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박애리, 시간을 사로잡는 목소리

INTERVIEW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4월 1일 12:00 오전

6시간은 금세 지나갈 것이다. 그녀의 소리가,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가 온 힘을 다해 끌어당길 것이므로

 

시간과 공간은 상대적이다. 시간과 공간은 중력에 의해 변화하며, 중력이 강한 곳에서의 시간은 중력이 약한 곳의 시간보다 느리게 흘러간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발표함으로써 과학계에 만연했던 절대성에서 벗어나 상대성을 논했다. 에테르, 시간과 공간, 존재. ‘과학은 신의 언어’라는 말이 아주 틀린 표현은 아닌지, 이론을 이해해보려다가도 감당하기 벅찬 순간들을 맞닥뜨리곤 한다. 그럴 때 우린, ‘비유’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세상엔 중력만큼이나 강하게 우리를 잡아당기는 것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영화나 드라마, 책 혹은 게임이나 졸음일 수도 있다. 온몸을 사로잡는 강렬한 힘에 못 이겨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쏜살같이 보냈던가.

그리고 여기, 고운 소리로, 맵시 있는 태로, 흥과 한이 어린 이야기로 우리를 또 한 번 힘껏 잡아당기는 이가 있다. 수백 년간 수백 명의 이야기꾼을 거치며 살아남아 정리되고 다듬어진 그런 이야기로 말이다. 소리꾼 박애리가 4월 21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무대에 올라 ‘김세종제 춘향가’로 생애 첫 판소리 완창에 도전한다.

대흥역에 위치한 연습실 근처에서 만난 박애리는 맑고 곧은 기운을 뿜어내는 이였다. 탁월한 말솜씨, 또렷한 발음, 긍정적인 기운에 눈이 가고, 귀를 기울이게 되는 타고난 소리꾼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그녀의 재주는 일찍이 입증된 바 있다. 가수와의 협업을 꾀하고, 드라마 ‘대장금’ OST를 부르며 대중 앞에 섰다. 국악과 힙합을 접목한 음반들을 발매했는가 하면, 최근엔 2018 동계올림픽 패럴림픽 개막 무대에서 EDM 반주에 맞춰 민요를 선보이기도, ‘불후의 명곡’에 남편 팝핀현준과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 외에도 숱한 도전과 새로운 시도를 통해 박애리의 소리 힘에 이끌려 국악이란 영역으로 발 디딘 이가 어디 한 둘이었던가.

이번 ‘완창 판소리’ 무대에서 관객에게 주어질 시간은 총 6시간. 박애리는 ‘춘향가’에서 어느 한 대목도 빠짐없이 전부 소화할 예정이다. 무대 중앙에서 모두를 끌어당길 소리꾼 박애리의 힘은 과연, 그 6시간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3시간처럼 흐르느냐, 10시간처럼 흐르느냐는 이제 그녀에게 달렸다.

 

2018 패럴림픽 개막식에서 유지숙 명창과 함께 EDM 반주에 맞춰 민요를 선보였다. 반가운 무대였다.

‘문 라이트’를 주제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평창 하모니’ 무대를 꾸몄다. 다양한 변주와 응용을 위해 키를 높인다던가 창법을 바꾸면서 여러 민요를 녹음했다. 그것을 구준엽 씨가 EDM과 아주 잘 버무렸다. 덕분에 평창의 밤을 뜨겁게 달군 흥겨운 무대가 탄생할 수 있었다. 개막 무대를 우리 소리로 마무리할 수 있어 참으로 벅차고 감사했다. 게다가 유지숙 선생님의 서도 소리는 황해도 지방에서 시작된 북녘의 민요인데, ‘쾌지나 칭칭나네’ ‘옹헤야’ ‘강강술래’ ‘아리랑’ 등과 한데 어우러지며 팔도소리가 진정한 하모니를 이루어 더욱 뜻깊었다. 그런 음악에 맞추어 전 세계인이 함께 뛰며 춤추고 즐겼다니, 참으로 소중한 추억이다.

‘불후의 명곡’에서 선보인 무대가 다시 한 번 화제더라. 진정 대중에게 사랑받는 국악인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 ‘젊은 사람이 어떻게 판소리 할 생각을 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좋아하는 음악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더라. 그때마다 역으로 궁금했다. 왜 저렇게 생각할까, 나는 이렇게 젊어도 소리가 좋은데 왜 어렵고 특정 사람들만 좋아한다고 생각할까. 그러다 동시대의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일련의 작업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소리는 본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즐기던 대중의 음악이었으니, 일단 그들에게 자주 노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SG워너비의 음반에 구음으로 피처링을 돕고, 드라마 ‘대장금’의 OST를 부르며 본격적으로 대중을 위한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함께 소리 공부를 하던 선후배, 동기들과 창작 판소리와 창작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기도 했고, 인사동과 여러 거리에서 누구나 쉽게 판소리를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길거리 소리판’을 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방송에도 출연하고 라디오도 진행하며 대중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고 보면 완창 준비만으로도 벅찰 텐데, 여러 무대를 소화했다.

완창 준비를 위해 따로 스케줄을 조절하진 않았다. 덕분에 바쁘게 지내며 연습실과 길 위에서 ‘춘향가’를 연습하고 있다. 집이 일산이라 서울 연습실까지 오려면 1시간 정도 걸리는데, 문을 나설 때부터 연습의 시작인 셈이다.(웃음) 보통 ‘사랑가’에 접어들 때 즈음 도착한다. ‘완창하려면 독공이라도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일정을 다 소화하면서 준비하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거다’라고 걱정해주는 분도 많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정식으로 임하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일상에 녹아있는 연습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첫 소리 선생님께서 ‘지금부터 연습!하고 임하는 연습도 좋지만, 일상 안에 늘 소리가 녹아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자려고 누웠을 때, 샤워할 때, 하다못해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도 소리를 붙이고 살 정도로 소리를 일상화한다면 금세 좋은 소리꾼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선배들도 소리야 우리 입에 늘 달고 사는 것이니 새로이 연습한다고 특출나게 늘거나 부족해질 수는 없다며 항상 체력을 우선시하라더라. 컨디션 관리에 신경 쓰며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 대목도 빠짐없이 6시간을 노래할 예정이다. 창자(昌子)와 청자(聽子) 모두에게 신성한 체험일듯하다.

재미있는 것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게 되지 않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참으로 다행인 건 ‘춘향가’ 자체가 흥미롭고 잘 알려진 이야기라는 거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내가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관객의 6시간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이지.(웃음) 집중력을 흩트리지 않으면서도 모두 즐길 수 있도록 관객이 참여하는 시간을 마련해 적극적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소통해보려 한다.

사실 소리꾼은 호응해주고 교감하는 관객과 고수가 있다면 얼마든지 서서 노래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앉아서 소리꾼과 관객 모두에게 집중하며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는 고수가 가장 힘들 것이다. 내 소리 인생에서 처음 도전하는 완창이니만큼 귀한 분들과 함께 무대에 서고자 세 분의 명고수를 모실 생각이다. 자리를 교체하는 시간이 필요해 두 시간마다 짧은 쉬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 생각보다 6시간이 금세 지나갈지도 모른다. 지금의 목표라면 고수가 자리를 바꾸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어머, 벌써 두 시간이 지나갔단 말이야?’라고 느끼는 분들이 많았으면 하는 거다. 재미있는 이야기 재미지게 들려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겠다. 그러니 부디 많은 분이 시간에 겁먹고, 국악이라는 이유로 거부감을 느끼며 망설이지 않고 와서 체험해보셨으면 한다.

첫 완창을 국립극장에서 선보인다. 국립창극단으로 섰던 무대라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보면, 창극단 입단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연히 닿았던 그곳이 운명이 된 셈이다. 판소리 외에 다른 길을 염두에 둔 적 없던 내가 친구를 따라 오디션을 보고, 늘 관객으로 마주하던 극의 주인공들과 함께 무대에 서게 됐다. 구전심수로 소리를 배웠다 보니 선생님의 표현력이 곧 내가 표현해낼 수 있는 틀이 되었는데, 많은 무대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마음껏 표현해내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소리 외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창극이, 나를 더 빠르고 바르게 소리로 이끈 것 같다. 창극단 경험이 없었다면 이만큼 깊고 넓게 표현해내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거다. 그랬다면 지금 이 시기에 완창에 도전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왜, 지금, 완창 판소리인가?

많은 분이 좋아해 주니 신이 나서 했던 시도들이 국악을 향한 대중의 낯섦을 허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나를 가두는 편견이 되어 있었다. 박애리가 소리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도, 소리 하나만 파고들기에도 평생 시간이 부족한데 혹여 샛길로 빠질까 염려하는 분들도 있었다. 어떤 분은 “네가 중심이 되어야지, 대중음악 작업이 웬 말이냐. 다신 하지 말어라!”라며 야단도 치셨다. 하지만 한번도 판소리 무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소리에 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매체를 통해 보여 지는 모습만 보고 박애리가 소리를 그만뒀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더라. 판소리를 널리 알리고 싶어서, 남녀노소 모두의 예술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시작했던 일들이 편견으로 돌아와 속이 상했다. ‘그런 작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소리꾼 박애리로 인정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괴로웠다. 하지만 박애리가 소리꾼임을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지난날들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 판소리 완창을 결심하게 됐다. 국악의 판을 넓혀 나가는 일은 훌륭한 후배들에게 잠시 맡겨두고, 잠시 본질로 돌아와 소리에 집중해보려 한다.

완창은 소리꾼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이지만 쉬이 정복하기 힘든 큰 산이다. 그러나 ‘소리꾼’이라는 수식어 앞에 당당하고 떳떳해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남은 생에서 가장 젊은 지금, ‘춘향가’를 시작으로 매해 한 바탕씩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박애리는 소리꾼이다’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드릴 거다.

처음 도전하는 완창인데도, 긴장되기보단 오히려 설레 보인다.

어릴 때부터 대회에 나가거나 무대에 설 때도 떨지 않았던 것 같다.(웃음) 그저 공연 당일에 컨디션이 좋지 않을까 걱정될 뿐이다. 9살에 처음 판소리를 접한 날부터 판소리를 제일 잘 하는, 판소리로 인정받는 명창이 되겠다는 그 꿈 하나만 품고 살았다. 소리를 사랑했기에 더 많은 분들과 나누고자 다양한 활동을 했던 것이지, 그 꿈은 지금도 변함없다. 24살 땐 창극단에서 작은 단역들을 소화하며 홀로 상상하곤 했다. ‘언젠가 나도 이 무대 중심에서 홀로 소리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던졌던 그 질문에 42살이 되어서야 답하게 되었다. 나, 이제 그 무대에 홀로 선다고.

 


국립극장 ‘완창판소리-박애리의 김세종제 춘향가’
4월 21일 오후 3시 국립극장 하늘극장


 

글 정원 기자 사진 국립극장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