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최희연

숭고한 정신의 음악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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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월 14일 9:00 오전

INTERVIEW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 발매기념 무대 갖는 그녀가 말하는 베토벤 내면의 세계

 

 

2002년부터 3년여에 걸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로 한국 음악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던 최희연(서울대 교수)이 데카 레이블을 통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음반 발매기념 리사이틀을 갖는다. 1월 31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서는 음반에 수록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을 비롯해 27번, 30번 소나타와 녹음까지는 진행했지만 시간 관계상 앨범에는 수록되지 못해 아쉬웠던 8번 ‘비창’의 연주를 통해 오랫동안 그녀가 품어온 베토벤의 내면을 그려낼 예정이다. 이번 음반의 녹음은 독일 레코딩의 명소인 텔덱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 마틴 사우어의 섬세한 손길이 만나 최상의 녹음 퀄리티를 만들어 냈다.

 

베토벤과의 인연이 특별하다. 2002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때 음반이 나왔을 법 한데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녹음하게 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다른 음악도 마찬가지겠지만 베토벤 음악은 그 택스트 자체가 한 번에 쉽게 이해되고 연주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당시에도 음반녹음 제의가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힘든 작업임을 알기에 결정할 때까지 많이 신중했고 머뭇거렸다. 그러면서 여러 사정들이 생겼고 결국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5년 안식년을 맞아 베를린에 있으면서 다시 음반 녹음이 진행되어 이번 앨범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시간이 흐른 만큼 늦게 녹음하게 된 베토벤 음반이 마음에 드나. 음반을 받고 일 년 정도 지난 뒤에야 제대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까 그래도 내 음악을 들을 용기가 나더라(웃음). 누군가 녹음을 한다는 건 음악 인생의 어느 한 시절, 마치 지금 이 순간 자른 케이크의 한 단면 같은 것이라고 얘기해 주었다. 내 모든 음악 인생을 대표하는 음반이라기보다는 그때의 내 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하니 격려가 되었고 한결 마음이 편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 주는 선물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음반을 녹음할 당시나 녹음한 직후는 마치 현미경으로 음악을 들여다보듯 세세하게 들을 수 밖에 없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확대경으로 음악을 보듯 조금 떨어져 듣게 되는 듯하다. 무엇보다 더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아마 두 달 뒤 연주 무대에 서게 되면 녹음때의 느낌과는 또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시간’에 감사할 때가 많다. 베토벤 음악은 씨줄과 날줄이 서로 엮이며 그 결이 달라지고 인간의 내면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가 담고 싶었던 인생의 철학을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시간도 많이 필요한 것 같다.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지금 나의 고백과도 같은 음악을 음반으로 낼 수 있었던 것도 지나고 보니 다 은총이고 섭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32개 피아노 소나타 중 음반에 수록할 곡을 선곡하는 과정이 무척 힘들었다고 들었다. 베토벤 중기 피아노 소나타에 해당되는 18번 ‘고별’과 26번, 후기 소나타인 27번과 30번을 수록했다. 나에게는 베토벤 작품 모두 애착이 가지 않는 곡이 없는데 이 곡들을 선곡할 때는 오로지 내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곡을 고를 당시 나의 노래이며 고백이다.

음반 작업 과정은 어땠나. 뵈젠도르퍼 피아노로 연주한 것도 인상적이다. 음반 작업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많이 만났다. 함께 한 프로듀서와는 유리창 너머 그의 호흡이 느껴질 만큼 잘 맞았고 선곡한 작품에서 느껴지는 조성의 컬러와 뵈젠도르퍼의 음색이 잘 어울려 만족스러웠다.

베토벤의 숨결이 느껴지는 독일에서의 시간도 행복했을 것 같다. 녹음을 하는 동안 베토벤이 걸었던 산책길도 걸어보고 발코니 자리에 가서 앉아 보기도 하면서 그가 남긴 음악에 대해 다시 음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빌딩 도시는 자연을 닮은 그의 음악을 느끼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베토벤 음악에 담긴 따뜻하고 순수한 감동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를 투박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베토벤은 자신의 모든 감정을 작품 하나 하나에 쏟아 넣었던 작곡가다. 다른 장르보다 피아노 음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고 깊이있게 표현했다. 거칠고 딱딱해 보이는 그가 얼마나 부드럽고 순수한 사람이었는지 알게 되면 그의 음악이 더 마음에 와 닿는다. 그는 ‘내 귓 속에는 나뭇가지, 새소리, 친구의 소리,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것을 표현한다’고 고백했을 만큼 섬세하고 따뜻한 음악가였다.

음반에 베토벤 작품 해설을 직접 썼는데 무척 인상적이다. 베토벤을 연구하고 연주자로서 느낀 고백이 그대로 드러난 듯했다. 소나타 30번의 메시지에 대해 베토벤은 ‘고상하고 더 나은 사람들을 이 지구상에서 함께 붙들어 줄 정신, 시간이 파멸시킬 수 없는 그런 정신’이라고 표현했다. 그 정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온 인류를 하나로 묶어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진 베토벤은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큰 힘을 믿었다. 당시 우울하고 힘든 시절을 보내면서 그는 구원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선을 추구하는 정신,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 그것은 숭고함이 아닐까 싶다.

그런 숭고함이 담긴 베토벤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어떤 것들을 느꼈나. 그의 작품들을 연주하면서 작품을 보는 나의 해석도 낭만적이었다가 이지적이었다가, 또 다시 낭만적이었다, 수많은 감정의 변화를 거쳤다. 그러면서 베토벤 전곡 사이클이 끝났는데 마치고 나면 뭔가를 알게될 줄 알았는데 처음엔 허탈하기도 하고 별로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의 상실과 고통이 닥쳐올 때면 그의 음악이 내 마음을 위로했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의 숭고한 정신이 나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었다.

서울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되어 교단에 선지도 20년이 되었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와 지금의 교육 환경이 크게 달라진 점이 있나. 교육의 문제는 비단 음악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다양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획일적인 것이 문제일 것이다. 음악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음악과 함께 언어 교육이 체계적으로 잘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한 작곡가의 음악을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해야 한다. 언어 속에 음악과 예술이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레슨하는 시간은 나의 레슨시간이기도 했다. 결국 교육도 삶도 무엇을 추구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러려면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음악가로서 성공한다는 것, 가치있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음악을 공부했다고 모두 연주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연주자, 교육가, 행정가, 경영자까지 음악이라는 큰 틀 속에 여러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길을 성공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바탕에 인간에 대한 사랑, 인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탕이 될 때 비로소 음악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어떤 꿈을 꾸고 있나. 꿈은 자신이 꾸고 계획할 수도 있지만 이루어지는 것과 이루어지는 시간은 기다림이 필요하다. 음악도 인생도 삶과 음악에 대해 깊고 너그러워질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돌아보면 나를 아껴주고 이끌어준 많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의 섭리였다. 연주자이기에 무대에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기에 그들이 음악가로서 자신들의 꿈을 펼칠 있도록 우리나라 음악시장이 안정되는데 기여하고 싶다. 그리고 이번 무대에서 베토벤의 숭고한 정신을 음악으로 담아내고 싶다.

 

국지연 기자 사진 유니버설뮤직

 

피아니스트 최희연의 ‘베토벤 아벤트’

1월 3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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