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브루 & 김보라 ‘공·空·Zero’와 안은미 ‘굿모닝 에브리바디’

REVIEW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4월 1일 12:00 오전

‘공·空·Zero’

 

 

 

 

 

우리는 춤을 보며 또 한 번 희망을 얻는다

‘2017/18 한영 상호교류의 해’ 폐막행사 ‘페스티벌 아름다름: 아름다운 다름’의 일환으로 두 편의 무용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3월 17일과 18일 양일간에 걸쳐 마크 브루·김보라 안무 ‘공·空·Zero’(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와 안은미 안무 ‘굿모닝 에브리바디’(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가 2회씩 펼쳐졌다. 두 작품 모두 ‘장애’를 키워드로 하고 있어서, 때를 같이 한 ‘2018 평창패럴림픽’ 폐막식과 함께 세간의 관심이 뜨거웠다.

 

장애는 극복이 아닌 공존의 대상

‘공·空·Zero’

 

 

 

 

 

 

 

 

 

 

 

 

 

 

 

 

 

 

 

 

 

 

 

 

 

 

우리는 통상 ‘장애를 극복한다’고 표현한다. 신체나 정신적 능력에 있어 어려움이 있을 때 장애를 가졌다고 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기준은 언제나 비장애인에 맞춰있다. 그러나 비장애인 김보라와 장애인 마크 브루가 보여준 듀엣 ‘공·空·Zero’는 장애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부터 달랐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다름’일 뿐이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불편함이나 어색함 대신 ‘색다름’으로 장애를 인지하게 된다. 그 과정이 60분 동안 펼쳐졌다.

막이 오르면 무대 한가운데 바위와 같은 커다란 구조물이 자리하고 있다. 무대의 3분의 1을 차지할 만큼 육중하다. 하반신을 휠체어에 의지한 남자의 움직임은 등장부터 속도와 에너지가 남다르다. 두 다리를 대신한 휠체어의 현란한 회전이 이어지고, 가늘지만 강인한 양팔의 날갯짓이 유연하기만 하다. 구조물에 비추어진 남자의 그림자는 여린 실루엣을 더욱 강조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더 유연하다. 남자의 ‘다름’을 파악하기 위해 여자는 끊임없이 탐색하고 접근한다. 어느 순간엔 남자와 한 몸이 되기도 하고, 휠체어와 일체가 되기도 한다. 여자에게 있어 휠체어는 신체 일부일 뿐 더 이상 쇳덩이 오브제가 아니다.

무대 위의 두 사람은 영국과 한국,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자와 여자 외에도 수많은 다름을 인정하고 긍정의 시각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면서 비로소 아름다운 공존의 경지에 다다른다. 무겁게 이동하던 대형구조물은 어느 순간 헬륨가스로 가득 찬 풍선이었음을 고백이라도 하듯, 가볍게 공중으로 떠오른다. 신체의 모든 것들이 ‘영(0)’ 즉 비어있는 상태가 되는 찰나다. 마치 우리의 편견이 사라지듯이,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어지듯이.

안은미가 던진 긍정의 힘

‘굿모닝 에브리바디’

 

 

 

 

 

 

 

 

창단 2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칸두코 댄스 컴퍼니는 장애인이 무용수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단체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섞여 있으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면서 끊임없이 신체적 한계에 도전한다.

시각장애인, 왜소증 무용수 등과 작업한바 있는 안은미는 때로는 무겁고 진지하게 느껴지던 칸두코에 원색의 색채와 반복적으로 반사하는 에너지를 덧입혔다. 제목 ‘굿모닝 에브리바디’가 말해주듯이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서로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과정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그만큼 장애인 무용수들이 전문무용수로서 손색이 없었고, 장애로 인한 불편함이나 거리낌이 일순간도 보이지 않았다. 안무가 안은미의 파워풀한 긍정의 힘은 곳곳에서 그들을 도왔다.

회전의자 다리를 모자처럼 쓴 여자가 무대 중앙에 서 있다. 오트 쿠튀르 작품마냥 멋지고 근사하다. 우리의 고정관념은 이렇게 깨지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육체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반신 대신 휠체어에 의지한 남자는 곡예에서나 봄직한 균형감으로 상체의 근육을 드러내고, 한 쪽 팔이 짧은 여자는 어깨 반동을 이용해 모자란 힘을 보충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동작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무용수와 동일한 동작을 구현함으로써 오히려 운동능력에 대해 동등함을 증명하는 듯했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한 다리로 균형을 잡는 여자와 휠체어를 탄 남자의 듀엣이었다. 서로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면서 각자의 아킬레스를 보완하는 노력이 돋보였다. 짧게 지나가긴 했지만, 수없는 반복연습을 통해 부드러운 연결 동작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들이 흘렸을 땀을 엿보기엔 충분했다.

편견을 넘어선 예술적 가치

‘굿모닝 에브리바디’

 

 

 

 

 

 

 

 

 

 

 

 

 

몇 달 남짓한 공동작업을 통해 한국과 영국,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연결고리를 찾기란 녹록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신체예술인 무용작품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휠체어 댄스’라는 장르가 있을 정도로 장애인무용이 우리보다 덜 생소한 서구에서도 때때로 사회적 편견에 대한 거부에 불과하다며 일축하지 않던가. 장애인무용에 있어 최고 선진국이라 할 영국에서도 비로소 2012년에 런던 패럴림픽을 통해 대중적으로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이번에 선보인 두 편의 무용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장애 예술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예술적 가치를 강조하는 데 있어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남 앞에 드러내기 꺼려지는 상처받은 육체를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드러내는 장애인 무용수의 용기와 노력은 물론이며, 편견을 깨기 위해 선방한 안무가, 휠체어 좌석을 확대하고, 오디오 디스크립션을 제공하는 등 장애인 관객까지 배려한 기획자의 섬세함까지 포함해서 ‘장애’라는 화두를 가지고 접근한 예술 활동의 큰 성과였다.

공연 며칠 전, 세계적인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별세했다. 5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이후 55년을 살면서 불편한 몸으로 연구를 멈추지 않았던 그의 열정을 지켜보면서 그의 학문적 업적보다 더 큰 희망을 주었다. 그에게 있어 장애는 좌절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삶의 열정을 높이는 데 발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신체표현을 언어로 하는 무용 예술에 있어서도 장애는 더 이상 장애물이 아니다. 얼마나 조화롭게 타인과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또 다른 언어일 뿐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열린 시각으로 다가가는 또 하나의 창구일 뿐이다. 평창 패럴림픽을 빛낸 선수들에게서 감동을 받았던 우리는 춤을 보며 또 한 번 희망을 얻는다.

 

장인주(무용평론가) 사진 주한영국문화원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