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두 현에 담긴, 미래에 대한 확신
유다윤·정우찬 듀오 리사이틀
3월 12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

ⓒ Kumho Cultural Foundation
감각과 독창성으로 무장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음이 분명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유다윤(2001~)과 첼리스트 정우찬(1999~)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사이로, 그 친밀함은 젊은 연주자 특유의 열정에 완성도를 부여했다. 단 두 대의 현악기가 만든 촘촘한 소리는 무대는 물론 객석에까지 전달되며, 우리 시대 클래식 음악 연주의 진정성이 살아있음을 명백히 했다.
남다른 소리의 공명을 만드는 데에는 이들이 사용하는 악기도 한몫했다. 바흐가 건반을 위해 작곡한 2성 인벤션은 두 개의 선율이 대위법적으로 얽히는 음악 구조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으로, 이번 공연에선 그중 BWV 772~786을 바이올린·첼로의 2중주 버전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유다윤은 명확한 음색으로 바로크의 구조를 쌓아가면서도, 풍부한 표현을 잃지 않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유다윤의 악기는 1774년산 과다니니 투린. 정우찬은 1600년대에 제작된 조반니 파올로 마지니를 들었다. 두 사람 모두 2023년부터 금호악기은행의 고악기 수혜자로 선정되며 이 악기를 손에 익혔다. 유다윤이 롱 티보 콩쿠르(2023, 준우승), 정우찬이 도쿄 미나토구 콩쿠르(2025, 1위)에서 이룬 수상에도 이 악기가 함께였으니, 연주자와 악기의 호흡도 잘 쌓여온 셈. 이번 공연의 만족도를 올리는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바흐 작품에서 이 강점을 눈치챌 수 있었다면, 이어진 라벨에선 이를 바탕으로 한 두 연주자의 감각과 힘이 느껴졌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타 M.73에서 네 개의 악장별로, 심지어 악장 내에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우찬의 첼로에서 표현된 낮고 강한 소리는, 연주의 맥락을 뛰어넘는 매혹적 요소였다. 인터미션 후 이어진 코다이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주 Op.7에서 다소 즉흥적인 느낌의 악구들이 이어짐에도, 밀도 높은 현악의 음색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이유다. 바흐 연주에서 보여준 깔끔한 악구 마무리가 코다이의 작품에서도 빛을 발했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한, 두 악기의 대화였다.
20대의 두 연주자가 보여준 음악 세계는, 앞으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역동적이면서도 간결하고, 감각적이면서도 구조적인 이들의 음악에, 미래에 대한 묘한 안도감을 느낀 저녁이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선·후배가 어우러진 훈훈한 순항
금호솔로이스츠 리사이틀
3월 5일 오후 7시 30분 금호아트홀 연세

(c) Kumho Cultural Foundation
올해 금호솔로이스츠는 ‘선율의 항해’라는 부제로 5개의 공연을 선보인다. 유럽의 특정 국가나 지역의 음악을 공연 주제로 삼는 시리즈로, 지난 3월 ‘프랑스, 우아한 인상’은 그 시작을 알리는 공연이다. 프로그램은 프랑스 후기 낭만 작품들로 꾸며졌으며, 10년 이상 금호솔로이스츠 활동을 비롯해 오랜 연주 활동을 이어온 김재영(바이올린)·김다솔(피아노), 그리고 떠오르는 젊은 연주자 김동현(바이올린)·유다윤(바이올린)·신경식(비올라)·정우찬(첼로)·김준형(피아노)이 참여했다.
시작은 포레의 네 손을 위한 ‘돌리 모음곡’으로 김다솔·김준형이 먼저 무대에 올랐다. 전체 6곡의 작품 중 1·3·6번을 연주하며, 가볍고 깔끔한 시작을 알렸다. 이어진 곡은 프랑크 피아노 5중주 f단조였다. 연주에는 김동현·유다윤·신경식·정우찬·김준형이 함께했다. 1악장에서 현악 4중주가 강하게 치고 들어올 때, 김동현의 제1바이올린 선율이 또렷했다. 현악 4중주에 이어 응수하는 김준형의 피아노에는 대비적인 섬세함이 느껴졌다. 격렬하게 펼쳐진 1악장 이후 우울함을 간직한 2악장에서도 제1바이올린이 담당하는 멜로디 비중이 컸는데, 김동현의 음색이 잘 어울렸다. 제2바이올린의 트레몰로로 시작하는 3악장에서는 유다윤의 진입이 인상적이었다. 수수께끼 같은 도입부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음악은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다만 1악장부터 많은 에너지를 쏟아부은 탓이었을까. 연주자들은 다소 지쳐 보였다. 1악장도 물론 격정적이지만, 3악장은 그야말로 불꽃이 튀듯 맹렬하게 치고 나가는 악장이라 체력 소모가 크다. 땀방울이 송연히 맺힌 연주자들이었지만, 집중을 잃지 않는 연주를 이어갔다. 김준형은 전체적으로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현악 4중주를 감싸는 연주를 선보였다.
2부는 쇼송의 바이올린·피아노와 현악 4중주를 위한 협주곡 D장조가 장식했다. 두 솔로 악기에 현악 4중주가 동반되는 독특한 편성의 실내악 협주곡이다. 김재영·김다솔이 솔로를 맡고, 현악 4중주는 유다윤·김동현·신경식·정우찬이 꾸몄다. 1악장은 피아노가 3개의 음(D-A-E)으로 또렷한 주제를 제시하는데, 김다솔의 강렬한 타건은 단번에 관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주제부의 시작을 여는 두 솔로 악기의 2중주에선 농익은 두 연주자의 저력이 빛났다. 든든한 두 거목 사이로 현악 4중주는 안정적인 균형을 맞추며 완성도 있는 음악을 끌어냈다. 2악장은 ‘시실리안느’로, 특유의 일렁이는 분위기를 표현하는 김재영의 보잉은 인상적이었으며, 3악장에서는 어둡게 잠긴 분위기에 점차 켜켜이 쌓이는 격정이 잘 표현됐다. 화려한 피날레의 4악장에 이르기까지 두 솔로 연주자의 안정적인 연주가 이어졌으며, 후배 연주자들을 잘 리드하며 어우러지는 모습이 돋보였다.
앙코르는 2악장 ‘시실리안느’. 특수한 편성이라 선곡에 어려움이 있다 보니, 예상했던 앙코르였다. 본 연주와는 달리 항해의 임무를 완수한 연주자들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연주에 임했고, 이번에는 여정을 끝내는 디저트와 같은 감흥이 느껴졌다.
글 최성혁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옮겨 심어진 이름
극단 돌파구 ‘튤립’
3월 1~8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c)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하지영
검은 무대 위로 1920년대 도쿄의 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낸다. 연출가 전인철(1975~)은 지난해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선보인 ‘헤다 가블러’ 무대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무대를 과감히 비워내며 서사의 본질에 집중했다. 2025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거대한 담론 대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흔들리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3월 4일 관람)
‘무순 6년’ ‘왕서개 이야기’ ‘금조 이야기’ 등 전쟁을 소재로 한 서사를 써온 극작가 김도영(1988~)은 신작 ‘튤립’에서 꽃이 아닌 ‘뿌리’에 주목했다. 잘 키운 튤립은 구근(알뿌리) 옆에 또 다른 뿌리를 만들어낸다. 작품은 튤립이 ‘구근을 키우는 식물’이라는 점에 착안해, 진실을 땅속에 묻으려는 인간의 위선을 파고든다.
비극은 러일전쟁 무렵, 연해주 끝자락 연추의 튤립밭에서 시작된다. 튤립의 일본식 음차인 ‘쥬리프’라 불리는 청년(김하람 분)은 연해주에서 강탈되어 일본 상류층 가정의 아들로 ‘옮겨 심어진’ 존재다. 그를 낳은 친부 쿠로(권정훈 분)는 정체를 숨긴 채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조용히 아들의 곁을 맴돌며 정원사로 살아간다.
쥬리프를 사이에 둔 일본인 양부모와 조선인 친부의 대립은 국가 간 전쟁 양상을 한 집안의 풍경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남들은 빼앗았다고 말하겠지만, 우리가 키워준 거야”라고 당당히 말하는 양부 야마토(김정호 분)의 대사에는 일제의 폭력적인 내선일체(內鮮一體) 사상이 짙게 깔려 있다. 이는 조선을 완벽하게 흡수하고 통제하기 위해 강탈을 시혜로 포장했던 식민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무대 곳곳에 놓인 흙과 생화는 인위적인 저택의 풍경 속에서 생명의 강인함을 드러내고,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는 미니멀한 무대 위에서 극의 몰입감을 극대화했다. 특히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쿠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양모 에리코(황순미 분)의 비정함은 지배층의 위선이 한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이 비극 속에서 쥬리프와 쿠로가 서로를 격렬하게 끌어안는 몸짓은 차마 말로 다 하지 못하는 진실을 온몸으로 쏟아내는 처절한 절규처럼 들렸다.
극 말미, 끝내 자신의 뿌리를 알지 못한 채 히로시마로 향하는 쥬리프의 뒷모습은 비극의 정점을 찍는다. 인류 종말의 공포가 예견된 장소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전쟁의 폭력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글 홍예원 기자 사진 극단 돌파구
포가/쾰른 WDR 심포니 협연 김서현·다니엘 뮐러 쇼트
독일 악단, 음향의 감각을 깨우다
3월 11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5일 부산, 6일 진주, 7일 구미, 8일 부천에 이어진 쾰른 WDR 심포니의 내한 순회 연주 마지막 날이었다. 안드리스 포가(1980~)가 지휘한 슈만 ‘만프레트 서곡’으로 막이 올랐다. 얀손스, 넬손스와 같은 라트비아 출신 지휘자 포가는 약음을 중시했다. 곡의 앞뒤 거리와 음의 농담(濃淡)을 세밀하게 조절하며 확대경을 들이대듯 피아니시모의 세계를 그려냈다. 평면적으로 흐르지 않고 3차원적인 양감을 형성하거나 셈여림을 치밀하게 조절했고, 곡의 흐름 속에서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지나갔다.
무엇보다 신예 바이올리니스트 김서현(2008~)과 중견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1976~)가 협연한 브람스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2중 협주곡에 관심이 집중됐다. 뮐러 쇼트의 중후한 첼로와 어우러진 김서현의 바이올린은 강철 같은 외피 안에 부드러운 내부를 채운 듯 양가적인 표현이 돋보였다. 1악장부터 바이올린과 첼로는 마치 한 악기 같았다. 검객처럼 활을 동시에 뻗으며 마무리하는 호흡까지 일치했다. 2악장에서의 두 악기 간 대화는 이 곡의 정수를 다시금 느끼게 해준 연주였다. 그동안 둔중하고 속을 알 수 없었던 작품의 이미지는 브람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엄숙함과 다정함의 변증법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3악장의 리드미컬한 구간에서도 두 악기와 오케스트라는 서로의 무게가 동등한 듯 장애물 없이 전진했다. 피아노 협주곡과 바이올린 협주곡 못지않은 매력을 2중 협주곡에서 발견한 순간이었다. 안드리스 포가의 세심한 리드에도 지분이 있었다.
뜨거운 환호 속에서 커튼콜을 거듭하던 두 협연자는 앙코르로 요한 할보르센이 편곡한 헨델의 ‘파사칼리아’를 연주했다. 바이올린이 공격을, 첼로가 수비를 맡은 듯한 이 곡에서 김서현의 맛깔스러운 연주가 더욱 돋보였다. 치밀한 태피스트리 같은 야무진 마감으로 협력과 경쟁, 대화가 어우러졌고 두 악기의 화합은 화룡점정을 이뤘다.
2부에서 포가의 지휘봉이 그려낸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은 까칠한 러시아적 야성이나 서유럽적 화사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묵직하면서도 절제가 들어간, 단정한 해석이었다. 균형 있는 음색으로 비교적 차분하게 시작된 1악장에서는 당당한 금관이 돋보였다. 약음과 침묵을 중요하게 새기며 점차 열기와 긴장감을 더해갔다. 2악장에서는 투명한 프리즘처럼 우울함을 다각도로 분석하듯 다채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악구와 그다음 악구, 악기 사이 연결과 조합이 한눈에 들어왔다.
3악장에서 포가는 현악기의 피치카토도 평면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수위와 셈여림을 조절하며, 성화를 봉송하듯 흐름을 이어갔다. 휘몰아치는 4악장에서도 포가는 절제 속에서 균형감 있게 현과 관을 정리했다. 시원하게 전진하는 모습이나 관악기의 브라부라(기교를 뽐내는 연주 스타일)는 덜 했지만 많은 정보가 분석적으로 펼쳐졌다. 호른 수석 유해리는 지난해 독주회에서 주목했던 연주자인데, 과연 손색이 없는 연주로 독일 오케스트라의 핵심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
앙코르는 차이콥스키 ‘예브게니 오네긴’ 중 폴로네즈였다. 단원들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밝고 축제 같은 작품을 연주하며 투어의 마무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이번 공연은 낙동아트센터와 부천아트센터에 이어 세 번째 관람이었다. 부산과 부천의 개성 있는 음향이 회자되며, 서울에만 집중됐던 우수한 클래식 음악 공간이 점차 다양화되는 모습을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글 류태형(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사진 쾰른 WDR 심포니/Thomas Bill
존 엘리엇 가디너/컨스텔레이션 합창단·오케스트라
모차르트가 남긴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
3월 3·4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c) StudioGut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이틀에 걸쳐 존 엘리엇 가디너(1943~)의 공연이 열렸다. 이번 연주는 단순한 내한 공연 이상의 의미를 지닌 자리였다. 가디너는 1960년대 이후 역사주의 연주 운동을 이끌어온 대표적인 지휘자로, 그의 내한은 2004년 헨리 퍼셀의 오페라 ‘디도와 아이네아스’ 이후 22년 만이다. 무엇보다 이번 무대는 2024년 새롭게 창단된 컨스텔레이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함께하는 첫 아시아 투어라는 점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4일 공연 관람)
지휘자로서 가디너의 궤적은 역사주의 연주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해 왔는지를 한 눈에 보여준다. 그는 몬테베르디 합창단과 잉글리시 바로크 솔로이스츠 등을 창단해, 시대 악기와 당대 연주 관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음악 해석을 제시해 왔다. 그러나 그의 음악은 결코 ‘과거의 재현’ 자체에 머물지 않는다. 작곡 당시의 악기와 연주기법은 어디까지나 해석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궁극적으로는 지금 이 순간 음악을 듣는 관객과 함께 살아 있는 ‘음악적 호흡’을 만들어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이번 공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3일 바흐의 ‘b단조 미사’ 공연에 이어, 4일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의 ‘c단조 미사’ K427과 ‘레퀴엠’ K626이 연주되었다. 두 작품은 모두 모차르트가 빈 시절에 작곡한 교회음악일 뿐 아니라, ‘미완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흔히 ‘대미사’라 불리는 ‘c단조 미사’는 모차르트 교회음악의 정점으로 평가되는 작품으로, 바흐와 헨델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합창의 투명하면서도 정교한 폴리포니와 호모포니의 조화, 오페라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독창, 그리고 표현적인 관현악법이 결합된 이 작품의 구조는 가디너의 손끝에서 또렷하게 드러났다.
이 작품은 어떤 계기로 작곡되었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사랑하는 아내 콘스탄체를 위해 작곡했다는 설이 전해질 만큼 개인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가디너가 빚어낸 이 연주는 단순한 전례 음악을 넘어 작곡가의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는 듯했다.
이어 연주된 ‘레퀴엠’은 프란츠 폰 발제크 백작이 익명으로 아내를 추모하기 위해 모차르트에게 의뢰한 작품으로, 모차르트가 일부만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다. 이후 이 작품은 모차르트의 제자인 쥐스마이어에 의해 완성되었고, 가디너 역시 쥐스마이어 판을 선택하였다. 흔히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작곡가의 마지막 목소리로 이해되지만, 음악적으로는 바로크적 특징과 고전주의 양식이 결합된 음악 세계를 보여준다. 가디너 역시 합창과 독창, 관현악이 감정적 과잉 대신 절제된 표현 속에서 극적 긴장감을 만들어내도록 이끌었다.
가디너가 새롭게 창단한 컨스텔레이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이름 그대로 각자의 개성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성좌’를 보여주었다. 이는 아름다운 선율과 풍부한 화성, 그리고 다층적인 텍스처 등 다양한 요소의 종합인 ‘보편적인’ 모차르트의 음악 세계를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이번 연주는 빈 고전주의 음악의 정수를 드러내는 동시에, 삶과 죽음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모차르트가 남긴 사랑과 위로의 메시지를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가디너와 컨스텔레이션 오케스트라는 2027년 12월에 내한하여 베토벤 교향곡 전곡 사이클을 선사할 예정이다.
글 유선옥(음악학자) 사진 프레스토컴퍼니
이석준 호른 리사이틀
따뜻한 음색과 탁월한 서정미
3월 5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

바흐는 자신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호른으로 연주되리라고 상상이라도 했을까? 현악기와 달리 호른은 원하는 음을 내기 위해 공기의 양과 압력이 조절되는 시간이 필요하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시간 또한 제한적이다. 울림통이 없어 공명을 일으킬 수 없고, 화음 연주가 불가능하다는 제약도 있다.
따라서 이 곡을 호른으로 연주할 때는 악보의 재현을 넘어, 악보 뒤에 있는 바흐의 음악적 이상과 궁극적 의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석준(1971~)의 이번 무대는 매우 도전적이었다. 그의 따뜻한 음색과 탁월한 서정미는 첫 곡으로 선택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이 지닌 음향적 이상에 가까이 다가갔으며, 섬세한 표현과 수준 높은 기교를 바탕으로 전곡을 이끌어 가는 극적 에너지도 충분했다.
이에 더하여 템포·이중음·꾸밈음·펼친 화음의 균등한 리듬·프레이즈 등 호른에 맞지 않는 제스처들을 과감히 수정하고, 자연배음과 같은 호른의 성질을 활용하는 등 모든 요소를 호른에 맞춰 조정해 나간다면, 이 곡은 호른을 위한 음악으로 재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18번은 본래 바이올린 작품임에도, 호른을 위한 음악이라는 착각이 들만큼 세밀하게 편곡되었다. 팡파르로 시작해 빠른 스케일로 이어지는 전개로 볼 때, 이석준의 연주력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자연배음으로 처리한 대목에서는 카타르시스마저 느껴지는 진정한 호른 음악을 들려주었다
1부의 마지막 곡인 베른하르트 크롤(1920~ 2013)의 독주곡 ‘찬양(Laudatio)’은 서정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숭고함이 깃든 팡파르였다. 연주에 앞서 지난해 10월에 급서한 트럼피터 안희찬에 대한 추모곡임을 밝혀, 관객들은 엄숙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함께했다.
2부의 세 곡은 호른을 위해 작곡된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고전적 소나타와 지역적 특색을 지닌 두 곡을 배치하여 호른의 악기적 특색은 물론, 음악적 다양성도 두루 경험할 수 있게 했다. 알베르트 기노바르트(1962~)의 호른 소나타는 다양한 양식의 음악이 연결되어 표현의 빠른 변화가 요구되는 난곡이었으나, 이석준은 섬세한 접근으로 이들의 특성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2악장의 서정적인 연주에서는 악기뿐 아니라 연주자의 매력까지 깊이 느낄 수 있었으며, 4악장에서 들려준 자연배음은 곡에 청량감을 더했다.
제임스 반스(1949~)의 ‘요크셔 발라드’와 장 바티스트 아르방(1825~1898)의 ‘티롤의 노래’는 목가적인 분위기와 호른의 음색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관객의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이석준은 금관악기에 최적화된 선율과 기교로 쓰인 아르방의 곡에서 금관 음악의 정석을 보여주었으며, 환희 섞인 마지막 음으로 연주를 마무리 지었다. 앙코르로는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2번 중 ‘바디네리(Badinerie)’와 알렌 포트의 성가곡(CCM) ‘내가 산을 향하여’를 연주하여, 기교와 서정미라는 자신의 두 가지 장점을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이번 리사이틀은 이석준의 탄탄한 연주력과 함께 다양한 호른 작품의 소개, 레퍼토리 확장 가능성,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요소들을 두루 살필 수 있는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이러한 도전을 통해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 몸 담고 있는 연구자로서의 그의 행보가 더욱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예인예술기획
모헤르댄스컴퍼니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
모헤르와 앰비규어스, 무용 언어의 성공적인 충돌
3월 13~15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기우였다. 단독 컴퍼니(모헤르댄스컴퍼니)가 제작한 꽤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를 다른 무용단(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댄서, 협력 안무가와 함께 새롭게 제작한다는 발상. 합류한 무용단이 독창적인 색깔을 선명하게 가졌다면, 그 협업은 성공하기보다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러나 이 같은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제작진들은 초연 후 수차례의 재공연으로 기존 작품을 뛰어넘는 새 작품을 만들어냈다. 다양한 요소가 과하지 않게 버무려졌고, 무엇보다 인간의 몸을 매개로 하는 무용 예술, 극장 예술로서의 무용 예술의 특성이 촘촘하게 엮였다.
안무가의 메시지는 억지로 강요되지 않았고, 프로시니엄 극장 공간은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과 오브제를 활용해 움직이는 무대장치, 그리고 계산된 연출로 인해 무한 확장되었다. 음악은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맞물릴 때 적지 않게 파생되던, ‘음악과 춤의 그렇고 그런 만남’에서 오는 식상함을 적절한 악기의 융합으로 기막히게 피해 갔고 더 나아가 작품 전체를 하나의 드라마로 구현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20년 모헤르댄스컴퍼니가 초연한 원작 ‘집 속의 집’은 공연장을 바꾸어가며 조금씩 진화하더니 이번 무대에서 만개했다. 몇 가지가 보완된다면 당장 세계 춤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밀리지 않을 만큼 예술적 완성도가 높다. 우리나라 춤계에서 좀처럼 찾기 드문, 대형 장편 작품이 탄생했다.(15일 관람)
이번 작품의 성공 요인은 안무가 서연수와 협력 안무로 참여한 김보람, 연출을 맡은 강요찬, 음악을 작곡한 김재덕 등 ‘4인방’의 협업이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시너지를 발휘한 데서 기인한다. 여기에 차별화된 색감의 무대미술(김종석)과 의상·조명을 활용, 극장 예술에 필요한 시각적 효과를 살려 낸 비주얼디렉터(정승재)의 감각도 힘을 보탰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댄서 8명의 합류로 춤추는 공간은 객석까지 확장되었고, 어깨와 팔의 라인, 발목과 종아리의 선까지 이들이 만들어 내는 다른 질감의 춤은 풍성함을 더했다.
안무가 서연수는 기존 작품과의 변별력을 살린 춤을 작품 속에 더했고, 협력 안무가 김보람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가 갖고 있는 빠르고 진폭이 큰 춤 그대로가 아닌, 스타카토로 짧게 끊어지는 대중적인 춤의 요소들을 자제하면서 기존 작품에는 없는 춤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연출가는 30명이 넘는 무용수의 춤과 동선, 적지 않게 움직이는 오브제를 적절히 배열했다. CJ 토월극장의 무대 깊이를 활용, 관객들로 하여금 유형과 무형의 틀과 경계를 직관과 감각으로 즐기도록 세밀한 연출력을 더했다. 사각 조명의 이동에 따라 군무진의 무대 접점을 자연스럽게 이동시키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작곡가 김재덕은 전자음악과 타악, 인성(人聲)을 그 자체로 변환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도구를 합성해 변화무쌍한 음악으로 치환했다.
오브제의 전환 과정에서 파생되는 순간적인 이미지의 단절, 천장에 매달린 두 개의 조명과 하나의 스포트라이트 조명 아래 솔로의 춤과 이어지는 군무 사이의 지나치게 짧은 간극, 군무의 비중이 많은 데서 오는 2인무의 부재 등 작품이 전체적으로 시종 빠른 템포로 일관되는 점은 향후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모헤르댄스컴퍼니가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를 파트너로 초대해 시도한 안팎의 충돌 ‘집 속의 집: 문 밖의 문’은 성공했다. 잘 만들어진 오페라 공연을 뛰어넘는 완성도 높은 극장 예술로서의 무용 공연을 관람하는 호사를 관객들에게 안겨주었다.
글 장광열(춤 비평가) 사진 모헤르댄스컴퍼니
뮤지컬 ‘적토_고삐와 안장의 역사’
그렇게 돌아가는 삶
3월 7~29일 SH아트홀

대학로 소극장의 무대는 전장 속 ‘적토마’를 담기에 턱없이 협소했지만, 인생의 ‘적토_고삐와 안장의 역사’(이하 ‘적토’)를 보여주기에 결코 무리가 없었다. 언뜻 보기에도 시각적 장치가 거의 없는 무대에서 12명의 배우는 직접 회전 무대를 돌리고, 천장에서 내려오는 레이어링의 2층 구조 소품을 걸고 빼내며 인간 ‘장비’ 역할을 도맡는다. (3월 7일 관람)
배경으로 설정된 난세의 전쟁은 그저 단순한 극 중 배경이 아니다. 극작을 맡은 한아름이 설정한 전장은 곧 인간 세상 그 자체이며, 말의 시선을 빌려 그 치열함을 응시하는 것만 같다. 때때로 인생의 궁지에 몰리며, 다음의 행선지는 어디로 가야할까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기도 하다.
‘적토’(202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를 이끄는 중심에는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붉은 털을 지닌 두 마리의 말이 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이들의 배경에 동물조차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는 설정은 인간 사회의 구조를 그대로 비춘다.
대대손손 명마의 맥을 이어온 붉은 호랑이 ‘호적토’와 하릴없이 밭을 가는 가축 아비를 둔 붉은 토끼 ‘토적토’. 볼품없는 왜소한 체구로 아비를 따라 밭만 매던 ‘토적토’는 장수 ‘동탁’의 군마로 총애받는 ‘호적토’를 부러워하며, 군마의 삶을 꿈꾼다.
그러던 중 젊은 장수 ‘여포’를 만나 군마로 성장한다. 인생 역전에 성공했지만, 전장 한복판에서 절망의 늪에 빠진다. 이후 ‘조조’의 명마(名馬) ‘절영’을 만나고, 노장수 ‘관우’와 함께 영광과 또 한 번의 시련을 겪는다. 많은 장군들을 거치며 ‘토적토’ 역시 성장하고 부서지며 깨달음을 얻는다.
끝내 돌아온 곳은 자신이 태어났던 허름한 마구간. 기력이 쇠해진 ‘토적토’는 이곳에서 평생 자신을 옭아맸던 무거운 안장과 고삐를 그제야 내려놓았다. 그 마구간에는 평생 밭만 갈던 아버지가 ‘토적토’를 반긴다. “애쓰지 않아도 돼. 상처받지 않아도 돼.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길”
작품이 구축하는 서사는 결국 ‘극복’의 방향으로 수렴한다. ‘토적토’는 끝내 다시 일어서고,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다만 이 과정에서 감정이 다소 빠르게 고조되는 듯한 인상도 남는다.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서사는 분명 관객의 마음을 자극하지만, 모든 삶이 그렇게 회복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니까. 언뜻 쓸쓸한 마음이 퍼지기도 했다.
12명의 배우는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양 무대 끝에 구현된 마구간에서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라, 공간과 장치, 그리고 서사를 동시에 떠받치는 존재로 무대를 꽉 채웠다.
극이 끝나고 문밖을 나서며, 나 역시 죽도록 달릴 수 있을 힘이 났다.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거침없이 달려나가길 기대한다.
글 유내리 기자 사진 라바마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