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무브스 2013

한국 무용수들의 무브, 성공이냐 도약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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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 안성수 픽업그룹 ‘로즈’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와 국제문화교류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코리아무브스(Korea-A-Moves) 2013’은 무엇보다 한류문화의 태동을 민간 단체가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허수 담은 주창보다는 실질적인 실천의 중요함이 드러났고, 이들의 전문적인 네트워킹의 위력이 유럽 전역을 감돌았다.

스웨덴 스톡홀름, 지난 2월 18일 한국 무용수들이 알란다 공항에 내렸다. 바로 전날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공연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잔뜩 얼어 있는 스웨덴의 하늘만큼이나 상기된 표정의 무용수들은 스웨덴 수도 중심에 있는 무용 전용극장 ‘단센스후스(Dansenshus)’로 향한다. 극장 로비에 시선을 머물게 하는 역동적인 포스터 ‘코리아 무브스 2013’은 그들의 스웨덴 행을 반기며 기다리고 있다. 한국에서 온 무용수들은 무심한 듯 극장 뒤로 들어가 무대 위를 점검하고 몸을 풀 뿐이다.
코리아무브스는 “우리나라 컨템퍼러리 댄스 안무가들의 유럽 진출”을 겨냥한 대규모의 프로젝트로, 2010년에 이어 올해는 지난 2월 11일부터 3월 11일까지 한 달 동안 유럽 4개국 7개 도시에서 열렸다. 참여 단체는 안성수픽업그룹·안수영댄스프로젝트·EDx2·프로젝트S·고블린파티 총 다섯 단체다. 11개 무용단(LDP·전미숙무용단·안성수픽업그룹·NOW무용단·오!마이라이프무브먼트시어터·선아댄스·ON&OFF·장은정무용단·동희범음희·매헌춤보존회) 8개국(독일·네덜란드·영국·스웨덴·스페인·아일랜드·포르투갈·에스토니아) 유럽 투어를 감행했던 지난 1차에 비해 규모를 줄인 올해는 ‘선택과 집중’으로 보인다.


▲ 안수영댄스프로젝트 ‘백조의 호수’

춤, 고통과 환희로의 항해
‘바디 콘체르토’는 안무가 안성수의 신작이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교육적’이다”라고 평이 난 안성수의 작품은 이곳 유럽에 와서 꽤나 도발적으로 이루어진 듯 보인다. 절제 있는 움직임을 자랑하는 그의 작품이 무용수들의 거침없는 동작과 힘으로 날개를 달았다. 흐트러진 질서가 제법 ‘예술적 반향’으로 작용해 인상적이다. 무용수의 후면과 전면에서 오는 조명은 또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빛과 움직임, 그리고 음악을 활용할 줄 아는 명징한 그의 안목이 유럽인들 앞에 서 있다.
안성수의 첫 번째 작품이 끝나자, 암전된 공연장은 굉장히 큰 포격 소리로 무장됐다. 심장을 울리는 음향과 함께 젊은 안무가 안수영의 작품이 무대에 올랐다. 환경을 주제로 한 ‘백조의 호수’는 차이콥스키 음악을 비틀어 또 다른 테마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백조 아닌, 제비의 이야기인 듯 우스꽝스러운 무용수들의 동작은 안무가가 말하는 “환경에 대한 극심한 스트레스”에 대해 기조하고 있었다. 흡사 전쟁과도 같은 참사로 시작한 춤이었기에 마음의 무장을 하고 기다렸지만, 결국 작품은 해학으로 끝났다. 곳곳에 스민 식상한 웃음 코드가 유럽 관객들에게 통한 모양이다.
이틀의 트윈빌 공연이 끝나고, 21일 저녁에는 영안무가 세 팀(고블린파티·프로젝트S·EDx2)이 무대에 올랐다. 개인적으로는 이중 안무가 정석순(프로젝트S)의 작품 ‘For Whom 2.0’을 성공적인 무대로 꼽는다. 두 사람의 남녀가 끌고 가는 거침없는 동작들은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인간 내부의 끈질긴 상처와 자생을 실감하게 했다. 그들의 몸짓은 이미 언어를 상실한 그야말로 ‘원초적인 움직임’의 전달이었다. 객석을 메운 관객들도 이를 알아보는 듯 사뭇 진지하다. 이러한 감각의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야말로 예술에서 가장 원하는 정점일 것이다. 이들의 무대 후에도 예외 없이 관객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감상은 진지하게, 토론은 격렬하게 나누는 북유럽 특유의 감상 분위기가 독특했으며, 그들은 어느새 쉴 틈을 주지 않는 한국 컨템퍼러리 댄스의 상상력에 매료되고 있었다. 이날의 공연은 이튿날 아침 스톡홀름 신문의 한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 프로젝트 S ‘For Whom 2.0

멤버십, 안무가와 무용수 그리고 관객
“무용수들을 굉장히 힘들어하고 있고, 매 공연마다 컨디션이 다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들을 겪어내는 것도 그들이 뛰어넘어야 하는 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작품을 넘어서 유럽의 관객들에게 훌륭한 무용수를 소개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안무가 안성수가 말했다. 연이은 공연 일정에 따라 나라에서 나라로 이동이 많다 보니, 무용수들은 몸의 상태가 수시로 다를 것이다. “오늘은 김보람 씨가 컨디션이 조금 안 좋아서 걱정을 했는데, 장경민 씨가 훌륭하게 곳곳을 감당해내 작품의 빈자리를 메웠”다며 무용수들의 건강 상태를 일일이 체크하는 안무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번 공연으로 스웨덴에 첫선을 보인 안무가 안수영의 작품은 다가오는 단센스후스의 댄스 축제에 다시 한 번 초대를 받았다. “국내든 국외든 무대 진출의 기회가 희박한 상황에서 이러한 경험들은 이끌고 있는 동료들과 스스로에게도 많은 도전이 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2년 전 코리아무브스를 통해 안성수를 만났던 단센스후스의 극장장 비르베 수티넨은 “한국무용수들의 뛰어난 예술성과 특유의 재치와 집념을 높게 평가한다”며, 안성수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다. 그들의 신뢰로 이번에 함께 선 신예 안무가의 작품도 믿고 ‘러브콜’을 한 것이다.
‘코리아무브스’라는 이름 역시 ‘한국의 춤’을 대제로 한 전면적인 운동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국의 춤’ ‘한국의 움직임’ ‘한국이 움직인다’ ‘한국이 움직였다’ 등의 연상은 어떠한 해석도 무리가 없었다.
이번 유럽 투어의 과정은 EDN(European Dancehouse Network) 소속 극장 예술감독들의 예심을 거쳐, 지난 2011년 세 명의 감독을 직접 한국에 초청해 실연한 후 선정했다. 그들의 안목에 따라 유럽에서 선호하는 작품의 경향을 파악하고, 일 년 단위의 계약 시스템을 고려해 긴 기간 공을 들인 셈이다. 주로 유럽의 예술시장의 경우 아트 마켓을 겨냥한 페스티벌 형식의 과정을 거치는 반면, 코리아무브스는 작품 수출의 루트를 역으로 이용해 직접 단독 공연의 기회를 마련하는 형식의 능동적 문화 교류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기획자의 전문성이 특별히 요구되는 방식으로, 지난 2010년 1차 코리아무브스를 통해 두 안무가의 유럽 진출의 성과를 거둬낸 바 있어, 이번 작업 역시 크게 기대하고 있다.
“한국 무용수들에게 유럽 무대 진출의 기회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직 한국에는 무용전용극장이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유럽에는 많은 무용전용극장이 있습니다. 때문에 공연의 기회도 더욱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한 길을 제공하고 그들이 경험해야 우리나라 무용수들도 더 큰 지경의 활동과 안목을 갖출 수 있습니다.”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대표 장광열이 말했다.
“‘코리아무브스’ 작업은 기존의 공연 위주의 형식에서 탈피해 ‘한국’이라는 총체적인 대상에 대한 관심을 유발시키는 것 또한 목표입니다. 포럼과 워크숍, 아티스트와의 대화 등이 그러한 작업의 일환입니다. 작품 개별에 대한 호기심도 유발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한국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포럼을 통해 평론가들이 직접 한국 춤의 동향을 소개하고, 한국 문화의 전반을 이해시키는 작업은 장 대표의 말대로, 유럽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초석을 다지는 차원이다. “아름다움은 행복의 자욱이다(Beauty is nothing other than promise of happiness)”로 시작한 평론가 이순열은 ‘미(美)’에 대해 유럽인들과 대화를 나눴다. 발표의 중간중간 한지를 비롯해 버선 능선에 대한 설명 등 한국적 아름다움을 다감(多感)을 이용해 설명했다. 이어서 무용평론가 이지현은 한국의 컨템퍼러리 댄스의 흐름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김채현은 무용계의 현황에 대해 발표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용계 전반의 흐름을 만난 객석의 참여자들은 “한국 춤의 원초적임 힘은 샤머니즘과 관계가 있는가?” “한국의 극장 수”와 “창작의 지원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과정은 이미 장르를 넘어 한 나라의 문화 그 자체를 흡수하는 산 교류, 혹은 정신적 물화의 교환 현장임을 직감했다.
이번 행사는 무엇보다 이러한 한류문화의 태동을 민간 단체가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내건 슬로건 ‘K컬처’가 오버랩 되며, 위에서부터의 허수 담은 주창보다는 실질적인 실천의 중요함이 드러났고, 이들의 전문적인 네트워킹의 위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성공이냐 실패냐, 혹은 성공이냐 도약이냐를 가늠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객석을 메운 관객들의 몰입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북유럽 혹한의 추위에도 공연장을 찾은 이들의 상기된 얼굴은 칼바람을 지나 뜨뜻한 극장의 나른함이 아닌, 한국의 컨템퍼러리 댄스가 전하는 열정으로 무장하고 있는 듯했다. 무용수들 역시 관객의 집중을 온몸으로 느낀 한 달이다. 그들 정신의 변화야말로 실로 가장 큰 수확일 것이며, 그것은 곧 우리에게 공급될 또 다른 양식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글 정우정(wjj@) 사진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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