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현정, 있는 그대로를 사랑한다는 것

베토벤과 바흐를 통해 담아낸 그의 진심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2월 11일 9:00 오전

INTERVIEW

피아니스트 임현정에게는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어울렸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의 기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추구하는 것. 운명에 맞서면서도 끝까지 본인의 음악을 놓지 않았던 베토벤과 살아있는 동안 냉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자신에 대한 확신을 잃지 않았던 바흐, 그리고 당대 성행했던 인상주의에 휘둘리지 않고 개성 있는 음악을 창조한 프랑크를 말하는 그녀의 눈은 빛났다. 2016년부터 임현정은 프랑스와 스위스 등지에서 인종 차별 금지 운동을 펼치며 사랑의 변두리를 넓히고 있다. 2009년 유튜브에 올린 림스키코르사코프 ‘왕벌의 비행’에서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연주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고, 2012년 EMI클래식에서 녹음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이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던 연주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2년 만에 갖는 독주회를 위해 귀국한 그녀를 만났다.

베토벤과 바흐로 구성된 프로그램의 선정 이유가 궁금하다. 한국에서 연주하는 것은 항상 꿈같다. 외국에서 주로 활동하다 보니 한국의 가족들 앞에서 연주할 때마다 울컥 차오르는 것이 있다. 베토벤과 바흐를 선정한 이유는 이들의 곡에 어쩔 수 없이 생겨버린 고정관념과 두려움을 깨고 싶어서다. 피아노나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베토벤과 바흐는 무서운 존재다. 입시 곡이나 지정곡으로 특히 베토벤 소나타와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작곡가의 울림이 담겨 있는 음악이지만 ‘이 곡은 이렇게 연주해야 시험에 붙을 수 있다’는 생각이 곡의 본질을 해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연주에서는 곡의 본질을 살려 바흐나 베토벤과 하나가 되어서 음악을 표현하려고 한다.

곡의 순서에서도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2013년 한국에서의 첫 독주회에서는 베토벤 소나타 ‘하머클라비어’와 쇼팽 발라드를 연주했다. 피아니스트로서 모든 것을 펼쳐낼 수 있는 ‘하머클라비어’를 첫 무대에서 꼭 보여주고 싶었다. 이후에는 베토벤 소나타 8번 ‘비창’이라는 좀 더 대중적인 곡을 나만의 해석을 담아서 연주했다. 이번에는 베토벤 초기 소나타와 후기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베토벤이 겪었던 운명과의 싸움이 어떻게 시작되고 끝맺는지를 상세히 표현하고자 했다. 처음과 마지막 소나타를 연주하면 그 변화과정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베토벤 소나타 1번에서는 운명에 격렬히 저항하려는 반항적인 그의 모습이 그대로 표현되는 반면, 마지막 소나타 32번에서는 운명과의 화해를 거쳐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 담겨있다. 베토벤 소나타 사이에는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넣었다. 각 12곡의 푸가와 프렐류드로 구성되는데, 24곡의 색깔이 모두 다르다. 대위법을 사용하여 펼쳐내는 곡들 중에는 밝고 깜찍한 곡, 서정적인 곡과 비극적인 곡들이 모두 존재한다. 바흐의 음악도 이렇게 다채롭다는 것을 꼭 들려주고 싶다.

베토벤과 바흐의 존재를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인가? 바흐는 아버지, 베토벤은 애인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베토벤이 애인인 이유는 그에게서 존경심과 함께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신분 차별이 극심했던 당시, 하층민이었던 베토벤은 그가 가진 실력을 온전히 인정받지 못했다. 나 역시 12세에 프랑스로 유학을 오면서 심한 인종차별을 겪었기 때문에 베토벤이 겪었던 억울함이 마치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의 삶을 지켜보면서 내가 당시 베토벤 곁에 있었다면 하는 생각을 했다. 측은함과 동시에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이다. 바흐에게서는 동질감보다는 존경심을 더 크게 느낀다. 바흐는 생전에 그의 음악을 인정받지 못했고, 사후 100여 년이 흐른 뒤 멘델스존이 바흐의 곡을 활발하게 연주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예순 살 무렵 그는 교회에서 오르가니스트와 작곡가로 일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바흐가 병가를 낸 바로 다음 날, 교회에서는 함께 일하던 오르가니스트가 죽었다며 다른 음악가를 찾는 공고를 냈다. 그러고 나서 6개월 후에 바흐는 세상을 떠났다. 본인은 분명 자신의 음악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회의 평판에 좌우되지 않고 끝까지 영혼이 깃든 음악을 작곡했다는 점이 너무 존경스럽다. 바흐와 비교했을 때 나는 너무 행복한 음악가다.

마치 친구나 가족 이야기를 하듯이 이들과 매우 친근한 것처럼 느껴진다. 음악과의 본능적인 만남 이후 역사적 자료나 편지 등을 통해 작곡가를 복합적으로 조명하는 것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음악은 완벽한 예술이라서 굳이 말로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차 이것이 굉장한 무지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악과 연주자의 만남은 사람에게서 첫인상을 느끼는 것처럼 본능적인 만남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그 이후 작곡가는 어떤 사람이었고, 곡을 쓸 당시 그의 심리적인 상태나 역사적 배경을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 과정에서 ‘나도 그런데’ 하는 감정을 깨닫게 된다. 그들에게서 공감하는 면이 많다 보니 친해지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들의 일기장이나 편지는 안 읽지 않나.(웃음)

개인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도 있었다. 내가 십대 후반일 무렵, 아버지가 갑자기 심장수술을 하게 됐다. 연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그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때 예술과 음악에 대한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위대한 음악가들 역시 연약한 인간이며 그들이 느꼈던 감정들을 음악에 고스란히 담아냈기 때문에, 작품과 하나가 되어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 바로 연주자의 몫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작곡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음악과 가장 달랐던 사람이 있나? 지금까지 알려진 작곡가들을 보면 자신의 본질을 그대로 음악에 표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음악과 인생이 대조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어떤 곡들은 개인의 부르짖음을 담았고, 어떤 곡들은 작곡가 개인을 넘어선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이 인류에게 던지는 찬양곡이라면 초기 소나타는 반항적인 베토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냈다. 개인적인 감정을 담아냈다 하더라도 작곡가가 음악을 세상에 내놓는 순간, 모든 사람은 그의 음악을 함께 느끼며 감정을 공유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음악은 보편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탐구하고 있는 음악가는 누구인가? 프랑크다. 스트라빈스키·프로코피예프·라벨·드뷔시와 같은 거장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그는 그중에서 가장 어렸다. 선배들이 워낙 탄탄하게 길을 닦아놓아서 당시 대부분의 후배는 이들을 모방했다. 그러나 프랑크는 이들과는 다른 음악 스타일을 추구했으며, 심지어 인상주의 음악에도 빠지지 않았다. 끝까지 자기 세계를 지켜나간 그는 ‘자신의 작곡법은 본능’이라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sangyunpark

피아니스트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다

지난해 인종 차별 금지 운동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스위스 뉴샤텔 문화상을 받았다. 2016년 프랑스 출판사 알뱅 미셸을 통해 음악과 영성에 관한 에세이집 ‘침묵의 소리’를 발간하고 난 후 영성에 관련한 콘퍼런스에 다수 참여했다. 그러던 중 스위스 학생들의 자기계발에 기여하고 있는 ‘천재씨앗’이라는 단체로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여러 학교를 다니며 인종 차별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도 처음으로 초등학교 두 곳과 중·고등학교 한 곳을 찾아가 학생들을 만났다. 나의 이야기와 음악을 통해 학생들에게 희망과 도전 의식을 심어주는 것이 좋다. 앞으로 더 많은 청중과 가깝게 만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사회적인 활동을 펼치는데 있어 임현정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 피아니스트라는 직함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떠나면서부터 사회인으로서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처음에 프랑스 친구들은 나를 동물원에 갇힌 동물처럼 쳐다봤다. 전환점이 된 것은 선생님께서 음악 시간에 피아노를 연주해보라고 했던 때부터다. 놀랍고 부끄러웠지만 ‘나도 너희들과 똑같은 아이’라는 마음으로 연주했다. 바로 뒤의 쉬는 시간부터 친구들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지만 음악을 통해 서로 공감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음악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였으며, 나의 통역사이자 입이었다. 지금도 한 명의 피아니스트로서 많은 학생이 음악을 통해 치유받기를 기도하며 활동하고 있다.

메시지를 던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메시지는 음악을 통해서일수도 있고, 사회운동을 통해서일수도 있으며, ‘침묵의 소리’와 같은 에세이를 통해서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한국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우리는 있는 그대로 숭고하고 고귀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강조한다. 나의 가치는 외부적인 것들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는 한국 공항에만 도착해도 확실히 느껴진다. 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성형수술에 관한 포스터를 붙여놓은 곳은 드물다. 물론 성형외과를 광고하기 위한 목적이겠지만, 여기에 무의식적으로 담긴 메시지는 무섭다.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을 받아들이면 안 돼, 너는 있는 그대로 충분하지 않아’라는 것을 계속해서 주입하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직 음악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던지는 음악가들도 있다. 한 명의 아티스트로서 독특한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느끼진 않는가? 그런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냥 인간으로서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묵묵히 이 길을 걸어갈 것이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황필주(studio79)·봄아트프로젝트

 

임현정 피아노 독주회

2월 2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32번 외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