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객석’ 기자들이 직접 뛰어다닌 공연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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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7월 4일 3:55 오후

아르테미스 콰르텟 & 파벨 하스 콰르텟

개성 강한 실내악단들의 내한

아르테미스 콰르텟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지난 6월, 세계무대에서 손꼽히는 두 현악 4중주단이 3일 간격으로 한국을 찾았다. 창단 29년 만에 처음 내한한 아르테미르 콰르텟(5일)과 2015년 첫 내한 당시 드보르자크의 ‘아메리카’로 국내 실내악 애호가들에게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파벨 하스 콰르텟(8일)이 LG아트센터 무대에 섰다. 각각 독일과 체코를 대표하지만, 두 악단 모두 국민성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듯하다.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이번 첫 내한 무대에서 베토벤 현악 4중주 3번, 야나체크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 슈만 현악 4중주 3번을 연주했고, 파벨 하스 콰르텟은 스메타나 현악 4중주 1번 ‘나의 생애로부터’와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2번을 선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정교한 테크닉을 바탕으로 틀에 갇히지 않은 자유분방한 연주로 청중을 사로잡았고, 파벨 하스 콰르텟은 뚜렷한 개성과 엄청난 에너지로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선 채로, 파벨 하스 콰르텟은 간격을 좁혀 앉은 채로 연주하는 상반된 모습이 이채로웠다. 앙상블에서 각기 다른 자세로 연주하는 것은 연주에 힘을 가하는 방식이나 호흡을 주고받는 방법에 있어 분명 차이가 있다.

 

아르테미스 콰르텟, 몰입을 이끄는 정교함

아르테미스 콰르텟의 첫 내한 공연의 절정은 1부의 마지막 순서인 야나체크 현악 4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터졌다. 무대는 시종 생기가 넘쳤고, 안정적이면서도 절묘한 앙상블이 연주 내내 놀라움을 자아냈다.

톨스토이의 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는, 피아니스트인 아내가 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를 함께 연주하던 바이올리니스트와 불륜을 저지르자 이에 분노해 아내를 살해하는 한 남성의 이야기를 그린다. 아내가 아닌 새로운 뮤즈에 마음을 빼앗긴 말년의 작곡가가 소설에 감정을 이입해 만든 곡이다. 사운드와 테크닉 면에서 매우 날카롭고 격정적인, 밀란 쿤데라의 표현을 빌리자면 ‘표현주의의 정수’를 보여준다.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야나체크가 기록해 둔 음울하고 불안한 뉘앙스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부딪히며 팽팽한 긴장을 이어가는 1악장부터, 격정의 순간과 슬픔에 젖는 장면을 교차하는 곳곳의 대목에서도 얼굴을 한순간에 바꿔가며 청중의 몰입을 이끌었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가운데 극도의 불안과 허망함을 드러내는 마지막 악장은 그야말로 무아지경이었다.

아르테미스 콰르텟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작품 중 3번은 ‘현악 4중주계의 헤비메탈 그룹’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드라마틱한 해석을 들려주던 초기의 해석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초기 멤버인 나탈리아 프리셰펜코가 악단을 떠나고 비네타 사레이카가 제1바이올린을 잡은 후부터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매끈하고 풍성한 표현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4악장에서는 재기발랄한 프레이즈 위를 거침없이 활주하며 듣는 이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마지막 순서로 들려준 슈만 현악 4중주 3번은 마치 유럽의 궁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낭만적이면서도 싱그러운 사운드는 독일 음악의 정수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현악 4중주 편성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완벽한 균형 감각이 주는 쾌감을 아르테미스 콰르텟은 이날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제1바이올리니스트 비네타 사레이카와 제2바이올린을 담당하다 비올라를 잡고 있는 그레고르 지글이 감정적 흐름에 몰두하는 반면, 제2바이올리니스트 앤티아 크레스튼은 이성적인 해석을 들려주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첼리스트 에카르트 룽에의 연주가 무척 인상 깊었다. 룽에는 아르테미스 콰르텟의 모든 역사를 함께 하고 있는 유일한 멤버로, 이날 무대에서 마치 멋진 신사처럼 풍성하고 매혹적인 저음으로 따뜻하고 황홀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여러모로 악단의 중심을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 짧게 끝나버린 바흐 BWV295 ‘성령의 은혜’ 앙코르 연주가 아쉽기만 했다.

 

파벨 하스 콰르텟의 압도적인 에너지

지난 2015년 12월 이후 2년 반 만에 다시 내한한 파벨 하스 콰르텟은 이번 연주를 통해 그들이 이 시대 청중에게 사랑받는 이유를 다시금 보여주었다. 삶의 극단에 내몰린 스메타나의 내면세계를 학구적으로 파고드는 대신, 그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펼쳐내는 편을 택했다. 정력적이고 직접적인 표현 방식, 뚜렷한 개성, 빈틈없는 테크닉은 현대 관객들을 열광케 하기에 완벽한 조건이다.

스메타나 현악 4중주 1번 ‘나의 생애로부터’는 1876년에 탄생한 작품으로, 1874년 청력을 상실한 작곡가의 극한의 불행이 담겨 있다. 과거를 회상하는, 낭만적인 분위기와 음침하고 우울한 갈망이 교차하는 부분에서 파벨 하스 콰르텟은 전체적으로 음색을 두텁게 표현하며 아련하게 들리도록 연출했다.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시작해 날카로운 긴장으로 치닫는 4악장에서 보여준 추진력은 파벨 하스 콰르텟의 뜨거운 에너지를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2번 역시 압도적인 음향과 풍부한 표현으로 현악 4중주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웅장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암울한 시대의 비극성이 순간순간 극적인 화면으로 무대 위에 펼쳐졌다.

멤버 교체가 잦았던 파벨 하스 콰르텟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팀을 지키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베로니카 야루스코바의 활약이 이날 무대에서도 두드러졌다. 일말의 머뭇거림도 없는 카리스마로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 깊었다. 남편인 첼리스트 페테르 야루셰크와 제2바이올리니스트 마렉 츠비벨, 비올리스트 이르지 카바트까지, 이들이 함께 만들어낸, 특히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2번 2악장에서 보여준 집중력과 상상력은 감탄을 자아냈다.

파벨 하스 콰르텟은 2002년, 아우슈비츠에서 숨을 거둔 체코 작곡가 파벨 하스가 자국의 음악에 미친 중요성에 집중한다는 의미를 팀명에 담아 창단했다. 현재 수프라폰 레이블에서 발매하는 음반을 통해 세계 음악계에 정체성과 실력을 각인시키고 있다. 스메타나·드보르자크·야나체크 등을 탐닉하며 강렬한 개성과 풍부한 사운드를 드러내 인정받고 있다.

이날 한국 무대의 앙코르 역시 드보르자크 현악 4중주 9번 ‘사이프러스’의 한 대목이었다. 끝없는 꿈길이 이어지는 듯한 밀도 높은 서정적 선율은 스메타나와 쇼스타코비치의 격정적 선율으로 다소 경직된 귀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이들이 앞으로 보여줄 무궁무진한 창의성에 큰 기대가 실린다.

파벨 하스 콰르텟

글 김호경(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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