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콜야 블라허

또 하나의 별을 쏘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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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9월 17일 12: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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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계를 뜨겁게 달군 젊은 음악가들의 스승을 만나다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직후의 레슨에서 콜야 블라허 교수님이 내게 건낸 첫마디는 “안녕 지윤, 오늘은 스케일과 에튀드를 해보자”였다.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이자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얼마 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오케스트라의 종신악장으로 임명된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은 스승에게 들은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을 묻는 질문에 이 순간을 떠올렸다. 어느 한순간도 긴장이 풀릴 틈을 주지 않았던 스승 콜야 블라허.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부지런함으로 제자들의 존경과 무한한 신뢰를 받고 있다.

독일 베를린 출신의 콜야 블라허(b.1963)는 10대의 어린 나이에 이미 전 세계를 무대로 연주 여행을 시작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클라우디오 아바도·다니엘 바렌보임 등의 거장들과 함께 베를린 필하모닉·뮌헨 필하모닉에서 호흡을 맞추며, 고전부터 현대까지 독주와 실내악, 오케스트라 등의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새로운 공연 형태의 확장은 물론 음반 작업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현재 한스 아이슬러 음대 교수로 재직하며 교육자이자 연주자로서 많은 음악가의 멘토가 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를 오가며 활발한 연주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티스트로서 누구보다 음악계의 양면성과 비즈니스 세계를 잘 알고 있는 그는 제자들에게 더욱 독립적이고 견고한 마음을 쌓아주려 노력한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밝게 빛날 또 하나의 별을 쏘아 올리기 위해.

 

당신에게 교육은 어떤 의미인가?

독립적인 학생을 만드는 것이다. 자신만의 음악적 아이디어를 발견할 방법을 알려주는 것. 그것이 반드시 나와 같을 필요는 없다. 그들이 발견하고자 하는 것을 찾아낼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만의 공간을 남겨주는 거다. 어찌 보면 더 많은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것이기도 오랜 시간을 요구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빠른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이런 교육 철학에는 당신의 스승이었던 도로시 딜레이와 산도르 베그의 영향도 있는가?

내가 뉴욕에 갔던 것은 15세 때였다. 당시 나는 음악을 만들어가는 방법에 옳고 그름이 있다고 믿었고, 모차르트 연주에는 오직 한 가지 옳은 방법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도로시 딜레이 선생님을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다. 선생님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것에 확신이 든다면 괜찮다”고 말씀하셨는데, 내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선생님은 특정한 스타일을 가진 작곡가의 틀 안에서 나만의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마치 적절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단어와 문법을 배우는 것처럼, 내게도 다양한 소리와 비브라토 등 많은 테크닉을 익히는 것이 매우 중요했는데, 그 부분을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게 가르쳐주셨다.

그 후에 만난 산도르 베그 선생님은 전혀 다른 분이셨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 그리고 콰르텟 연주자였고, 전문적인 기준이나 콩쿠르 준비, 혹은 완벽한 연주 등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베그 선생님은 노래하는 것보다 말하는 것에 더 초점을 두었다. 노래하기 전에 더 많은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도록, 더 작은 규모 안에서 음악을 만들고 생각하는 것, 다시 말해 아티큘레이션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함부르크 음대를 거쳐 현재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한스 아이슬러 음대는 유럽 내 최고의 학교 중 하나다. 함부르크 음대가 그에 비해 작긴 하지만, 과소평가된 부분도 있다. 조금 더 편안한 분위기이고, 훌륭한 수업도 많다. 학교에서 주는 압박도 거의 없어 일하기에 훨씬 수월한 면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의미의 ‘경쟁’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스 아이슬러에는 매우 우수한 학생들을 가진 네 명의 강력한 교수진이 선의의 경쟁을 만들어간다. 함부르크에는 이런 부분이 조금 부족하다.

함께 공부할 학생은 어떻게 선발하는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매우 많은 학생이라도 재능이 있다면 함께할 수 있다. 이건 마치 퍼즐과도 같다. 누군가를 볼 때, 큰 그림 안에서 매우 강한 요소들과 약한 요소들, 그리고 변화시킬 수 있는 부분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오디션에서는 10분 정도의 시간만 주어지기 때문에 이 학생이 오랜 시간 나와 어떻게 함께 공부해나갈 수 있을지 알기 어렵다. 내 경험에 비추어볼 때, 보통 반년의 시간은 지나야 나와 학생 모두 서로 잘 맞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예비 오디션이나 오디션 전의 레슨, 마스터클래스에 큰 의의를 두지 않는다. 이건 마치 신혼여행 같다. 첫 주는 매우 순조롭게 흘러가지만, 학생이 내 말을 얼마나 이해했는지, 충분히 연습한 것인지는 6개월의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다. 물론 기본적으로 연주와 테크닉, 음악성에 있어 어느 정도 특정 수준은 확인하지만, 나머지는 직감에 따른다.

지금껏 다양한 학생을 만나왔을 텐데, 일반적으로 한국 학생에게서는 어떤 인상을 받았나?

현재는 2명의 한국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7~8명의 한국 학생을 가르쳤는데, 그중에는 한국계 미국인과 혼혈도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볼 때, 내가 가르친 한국 학생들은 힘 있고 외향적인 연주를 한다. 자존심이 강하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종종 그 자존심이 배우는 것에서 멀어지게 하기도 한다. 한국 학생들은 연주하는 방법에 대해 강한 고집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스승으로서 그들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연주 방법을 찾고 발전해 가는 것이 흥미롭다.

학생들이 꼭 연주해봐야 하는 레퍼토리가 있다면.

바흐와 파가니니. 어린 나이에 비외탕과 비에니아프스키, 랄로 등의 협주곡도 배워야 한다. 이 곡들은 테크닉뿐 아니라 아름다운 라인과 프레이즈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작품이다. 물론 모차르트와 베토벤 소나타도 필수적이다. 베리오 ‘세쿠엔차’나 버르토크 솔로 소나타와 같은 현대 작품을 배우는 것도 소리의 스펙트럼과 음악적 접근의 다양성을 갖는데 매우 중요하다. 실내악 연주도 중요한 부분이다.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연주하는 음악의 98퍼센트 정도가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연주다.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교향곡과 콰르텟, 트리오 등 다양한 작품을 다뤄봐야 한다. 솔리스트로 10개의 바이올린 소나타와 하나의 협주곡을 연주해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연주자이자 교육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 왔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며 어떤 고민을 했을지 궁금하다.

내가 공부했던 시대에는 선생님은 오직 선생님으로서의 역할만 했기 때문에, 내가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연주자 겸 교육자를 선호하는 것 같다. 스스로 한 가지 명심하고 있는 것은 긴 연주 투어를 끝내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는 다시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스승의 모습에서 다시 연주자로 돌아가는 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상당한 자기훈련이 필요하다. 내가 일 년도 넘게 연주하지 않았던 브람스 협주곡을 하루 만에 무대에서 연주해야 한다고 했을 때,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없이는 해내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동안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연습해서 풀어갈 것인지를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생들에게도 무대에 서는 방법과 음악 비즈니스 세계를 잘 아는 멘토를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무대 위의 멘토

당신과 바이올린의 첫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나?

나는 음악가 가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곡가(보리스 블라허)이고, 어머니는 피아니스트셨다. 부모님은 4명의 우리 형제 모두에게 음악을 가르쳐주셨다. 형이 먼저 바이올린을 시작했는데, 연주를 잘할 때마다 상으로 사탕을 받는 것을 보고 나도 바이올린이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형과 함께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더 재능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악기를 시도해본 적도 없지만,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음악가로서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나?

몇가지 중요한 순간이 있었다. 첫 번째는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가 18세부터 세계를 여행하며 큰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한 것. 첫 연주 투어 당시 호텔 방에 앉아 있다가 짧은 리허설을 마치고 공연을 한 후, 바로 공항으로 이동했다. 그때, ‘세상에, 이게 내 평생을 바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사람들이 내게 말했던 ‘멋진 연주자의 삶’ 말이다. 베를린 필하모닉에 들어갔을 때 또 한 번의 큰 변화가 왔고, 오케스트라를 떠나 교수가 되었을 때, 그리고 지휘자가 없는 ‘플레이 리드’ 공연을 시작하면서도 큰 변화가 찾아 왔다.

요즘 ‘플레이 리드’ 콘서트(지휘자 없이 악장이자 협연자로 공연을 이끌어가는 형태)에 많이 오르고 있는데.

이것은 거대한 실내악과 같다. 모든 연주자가 악보를 더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고, 더욱 넓고 자유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런 플레이 리드 공연에서 세 가지 역할을 갖는다. 먼저 지휘자로서 작품의 콘셉트를 결정하고, 협주곡의 첫 번째 총추 부분을 지휘해야 한다. 협연자로서는 물론이고, 연주자들이 서로 더 소통하고 서로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악장의 역할 또한 수행해야 한다.

오는 10월 4일에는 금호아트홀을 찾아 공연한다. 어떤 연주를 선보일지 기대된다.

항상 큰 대조를 이루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1부는 잘 연주되지 않는 베토벤 소나타와 쇼스타코비치 소나타로 도전적인 레퍼토리를, 2부에서는 분위기를 바꾸어 프랑크 소나타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해 편곡된 쿠르트 바일의 ‘서푼짜리 오페라’,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를 연주한다.

현재 1730년 산 과르네리를 연주하고 있다. 연주자에게 자신과 맞는 악기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인데, 좋은 악기를 찾기 위한 조언을 해준다면?

사람들은 악기의 명성에 너무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소리가 마음에 드는지, 충분히 강한지, 편안한지, 악기에 유연성이 있고 내게 잘 반응하는지, 그리고 자꾸 연주하고 싶게 만드는지.’ 이 다섯 가지가 악기의 브랜드보다 더 중요하다. 나 역시 모던 바이올린(괴팅, Götting)으로 시작해 많은 음반을 녹음하고 수많은 콘서트에서 연주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연주자가 소리의 퀄리티를 만들 수는 있지만, 파워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큰 소리를 지닌 악기라면,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아름다운 소리를 얼마든지 만들어갈 수 있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연주자로 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음악가의 역할은 사회에 정신적 자양분을 주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경력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또한 음악가로서 사회가 우리에게 필요로 하는 것, 즉 다양한 레퍼토리의 공연을 선보일 수 있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현대 음악을 많이 연주했지만, 요즘에는 사람들이 고전적인 레퍼토리를 더 원하기 때문에 그에 맞는 연주를 선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수로서 혹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지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VAN HAZEBROUCK ARTISTS

콜야 블라허 바이올린 리사이틀

10월 4일 금호아트홀

베토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번 외

이지윤이 전하는 나의 스승, 콜야 블라허

첫 만남 우연히 선생님과 아바도가 같이 연주하는 베토벤 ‘로망스’ 영상을 보았다. 소리부터 해석까지 모두 다 내가 상상했던 이상적인 연주였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가르치신다는 걸 알고는 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입학시험 오디션에서 처음 뵈었는데, 선생님께 꼭 배우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깜짝 놀라셨다. 그렇게 2013년부터 5년을 꽉 채워 배웠다.

특별한 기억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악장으로서 첫 연주 총 리허설이 있던 날, 바쁘신 시간을 쪼개서 잠깐 리허설을 들으러 오셨다. 워낙 제자들에게 까다롭고 칭찬에 인색하신 분이라 각오하고 있었는데, 리허설 후 무대로 오시더니 지휘자 바렌보임과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가리켜 정말 자랑스러운 제자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감동할 틈도 없이 바로 지적을 하시긴 했지만, 그런 말씀을 선생님께 직접 들으니 마음이 뿌듯했다.

내가 기억하는 스승의 모습 블라허 교수님과의 레슨 시간은 대부분 찬물 샤워 같았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가감 없이 말씀해주셨다.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는 가차 없이 레슨을 중단하고 돌려보내기도 하셨다. 활발히 활동 중인 연주자로서 전문적인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얼마나 혹독히 단련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기 때문에 더더욱 까다롭게 가르치시는 것 같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부지런함에서는 견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존경심과 동시에 무한한 신뢰를 쌓을 수 있었다. 졸업한 후에도 조언이 필요할 때면 주저 없이 연락을 드리고 있다, 교수님은 내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준 스승일 뿐만 아니라 음악인으로서 인생의 멘토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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