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이하 OSR)의 이번 내한 공연은 이들의 명성을 확인케 했다. 일본의 떠오르는 젊은 지휘자 야마다 가즈키의 탁월한 지도력이 빛났으며, 앙세르메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는 듯 빼어남을 보였다. 이번 일본·한국 투어 연주는 상임 지휘자인 네메 예르비가 아닌 서른다섯 살의 수석 객원지휘자 야마다 가즈키가 이끌었다. 그는 오케스트라와 완벽한 파트너십을 이루며 단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지휘는 세심했으며, 힘이 넘치는 시원시원한 동작으로 큰 그림을 그려나갔다. 오케스트라는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사운드를 보여줬는데, 특히 목관악기군이 돋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연주되지 않았던 오네게르의 ‘퍼시픽231’을 선보인 것이 흥미로웠고, 이어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셰에라자드’를 선보였다. 이번 프로그램은 OSR을 창단한 후 49년을 이끈 지휘자 앙세르메가 즐겨 연주했던 레퍼토리다. OSR이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이 프로그램들을 프랑스 오케스트라 같은 화려하고 밝은 색채감으로 풍성한 연주를 들려줬다.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야마다 가즈키는 협연자를 배려하면서도 때때로 아우토반을 질주하는 스포츠카와 같은 날렵한 모습을 보였다. ‘셰에라자드’에서는 철저히 계산되고 예측된 지휘를 보였는데, 기계적이다 싶을 정도로 과장된 면도 있었지만 연주자와 청중을 설득하는 도구로 삼아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이날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선보인 클라라 주미 강은 고도의 기교와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1악장에선 든든히 뒷받침해주는 오케스트라에 비해 그 효과를 잘 살리지 못했으며 조금씩 뒤처지는 아쉬움을 남겼다. 2악장에 들어오면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선율을 잘 살렸고, 3악장에서는 특유의 날렵함으로 불꽃이 터질 듯한 경쾌함을 보이며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이날의 메인 연주인 ‘셰에라자드’에서는 1악장을 지나는 동안 음악적으로 큰 개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2·3악장에서 계속 등장하는 솔로 악기들의 향연은 연주에 푹 빠져들기에 충분했고, 곡의 후반부로 갈수록 응집력이 높아져 4악장에서는 OSR 특유의 화려하고 색채감 있는 연주로 마무리했다.
이번 공연을 성공적으로 이끈 가즈키는 일본에서 자란 순수 혈통 지휘자다. 어려서부터 브라스 밴드와 합창단을 지휘했고, 요코하마 신포니에타를 설립하는 등 자국에서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쌓아왔다. 일본의 경우 아마추어 음악가가 다양한 음악적 경험을 토대로 성장하고 그 속에서 프로 음악가도 함께 커갈 수 있는 음악적 토양이 잘 조성돼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제2, 제3의 가즈키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극심한 지휘자 가뭄을 겪고 있는 우리 음악계의 사정은 어떠한가? 대학 입시와 엘리트 육성 위주의 교육뿐 아니라, 해외 유학의 한계 속에 갇혀 클래식 음악의 저변 확대, 건전한 음악적 환경 조성 등을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 음악가가 성장할 수 있는 건강한 음악적 토양을 조성하고, 나아가 지평을 넓혀 인재를 발굴하는 시스템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 빈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