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작곡가 이병우,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입장’으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6월 1일 5:40 오후

CROSS THE GENRE

기타리스트·작곡가 이병우

결국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입장’으로

클래식 음악·대중·영화음악을 아우르는 탐험자가
국악과 대대적인 음악 작전을 준비 중이다

 

이병우. 한때 그도 긴 머리를 휘날리던 때가 있었다. 대중들의 희미한 기억 속에는 1984년 압구정에서 만난 조동익과 함께, 1980년대 후반 한국 음악사에 유례없는 울림을 남겼던 프로젝트 밴드 ‘어떤날’의 무렵일 것이다. 두 사람은 ‘어떤날’의 이름으로 단 두 장의 음반, 1집(1986)과 2집(1989) 음반을 남겼다.

밴드 활동을 접은 뒤, 1989년 그의 첫 솔로 음반인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이 세상에 나오던 날, 이병우는 이미 한국에 없었다. 11세부터 분신이던 클래식 기타에 대한 열망을 끝내 놓지 못한 채, 그의 시선은 멀리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향했던 것. 이후 이병우는 약 십 년에 걸쳐 빈 국립음대와 피바디 음악원에서 클래식 기타를 공부했다.

대중음악과 클래식 음악의 영토를 자유롭게 넘나들던 이병우에게 영화음악이라는 미지의 세계 역시 그의 재능을 펼칠 새로운 영역이었다. 1996년 임순례 감독의 영화 ‘세 친구’(1996)의 담백한 기타 선율을 필두로, 이후 음악감독란에 ‘이병우’라는 이름을 올린 영화는 어느덧 수십 편을 훌쩍 넘어선다.

영화 ‘장화, 홍련’(2003) ‘왕의 남자’(2005) ‘괴물’(2006) ‘마더’(2009) ‘관상’(2013) ‘국제시장’(2014) 등 수많은 화제작에서 그는 각 영화가 원하는 시대와 정서, 다채로운 희노애락을 마치 재단된 옷을 입히듯 변화무쌍하게 그려냈다. 동시에 ‘야간비행’(1995) ‘우주기타’(2016) 등 총 5개의 솔로 음반을 발표한 ‘기타리스트’다.

‘스캔들’(2003)에서 작업한 음악은 당시로선 꽤 이질적인 충돌이었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위에 유럽의 후기 바로크와 고전 초기 음악을 포개놓아, 기존 사극 음악의 관념을 비틀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악과 서양 관현악 사이에서 자신만의 음악적 균형을 모색해 온 이병우가 최근 국립국악관현악단(예술감독 겸 단장 채치성)과의 첫 협업을 앞두고 있다.

이 무대는 2019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양방언과 협업한 공연 이후, 국악을 벗어난 타 장르 뮤지션과의 첫 프로젝트 공연이기도 하다.

정통 국악 레퍼토리부터, ‘여우락 페스티벌’ ‘노크 시네마’ ‘소소 음악회’ 등 기존 국악관현악의 문법을 폭넓게 넓혀온 국립국악관현악단도 이병우와의 이번 만남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지휘자 김유원이 이끄는 이번 무대에서는 지난해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상주작곡가였던 손다혜·홍민웅의 편곡으로 ‘왕의 남자’ ‘괴물’ 등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이병우의 영화음악이 새롭게 연주된다. 또한 이병우는 국립국악관현악단의 위촉으로 신작 ‘각자의 입장’을 작곡했으며, 기타리스트로서 직접 협연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국악’이라는 낯선 숲으로 산책을 나선 그의 ‘입장’은 과연 무엇일까?

국립국악관현악단

 

 

 

 

 

 

 

 

 

기타 들고, 새 마음으로 나선 음악 마실

이번 프로젝트가 이루어진 계기는 무엇인가?
사실 처음에는 고사했었다. 난 국악에 대해서 대단히 잘 아는 편도 아니고, 깊이 공부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으니까. 계속 망설였지만, 손다혜·홍민웅 작곡가에 의해 국악의 옷을 입게되는 내 음악들이 궁금해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건, ‘스캔들’(2003) ‘왕의 남자’(2005) ‘바람의 화원’(2008) 등 내 기존 작품들이 신작보다 먼저 연주된다는 점이다. 관객 입장에서도 낯선 음악을 먼저 접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어주는 일종의 촉매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현재도 한창 작업 중일 텐데, 작업하며 어땠나?
영향을 받을까 봐 국악 작품을 듣지 않았다. 최대한 무(無)인 상태에서 내 음악과 국악이라는 장르가 만났을 때 어떨지 궁금했으니까. 여러 장르가 결합된 무대인 만큼,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을 원했었다. 그동안 작업해 온 음악이 멜랑콜리하고 달달한 결을 지니다 보니 최대한 그 반대 방향으로 가보고 싶었고… 하지만 실패했다.(웃음) 결국 나는 그저 ‘대중성’을 벗어날 수 없겠구나 싶더라. 작품은 단순하고도 미스터리한 선율로 시작한다. 알 것 같다가도, 마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다 결국, 그럼에도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결론으로 흘러간다. 개인적으로 현재 작업의 방향은 상당히 만족스럽다.

기타, 전자음악과 국악이 함께 등장하는 작품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서로 다른 질감의 음악을 어떻게 공존시키려고 하나?
동일한 주제가 여섯 차례 반복되는 변주 형식의 작품이다. 단순하고 직관적인 주제 선율이 어떤 음색과 편성 위에 놓이느냐에 따라 제각기 달라진다. 결국 같은 재료 안에서도 서로 다른 ‘각자의 입장’이 생겨나는 셈이다. 현재는 편곡과 음향적인 균형을 계속 조율하고 있다. 국악기는 서양 악기와 조성 체계가 다르고, 실제 연주에서 울리는 음역 역시 악기마다 차이가 크다. 편곡자들과도 계속 의견을 나누며 세부적인 균형을 맞춰가는 중이다.

조율되지 않는, 각각의 소리에 대하여

국악관현악으로 편곡된 기존 작품 사이, 이번 공연의 위촉작 ‘각자의 입장’이 눈에 띈다.

늘 마음속에 품고 있던 제목이었는데 이번 위촉작에 붙이게 되었다. 내 삶의 철학이랄까?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입장으로 살아가고, 대부분의 갈등 역시 그로부터 시작되지 않나. 오히려 서로 다른 시선들을 프레임 안에 억지로 가두고 정리하려는 세상의 방식에 의문을 느끼는 편이다. 기타와 국악기, 전자음악을 함께 배치한 이유 역시 각자 다른 입장을 표현한 것이다.

‘대중성’ 역시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을 받아들이는 방식 또한 ‘각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정확하다. 난 굉장히 직관적인 음악을 만들었는데, 어떤 이들은 어렵다고 한다. 이를테면 나는 기타를 어렵게 연주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청자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마다 사고의 방식도, 음악을 수용하는 감각도 모두 다르다. 나의 ‘대중성’이라는 기준 자체도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결코 대중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사랑 받아온 영화음악들 역시, 당시엔 대중적이라고 생각하며 만든 음악은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사적인 정서와 감각 안에서 출발한 음악들이었다. 다만 영화감독들은 그 음악들을 굉장히 좋아했다.

위촉 초연곡의 협연자로 함께 하기에, 그 역시 기대가 크다.
내가 제작한 듀얼 기타(앞면은 클래식 기타, 뒷면은 어쿠스틱 기타)를 가지고 무대에 선다. 전자음악과 국악의 만남 자체가 완전히 새로운 조합은 아닐 수도 있다. 다만, 나는 내 음악 안에 분명한 색깔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색깔이 전통악기들과 만났을 때 어떤 새로운 울림이 생길지,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대된다.

유내리 기자 사진 국립극장

 

이병우(1965~) 기타리스트·영화음악 작곡가로, 밴드 ‘어떤날’의 기타리스트로 대중음악에 발을 들였다. 빈 국립음대와 피바디 음악원에서 클래식 기타를 공부했고,‘연애의 목적’ ‘해운대’ ‘비상선언’ 등 유수의 국내 영화 음악감독을 도맡았다. 대한민국영화대상 음악상(2001), 청룡영화상 음악상(2006), 한국대중음악상(2010) 등을 수상했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유원/국립국악관현악단(위촉작곡·협연 이병우)
6월 5일 오후 7시 30분 국립극장 해오름
드라마 ‘바람의 화원’ 삽입곡, MBC 다큐 ‘황하’ 삽입곡, ‘각자의 입장’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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