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블베이시스트 성민제

낮고 깊게, 진하고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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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3월 11일 9:00 오전

ON THE ROAD
커다란 악기를 무대 한가운데에 오롯이 세우는 그의 도전은 언제나 정답이 없는 모험이다

 

 

사람 한 명쯤은 거뜬히 들어갈 듯한 커다란 울림통을 끌어안고 오케스트라 맨 가장자리에서 열심히 활을 그어대는 연주자. 재즈 트리오에서 나직하게 리듬을 잡아주는 멀대같은 악기. 더블베이스를 떠올릴 때 따라오는 이미지들이다. 누군가의 스포트라이트를 위해 비단길을 내어주는 착하고 조용한 친구. 그런데 그 친구 목소리가 어땠더라?

성민제는 더블베이스의 목소리를 키우려 한다. 그가 더블베이스를 무대 한가운데로 세우자, 한없이 낮은 저음만 낼 것 같던 악기는 예상외로 날카롭게 외칠 줄도 알았고, 느리고 둔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날렵하다. 이 친구, 매력 있다.

성민제의 더블베이스는 자유롭다. 마치 바이올린이나 첼로처럼, 태생이 독주 악기인 듯 악보 위를 활주한다. 오는 3월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의 공연을 앞둔 그를 만났다. 그는 아직도 더블베이스를 통해 하고픈 말이 많다.

 

이번 공연의 2부를 크라이슬러의 작품들로 채운다. 크라이슬러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크라이슬러는 바이올린 작품을 주로 남긴 작곡가인데, 더블베이스로 가장 화려한 바이올린의 선율을 상반된 느낌으로 연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바이올린·비올라·피아노와 함께하는 실내악으로 편곡된 버전으로 들려줄 예정이다.

2017년 10월에는 더블베이스를 위해 작곡된 곡들만 가지고 공연했다면, 이번에는 다른 악기 작품들을 더블베이스로 편곡한 곡들을 모았다. 더블베이스를 통해 작품의 새로운 매력을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으면서도, 표현에 있어 까다롭지는 않은지 궁금하다. 크라이슬러의 작품들은 2011년에 편곡자의 도움을 받아 편곡했다. 각 4~5분 정도의 짧은 길이의 곡들이지만, 제각각 다채로운 매력을 갖고 있다. 바이올린으로만 연주해도 빈틈없는 곡인데, 다른 편성으로 편곡을 하다 보니 까다로운 부분이 많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렵기도 했다. 기존의 곡이 워낙 완벽해서, 현악 앙상블 구성으로 어떻게 효과적으로 드러낼지 고민이 많았다.

공연 부제가 ‘조연에서 주연으로’다. 더블베이스가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 흔치 않은 것이 현실인데. 더블베이스가 중심에 서는 무대는 매우 한정적이고, 주연을 차지하는 것이 아직 어색한 것도 사실이다.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은 1세대·2세대 연주자 등 세대 구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선배 연주자들이 많아서 배우고 참고할 수 있는 케이스도 많은데, 더블베이스에서는 딱히 정해진 모델이 없다는 점도 때로는 힘들다. 더블베이스를 가지고 대중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가 지금 나의 과제다. 나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참고할 모델이 없다는 것이 막막하기도 하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무엇을 하든 새로운 시도가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시도를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솔로악기가 아닌 앙상블악기도 하나의 주연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관객 여러분도 선입견 갖지 않고 무대를 찾아주시면 좋겠다.

 

더블베이스의 영토확장

재즈에서 더블베이스의 역할은 훨씬 부각된다. 무대 위에서 1/3 이상의 지분을 차지하면서 표현도 더욱 두드러진다. 재즈를 연주할 때 더 자유롭다고 느끼진 않는지? 클래식 음악에서의 더블베이스와 재즈에서의 더블베이스는 확연히 다르다. 거의 다른 악기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내가 재즈를 연주하는 게 재즈 베이스 연주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학교에서 재즈를 배운 것도 아니니까.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클래식 음악을 기반으로 한 재즈적인 접근인 것이다.

재즈 공연은 예정에 없나? 해외에서 공연이 몇 건 예정되어 있다. 피아니스트 조윤성과 함께 상하이의 영화제에서 연주할 예정이다.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음악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정리가 잘 안 되네.(웃음)

글쎄, 성민제라는 사람을 보면 하고 싶은 걸 하나씩 이뤄가는 것처럼 보인다. 한번에 여러 가지는 아닌데, 이번엔 A, 다음엔 B, 이렇게 하나씩 해나가는 것 같다. 운 좋게 감사하게 타이밍이 잘 맞았을 뿐이다.

그 타이밍이 맞으려면 자기 안에 원하는 바가 늘 마음속에 있어야 하지 않나. 그건 맞다. 하고 싶은 걸 늘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간절히 품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가? 앨범을 자주 내고 싶다. 게리 카(Gerry Karr, 1941~)라는 더블베이시스트가 있는데, 전설적인 연주자다. 이분 때문에 더블베이스라는 악기가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블베이스도 독주 악기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분이다. 내 아버지도, 나도, 나보다 어린 학생들도 이분의 음반을 들으며 공부한다. 이분처럼 나도 베이스의 매력을 음반을 통해 다채롭게 보여주고 싶다.

유튜브에 연주 영상을 꾸준히 올린다. 얼마 전 유튜브에 업로드한 ‘폴링(Falling)’도 참 좋았다. 성민제라는 사람이 커버하는 음악의 폭이 넓다고 느껴진다. ‘폴링’은 영상 속 밴드 멤버와 함께 만든 자작곡이다. 대강 러프하게 만들어진 악보를 토대로 밴드 멤버들이 자유롭게 연주했다.

리처드 용재 오닐, 문태국, 신지아, 대니 구, 김한, 조윤성 등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다양한 무대를 갖고 있다. 자신과 잘 어울리는 협업자를 찾아서 함께함으로써 시너지를 내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런 작업들은 너무나 즐겁다. 앙상블은 더블베이스 연주자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받쳐줄 때는 확실히 받쳐주고, 신선한 시도도 많이 할 수 있다. 장유진·이한나와 함께하는 이번 공연도 그렇다. 이를 통해 베이스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다.

더블베이스의 다양함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저음부터 고음까지 넓은 음역을 커버하고,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넘나든다. 한마디로 ‘정답이 없는 악기’다. 내 길도 그렇다. 언제나 모색하고 탐구하고, 좋은 연주자들과 함께하면서 배우고 발전하고자 한다. 발전가능성이 많은 악기다. 베이스를 위한 현대음악들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레퍼토리도 확장되고 있다.

 

 

길 위에서 나를 돌아보기

2008년 ‘객석’이 선정한 차세대 유망주에 이름을 올렸다. 11년 전 그때의 성민제와 지금의 성민제는 어떻게 다른가? (2008년 기사를 한참 들여다보고)그때는 허세가 있었다. 음악도 허세스러웠고, 쇼맨십도 많이 신경 썼다. 그럴 만한 나이였다. 그 대신 에너지가 넘쳤다. 며칠 밤을 새서 연습해도 끄떡없었는데.(웃음) 예전에는 베이스를 다루는 법을 잘 몰랐던 것 같다. 힘을 뺄 줄 몰랐다. 베이스를 편하게 솔로로 연주할 수 있는 법을 터득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불과 3~4년 전까지도 악기가 어려웠다. 이 큰 악기를 편하게 컨트롤할 수 있는 법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다.

그 단계에서 보통 슬럼프가 오지 않나. 결국 그 단계를 잘 넘은 것 같다. 다양한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면서 시야가 많이 넓어진 것도 큰 도움이 됐다.

그렇다면 10년 뒤의 성민제는 어떤 모습일까? 음…. 어렵다. 나만의 색을 찾은 아티스트가 되어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앨범도 더 많이 내고, 좋은 공연도 자주 만들어야겠다.

1990년생, 한국 나이로 올해 서른이다. 이제는 음반과 공연을 통해 ‘성민제는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남겨야 하는 것이 30대의 과제가 아닐까. 서른이 되고서 오히려 마음이 더 편해졌다. 20대는 좌충우돌하고 불안이 많았고, 정체성도 확실치 않았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야 하는지, 독주자로서 살아야 하는지, 한국에서 계속 살지, 해외에 가야할지 등 고민이 많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생각이 안정되고 훨씬 명료해진 것 같다. 20대의 불안한 숙제들을 마친 것 같다. 예전에는 늘 들떠있었는데, 많이 차분해졌다. 더블베이스는 사실 오케스트라를 위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더블베이스를 연주하는 나의 다른 가족들도 다 오케스트라에 있었어서, 나도 오케스트라에 입단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20대 내내 했다. 오래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어쨌든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과, 내가 음악을 하는 한 능력이 되는 데까지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해봐야겠다는 것이더라.

자신도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는데,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아이에게 음악을, 특히 더블베이스를 시킬 계획인가? 음악적 재능이 있다면 작곡을 시키고 싶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올해의 주요한 계획과 개인적인 목표는? 5월에 더블베이스 콰르텟 ‘바시오나 아모로사’의 내한공연에 나도 참여한다. 안네 소피 무터와 최근 앨범을 발매한 로만 파트칼로라는 훌륭한 더블베이시스트도 함께 연주하는데, 나도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또한 젊은 연주자들이 모인 클라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라는 단체와 종종 함께 활동할 예정이다.

이정은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성민제 더블베이스 리사이틀

3월 15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장유진(바이올린)/이한나(비올라)/최현호(피아노)

브루흐 ‘콜 니드라이’, 크라이슬러 ‘안단티노’ ‘사랑의 슬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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