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퍼라이아/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내한 공연

하이든의 아름다움과 유머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2월 1일 12:00 오전

 머리 퍼라이아/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 내한 공연
 
 하이든의 아름다움과 유머

 11월 10~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 크레디아

11월 10일과 11일 양일에 걸쳐 열린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즈(ASMF)의 내한 공연은 소규모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기본을 보여주는 대단히 중요한 연주회로서, 국내의 풀 편성 오케스트라에서는 좀처럼 경험할 수 없던 앙상블적인 감흥과 다양한 레퍼토리, 금상첨화로 지금까지 솔리스트로만 내한했던 머리 퍼라이아의 협주곡 레퍼토리까지 가세했다.

아카데미 오드 세인트 마틴 인더 필는 영국 악단 특유의 절제되고 강인하며 풍부한 음량을 바탕으로 레고 블록처럼 완벽한 합(合)과 런던 심포니 축약판 같은 주(奏)를 선보였다. 특히 허공을 가르며 두 사람 이상의 청명한 음량을 보여준 플루티스트와 부드러운 터칭의 호르니스트, 정확하면서도 직선성 강한 연주력을 선보인 클라리네티스트와 오보이스트, 여기에 노장의 노련함을 보여준 트럼페티스트의 맹활약은 역전의 노장들로서 미덕으로 칭송할 만했다. 더군다나 빈 식 악기와는 다른 질감과 타격감을 보여준 캐틀드럼 또한 흥미로움을 더했다.

첫날 첫 곡은 국내에선 거의 연주되지 않는 스트라빈스키의 ‘덤바턴 오크스’를 선보이며 관악 파트의 놀라운 저력과 최소 현악 파트의 기민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어서 지휘봉을 든 퍼라이아가 등장한 하이든의 교향곡 77번은 하이든 교향곡의 아름다움을 처음 경험한 18세기 말 런던 시민들의 놀라움에 비견할 만한 감동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빈 스타일의 화사함과 감각적인 느낌과는 전혀 다른, 영국식 정원을 연상케 하는 그 강한 실루엣과 정제된 조형미로부터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2부에 연주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는 클라우디오 아라우의 내한 연주회 이후 가장 감동적인 연주였음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기름기를 제거한 베이컨의 풍미에 비견할 만한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 사운드를 바탕으로 퍼라이아 또한 솔로 리사이틀에서는 경험하기 힘들었던 뜨거운 에너지와 비르투오시티를 발산했다. 그 정돈된 톤과 엄격한 터치, 건반 보드에 부딪치는 또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강력한 터치를 바탕으로 한 1악장과 영롱한 선율미와 투명한 우아미로 충만한 2악장의 대비는 너무 아름다워 눈이 부실 정도였다. 특히 1악장 카덴차풍의 옥타브 상하행 스케일 대목에서 보여준 퍼라이아의의 엄청난 압도감과 잦아드는 여운에 객석 여기저기서는 신음 소리가 절로 새어 나왔다. 3악장에서는 건반을 날카롭게 움켜쥐고 음고가 플랫되는 것마저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비르투오시티를 보여주어 객석으로부터 기립 박수를 이끌어냈다.

둘째 날 또한 잘 연주되지 않는 멘델스존의 신포니아 7번으로 지휘자 없이 시작한 뒤 퍼라이아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과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BWV1058을 연주했다. 천국에 아름다움에 비견할 만한 서정미와 투명함을 보여준 모차르트와 기계적인 느낌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다채로운 뉘앙스와 정교한 음량 대비를 보여준 바흐 모두 퍼라이아의 피아니즘의 특질을 고스란히 보여준 경이로운 무대였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하이든의 교향곡 94번 ‘놀람’. 어쩌면 이번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더 필 내한 공연에서 가장 감격적인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이든의 아름다움을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이든의 아름다움과 유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감동적인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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