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37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궁정 악단에서 국립 오케스트라까지, 500년의 발자취
스웨덴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대표 프레드리크 린드그렌

프레드리크 린드그렌(Fredrik Lindgren)은 스톡홀름 경제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스웨덴 인베스터 AB에서 12년간 재직했다. 쿤스캅스콜란(지식 학교)에서 12년간 재직하고 그중 9년간은 최고경영자를 맡았다. 스톡홀름 소년합창단·스톡홀름 음악고등학교·오페라 스튜디오 67에서 음악을 배웠고, 2022년부터 스웨덴 왕립 오페라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스웨덴 왕립 오페라 대표 프레드리크 린드그렌과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순간,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그의 뒤 흰 벽을 가득 채운 오페라 공연 사진이었다. 화려한 무대와 극적인 순간에 멈춰 선 성악가들의 모습은 단순한 공연 기록을 넘어 한 기관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예술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단체의 뿌리는 15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과 르네상스의 흐름 속에서 정치·종교 질서가 재편되던 시기였다.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바사는 궁정 음악가들에게 공식 급여를 지급해 궁정 악단을 조직하며 음악 활동을 국가 행정 체계 안에 제도화했다. 음악 단체가 개인 후원을 넘어 국가가 유지하고 계승하는 공적 기관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1773년, 계몽주의 사상이 유럽에 확산되고 문화예술이 국가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구스타브 3세는 스웨덴어 오페라의 발전을 목표로 국립 오페라단을 창설했다. 기존 궁정 악단은 오페라단에 편입되며 오늘날 스웨덴 왕립 오페라단의 기반이 되었다. 1526년 궁정 악단의 출범, 1773년 국립 오페라단 창설이라는 두 역사적 축을 바탕으로 스웨덴 음악사는 발전해 왔다. 2023년에는 ‘국립 오페라단 창립 250주년’을 맞이했고, 올해는 ‘오케스트라 창단 500주년’을 맞이한다. 다음은 프레드리크 린드그렌 대표와 나눈 화상 인터뷰다.

스웨덴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Henrik Halvarsson
500년 동안, 음악이 흘러왔다
음악을 사랑하던 소년이 스웨덴 왕립 오페라단을 이끌게 되었다.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이 궁금하다.
스톡홀름 소년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며 음악 중심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오페라를 공부했다. 이후 진로를 고민하다가 금융업에서 약 15년, 교육업에서 약 10년간 종사했다. 여가 시간에는 노래를 부르며 언젠가 스웨덴 왕립 오페라단의 대표가 되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다음 커리어 단계를 고민하던 시점에 오페라단 대표 공고를 보았다. 경영과 교육 분야에서의 경험과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표 자리에 지원하기에 적절한 조합이라고 생각해 지원했고, 농담처럼 말해오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다.
오페라·청소년 오페라·발레·오케스트라까지 총괄 경영한다. 다양한 부서를 관리할 때 우선순위는 어떻게 두는가?
오페라 하우스는 서로 다른 배경과 목표를 가진 전문 집단으로 복합적인 조직이다. 구성원이 조직의 큰 그림을 이해하고 협력해야 훌륭한 결과를 만들 수 있음을 체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궁정에서 출발해 오늘의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이르기까지 500년을 이어온 시간. 그 긴 역사 속에서 변하지 않고 지켜온 가치는 무엇인가?
오페라단의 핵심 가치는 예술적 탁월성과 국제성이다. 공연장은 스톡홀름에 있지만 이는 단지 물리적 거점일 뿐이다. 스웨덴 국민에게 왕립 오페라단은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 단체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닌 기관을 이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당신이 말하는 ‘전통에 대한 존중’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하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오페라 하우스에 출근할 때면 자연스럽게 존중의 마음을 갖게 된다. 지킬 가치가 있는 전통이란 과거에서 현재로 끊임없이 움직이며 진화하는 것이다. ‘전통에 대한 존중’은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축적된 역사를 오늘의 자산으로 삼는 태도이다. 이곳은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길러낸 공간으로, 전설적인 테너 유시 비엘링(1911~1960), 소프라노 비르기트 닐손(1918~2005)이 노래했고 안무가 마츠 에크(1945~)·알렉산더 에크만(1984~)이 오페라를 보며 성장했다. 이들은 오늘날 스웨덴 예술계의 중요한 자산이다.
한 편의 오페라를 위한 준비

스웨덴 왕립 오페라 하우스 내부 ©Markus Gårder
오페라 제작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그 안에서 오케스트라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오페라·무용·청소년 오페라를 담당하는 각 예술감독들, 그리고 세계적인 지휘자 앨런 길버트가 상의하며 무대에 올릴 작품을 결정한다. 수준 높은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위해서는 좋은 오케스트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고전과 현대 작품을 함께 구성하고 있다. 이유가 있나?
단원들에게 도전과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보다 폭넓은 관객층과 만나려는 전략이다. 국영 기관으로서 높은 예술적 수준의 폭넓은 레퍼토리를 공연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프로그램 선정은 음악감독과 단원들이 음악적 비전을 공유하고 조율하는 과정으로, 음악감독인 앨런 길버트를 중심으로 기획된다. 앨런 길버트는 부임 이후 오케스트라의 연주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정교하게 다듬는 동시에 극장 전체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최근 계약을 2029년 말까지 연장했다.
새로운 오페라 작품 위촉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
신작은 외부 작가나 작곡가 등으로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받거나 내부 예술 감독진이 논의를 통해 결정한다. 기관의 예술적 방향성과 결이 같으면 작곡가와 작가 등 창작진과 본격적인 협의를 시작하며 신작 위촉 여부를 결정한다. 일반적인 시즌 기획은 2~3년 후를 내다보고 진행되지만, 신작의 경우는 통상 5년의 계획 기간을 두고 준비한다.

가스미터 건물
미래 설계를 위한 전략과 리더십
단체의 예산 규모와 운영 원칙은 어떻게 되나?
연간 예산은 약 6천만 유로(한화 약 1천억 원) 규모로 전체 수입의 약 80%는 국가 지원금에서, 나머지 20%는 티켓 판매와 민간 재원으로 충당된다. 장기적으로는 자체 수입과 민간 후원의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목표이다. 각 소속 예술단체가 예술적 성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원을 합리적으로 배분한다.
기업 후원 전략이 궁금하다.
스웨덴은 예술·문화에 민간 후원이 강한 나라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부금은 주로 연구·학계 집중되어 왔다. 최근에는 문화예술 역시 민간 재원의 중요한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우리는 단순한 후원 요청이 아니라 장기적 동반 관계를 전제로 예술 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설계한다. 내년부터 진행할 오페라 하우스의 대규모 개보수 역시 이러한 접근의 결과이다. 세 개의 재단(‘마르쿠스 앤 아말리아 발렌베리 재단’ ‘에를링 페르손 재단’ ‘안토니아 액슨-아들 존슨과 가족’)으로부터 총 2천 8백만 유로(약 4백억 원)의 기부를 유치했다. 우리의 목표에 공감하고 문화예술 생태계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후원자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1898년에 건립된 기존 오페라 하우스는 2027년부터 2032년까지 약 5년간의 전면 공사를 앞두고 있다.
오페라 하우스는 약 120년 동안 스웨덴 오페라·발레의 중심 무대 역할을 해왔다. 건물은 노후화가 진행되어 지붕·환기·접근성 등 여러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이번 개보수는 단순한 수리 공사가 아니다. 내부 공간과 시설을 현대적 기준에 맞게 재정비하고 공간 활용성과 예술적 운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새로운 무용 스튜디오가 마련되고 다양한 활동을 수용할 또 다른 무대를 만들 예정이다. 극장 건물은 원래의 구조를 유지하며 공사를 진행한다. 보수 이후에는 역사적 디테일이 더 돋보일 것이다.
공사 기간에 오페라단은 어디에서 공연을 하는가?
리허설과 행정 업무는 스톡홀름 내 2~3개 장소로 분산되지만, 주공연장은 새롭게 개조되는 가스미터 건물이다. 가스미터는 과거 도시가스를 저장하던 대형 산업 시설로 극장 겸 콘서트홀로 전환해 임시 무대로 활용한다. 2027년 초부터 이곳에서 공연을 한다. 올해는 본격적인 이전 준비가 진행되는 중요한 해다. 내부적으로는 이를 ‘케어 오프(care-off) 기간’이라 부른다.
대표로 재임하는 동안 겪은 가장 큰 위기는 무엇이었으며 그 상황을 어떻게 극복했는가?
대표로 재임한 지난 4년은 직업 인생에서 가장 강도 높은 시기였던 것 같다. 극장 개보수 계획을 수립하고 이 기간에 오페라단 운영을 지속하는 방안, 어려운 재정 상황을 관리하는 일 등 큰 도전들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2023년 가을에 발생한 치명적인 무대 사고였다. 무대 기술자가 무대 위 발코니에서 12미터 아래로 추락해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고 조직 전체에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 충격을 극복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고 이후 우리는 근무 환경과 안전 규정 전반에 대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안전 관리 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규정을 보완·강화했고, 지금도 노력 중이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사고의 원인과 경위를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다. 무엇이, 왜 일어났는지를 분명히 확인하고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실질적이고 확실한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통의 책임을 다하다

앨런 길버트/스웨덴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Maria Paulsson
오페라 250년, 오케스트라 500년 운영의 역사를 지닌 역사적인 기관으로서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운영 철학이 있나?
다른 오페라 하우스와의 교류와 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열린 태도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기관일수록 스스로를 닫기 쉽지만 우리는 외부로부터 영감을 얻는 동시에 우리의 경험과 지식도 기꺼이 나누려 한다.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배우고 공유하는 과정이야말로 기관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청소년 프로그램 ‘영 오페라’를 강조하고 싶다. 우리는 극장 안으로 가족과 학교를 초청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학교·공공도서관·지역 기관과 협력해 그들에게 다가가기도 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사회에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예술을 지속시킨다. 미래의 관객과 예술가를 키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지닌 기관이 반드시 해야 할 책임이다.
올해 오케스트라 창립 500주년을 맞아 준비한 기념 프로젝트와 그 의미를 소개한다면?
500주년 기념의 막은 지난 1월 17일과 18일, 두 번의 갈라 공연을 하며 시작했다. 프로그램은 베토벤 교향곡 9번과 우리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인 토르비에른 헬랜더의 초연작 ‘시간의 결(Time Weave)’이었다. 베토벤의 인류애적 메시지와 현대곡을 함께 묶음으로써 500년의 유산과 현재를 연결하고자 했다. 또한, 극장 안팎에서 다양한 기념 공연을 한다. 모차르트·로시니·바그너·슈트라우스·멘델스존 등 여러 시대를 아우르는 레퍼토리로 오케스트라의 역사적 행보를 보여준다. 8월에는 유럽 투어도 한다. 네덜란드 콘세르트헤바우·독일 엘프 필하모니·스페인 팔라시오 데 페스티발레스 등 권위 있는 공연장에서 연주할 계획이다. 스웨덴 공영 방송(SVT)에서는 오케스트라의 500년 역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한다.
다가올 계절, 스톡홀름을 방문하는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톡홀름의 여름은 도시 전체가 한층 여유로운 분위기를 가진다. 여행을 계획한다면 공연 일정이 이어지는 6월 말 이전이나 8월 이후를 확인해 방문하길 권한다. 현재의 오페라 하우스는 19세기 건축 양식을 간직한 비교적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극장이다. 곧 극장 개보수 공사를 앞두고 있어 지금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기도 하다.
상쾌한 공기와 푸른 백야의 빛이 도시를 감싸는 스웨덴의 여름. 오페라 하우스 앞을 흐르는 노르스트룀의 물결과 뒤편의 ‘왕의 정원’, 그리고 멀리 보이는 왕궁의 실루엣은 이곳이 왕정의 역사와 시민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간임을 보여준다. 강을 따라 걷다 공원을 지나 오페라 하우스에 이르면 그곳에서 마주하는 것은 단순한 공연이 아니다. 오랜 역사와 공공 예술의 사명, 그리고 전통과 미래가 한 무대 위에서 이어지는 순간이다. 오페라 하우스는 지난 120여 년의 시간을 품은 채 다음 세대를 향해 준비하고 있다. 올여름 스톡홀름을 찾는다면 이 역사적인 무대에서 펼쳐지는 특별한 오페라의 밤을 즐기면 어떨까.
글 박선민(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스웨덴 왕립 오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