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다비데 리베르모어, 영상과 음악 사이, 비극을 그리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4월 23일 5: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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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하는 연주자들 인터뷰

연출가 다비데 리베르모어

영상과 음악 사이, 비극을 그리다

 

한·중이 공동 제작하는 오페라 ‘리골레토’, 이탈리아 연출가가 말하는 기술과 감정의 균형

©Eugenio

이탈리아 출신의 연출가 다비데 리베르모어가 오는 4월,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리골레토’의 새로운 프로덕션을 선보인다. 대구오페라하우스와 중국 국가대극원이 공동 제작·배급하는 이번 작품은 대구 공연 뒤 9월 베이징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리베르모어는 운영 미숙으로 논란됐던 ‘어게인 2024 투란도트’ 제작사와의 갈등 속에서 개막 공연일 연출 하차를 선언한 이후, 2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게 되었다. 그는 “한국에 돌아오게 되어 감격스럽다”고 전하며, “이번 ‘리골레토’에는 베르디 음악과 한국 관객을 향한 나의 애정이 담겼다”고 언급했다. 초대형 LED 패널을 활용, 입체적인 영상을 선보이는 방식으로 관객의 사랑을 받아온 다비데 리베르모어는 근래에 라 스칼라 극장 4개 시즌의 개막작(‘아틸라’(2018) ‘토스카’(2019) ‘맥베스’(2021·2022)) 연출을 담당했고, 지난해 국가대극원의 링 시리즈 중 ‘발퀴레’를 연출한 바 있다. 라 스칼라 ‘맥베스’와 국가대극원 ‘발퀴레’의 영상 작업을 맡았던 디워크(D-Wok)가 이번 프로덕션에도 함께할 예정. 오페라 속 배경인 16세기 만토바 공국을 고증한 프레스코 천장화의 입체적 구현 등이 주요 볼거리가 될 듯하다.

 

이번 오페라는 대구오페라하우스·중국 국가대극원이 공동 제작한다. 아시아 오페라 시장에 대해 어떻게 느끼나?

지금의 아시아는 오페라의 미래를 위한 실험실이다. 한국·중국은 젊고 활력 넘치는 관객층을 가지고 있다. 두 극장의 협업은 매우 이상적인 사례다. 높은 수준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 제작은 오늘날 오페라 극장의 활로이며, 동시에 오페라가 여전히 전 세계 보편의 언어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제는 어떤 극장도 고립된 섬처럼 홀로 존재할 수 없다.

대구오페라하우스는 1,602석, 국가대극원은 2천석이 넘는다. 극장 간의 물리적 차이는 어떻게 극복할 예정인가?

극장 간의 차이는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이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파올로 제프 쿠코(D-Wok 대표)와 기술을 활용해 ‘유연한’ 무대를 구상해 보고 있다. 프로덕션이란 극장의 ‘호흡’에 맞춰 변화할수 있어야 하며, 어디서나 같은 정서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무대 디자인을 제2의 배우로 활용하는 그만의 비법

라 스칼라 ‘투란도트’(연출 다비데 리베르모어) ©Brescia E Amisano

연출과 무대 디자인을 모두 맡았는데, 두 분야를 분리하지 않는 이유는?

두 영역을 같이 다뤄야 무대를 배경이 아닌, 마치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실연자로 만들 수 있다. 내겐 연출과 무대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연극적 언어다. 이번 프로덕션에서도 무대는 인물의 내면을 드러낸다. 영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인물의 생각, 예를 들면 질다의 외로움이나 리골레토 내면의 악몽 같은 것을 가시화할 수 있다. 무대 디자인은 관객을 비극으로 이끄는, 하나의 ‘시각적 악보’다.

 

최근 오페라에 영상 활용이 늘어나며, 오히려 감상을 방해한다는 시각도 종종 있다.

영상은 절대 ‘특수 효과’가 아니며, 반드시 극적 필연성을 가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악보와의 일치’다. 베르디 음악의 리듬, 감정의 온도와 정확히 맞아야 한다. 내게 기술은 ‘현대화된 붓’ 같은 것이라, 이를 활용해 보편적 감정을 그려내며 진실에 더 깊이 다가간다.

관객에게 이번 연출의 기대할 만한 장면에 대해 미리 알려준다면?

총체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마치 스릴러처럼, 긴장감이 넘치는 ‘누아르 리골레토’가 되지 않을까. 특히 리골레토가 부르는 ‘우리는 닮았군’ 독백 장면에선, 영상이 그의 정신 속 미로를 보여주듯 역동적으로 변할 예정이다.

‘리골레토’는 방탕한 공작과 광대 리골레토, 그리고 딸 질다를 둘러싼 비극이다. 가장 중요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는 무엇인가?

이 작품의 핵심은 보호적 사랑과 권력 부패 사이의 갈등이다. 아버지 리골레토의 절대적 사랑은 결국 숨 막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주목하는 것은 리골레토가 겪는 ‘사회적 저주’다. 그는 잔혹한 체제에 공모하길 강요받고, 결국 가장 사랑하는 딸을 파괴하게 된다. 이는 그녀를 지키려다 오히려 파멸로 이끄는, 한 아버지의 비극이다.

 

극장은 살아 있는 민주적 공간이다

처음 오페라에 발을 들인 계기가 무엇인가?

테너로 무대에 서면서부터가 시작이었다. 성악을 공부한 덕에 오페라의 내부를 경험했고, 파바로티·도밍고·카레라스와 같은 거장들과도 함께 했다. 노래를 위한 호흡, 그리고 음악을 섬기는 데 필요한 철저한 원칙을 그들로부터 배웠다. 이후 노래를 둘러싼 시각적·극적 세계 전체를 창조하고 싶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이는 자연스럽게 연출, 무대 디자인, 의상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전환기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은 토리노 왕립 극장·산 카를로 극장장 등을 이끌었던 카를로 마예르다. 오페라가 결코 먼지 쌓인 박물관이 아니며,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정치적 유기체라는 사실을 그로부터 배웠다. 여전히 내 작업은 그 가치관과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이상적인 대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현재 제노바 국립극장의 감독직을 맡고 있다.

이곳에서 나의 사명은 공공극장의 가치를 공동의 자산이자, 민주주의의 주요 기반으로 다시 세우는 것이다. 연극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며, 공동체가 모이는 도시(폴리스)다. 윤리, 탁월성, 혁신이라는 세 가지 축 위에서 우리 시대 문제와 호흡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에 연극과 오페라의 경계를 넘어, 시민으로서의 행위이자 동시에 총체적 미학 경험이 되는 극장을 만들고 있다.

2010년 국립오페라단 ‘메피스토펠레’가 한국에서의 마지막 연출작이었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메피스토펠레’ 공연 기억은 개인적으로 소중하지만, 이후 전 세계 연출 무대에서 많은 것을 겪었다. 이 긴 여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15년간 쌓아온 결실을, 한국의 관객과 나누고 싶다. 동시에, 이것이 지속적인 예술적 대화의 새로운 시작이 되길 바라본다. 극장에서 만나길 기대하며!

허서현 기자 사진 대구오페라하우스

 

다비데 리베르모어(1966~) 이탈리아 출신의 연출가, 무대·의상 디자이너이며 전직 테너. 라 스칼라 극장·덴마크 왕립 극장·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등 다수의 극장에서 오페라 연출작을 선보였고, 2020년부터 제노바 국립극장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대구오페라하우스·국가대극원 ‘리골레토’

4월 24·25일 대구오페라하우스(9월 중국 국가대극원 공연)

이동환·김한결(리골레토), 장원친·이혜정(질다), 유준호·권재희(만토바 공작) 외/김광현(지휘), 디오오케스트라·대구오페라콰이어·카이로 댄스 컴퍼니/다비데 리베르모어(연출·무대), 파블로 쿠코(무대 디자인), 디워크(LED 영상 제작)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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