 르네상스에는 비올라 다 감바, 그리고 비올라 다모레라는 비올족이 있습니다. 현이 6개인 것이 가장 일반적이고, 7개인 것도 있죠. 바이올린족의 전신으로 착각될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악기였습니다. 뒤판이 평평하고, 다 감바는 기타처럼 지판에 프렛이 있거든요.

우리는 다 감바를 더 살펴봅시다. 독주 작품이 제일 많은 ‘베이스 비올’, 비올라 정도 크기의 ‘테너 비올’, 그리고 바이올린 정도 크기의 ‘트레블 비올’이 대표적이죠. 다만 크기가 작아도 바이올린처럼 어깨에 올리지 않고 다리 사이에 끼고 연주했고, 가끔씩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바이올린족에게 점차 밀린 이유는 악단의 크기가 점차 거대해졌고, 더 큰 소리가 요구됐기 때문입니다. 비올족은 연주 방식과 악기의 특징 때문에 바이올린족보다 소리가 작았거든요. 다리 사이에 끼고 연주하니 울림통의 떨림이 덜하고, 활을 잡을 때 현과 나무를 모두 잡고 연주했기 때문에 큰 힘을 사용하기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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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CKED STRING: 발현악기

류트

명화나 시대극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대악기죠. 마치 당시의 통기타가 아닐까요? 서민부터 왕족까지 많은 이들이 배우던 악기였고, 노래를 부르며 직접 연주할 수 있는 악기였죠. 흔히 배 모양이라 부르는 몸체는 평평한 앞면과 둥그런 뒷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판이 평평하고 줄감개가 직각으로 꺾여있죠. 흔하게는 6현을 사용하는데, 가장 높은 현 하나 빼고는 현이 두 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악기가 점점 발전하면서 8현, 10현, 13현까지 사용하는데, 실제로는 15줄, 19줄, 25줄로 되어있다는 것이죠. 기타와 마찬가지로 왼손으로 음을 잡고, 오른손은 현을 뜯는데, 이때 오른손의 연주 주법은 기타와 유사하면서도 다릅니다. 현이 두 줄인 것을 이용해서 화려하게 트레몰로 연주를 할 수도 있었고, 기타처럼 피크를 사용해서 연주할 수도 있죠.

테오르보(키타로네)

류트가 모두가 연주하는 서민 악기라면, 테오르보는 공연에서 사용되는 목이 긴 전문가용 류트였습니다. 소리가 비교적 작은 류트는 사람이 많이 모여드는 공연이나 전문 성악가의 성량을 버티기 어려웠기에, 더 거대한 악기가 필요했던 것이죠. 이 악기를 부르는 두 명칭인 키타로네와 테오르보는 근본적으로 발명한 사람이 다른 서로 다른 악기이지만, 현대는 그 특징이 모두 테오르보로 모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류트와 다르게 모든 현이 한 줄로 되어있고, 14현이 일반적이지만 19현을 사용하는 악기도 존재합니다. 독특하게도 줄감개가 2개인데, 짧은 줄감개에 감긴 현들은 류트처럼 왼손으로 음을 잡고, 긴 줄감개에 감긴 현들은 그저 튕기기만 합니다.

BRASS: 금관악기

내추럴 호른·내추럴 트럼펫

내추럴 호른, 내추럴 트럼펫은 밸브가 없는 금관악기입니다. 밸브는 관의 길이를 조정하는 금관악기의 키이죠. 현대의 호른과 트럼펫은 3개의 밸브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스케일과 반음계를 빠르게 연주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밸브가 없는 내추럴 호른과 트럼펫은 오직 배음열에 있는 음만 연주할 수 있는 것이죠. 배음열은 낮은 음역 간의 간격이 넓고, 높은 음역 간의 간격이 좁습니다. 흔히 군악대에서 울려 퍼지는 팡파르 소리를 이 내추럴 호른·트럼펫 소리로 비유하죠.

삭버트

르네상스부터 사용한 금관악기로 현대 트롬본의 전신인 악기입니다. 외형도 매우 유사하죠. 다만 모든 악기의 음량이 작았던 과거에 맞추어 소리가 나는 관 끝의 지름이 거의 절반 정도로 작고, 입을 대는 마우스피스 부분도 작고, 관도 좁습니다. 그래서 무게도 현대 트롬본보다 가볍죠. 그럼에도 당시의 다른 악기보다 소리가 여전히 컸기 때문에 당시의 금관악기는 야외에서 연주하는 악기였습니다. 조용한 악기는 실내에서 교회음악을 위한 것이었으니, 군악대의 소리가 금관악기의 소리가 된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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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WIND: 목관악기

리코더

시대악기라고 표현하기 어색할 정도로 우리에게 친숙한 악기인 리코더는 다양한 크기와 음역으로 바로크 악단에 소속돼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소프라노 리코더는 다들 학창시절에 한 번씩 불어봤을 거예요. 현대에는 연주하는 법을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 살짝 민망한 악기가 됐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플루트의 자리를 리코더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리코더를 칭하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원어에는 모두 ‘플루트’라는 단어가 들어갑니다. 이 시대에 플루트는 대신 트라베르소(Traverso)라고 불렀습니다. 리코더는 바람이 들어가는 구멍이 매우 좁아 다이내믹 표현이 풍부하지 않기 때문에 다채로운 음악을 바라던 작곡가들에게 서서히 외면당했죠. 그러나 재빠른 움직임과 적은 숨으로 많은 음을 부를 수 있는 장점을 살려 바로크 시대의 빠르게 움직이는 패시지를 연주하기 좋은 악기입니다.

 

플루트,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

현대 플루트는 나무로 제작하지 않지만, 여전히 ‘목관(木管) 악기’로 분류됩니다. 그 이유는 이 목관 악기들이 만들어진 시대에서 유래하죠. 나무로 된 악기를 부는 것은 금속으로 만든 것을 부는 것보다 바람이 덜 필요하지만, 그만큼 음량이 작습니다. 우리나라 전통악기의 소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더 부드러운 소리를 내죠. 입으로 부는 악기이다 보니, 악기의 보존이 현악기보다 어려워 현대에 사용하는 시대목관악기는 21세기에 복제품으로서 새로 제작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 악기들의 공통점이라면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이 매끈했던 악기에 점차 키가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앞서 말한 데로 바로크 시대의 플루트는 리코더와 유사하게 생겼습니다. 리드가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금과 유사하기도 하죠. 구멍은 6개뿐이고, 누르는 키는 하나뿐입니다. 목관악기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18~19세기에 사용된 플루트는 같은 나무로 된 플루트일지라도 보다 복잡합니다. 모차르트 시대쯤에는 누르는 키가 4개까지 늘어났고, 베토벤 시대쯤에는 6~8개로 늘어났죠. 이로 인해 반음계 연주가 더욱 수월해졌죠.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도 마찬가지로 키의 수가 달랐습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키가 전혀 없었고, 바로크 시대부터 점차 키가 늘어났죠. 또 리코더처럼 구멍을 반만 막는 운지를 사용하여 반음을 표현했고, 그 소리가 지금의 음색과 매우 다른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큰 모양새 자체는 현대와 유사합니다. 리드가 붙는 모양도 동일하고, 바순은 특유의 U자 모형 관을 바로크 시대부터 가지고 있었습니다.

PERCUSSION: 타악기

팀파니

팀파니는 이동하며 연주하던 작은 북을 내려놓고 연주하는 데에서 기원했습니다. 타악기의 등장 시기를 명확하게 밝히는 것은 어렵지만, 팀파니는 18~19세기에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헨델도 자신의 작품에 팀파니 파트를 적어놓기도 했죠. 현대의 팀파니는 조율이 가능하고, 격렬한 연주 도중에 뚫릴 수도(!) 있을 만큼 얇지만, 옛날의 팀파니는 치는 면의 지름이 작고 두꺼워 조율이 어려웠습니다. 또한 베토벤 시대까지도 팀파니의 역할은 그저 가장 중요한 두 음을 강조해 주는 것뿐이어서 독자적인 악기로 들어서는 것은 19세기 중반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의 타악기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현악기가 17~18세기에, 관악기가 19~20세기에 가장 많이 변화했다면, 타악기는 현대에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악기군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타악기는 과거와 현재 모양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어떤 작품에 사용됐다는 그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죠. 글 이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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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피아노, 그 생생한 활용을 감상할 수 있는 콩쿠르

얼마 전, 아르헤리치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다며 지인이 한 영상을 보내줬습니다. ‘아르헤리치가 베토벤을 연주하는 게 그렇게 새로운 일인가?’하며 영상을 보니, 소리가 조금 이상했습니다. 아르헤리치가 연주하는 악기의 모습이 조금 낯설었어요. 알고 보니, 그가 연주하고 있는 것은 19세기에 제작한 피아노였고, 그 현장은 폴란드의 프레드릭 쇼팽 협회가 주관하는 ‘쇼팽시대악기콩쿠르(International Chopin Competition on Period Instruments)’였죠.

 

제2회 쇼팽시대악기콩쿠르

2018년부터 개최하기 시작한 쇼팽시대악기콩쿠르가 지난 10월 5일에 제2회를 맞이했고, 열흘간의 여정을 마쳤습니다. 진행은 쇼팽 콩쿠르와 동일하지만, 그 콩쿠르를 시대악기로 진행하는 것이죠. 이들은 20세기에 부활한 시대연주가 지난 40년간 큰 성과를 이뤘다고 생각하며, 이에 발맞추어 쇼팽 작품 역시 당대의 피아노에 맞추어 연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대회에 한국에서는 피아니스트 김현지와 김송하가 참가했으며, 캐나다 출신의 에릭 궈(2002~)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5년 전에 열린 첫 번째 대회에서는 8대의 피아노를 제공했는데, 이는 당대에 만들어졌거나, 그에 대한 복제품으로, 협회가 폴란드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대여해 온 악기입니다. 올해는 후원과 컬렉션이 더욱 확대되어 21대의 피아노로 선택의 폭을 넓혔습니다. 다만 참가자 대부분의 선택은 1842년에 제작된 플레옐 피아노와 1835년에 제작된 그라프 빈 피아노였지만요.

 

쇼팽의 시대 피아노

쇼팽은 총 3대의 피아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미유 플레옐(1788~1855)의 피아노 제작사, 피에르 에라드(1794~1855)의 피아노 제작사, 그리고 존 파울러 브로드우드(1732~1812)의 피아노 제작사에서 만든 것이었죠. 세 피아노를 모두 연주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플레옐 피아노를 선호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어서 여러 연주자들이 플레옐 피아노의 특징을 연구하여 연주에 반영하죠.

한편 쇼팽 협회가 콩쿠르를 위해 제공한 플레옐 피아노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고, 각 악기의 특성도 조금씩 다릅니다. 당시의 피아노도 표준 규격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악기 회사마다, 또는 피아노마다 건반 개수나 페달의 수가 모두 달랐습니다. 19세기에 사용한 페달은 일반적으로 두 개인데, 음을 길게 만들어 주는 댐퍼와 소리의 음색을 부드럽고 조용하게 바꿔주는 우나 코르다이죠. 또는 모데레이터라 하여 소리의 음량을 매우 줄여주는 페달을 1~2개씩 더 가진 것도 있습니다. 이 당시 피아노는 70개가 넘는 건반 현의 장력을 버텨주는 철제 프레임을 갖고 있지 않아 지금보다 가벼운 현을 사용했고, 때문에 음량도 더 작았습니다.

글 이의정 기자 사진 프레드릭 쇼팽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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