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각지의 극장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는 한국 성악가들이 참으로 많아진 요즘이지만, 여전히 한국 성악가가 주역으로 무대에 선 유럽 오페라극장의 공연을 관람할 때면 남다른 감회가 들기 마련이다. 빈 슈타츠오퍼·테아터 안 데어 빈과 함께 오스트리아 주요 오페라극장으로 꼽히는 그라츠 오퍼에서 지난해 11월부터 공연 중인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는 이미 베를린 도이치 오퍼를 중심으로 유럽 무대에서 입지를 다진 테너 강요셉이 타미노 왕자로, 신인 소프라노 금주희가 밤의 여왕으로 출연 중이다. 타미노 역에는 강요셉 외에도 한국 성악가 전주은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이번 2013/2014 시즌부터 그라츠 오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디르크 카프탄이 지휘를, 프랑스 여류 연출가 마리암 클레망이 연출을 맡은 ‘마술피리’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랭 오페라, 니스 오페라와 공동으로 제작되었다.
클레망은 연출가가 작품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연출에 임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었다. 극중 상황이나 기존 대사와 전혀 연결 고리가 없는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나열된 것은 마치 선문답처럼 무언가 그럴 듯한 ‘쿨한’ 효과를 내고자 애쓴 의도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연출가 스스로 자신의 내적인 공허함만을 드러낼 뿐이었다. 작품의 이해를 돕고 작품의 이면에 숨겨진 복선을 드러내 관객으로 하여금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는 명연출은 어느 시대고 희귀하기 마련이지만, 이처럼 작품을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연출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반면 지휘자 카프탄은 적절한 템포 조절을 통한 생동감 있는 사운드로 모차르트 오페라는 그저 아름답고 순수한 소리의 향연이 아닌 작곡가가 극으로서 작곡한 작품이라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쾰른·그라츠 등에서 공연된 R. 슈트라우스의 ‘엘렉트라’에서 엄청나게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들려줬던 카프탄은 이번 공연에서도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젊은 지휘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다년간의 경험을 쌓은 덕인지, 강요셉은 한층 발전한 모습이었다. 그의 성량은 더욱 풍부해졌고 타고난 미성은 여전했으며, 자연스러운 연기는 동양 가수들이 종종 지적되곤 하는 ‘음악극 배우’로서의 한계를 극복한 지 오래였다. 재미있는 점이라면 타미노의 대사는 한국어로 공연되었는데, 이는 강요셉이 한국 성악가여서라기보다는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 가수의 경우 대사 부분에서 발생하는 어색한 억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도로 생각된다. 밤의 여왕을 노래한 금주희는 아직은 미완의 신인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훌륭한 테크닉과 한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는 드물게 가볍지 않고 두터운 음색이 충분한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작은 성량은 무대 장악력을 떨어뜨렸고, 긴장 탓인지 지나치게 경직된 모습이 아쉬움을 남겼다. 비슷한 기간에 공연되는 ‘투란도트’에서도 한국인 성악가 제임스 리가 주역 칼라프로 출연하는 등 젊은 한국 성악가들의 실력은 유럽 현지 무대에서도 정평이 난 지 오래다. 이들의 활약만큼 국내 오페라계 역시 많은 발전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이설련(베를린 통신원) 사진 Oper Gra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