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임선혜, 오, 나의 수잔나

소프라노 임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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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7월 9일 6:54 오후

르네 야콥스/FBO와의 조우로 기대를 모으는 콘서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르네 야콥스(René Jacobs)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FBO)는 2017년부터 3년간 동아시아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중 대본작가 로렌초 다 폰테의 3부작을 연이어 올린다. 한국에선 롯데콘서트홀이 ‘여자는 다 그래’(2017), ‘피가로의 결혼’(2018), ‘돈 조반니’(2019)의 콘서트 오페라를 분담 제작한다.

2008년 FBO가, 2011년 야콥스가 베를린 리아스 실내합창단과 내한하면서 한국 관객과 직접 만났지만, 고음악 전문가 프레임이 드리워진 진용으로 중기 프로젝트를 짜는 건 이윤을 고려한 민간 기획사에서는 쉽게 나서지 않는 영역이다. 상업적 이득에 앞서 주최 측이 주목한 야콥스와 FBO의 역량은 있었으리라.

한국에선 야콥스의 이름과 늘 함께하는 소프라노 임선혜가 FBO 다 폰테 시리즈 한국 공연 성사의 견인차다. 2017년 ‘여자는 다 그래’에서는 조역 데스피나를 맡았고, 한국 관객들은 임선혜가 선보이는 18세기 오페라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올해 ‘피가로의 결혼’(7월 6·7일)에서 임선혜는 여성 주역 수잔나를 맡았다. 2006년 야콥스와 ‘티토 왕의 자비’를 녹음(아르모니아 문디)하고 ‘돈 조반니’에서 체를리나 역으로 인스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함께하면서 이어진 야콥스-임선혜 조합의 진가를 10년이 지나 서울에서 직접 확인하는 셈이다.

2000년대 중반 조수미의 첫 바로크 앨범 녹음 때도 그랬듯, 카운터테너 출신의 지휘자 야콥스는 가수의 목소리를 듣고 성악가 스스로 한계를 두었던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데 탁월한 역량을 보인다. 임선혜도 처음 모차르트 ‘이도메네오’의 일리야 역을 제안받았을 때 당황했지만, 곧바로 이듬해 전막 공연에 올랐다.

야콥스는 교회 음악에서 영성을 일으키는 임선혜의 집중력을 본인의 작품에 선용했고, 오페라 부파와 세리아에선 청량제와 같은 조역 역할이나 작품을 지휘자의 페이스대로 쭉 끌고 나갈 리베로 같은 주역을 임선혜에게 맡겼다. ‘피가로의 결혼’ 수잔나는 작품 곳곳이 헐거워질 때마다 등장해 줄거리를 전개하고 등장인물 사이의 해석이 정렬되도록 기준을 잡는 역할이다. 야콥스/FBO 다 폰테 시리즈의 두 번째 내한을 앞두고 임선혜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알테 무지크 베를린 아카데미 이외에도 베를린에서 여러 작업을 수행했다.

2006년에 베를린으로 왔다. 지난 10년간 세계의 젊은 예술가들이 베를린으로 왔고 도시의 문화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여러 공연들 중에서도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르네 야콥스와 함께한 텔레만·몬테베르디 오페라 전막 공연이 기억에 남는다.

유럽으로 간 지 20년이 넘었다. 이제 오페라하우스에 가면 출연진 중에 베테랑에 속하지 않나? 신작을 다루면서 어느 순간에 숙련자임을 느끼나?

항상 어딜 가든 내가 가장 어린 줄 알았다. 실수를 해도 가볍게 봐줄 수 있을 것 같고. 그런데 이제 프로덕션에 가면 내가 중간쯤 연배다. 지금은 어린 동료들 앞에서 실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FBO와 함께하는 프랑스 본(Beaune)과 이번 서울 작업에서는 비슷한 연배들과 뭉친다.

극작과 별개로 본인이 판단하는 수잔나의 연령은?

당시의 사회상을 고려한다면 16~17세, 많아야 18세 정도일 거다. 현대적 관점으로 본다면 25~27세 사이가 아닐까?

요즘은 결혼 적령기 개념도 많이 퇴색했고, 연령 설정을 비롯해 캐릭터에 대한 해석의 자유를 가수가 조금 더 주도할 여유가 생기지 않았나.

수잔나가 가진 마음의 나이에 집중한다. 17세를 소화한다고 목소리와 연기를 바꿀 순 없다. 결혼을 처음 하는 여인의 마음에 공감하면 캐릭터 이해는 충분하다. 개인적으론 백작 부인이 나이 많은 중년은 아니라고 본다. 이번에 부인을 맡은 소피 카르트호이저와 내가 다섯 살 정도 차이가 나는데, 딱 그 정도로 정서적 차이를 둔다. 피가로와 백작도 극 중에서 ‘세비야 이발사’ 스토리를 소환하고 재치를 교환하는 걸 보면 연령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본다.

작품에서 수잔나는 인물 간의 갈등을 중재하나 아니면 즐기는 입장인가?

상황 파악이 빠르고 민첩하게 대책을 내놓는 수잔나가 갈등을 즐기는 형태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수잔나는 상황을 호전시키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수잔나가 실제의 나 같다는 생각을 한다. 혈액형 O형이 보통 오지랖이 넓다고 하지 않나. 내가 전형적인 O형이다. 해결책을 강구하고 일이 풀릴 때 쾌감을 느끼고,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에 재능이 있다. 나는 수잔나도 O형이었을 것 같다. 백작부인의 고민에 대해, 수잔나는 직속 하녀여서가 아닌 주변인으로 그 아픔을 잘 헤아리는 입장이었으리라.

 

‘야콥스 사단’의 소프라노

‘피가로의 결혼’에서 2중창·3중창·6중창의 밸런스는 대단히 중요한데, 콘서트 오페라에서 그 조절은 야콥스가 하나, 가수들끼리 조정하나?

‘피가로의 결혼’에서 중창은 줄거리를 앞으로 진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가수들의 케미스트리가 아주 중요하다. ‘오페라 가수들이 보통 중창을 잘 못 한다’고 독일의 제작 현장에서도 말하곤 한다. 스타들을 다 집어넣으면 양보를 안 하니까. 그런데 야콥스가 캐스팅하는 가수들은 타인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볼륨을 조절할 줄 아는 귀를 가진 사람들이 주로 뽑힌다. 야콥스는 앙상블의 묘미를 아는 가수들을 선호한다. 중창을 잘하려면 포르테로 부르면 안 된다. 여타 버전과 비교해 FBO 버전에선 가수들이 얼마나 앙상블을 즐기면서 하는지 금방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콘서트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를 선보였던 르네 야콥스

지난해 콘서트 오페라 ‘여자는 다 그래’를 선보였던 임선혜

앙상블을 하다가 서로 눈을 맞추고 동선을 이동하다 보면, 콘서트홀에 따라서는 소리의 방향이 달라져서 객석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위험도 있다.

롯데콘서트홀은 무대에서 부를 때 가수는 큰 부담이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객석에서 들어보니까 성악가가 고개만 살짝 돌려도 많이 달라진다. 소리에 아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어쿠스틱 공간에서, 특히 투어 중인 콘서트 오페라라면, 매번 바뀌는 홀에 일일이 맞춰서 오페라 앙상블을 다 조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객석에선 조금 덜 들리더라도 생동감을 포기하지 않는 쪽으로 야콥스는 방향을 잡은 듯하다. 객석 전체에 다 들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면 라이브는 못 한다. 관객 반응을 보고 그날의 성패를 체감하는데, 콘서트오페라는 운도 많이 작용한다. 공연이 이틀이니까 앙상블 개선의 여지는 있다.

작품에서 가장 공을 기울이는 아리아가 있나.

이 작품뿐 아니라 오페라 전체를 통틀어 수잔나가 가장 긴 시간 노래한다. 실제로 무대 밖에서 쉴 시간이 거의 없다. 한 장면 끝나고 헐떡이고 물 마시고 바로 올라간다. 수잔나는 박수가 크게 나오는 튀는 아리아가 별로 없다. 하지만 양념 역할을 해야 하고 극을 계속 끌고 나가야 하는 임무가 있다. 그래서 레치타티보가 상당히 많다. 야콥스와 나는 레치타티보가 재미있어야 오페라가 오페라답다는 생각이다. 레치타티보가 재밌게 들리게 하고 싶다. 관객이 자막을 보지 않아도 레치타티보를 들으면서 내 표정으로 극을 쉽게 이해했으면 좋겠다.

‘피가로의 결혼’이 흥미로운 작품임은 틀림없지만, 요즘 시대의 관객들이 객석에서 즐기기에 조금 긴 느낌도 있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극적인 전환과 음악과의 조화가 특출한 작품이다. 공중에서 산맥을 볼 때 봉우리의 생김새를 일일이 다 확인하고 평가하진 않는다. 작품이 다 끝나고 어느 아리아 하나가 기억나기보다는 전체적인 분위기가 산맥을 볼 때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면 좋겠다.

콘서트 오페라는 상대적으로 연습 시간이 짧다. 작품의 질 저하를 막기 위한 대책들이 있나?

콘서트 오페라는 보통 10일 정도 연습을 한다. 특히 ‘피가로의 결혼’은 작품이 길다 보니 집중력을 유지하는 게 절실하다. 뜻하지 않게 가사를 잊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어서, 자다가도 다시 작품을 들여다보고 잠을 다시 청한다. 동선과 음악적 해석의 배열과 조율을 10일 안에 완성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콘서트 오페라에 참여하는 가수들은 ‘실력자’를 뽑기 마련이다. 무대에서 잘 뛰어놀아야겠다는 좋은 긴장이 작품 전까지 몸 안에 유지된다.

야콥스는 가수의 해석을 제재하는 편인가,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편인가?

오페라 전막 공연에 들어가면 하루에 6~8시간 강도 높게 트레이닝한다. 가수들의 뜻을 받아들여서 연출을 함께 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야콥스의 의도로 모든 방향이 수렴된다. ‘이렇게 끌지 말고 빨리 공연하면 좋겠다’는 상황까지 간다. 그러다 첫 공연을 하면 성악가들은 모든 걸 다 쏟아붓고, 관객들은 열광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가수들은 오히려 피로가 풀린다. 보통 장기 프로덕션에는 호텔보다 아파트에서 가수들끼리 모여서 음식도 해 먹고 우정을 쌓는데 야콥스가 제작하는 프로덕션에선 지치니까 각각 호텔에 들어가서 쉬는 게 낫다.

훗날 다른 지휘자가 ‘피가로의 결혼’ 중에 백작부인을 제안하는 날이 온다면 받아들이겠나?

지휘자들이 새 배역을 제안하면 먼저 ‘왜 나한테 이 배역을 제안했을까’ 궁금해한다. 아직까지 ‘이 배역이 너무 좋으니 저 좀 시켜주세요’라고 누구에게 간청한 적이 없다. 나한테 맡겨주면 그걸 해내는 걸로 소임을 다했는데, 10년 전에 헹엘브로크와 지기스발트 쿠이켄이 ‘돈 조반니’ 돈나 안나를 제안했을 땐 거절했다. 그때는 통념적 기대와 다른 해석을 했을 때의 반응에 상처받을까 두려웠다. 그래도 나를 잘 아는 지휘자가 새로운 역을 베팅한다면 앞으로도 응할 것이다.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롯데콘서트홀

 

콘서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7월 6일 오후 7시 30분, 7일 오후 5시

르네 야콥스(지휘)/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임선혜(수잔나)/아르투 카타야(알마비바 백작)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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