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유럽 오페라 무대에서 최고 전성기를 구가 중인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이 주역 메피스토펠레로 열연한 베를리오즈 ‘파우스트의 겁벌’이 지난 2월 27일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막을 올렸다. 이번 공연은 음악감독 도널드 러니클스가 지휘하고, 취리히 발레의 새 예술감독 크리스티안 슈푸크가 연출을 맡았으며, 미성의 바그너 테너로 유명한 클라우스 플로리안 포그트가 주인공 파우스트 역으로 출연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희곡을 소재로 한 ‘파우스트의 겁벌’은 각 장면이 서로 극적으로 연결되지 않고 단순하게 나열되어 있어 통속적인 오페라와는 다른 전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연출가 슈푸크는 이 추상적인 작품을 굳이 사실적이고 논리적으로 무대화하지 않고 인간의 무의식과 꿈, 악몽 등의 심리적인 상징을 통해 풀어냈다. 그의 연출은 독일 라디오 방송으로부터 “파편적인 각 장면을 총체적으로 담아내려는 노력이 빛난 프로덕션”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공연 직후 현지 언론은 사무엘 윤의 무르익은 기량에 대해서 “환상적인 음색과 악마적인 표현력으로 메피스토펠레 역을 노래한 그가 이번 공연의 으뜸 패”(음악 전문지 ‘론도’) “타협을 모르는 강렬한 메피스토펠레로 우울한 주인공 파우스트 역의 포그트와 매력적인 대비를 이뤘다”(‘디 벨트’ 지) “단숨에 무대를 휘어잡은 타고난 메피스토펠레”(‘노이에스 도이칠란트’ 지) 등의 표현으로 앞 다투어 찬사를 보냈다.
사무엘 윤은 지난 2005년 성남아트센터에서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 역을 맡아 깊은 인상을 남긴 바 있다. 그는 “구노의 오페라는 배역의 세부적인 면까지 상세히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악보를 따라 잘 노래하는 것 이외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베를리오즈의 작품은 가수가 캐릭터를 스스로 완성해 나가야 하는 부분이 많아 시간을 훨씬 많이 투자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슈푸크는 이번 작품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 관객이 융통성 있는 해석을 할 수 있게 배려했고, 가수로부터 본인이 맡은 배역에 대한 창조적 능력을 이끌어냈다”라고 말하며 “그 결과 메피스토펠레는 사무엘 윤의 색깔이 덧입혀진 살아있는 인물로 거듭났고 우리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휘자 러니클스에 대해서는 “음악적인 면에서 너무나 잘 맞는 탁월한 지휘자”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슈푸크와 러니클스는 2017년까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팔리아치’ ‘토스카’ ‘살로메’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을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1999년 이래 쾰른 오퍼의 전속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사무엘 윤은 현재 쾰른과 베를린을 오가는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이다. ‘파우스트의 겁벌’ 첫 공연 직후 쾰른 오페라의 새 프로덕션 ‘삼손과 데릴라’의 리허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유명 메조소프라노 베셀리나 카사로바와 함께 출연하는 ‘삼손과 데릴라’에 대해 그는 “비교적 수월한 프로덕션이 될 것이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스캔들 요소가 많은 연출이라 녹록지 않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약 15년간 쾰른 극장을 거점으로 노래해온 사무엘 윤에게 올해 6월 쾰른 시는 특별 공로상을 수여한다. 세계적인 성악가의 반열에 오른 그가 문화도시로서 쾰른 시의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이에 사무엘 윤은 쾰른 출신의 성악가 아냐 하르테로스(2008)·마르틴 크렌츨레(2010)에 이어 세 번째 수상자가 된다.
글 이설련(베를린 통신원) 사진 Deutsche Oper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