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고단하지만 행복한 여행자처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5월 28일 7: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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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

고단하지만 행복한 여행자처럼

쉼 없이 달리는 중에도 낙(樂)을 찾아내는 순간들

 

ⓒ Nagy Attila_MUPA

내한 공연을 앞둔 알리스 사라 오트의 마지막 내한은 작년 7월, 즉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10개월 남짓한 시간이지만, 그 사이 그는 2025/26 시즌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상주음악가로 선정되었고, 3월에는 새 음반(DG)을 발매하는 등 쉼 없는 걸음걸이를 부단히 이어 왔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다 보니 어느 국가나 도시를 방문해도 연주 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휴식에 보내는 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분주한 움직임 가운데서도 그는 음식을 통해 즐거움을 찾는다고 밝혔다. 음식은 해당 문화권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된 대상이며, 자신도 미식을 즐기다 보니 어느 곳에 가도 현지 음식을 접하는 것은 즐겁다고. 이 과정에서 그가 밝힌 에피소드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에서 미슐랭 3스타 셰프를 공연의 특별 게스트로 초대했다는 일화였다.

 

콘체르트하우스에서는 음악적인 일화들만 등장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경험이다.

11월 ‘초상화의 저녁(Porträtabend)’에서의 일이다. 일종의 행사와 같은 공연이었는데, 진행을 맡은 음악가가 담화를 나눌 주제와 연주할 곡을 구성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음식은 문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대상이다. 결국 멋진 음악을 들을 때와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감정도 동일한 선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주제가 될 것 같았다. 초대한 게스트는 뮌헨에서 셰프로 활동 중인 나카무라 토루였다. 뮌헨에서 성장할 때 일본계 주말학교를 같이 다닌 사이였는데, 마침 시간이 잘 맞아서 게스트로 섭외했다.

상주음악가 생활이 그저 바쁜 공연들의 연장만은 아닌가 보다.

여기서는 즐겁고 특별한 경험들이 가득하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내 예술적 자유가 상당 부분 보장된다는 것이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또 다른 일화들은 없는가?

일화라기보다는, 재밌는 인연이 있다.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와 자주 협업하는데,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요아나 말비츠(1986~)는 내가 12살, 그가 14살일 때 같은 콩쿠르에서 처음 만났고, 이후 같은 선생님을 사사했다. 음악가로서도 존경스러운 인물일뿐더러 한 명의 인간, 그리고 여성으로서도 그를 존경한다. 그는 항상 첫 리허설 전에 악보를 두고 음악적 해석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거치는데, 늘 의미 있는 시간으로 다가온다.

콘체르트하우스에서 어떤 연주를 진행해 왔는지도 궁금하다.

이미 여러 차례 연주를 해왔는데 기억에 남는 것만 얘기한다면, 시즌 개막 공연에서는 상주작곡가 브라이스 데스너(1976~)가 나를 위해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했던 경험이다. 1월 중에는 직접 해설을 곁들인 존 필드·베토벤 작품 구성의 독주회를 올리기도 했었고. 이후에는 5월 유럽 순회공연도 준비 중이며, 하이든 및 그와 동시대 작곡가들의 작품을 다루는 공연도 기획하고 있다.

애정 어린 작품을 대하는 즐거움

곧 내한도 예정돼 있다. 물론 종종 한국을 찾지만, 이번은 서울시향과의 첫 무대다.

그래서 이번 내한은 또 새로운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소중한 친구인 지휘자 김선욱과 함께 호흡하는 것도 그렇고, 이번에 협연하는 라벨 피아노 협주곡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아무리 연주해도 질리지 않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를 무엇으로 뽑는가?

물론 전 악장이 다 멋지지만, 매력의 핵심을 뽑으라면 2악장이다. 특히 피아노가 홀로 노래하는 2악장의 초반부가 그렇다. 꾸밈없는 단선율의 멜로디가 36마디에 걸쳐 이어지는데, 이 부분을 연주할 때 청중들에게는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켜줘야 한다. 본질적으로 타악기적 특성을 간직한 피아노로 관현악 혹은 사람의 목소리와 같은 질감을 자아내는 것은 피아니스트에게 주어지는 큰 숙제다.

그 질감을 표현해 내기 위한 본인만의 노하우는?

충분한 준비와 집중력을 갖춰야 하지만, 멜로디를 시작한 순간부터는 그 흐름을 자의적으로 통제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선율을 따라가며 귀를 기울인다. 멜로디가 그냥 그 자체로 노래하도록 내버려둔다고 할까.

동일한 멜로디가 재현될 때는 잉글리시 호른이 바통을 받는다.

라벨 음악의 ‘건축학적’ 미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 아닐까 싶다. 멜로디를 이끄는 잉글리시 호른은 현악기들이 만드는 따뜻하면서도 견고한 뼈대 위에 놓인다. 그 위에서 움직이는 피아노는 이 모든 것을 안개와 같이 감싼다. 라벨이 다양한 음색의 악기를 조합하는 방식은 놀랍다. 이 부분에서는 마치 하늘에라도 닿는 듯한 감상을 받는다.

작품에 대한 남다른 각별함이 느껴진다.

이 곡을 무대에 세울 때마다 함께하는 연주자들과 강렬한 일체감을 느낀다. 때로는 폭발적인 교감이 이뤄지는데, 연주할 때마다 짜릿하다.

음악과 함께 쌓은 귀중한 경험들

올해 ‘요한 요한슨: 피아노 작품집’(DG)을 발매했다. 아이슬란드 태생의 요한 요한슨(1969~2018)이라는 다소 생소한 작곡가를 다뤘던데.

특정 이유가 있어서 선택했다기보다는 그냥 내가 매료된 곡이었다. 요한슨의 음악에는 친밀함과 묘한 절박함이 공존한다. 혼란스럽고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라고 느꼈다.

녹음 과정이 궁금하다. 조율이 잘 안된 듯한 건반 소리도 들리더라.

수록곡 대부분을 프로듀서의 스튜디오에 있는 오래된 업라이트 피아노로 녹음했다. 공간 자체도 아늑했거니와 피아노 소리가 묘한 향수까지 불러일으켰는데, 요한슨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그 환경이 얼마나 맘에 들었는지, 녹음 작업 과정에서 나의 무언가가 치유된 기분이었다.

생각지 못한 답변이라 흥미롭다. 앞으로 계획된 음반들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앞서 언급한 브라이스 데스너의 작품들을 녹음할 예정이며, 2년 후에는 마흔 번째 생일과 도이치 그라모폰(DG) 데뷔 20주년을 동시에 맞이하게 되는데 그때 맞춰 기념 음반도 계획하고 있다. 또, 음반은 아니지만, 2027년에는 히사이시 조가 나를 위해 쓴 피아노 협주곡을 초연할 예정이다. 그는 내 어린 시절 많은 영향을 준 작곡가인데, 또 하나의 새로운 꿈을 이룬 기분이었다. 지금도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최성혁 기자 사진 서울시향

 

알리스 사라 오트(1988~) 2002년 13세의 나이로 하마마츠 아카데미 콩쿠르 결선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2008년 도이치그라모폰과 독점 계약을 맺은 후 15장의 음반을 발표했다. 베를린필·LA필·런던 심포니 등과 협연했으며, 예르비·가드너·노세다 등의 지휘자와 호흡을 맞췄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선욱/서울시향(협연 알리스 사라 오트)
5월 8일 오후 7시 30분 롯데콘서트홀 5월 9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소륵스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 라벨 피아노 협주곡 G장조, 브람스 교향곡 2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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