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볼쇼이 발레를 떠나 2013년 봄 영국 로열 발레 수석 무용수로 합류한 이래, 매 출연마다 강력한 티켓 판매를 견인해온 나탈리야 오시포바가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일까지 런던 새들러스 웰스에서 색다른 프로젝트에 도전했다. 프로젝트는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러셀 말리펀트·아투르 피타의 단편을 묶은 컨템퍼러리 트리플 빌로, 2014년 ‘솔로 포 투’에 이어 오시포바는 2년 만에 다시금 클래식 발레 영역 밖에서 자신의 한계를 측정했다.
얼핏 과거 로열 발레에서 퇴단할 무렵, 새들러스 웰스에서 본격적으로 현대 안무가들과 협업한 실비 기옘의 공연과 유사해 보인다. 그동안 오시포바(1986~)의 연륜은 컨템퍼러리 공연을 단독으로 끌고 가기에 힘이 부족하다는 평도 있었다. 오랜 연인이던 이반 바실리예프와 함께 한 ‘솔로 포 투’에서 오시포바는 오하드 나하린의 무용 언어, 가가의 습득에 애를 먹은 모습이 공연에 그대로 드러났다. 이번 프로젝트엔 지금의 동반자, 세르게이 폴루닌(전 로열 발레 수석무용수)이 파트너로 나섰고, 나하린 대신 말리펀트 작품이 편입되었다.
공연을 앞두고 여전히 악동 이미지가 강한 폴루닌과의 조합을 ‘제2의 브란젤리나(브래드 피트-안젤리나 졸리)’로 보는 시각과 런던 이주 4년째를 맞이해도 리허설과 대외 인터뷰에서 러시아어-영어 통역을 쓰는 오시포바의 적응력에 대한 우려가 영국 미디어에 존재했다. 2015년 밀라노 ‘지젤’ 공연에서 폴루닌을 만난 오시포바는 일간지 ‘데일리 메일’에 폴루닌의 아이를 갖는 문제를 털어놓을 만큼, 진지한 관계임을 대외에 알렸다. “단 이틀도 그와 떨어지기 힘들다”는 애정이 공연에서는 어떤 그림으로 이어질지가 핵심이었다.
피타는 2인무 ‘런 매리 런(Run Mary Run)’에서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팝 앨범 ‘백 투 블랙(Back to Black)’의 1960년대 정서를 추출해, 그 기운을 오시포바의 분방한 신체에 입히려 했다. 로드무비 형식으로 성교와 마약, 로큰롤이 반복되는 구성이 10대의 일탈을 다룬 오래전 하이틴 영화를 무대에 옮긴 느낌이었다. 탕아의 캐릭터를 과도하고 코믹하게 그린 것이나, 지난한 슬랩스틱을 반복한 설정은 피타의 기존 패러디와도 세부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클래식에 갇혀 신음하는 오시포바의 역경을 비꼰 의도로 해석하기도 무리였다. 새들러스 웰스에 오른 셰르카위 작품들에 매료됐다고 밝혔던 오시포바는, 이번에도 작품을 맡겼다. 혼성 3인무 ‘쿠트브(Qutb)’는 알라신에게서 특별한 능력을 물려받은 이슬람권 사람을 뜻한다. 일렉트릭 음악과 태양빛을 모티브로 한 강렬한 조명 안에서 오시포바는 컨템퍼러리 무용수 제임스 오하라, 제이슨 키텔버거와 타오르는 에너지를 선정적인 방식으로 교감했다. 그렇게 절대자들의 강력한 상호 의존을 통해서만 자연재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안무가의 메시지가, 독무와 2·3인무를 가리지 않고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됐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크리스토퍼 휠든·웨인 멕그리거와 어깨를 견주던 말리펀트의 최근 행보는 주춤하다. 오시포바-폴루닌 듀오의 ‘사일런트 에코’는 클래식 기본기를 바탕으로 두 무용수가 상대의 잠재력을 찾아가는 방식을 취했다. 라인을 존중하고 상대의 힘을 이용해 부양하는 테크닉은 클래식 발레 무용수로서 미덕을 부각시켰다. 내러티브를 느리게 끌고 가는 스타일은, 말리펀트가 기옘에게 컨템퍼러리를 안내한 ‘브로큰 폴(Broken Fall, 2003)’과 비슷한 속도였다. 카를로스 아코스타, 다시 버셀처럼 무용수의 이름이 브랜드가 되기 위해, 오시포바가 익혀야 할 언어와 경험은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