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28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에너지, 그리고 몰입감
발레 ‘스파르타쿠스’는 안무가가 희구한 리얼리즘의 미학을 무대에서 어떻게 구현하는가가 성공의 키다. 이를 위해서는 전쟁 장면에서 남성 무용수들을 포함한 군무진의 고양된 앙상블, 드라마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 간 감정의 유기적 연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립발레단의 예술감독 강수진이 4년 만에 다시 올린 ‘스파르타쿠스’. 네 명의 주역, 노예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아내 프리기아, 로마 장군 크라수스와 그의 애첩 아이기나 사이의 균형감, 남성 무용수들의 기량과 군무의 앙상블 등에서 확실히 전보다 업그레이드되었다.
‘스파르타쿠스’는 로마군과 반란군의 전투가 주된 내용인 만큼 양 진영의 기 싸움에서부터 실제 전투 장면까지 로마 병사들과 노예 반란군으로 나뉜 남성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량이 요구된다. 1막에서 크라수스가 이끄는 로마군의 행진, 3막에서 스파르타쿠스가 창에 찔려 죽는 장면과 그의 시신을 들어 올리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사실적 묘사에 극적 분위기까지도 몸 전체에 담아내야 한다. 방패와 칼을 들고 추었던 1막과 다르게 두 팔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한 안무가의 차별화된 움직임을 표출해낼 수 있으면 금상첨화다.
필자가 관람한 26일 공연에서는, 남성 무용수들의 기량은 군무에서 분출된 에너지를 공유하는 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점프의 높이나 방패·칼의 위치에서의 통일성, 투혼을 불사르는 비장한 표정 연기에서의 앙상블 등에는 더 세밀한 보완이 필요해 보였다.
역사적 사건에 기초해 만들어진 만큼 ‘스파르타쿠스’는 등장인물들이 작품의 완성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대본 작가인 니콜라이 볼코프는 고대 로마신화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기나’라는 캐릭터를 새롭게 설정했고,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는 네 명의 주인공 역할을 거의 동등하게 안배해 극적 구조를 유지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이들 네 명의 무용수는 각각 상반된 자신의 캐릭터를 충분히 살려내야 드라마의 긴장감이 유지된다.
스파르타쿠스 역 이재우와 크라수스 역 변성완은 우선 체격적인 면에서 작품에 필요한 리얼리티를 살려냈고, 큰 키에서 뿜어내는 에너지와 안정된 기량은 작품의 중심을 잡는 데 기여했다. 초반에는 두 무용수 모두 몸이 무거워 보이고 스피드도 부족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 대한 몰입도와 움직임이 살아났다. 크라수스 역으로 전격 캐스팅된 신예 변성완의 성장은 표현력만 보완한다면, 전막 발레 작품의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다만 이재우는 1막 검투사와의 대결 중 자신의 동료를 죽였다는 사실에 비통해하는 장면에서, 변성완은 2막에서 스파르타쿠스에 패하고도 그의 배려로 살아날 수 있었던 크라수스의 굴욕감을 더욱 현실감 있게 표출했어야 했다.
‘스파르타쿠스’에는 솔리스트 개인의 춤뿐 아니라 이미지를 내포하는 구조, 화려하고 다양한 구성 속에 배치된 고전적 춤까지 이 모두를 중요시하는 안무가의 특성이 비교적 잘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남성 무용수들 못지않게 여성 무용수들의 춤과 스토리 라인을 살리는 연기적 요소가 잘 버무려져야 제맛을 낼 수 있다.
프리기아 역의 김지영은 그녀가 왜 프로페셔널한 무용수인지 확연하게 입증했다. 스파르타쿠스·크라수스·아이기나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감을 유지하고 손끝, 발끝까지 감정을 담아내는 노련함을 보여주었다. 아이기나 역의 박슬기의 팜파탈적 연기는 크라수스와의 감정선을 변화시키는 접점에서 빛을 발했다. 크라수스와의 2인무에서 그녀는 부도덕성과 교활함이 강조되는, 드라마의 구조상 가장 선이 굵은 연기와 춤을 무난하게 소화했다.
다만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 대신 녹음 음악을 사용한 점은 예술적 완성도에 영향을 끼쳤다. 강수진 예술감독이 부임한 이후 국립발레단은 새로운 레퍼토리의 확충 외에도 공연 전체의 완성도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무용수 개개인의 작품에 대한 해석과 집중력, 그리고 적절한 캐스팅에 기인한 바 크다. 이번 공연에서도 국립발레단의 이 같은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