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85세 상임지휘자를 위한 기념 음악회 개최

FROM LONDON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 ⓒDan Porge

독일의 명장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의 85세를 기념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유럽 투어가 주인공의 불참 속에 마무리됐다. 지난 10월 2일 런던 로열 페스티벌홀 공연을 앞두고 도흐나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필하모니아는 독일 라인란트팔츠 슈타츠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카를 하인츠 슈테펜스를 긴급 투입해 공연을 대체했다. 이어 10월 9일 함부르크 라이즈할레, 18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을 커버하는 대륙 공연은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가 대신 지휘대에 올랐다.

도흐나니와 필하모니아의 본격적인 인연은 도흐나니가 1994년 악단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부임하면서부터다. 1970년대 프랑크푸르트 오페라에서의 활약을 인상적으로 평가한 필하모니아 행정감독 데이비드 웰턴은 악단의 중부 유럽 레퍼토리 강화책의 일환으로 도흐나니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고 1992년 6월 정경화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K218과 브람스 교향곡 2번으로 도흐나니의 필하

모니아 입성을 이끌어냈다. 1994년 시노폴리의 취소로 생긴 파리 공연의 공백을 도흐나니가 성공적으로 메우면서 행복한 동거가 시작됐다.

런던에서는 좀처럼 듣지 못하는, 도흐나니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시절 주조하던 ‘저먼 사운드’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필하모니아와 도흐나니는 런던 시장의 최강자로 자리 잡았다. 슈베르트·베토벤·슈만·브람스로 이어지는 독일 레퍼토리의 핵심을 아울렀고 템포와 아티큘레이션에서 역사주의 기법을 전달한 것도 도흐나니였다. 슈트라우스와 브루크너에서의 풍부한 루바토와 독특한 투티 밸런스는 2000년대 작품 해석의 새로운 전범이 되었다. 클리블랜드 시절 텔락과 데카를 통해 출반되던 음반 작업을 필하모니아에선 시그넘 레이블로 발매되고 있다.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수석지휘자를 역임한 도흐나니는 이후 에사 페카 살로넨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명예지휘자로 내려왔지만 필하모니아와 끈끈한 연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8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도흐나니는 필하모니아의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통해 건재함을 과시했다. 2014/2015 시즌의 필하모니아의 피날레 공연 역시 내년 6월, 도흐나니 지휘의 베토벤 교향곡 7번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번 유럽 투어의 여정지인 파리와 함부르크도 도흐나니와 인연이 남다른 도시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파리 오케스트라의 음악고문으로 재직했고 함부르크에선 1977년부터 1984년까지 함부르크 필과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의 음악감독으로,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함부르크 북독일 방송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를 역임했다. 도흐나니의 컨디션 난조에도 불구하고 보스턴 심포니·이스라엘 필·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85세 축하 공연을 그에게 맡기고 있다.

10월 2일 런던 공연을 대신한 슈테펜스는 베를린 필 수석 클라리넷 주자 출신으로 2008년부터 할레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를 시작으로 독일 주요 오케스트라의 색채를 다채롭게 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슈테펜스가 지휘자 전업을 선언했을 때 ‘슈피겔’지는 “베를린 필은 가장 중요한 솔리스트 한 명을 잃었다. 그러나 음악계는 의욕 넘치는 마에스트로를 얻었다”고 극찬한 바 있다. 김선욱과 NHK 교향악단 일본 투어를 함께하기도 했던 그의 지휘는 강약을 중시하는 비팅으로 현장 관객의 호응이 좋은 반면, 섬세한 지시가 부족해 객원 오케스트라와의 상성이 흐릿한 경우가 잦았다. 이번 공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메인 프로그램인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을 대하는 슈테펜스의 포인트는 볼륨의 완급을 통해 내러티브의 극적인 특성을 강조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템포 조절에 애를 먹은 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협연을 함께했던 프랑크 페터 치머만도 마찬가지였다. 필하모니아와 페터 치머만의 궁합은 1990년대 마리스 얀손스와의 시벨리우스 녹음(EMI Classics)을 통해 이미 최고의 경지를 맛본 사이다. 이들 사이에서 슈테펜스가 자신의 해석을 공유할 공간은 많지 않았다. 어쩌면 필하모니아의 유럽 본토 투어에 그가 배제된 맥락을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 카를 하인츠 슈테펜스 ⓒKlaus Rudol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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