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바흐의 화성을 추수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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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10월 12일 10:33 오전

COVER STORY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바흐의 화성을 추수하는 시간

©Marco Borggreve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아트센터인천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이틀씩, 총 4일에 걸쳐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선보인다. 카바코스는 올해 2월 ‘6개의 독주곡’을 제목으로 같은 프로그램을 음반(Sony)에 담아 발매한 바 있다. 관객 앞에 바흐의 무반주 전곡을 선보이는 건 25년 만이란다. 동연배 음악가들과 비교하면 이번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 녹음과 연주가 늦은감이 있지만, 그는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기획 임원빈 기자

INTERVIEW 작품과 음악가가 함께 여물어가는 법 _임원빈

COLUNM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 파르티타 역사 _최은규

DISCOGRAPHY 지난 31년간 쌓아온 음악의 기록 _임원빈


INTERVIEW

카바코스와 편지로 주고받은 진지한 대화

작품과 음악가가 함께 여물어가는 법

 

레오니다스 카바코스(1967~)가 한국에서 독주회를 갖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2016년 TIMF앙상블, 2018년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 2020년 서울시향 등과 협연을 위해 꾸준히 내한했다. 그래서 카바코스를 떠올리면, 홀로 선 무대보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선 모습이 먼저 그려진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솔로 연주만큼이나 함께 만들어가는 무대에 대한 애정이 깊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의 탱글우드 페스티벌을 위시해 스위스의 베르비에 페스티벌과 고국 그리스에서 열리는 아테네 에피 다우 루스 페스티벌까지 매해 다양한 축제 무대에 실내악 연주자와 지휘자로 서고 있다.

애정을 갖고 축제에 참여하는 이유에 관해 묻자 “오랫동안 못 본 동료들을 볼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라고 이야기하며 탱글우드 페스티벌에 대한 추억을 꺼냈다. “여름마다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 나의 오랜 친구인 첼리스트 요요 마와 피아니스트 이매뉴얼 액스와 트리오를 함께 하고 있다. 솔리스트일 때는 홀로 무대에서 객석을 바라보지만, 실내악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호흡을 맞춘다. 그 과정은 서로의 영혼까지도 헤아리는 듯하다. 상주 오케스트라인 보스턴 심포니와의 협연도 항상 즐겁다.” 덧붙여 “여러 축제의 초청에 다 응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도 전했다.

협주곡에 대한 애정은 그간의 음반과 무대들로 가늠해볼 수 있다. 1991년 발매된 그의 첫 음반에는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1903~1904년 오리지널 버전, 1905년 최종 버전을 담아 작곡가의 두 가지 시선을 함께 담았다. 또한 부동의 해석으로 굳혀있는 협주곡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깊은 시선도 지난 2020년 티에리 피셔/서울시향과의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크라이슬러나 요하임이 작곡한 카덴차를 연주하는데, 그는 내한 무대에서 직접 카덴차를 작곡하여 선보였다. 유려한 스케일이 끝나고 팀파니와 함께 민속풍의 음악을 한바탕 주고받은 모습에서 오늘날 비르투오소가 고전을 들여다보는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스 국립음악원에서 스텔리오스 카판타리스를 사사한 카바코스는 1984년 아테네 페스티벌로 데뷔했다. 1985년 최연소의 나이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1988년 파가니니 콩쿠르와 나움부르크 콩쿠르에서도 우승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지휘자로도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다. 로저 노링턴의 뒤를 이어 잘츠부르크 카메라타의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이탈리아 라 스칼라 필하모닉·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등을 이끌었다.

내한을 앞둔 카바코스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평소 교육에도 열정이 있는 그다운 답변들이 줄을 이었다. 바이올린이 아니었으면 어떤 악기를 했을 것 같냐는 기자의 질문에 바이올린에 대한 예찬과 함께 악기의 역사를 풀어놓는다. 바흐에 대해 질문하자 예상 외의 많은 답변이 쏟아진다. 이번 내한을 앞두고 그간 연구해온 음악과 삶에 대해 해줄 말이 많아 보였다.

당신의 연주를 처음 본건, 수년 전 한 유튜브였다. 젊은 당신은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5번를 연주했다. 영상 속에는 엄청난 속주에 관내가 술렁이는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연주가 기억나는가? (사실 기자는 가끔 속이 답답할 때 이 영상을 찾아 듣곤 한다)

여러 사람이 나에게 그 영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당시 연주 템포는 내가 원했던 것보다 느렸다. 원하는 템포로 갔다면, 아마 컨트롤이 안 됐을 것이다. 지금 들어보면 저걸 어떻게 했나 싶다.(웃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테크닉을 연마하는데는 공격적이고 화려한 파가니니 카프리스만큼 완벽한 곡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니, 화려함과 빠른 템포로 관객을 홀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파가니니 카프리스 5번 연주 영상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와 민속음악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할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바이올린을 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인데, 당시 어린 카바코스에게 음악은 어떻게 다가왔는가?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밴드에서 연주하다가 음악대학에 진학하셨다. 어머니도 피아니스트이셨기 때문에 음악은 언제나 집의 중심에 있었다. 집에서 항상 연습하던 아버지의 연주를 듣고 자란 내가 바이올린을 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198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1988년 파가니니 콩쿠르에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오늘날에도 콩쿠르는 음악가들에게 중요한 발판인데, 당시 콩쿠르에 나가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어머니께서 시벨리우스의 고향인 핀란드에서 연주해 보라고 제안하셔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참가하였다. 우승을 위해 나간 것은 아니다. 한편 파가니니 콩쿠르에 나가게 된 계기는 조금 다르다. 당시 우승자에게는 파가니니가 사용했던 1742년산 카논네(II Canonne)를 연주할 수 있는 특전이 있었다. 그 악기는 이탈리아 제노아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었는데, 그 바이올린을 꼭 연주해 보고 싶었다.

좋은 스승이 강조하는 한 가지 음악가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피아니스트 페렌츠 라도시를 꼽았다. 그의 밑에서 배운 값진 가르침 한 가지를 꼽자면?

모든 스승은 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페렌츠 라도시(1934~)에게 9년 동안 배우며 ‘악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다른 관점으로 악보를 연구하게 되었고, 연주와 지휘에 좋은 영향을 끼쳤다. 그분 덕분에 음악적으로 더 큰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그리스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스텔리오스 카판타리스에게 배웠다. 테크닉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 해결을 위한 빠른 진단과 치료에 능한 분이었다. 그 후에 나는 그분처럼 바이올린 테크닉을 완벽하게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프랑코 벨기에 악파를 정통 계승하는 인디애나 음대의 요세프 긴골트(1909~1995)는 바이올린 외에도 본인의 오케스트라 재직 시절 만난 솔리스트와 지휘자들에 대한 음악적인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다. 그의 음악적 역사를 잇는 한 축이 되었다는 사실에 굉장한 자부심을 느낀다.

© Sony Music Entertainment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1967 그리스 아테네 태생
그리스 국립음악원에서 스텔리오스 카판타리스 사사
1984 ‘아테네 페스티벌’ 데뷔
1985 최연소의 나이로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1988 파가니니 콩쿠르·나움부르크 콩쿠르 우승
1991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 그라모폰 ‘올해의 협주곡상’ 수상
2014 그라모폰 ‘올해의 음악가상’ 수상
잘츠부르크 카메라타 음악감독 역임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라 스칼라 필하모닉·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객원 지휘

교육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현재 여러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젊은 음악가를 양성하고 있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교육에만 몰두할 수 없기 때문에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나마 내가 배운 음악의 전통과 영감을 학생들에게 전하고 있다. 나의 윗세대들이 그러했듯 다음 세대에게 조금이나마 영감의 씨앗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강조하는 가르침은 무엇인가? 테크닉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 음악은 각 개인의 서사와 영감이 중요하기에 그 서사를 음악으로 말할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음악은 악기, 음악의 악상, 그리고 연주자의 영적인 동기를 통해 말하듯 ‘발음’되는 예술이다. 그때 비로소 관객과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화려한 기교로 잠깐의 눈가림하는 것이 아닌, 작곡가의 의도를 음악의 전령사로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도록 가르친다.

그런데도 위대한 음악가란 테크닉과 음악적 재능을 가리는 콩쿠르를 통해 등장하기도 하지 않는가?

콩쿠르 즉 ‘경쟁(Competition)’은 잘못된 동기부여이다. 콩쿠르는 축제의 개념이다. 세계에서 모인 유망한 젊은 음악가들이 관객들과 소통하고 서로 알아가는 장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심사를 통해 우승이 가려지지만, 모든 우승자가 세계적인 음악가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콩쿠르에서 빛을 못 봤던 사람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경우도 수없이 보아 왔다. 콩쿠르는 그저 경험일 뿐이다.

작곡가를 움직인 바이올리니스트

©Marco Borggreve

그는 작곡가 진은숙(1961~)과의 인연이 깊다. 진은숙은 그의 연주에 매료되어 20여 년 만에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썼다. 하지만 팬데믹으로 미뤄지다가 올해 사이먼 래틀/런던 심포니의 연주로 초연 무대를 올렸다. 진은숙과의 인연에 대해 묻자 “그녀가 나의 베를린 공연에 두 번 정도 왔고,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전에 실은 서로를 잘 알진 못했다”라며, “진은숙이 협주곡을 쓰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말해 주었을 때 실로 놀라웠다! 큰 영광이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당신을 위해 작곡된 작품이라면 테크닉적으로 화려한 작품이었을 것 같다. 작품의 첫인상은 어떠했는가?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테크닉적인 어려움이 해결되자 무엇인가 더 보이기 시작했고, 사랑에 빠지게 됐다. 오는 2023년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이 협주곡을 선보일 예정이다. 하루빨리 이 곡을 진은숙의 고향인 한국에서 선보이고 싶다.

초연 무대를 앞두고 작품을 다듬어가며 진은숙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텐데, 그와의 만남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그가 얼마나 따뜻한 성품의 사람인지도 알게 되었다. 그녀와 깊은 인간적인 교류와 예술적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나의 인생에 중요한 다음 장을 넘기는 순간이었다!

그 작품과 작곡가에 대한 당신의 평가는 어떠한가.

진은숙은 ‘색깔’을 구현해내는 마술사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악기들로 구현해내는 총천연색의 음악은 실로 대단하다. 여느 현대음악처럼 큰 음향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닌 세밀하게 속삭이는 부분들이 이 곡의 묘미이다. 물론 연주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작품이기도 하고.(웃음) 하지만 작곡가의 상상력뿐 아니라, 연주자에게 상상력의 영감을 주는 음악들로 가득해 연주자가 오히려 큰 자유를 만끽하는 듯한 감동이 있다. 오케스트라 파트의 색채도 풍부하고 깊이 있다. 오케스트라 입단 오디션곡으로도 좋을 만큼 오케스트라에도 도전이 되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바흐에 집중하는 시간

2005년에 발매한 음반(ECM)에 바흐 파르티타와 소나타 1번을 담았다. 그 후 17년 만에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음반으로 담았는데, 이 녹음은 동년배 연주자들에 비해 다소 늦은 감이 있다.

1980년 즈음, 당대연주에 능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지기스발트 쿠이켄(1944~)의 음반을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프레이징, 튜닝, 작품의 뉘앙스 등 모든 것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 충격으로 2005년 음반을 발매하기 전까지 오랜 기간 바흐를 연주하지 않았다. 전곡 녹음을 결심한 계기가 있는가? 바흐는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것이 보이는 작곡가이다. 계속 새로운 것이 보이니 음악적 욕심에 계속 때를 기다리며 연습했다. 2005년 음반 발매 이후 전곡 연주를 위해 조금씩 연구해나갔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더 성숙해진 뒤에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을 담은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연륜이 생기고, 경험을 충분히 쌓고 만난 바흐는 어떠한가?

바흐의 음악을 수식하는 말은 흔히 ‘완벽의 경지’ ‘오차 없는’ ‘푸가의 완성’ 등이다. 하지만 내가 느낀 바흐의 음악은 ‘거울의 이미지’이다. 작은 주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거대한 건축을 이룬다. 바흐가 설계한 대칭되는 음악적 이미지와 기하학적 설계는 감탄을 자아낸다. 또한 많은 철학자들이 온 우주와 세계가 반사(reflection)의 영상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바흐 작품이 주는 영상미와 반사의 상상력으로 녹음 기간 동안 꿈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실내악·협주곡 등 대형 무대에서 여러 음악가와 늘 함께했는데, 바흐의 무반주 작품을 연주할 때 외롭지 않은가? 연주자마다 이 외로움을 활용하는 방법이 제각각 있는 것 같다.

특히 이런 곡을 혼자 녹음하는 것은 굉장히 외로운 여정이었지만, 특별한 시간이기도 했다. 온전히 나의 내면과 하나가 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자아와 음악을 탐험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음반으로 만난 당신의 바흐 연주는 본능적이고 영적인 연주로 느껴진다.

이 시대에 바흐는 새로운 해석, 시대악기와 당대연주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되고 있다. 그런데도 변치 않아야 할 바흐의 음악 세계관은 무엇인가?

다양한 해석은 환영할 일인데, 나는 바흐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 중 화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철저히 화성에 의해 움직인다. 악보를 보면 수평적 음들의 연속인 듯하지만, 엄격한 수직적인 화성의 작용이다. 또 다른 하나는 ‘스토리텔링’이다. 오페라나 연극과 같이 언어의 서사가 아닌, 음악에 얹은 연주자 내면의 서사이다. 이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바흐 음악의 가치이다.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에 담긴 철학

© Sony Music Entertainment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만나는 건 음악가와 관객 모두에게 흔치 않은 기회인 것 같다.

관객 앞에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전곡을 선보이는 건 나에게도 25년 만인 것 같다. 바흐에 대해선 무슨 설명이 따로 필요하겠는가! 음악이 말해줄 것이다.

협연자로 여러번 내한했지만, 독주회는 처음 갖는다. 그것도 무반주로. 감회가 어떤지 궁금하다.

한국에서의 연주는 항상 즐겁다. 열정적이고 음악적 소양이 뛰어난 한국 관객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이 큰 영광이자 즐거움이다. ‘바흐 대장정’을 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생겨서 감사하고, 이번 한국 투어에 기대가 크다.

이번에 연주할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은 1720년경에 작곡되었고, 당신의 악기인 스트라디바리우스 빌모트(Willemotte)도 1734년산이다. 바로크 시대에 완성된 악기로 바흐의 작품을 연주할 때 더욱 특별한 점이 있는가?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참 특별하다. 18세기가 바이올린 제작의 전성기였고, 그때의 기술력이 어떻게 음향적으로 완벽함을 이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공연장의 규모를 포함해 많은 것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이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악기의 음색을 듣기 위해 공연장을 찾는다. 악기 제작자인 스트라디바리(1644~1737)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이 작곡되었을 당시 70대였다. 이미 메디치 가문 등에 악기를 만들어 주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같은 시대에 제작된 악기와 작곡된 음악이 2022년에 합쳐진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는다.

2020년 티에리 피셔/서울시향과의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서울시향

보통 연주자들은 연주 여행을 다닐 때 3~4개의 활을 들고 다닌다. 앙코르 무대에서 바흐나 바로크 곡으로 연주할 때는 활을 바꿔서 등장하기도 하는데, 당신은 어떠한가?

나 또한 여러 개의 활을 사용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바로크활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바이올린과 달리 활 제작의 전성기는 19세기였다. 큰 편성의 작품들이 쏟아지면서 연주자들도 제작자에게 음악의 규모에 맞추어 활을 만들어달라고 한 것이다. 이번 내한 공연에서 사용할 활은 활 제작의 명인인 프랑수아 투르테(1747~1835)의 활이다.

그런데도 음악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거트현과 바로크 활로 연주해야 한다는 의견과 2천여 석이 넘는 현대 공연장 규모에 맞게 현대식 활을 써야 한다는 의견이 여전히 팽팽하다. 당대연주에 대한 당신의 견해가 궁금하다.

쿠이켄의 연주에 충격받은 후, 당대연주를 환영하는 입장이다. 당대연주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시간여행을 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당시의 작곡가들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작품을 썼는지를 알게 해준다. 당대연주에 대한 연구는 동시대에 어떤 접근을 통해 작품을 연구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이정표라 생각한다.

바로크 음악은 콘서트 피치인 442~443Hz(헤르츠)가 아닌 415Hz에 맞추어 연주한다. 이에 따라 얻게 되는 음악적 효과는 무엇인가?

반음 낮추는 튜닝을 ‘바로크 튜닝’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번 무대에서 그보다 낮은 411Hz에 맞추어 연주한다. 일반적인 콘서트 피치로 들을 수 있는 화성의 질감과 매우 다르다. 비로소 바흐가 원했던 화성이 구현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바로크 튜닝으로 연주하는 것이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명확한 작곡가의 의도가 드러나고 당대 음색을 구현하면서도 현대식 공연장의 규모에 맞출 수 있는 균형이 필요하다.

첫날 파르티타 3번 BWV1006과 소나타 2번 BWV1003, 3번 BWV1005를 묶었고, 다음날 소나타 1번 BWV1001과 파르티타 1번 BWV1002, 2번 BWV1004를 묶었다. 교차해 선곡한 이유가 궁금하다.

일반적이지 않은 구성이긴 하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 파르티타 3번이 유일하게 ‘서곡(Prelude)’으로 시작하기에 투어의 첫 곡으로 선택했고, 이어지는 순서는 조성을 기준으로 짰다. 첫날은 E장조(소나타 1번)-C장조(소나타 3번)-a단조(소나타 2번)이고, 둘째 날은 g단조(소나타 1번)-b단조(파르티타 1번)-d단조(파르티타 1번)이다. 각 날의 세 가지 조성은 하나의 화성을 이룬다. 개인적으로 조성에 따라 선곡한 것이 관객에게 더 좋은 경험을 준다고 생각한다. 귀가 적응하기 쉽고 전체적인 흐름을 따라가기에 훨씬 편할 것이다.

공연을 보러올 관객들이 “이것 하나는 꼭 느끼고 갔으면 한다”는 게 있다면?

솔직히 그런 바람은 없다.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자세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어에 ‘헤르메네이아(Hermeneia)’라는 단어가 있는데, ‘해석’ 또는 ‘번역’이라는 뜻이다. 단어의 ‘Hermes’는 ‘신의 전령사’라는 뜻이다. 같은 의미로 나는 그저 바흐의 전령사일 뿐이다. 나를 통해 그의 음악을 듣고 느끼는 것은 관객이다. 나는 관객이 느끼는 영감에 대해 아무런 권한이 없다.

앞으로는 어떤 공연과 일정들이 예정되어 있는가?

네덜란드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와의 투어와 여러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작품 연주가 기다리고 있다. 한국은 2023년 봄에 통영국제음악제를 위해 다시 찾을 예정이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프레스토아트

 

Performance information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바이올린 독주회

대구콘서트하우스 10월 12일 바흐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바이올린 소나타 2번·3번 10월 13일 바흐 소나타 1번, 파르티타 1번·2번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10월 15일 바흐 바이올린 파르티타 3번, 바이올린 소나타 2번·3번 10월 16일 바흐 소나타 1번, 파르티타 1번·2번


COLUMN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 파르티타BWV1001~1006의 역사

피아노 반주를 붙였던 시절도 있었다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악보를 처음 봤을 때의 당혹감은 잊을 수 없다. 바흐는 바이올린을 건반악기로 생각했던 것일까? 두 개의 음은 물론이고 세 음, 심지어 네 음으로 이루어진 화성들이 ‘푸가’와 ‘샤콘’을 시커멓게 메우고 있었다. 악곡 해석은 둘째 치고 일단 선율악기인 바이올린으로 이런 화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그것부터 생각해야 했다.

이처럼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는 바이올리니스트에게 많은 숙제를 안겨주는 문제작이다. 음악적인 표현을 생각하기에 앞서 해결해야 할 기술적인 문제들이 너무도 많은 데다, 연주 방식에 대해 나름대로 연구하지 않고서는 결코 제대로 된 연주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보니 이 곡을 연주하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다르고, 19세기에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에 피아노 반주를 붙여 연주하기도 했다.

망각에서 구해낸 바이올린의 경전

바흐가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완성한 것은 그가 쾨텐 궁정에서 일하던 1720년 무렵이다. 그 시절 바흐는 여러 기악곡을 작곡했는데, 그중에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BWV1046~1051을 비롯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BWV1001~1006,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 BWV1007~1012, 평균율 클라비어곡집 제1권 BWV846~869 등이 포함되어 있다. 바흐의 후원자 레오폴트 공이 음악을 매우 사랑했으므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 역시 바흐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종종 연주되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러나 바흐가 타계한 1750년 이후에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갔다. 다만 몇몇 문헌에서 이 곡의 존재에 대한 언급이 잠깐 보일 뿐이다.

오늘날 ‘바이올리니스트의 경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뻔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지만 바흐 시대에는 음악 작품을 보존한다는 개념이 강하지 않았고, 음악 작품은 필요에 의해 작곡되고 소비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바흐의 명곡들도 소비된 후에는 잊히고 있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전곡 출판은 18세기가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않다가 19세기를 갓 넘긴 1802년 독일의 짐로크(Simrock) 출판사에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 전곡을 출판하면서 비로소 이 작품의 존재가 완전하게 알려질 수 있었다. 이후 페르디난트 다비트(1810~1873)와 요제프 요아힘(1831~1907) 등, 19세기의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이 곡을 즐겨 연주하면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의 가치가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피아노를 곁들인 19세기 음악가들

페르디난트 다비트

펠릭스 멘델스존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기까지 19세기의 바이올리니스트 페르디난트 다비트의 공이 크다. 다비트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헌정 받은 연주자로도 잘 알려져 있고 멘델스존이 지휘자로 있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활동했다. 다비트는 바흐의 악보에 운지법과 운궁법을 표시한 해석본을 출판했을 뿐 아니라 바흐의 무반주곡 가운데서도 파르티타 2번 BWV1004 중 ‘샤콘’을 즐겨 연주했다.

1840년 2월 8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펼쳐진 다비트의 실내악 공연에는 멘델스존이 피아니스트로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당시 다비트는 바흐의 ‘샤콘’을 멘델스존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연주했다. 본래 무반주로 작곡된 바이올린곡에 피아노 반주를 붙이는 것은 어떤 면에선 바흐의 의도를 존중하지 않은 시도로 볼 수 있지만, 독일 언론은 매우 호의적인 리뷰를 실었다. 특히 ‘일반음악신문(Allgemeine musikalische Zeitung)’지는 “멘델스존의 피아노 반주가 원곡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고 적으면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에 피아노 반주가 곁들여진 것이 훨씬 낫다는 입장을 보였다. 호의적인 리뷰에 힘입은 멘델스존은 그날 연주한 ‘샤콘’의 반주 부분을 따로 출판했고, 그 이듬해에 열린 다비트와 멘델스존의 연주회에서도 바흐의 ‘샤콘’에 피아노 반주를 붙여 연주했다. 그날의 공연은 당대 음악평론가들에 의해 “역사적인 연주회”라는 극찬을 받았다. 다비트와 멘델스존의 ‘샤콘’ 연주가 대단한 인기를 끌자 슈만 역시 1854년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위한 피아노 반주 악보를 출판했다.

다비트와 멘델스존 등의 노력으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원곡 그대로가 아닌 피아노 반주가 붙은 형태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은 다소 아쉬운 일이다. 19세기에는 무반주 바이올린곡이 드물었던 만큼 그 시대 음악가들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도 반주가 있어야 완전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에 피아노 반주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점차 바뀌기 시작했는데, 이는 19세기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 손꼽히는 요제프 요아힘 덕분이다.

무반주 연주의 경건성을 회복

요제프 요하임

1844년, 12세의 요제프 요아힘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들을 런던에서 원곡 그대로 ‘무반주’로 연주했다. 그 당시 요아힘은 다비트의 바흐 연주에 깊은 영향을 받은 상태였기에 바흐의 곡을 즐겨 연주했고, 런던 투어를 시작으로 바흐의 무반주곡을 자주 레퍼토리에 올렸다. 특히 1853년 독일 하노버에서 이루어진 그의 독주회는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곡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하노버 음악 잡지 편집장 게오르크 피셔는 요아힘이 무반주로 연주한 바흐의 ‘샤콘’ 연주를 듣고 “이 곡을 반주 없이 연주하니 더욱 심오한 인상을 전해주었다”고 썼다. 비로소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이 ‘무반주’ 그대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요아힘은 하노버에서 여러 차례 독주회를 개최하며 바흐의 ‘샤콘’뿐 아니라 파르티타 3번 BWV1006의 ‘프렐류드’, 그리고 파르티타 1번 BWV1002의 ‘부레’와 ‘두블’을 원작 그대로 무반주로 연주했다. 요아힘의 계속되는 바흐 연주는 하노버의 음악 문화에 강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해 ‘바흐 숭배’ 현상으로 이어졌다.

다비트와 요아힘 이후 오늘날까지 여러 바이올리니스트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에 도전해왔다. 오늘날 이 곡에 반주를 붙여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는 없지만, 작품에 대한 해석은 천차만별이다. 특히 이 곡은 바흐가 적은 악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음악으로 거듭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바이올리니스트에 의해 해석되며 진화를 거듭해온 이 작품은 21세기의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에 의해 또다시 새로운 음악으로 거듭난다.

글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바이올리니스트)


DISCOGRAPHY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디스코그라피

데뷔 음반부터 31년간 쌓아온 음악의 기록

1991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담은 데뷔 음반이 그해 그라모폰상을 수상하며 그만의 음반사가 시작됐다. 소니 클래식스의 전속 아티스트로 활동 중인 그는 지금까지 18개의 음반을 남겼다. 데뷔 음반부터 올해 2월 발매한 ‘바흐 6개의 독주곡’까지 한 곳에 모았다. 정리 임원빈 기자

바흐 : 6개의 독주곡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
Sony 19439903132 (2CD)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1번 BWV1002, 2번 BWV1004,
3번 BWV1006, 바이올린 소나타 1번 BWV1001,
2번 BWV1003, 3번 BWV1005

세 명을 위한 베토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요요 마(첼로)/
이매뉴얼 엑스(피아노)
Sony 19439940142
베토벤 교향곡 2번 Op.36(편곡 콜린 매튜스),
교향곡 5번 Op.67(편곡 콜린 매튜스)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엔리코 파체(피아노)
Sony 19439747172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지휘)/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엔리코 파체(피아노) 외
Sony 19075929882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 Op.61, 베토벤 민요에 의한 변주곡 Op.107 외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3번(전곡)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요요 마(첼로)/
이매뉴얼 엑스(피아노)
Sony 88985407292
브람스 피아노 3중주 1번 Op.8, 2번 Op.87, 3번 Op.101

비르투오소 :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엔리코 파체(피아노)
사라스테 ‘바스크 카프리스’, 파가니니 ‘신이여 왕을 구하소서’, 드보르자크 ‘유모레스크’ 외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발레리 게르기예프(지휘)/마린스키 오케스트라
Mariinsky MAR0524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교향곡 9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3번(전곡)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유자 왕(피아노)
Decca 4786442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3번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리카르도 샤이(지휘)/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오케스트라 외
Decca 4786197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Op.77, 버르토크 바이올린 광시곡 1번 Sz87, 2번 Sz89, 브람스 헝가리 춤곡 1번 외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피아노 3중주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패트릭 데멩가(첼로)/엔리코 파체(피아노)/카메라타 잘츠부르크
Sony 88697433032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Op.64, 피아노 3중주 1번 Op.49, 2번 Op.66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카메라타 잘츠부르크
Sony 82876842412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1번 K207, 2번 K211 외

에네스쿠 &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페테르 나기(피아노)
ECM 4760532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유작 소나타’, 에네스쿠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루마니아 민속 양식으로’ Op.25 외

스트라빈스키 & 바흐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페테르 나기(피아노)
ECM 4727672
스트라빈스키 2중 협주곡,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BWV1002 외

빈 랩소디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페테르 나기(피아노)
BIS BISCD1196
크라이슬러 ‘빈 스타일의 판타지 랩소디’ ‘집시 카프리스’ 외

파가니니 24개의 카프리스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
Dynamic CDS066
파가니니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카프리스 1~24번 Op.1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Op.27 전곡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
BIS BISCD1046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2번 ‘우울’, 3번 ‘발라드’ 외

크라이슬러 ‘사랑의 슬픔’ 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페테르 나기(피아노)
Delos DE3116
차이콥스키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 Op.42,
파가니니 ‘마녀들의 춤’ Op.8, MS19 외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바이올린)/오스모 벤스케(지휘)/
라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BIS BISCD500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1903~1904년 오리지널 버전, 1905년 최종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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