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아데스
댄스 프로젝트
‘음악을 보라, 춤을 들어라’
1998년 재개관한 무용 전문 극장인 새들러스웰스극장과 2004년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앨리스터 스팰딩은 영국 현대무용 르네상스의 핵심이자 주역이다. 안정적인 복권 기금을 바탕으로 2010년대, 스팰딩은 웨인 맥그리거·러셀 말리펀트·아크람 칸 등 자국 안무가들을 월드 클래스로 부양하고 실비 기옘·크리스토퍼 휠던 등 인기 스타들의 초연으로 미디어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어냈다. 또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클래식만 다루던 에이전시 아스코나스 홀트와 협업을 통해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의 정기 공연을 유치하면서 런던 현대무용 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2014/2015 시즌, 스팰딩이 주목한 인물은 영국 현대음악계의 거장 토머스 아데스다. 새들러스웰스극장은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아데스의 음악과 주요 안무가들의 컬래버레이션 ‘음악을 보라, 춤을 들어라’를 올렸다.
이번 프로젝트는 스팰딩이 2011년 시작한 ‘작곡가 시리즈’에서 마크 앤서니 터니지를 다룬 이후 두 번째 기획물이다. 스팰딩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로 활동하는 아데스의 다면적인 재능을 공연에서 볼 수 있게 했다. 아데스는 맥그리거의 ‘문외한’과 크리스털 파이트의 ‘북극성’ 지휘자로, 캐럴 아미티지의 ‘인생 이야기’와 알렉산더 휘틀리의 신작 ‘굴 안의 모래’에선 피아니스트로 모습을 드러냈다. 오케스트라 피트와 피아노 의자를 오가는 아데스부터 ‘음악을 보라’는 권유를 체현했다. 네 작품 모두 원래 무용을 위해 쓰인 작품이 아니어서 ‘춤을 들어라’라는 명제는 안무가와 관객에게 청각을 열어놓으라는 기획자의 조언과 다름없었다.
첫 작품인 ‘문외한’은 2005년 아데스가 절친인 앤서니 마우드의 바이올린으로 초연한 ‘동심의 경로’를 음악으로, 맥그리거가 2010년 뉴욕 시티 발레를 위해 프리미어를 수정한 버전이 무대에 올랐다. 조성을 바꾸는 마디마디 발란신 스타일의 신고전발레 테크닉으로 대응하는 랜덤 댄스의 기량이 눈부셨다. 겉으로는 무리 없는 2〜3인무로 보이지만, 프레이즈를 이어가며 맹렬히 균형을 유지하는 댄서들의 힘 조절이 맥그리거의 강훈련을 되돌아보게 했다. 엄청난 속도의 피루에트에 이어 부드럽게 풀어지는 어깨와 팔의 유연함이 날카로운 아데스의 음악까지 무디게 했다. 아데스는 오랫동안 동경해왔다고 밝힌 발란신 ‘아곤’에서의 스트라빈스키 역할을 맥그리거를 통해 체험했다.
아미티지는 아데스의 1993년 작 ‘인생 이야기’로 2인무를 꾸렸다. 아데스는 정서적인 교감 없이 밤을 함께 보낸 남녀에게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룬 테네시 윌리엄스의 텍스트에 곡을 붙였다. 연인도, 친구도 아닌 관계에서 벌어지는 오해와 갈등, 관심과 집착이 댄스 듀오 ‘아미티지 곤’의 오프 밸런스와 플라잉, 엇박자로 일부러 어긋나는 비틀거리기로 희화화됐다. 판소리 완창처럼 작중 내용은 소프라노 클레어 부스가 스캣과 내레이션으로 설명했고, 유머가 터지는 부분에선 아데스가 피아노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즉흥연기를 선보였다. 성행위를 둘러싼 동물적 굴신의 무브먼트가 텍스트와 어울려 위트로 번지기까지 긴장감의 고조는 아데스의 피아노가 담당했다.
버밍엄 로열 발레 출신의 신예 알렉산더 휘틀리는 아데스의 2001년 작 피아노 5중주에 맞춰 3인무 ‘굴 안의 모래’를 발표했다. 컨템퍼러리 관점에서 휘틀리의 안무는 구식이었다. 작품 제목을 궁극할, 느낌을 자아내는 과정이 부실했고 둔중한 체형의 댄서들과 어설픈 연출 감각은 지루함으로 남았다.
믹스트 빌의 백미는 64명의 무용수가 동원된 파이트 안무의 ‘북극성’이었다. 브리튼 신포니아를 지휘하는 아데스를 모니터로 바라보면서 객석 2층에서 목·금관 밴드가 소요하는 것으로 작품이 시작됐다. 파이트가 집중한 건 군집을 이루는 몸들 사이의 에너지 교환이었다. 세포들이 분열하고 융합하는 과정처럼 런던 컨템퍼러리 댄스 스쿨·센트럴 발레 스쿨 학생들은 오케스트라의 힘에 따라 이리 쏠리고 저리 섞였다. 뉴욕 메트에서 아데스 작품에 참여했던 파이트는 ‘북극성’에서 음악과 무용 사이의 상관성보다 인간 사회는 늘 연합하고 갈라선다는 흔한 실상을 굉장한 볼거리로 만들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