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너선 노트 &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100년의 역사를 넘어 내딛는 새로운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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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3월 11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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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창단 100주년을 맞이하며 다양한 기념 연주를 이어가고 있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내한 소식을 전해왔다

 

©Niels Ackermann/Lundi13/OSR

 

100년, 1세기라는 시간은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한 오케스트라에게 100년이란 시간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며, 다양한 의미가 있다.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지속적으로 교체되고, 여러 지휘자가 오케스트라를 짧게는 몇 년, 길게는 10년 이상을 거쳐 가면서 수백, 수천의 작품을 연주하고 녹음한다. 제네바의 청중 가운데에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어쩌면 50년, 그러니까 반세기 이상을 지켜보고 들은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오케스트라는 한 도시의 문화적 삶의 가장 중요한 뿌리 가운데 하나이다.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Orchestre de la Suisse Romande)는 지휘자 에르네스트 앙세르메(1883~1969)에 의해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해인 1918년에 창단되었다. 앙세르메는 본래 수학을 전공하고 가르치는 교사였지만, 수학 교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끊임없이 음악을 공부하고 지휘를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스위스 내에서 그의 지휘 활동은 점점 더 활발해졌고, 1918년에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1922년에는 제2 빈 악파의 작곡가인 알반 베르크, 안톤 베베른과 더불어 현대음악협회를 창단할 정도로 당시 현대음악을 연구하고 연주하는 데에 열정을 기울였다. 동시대 작곡가들에 대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열의는 앙세르메 때에 이미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를 초연 지휘했을 정도로 스트라빈스키와도 긴밀한 관계였다. 그가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프리치오소’를 지휘할 때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던 이도 스트라빈스키였다.

앙세르메는 1967년까지 49년 동안, 그러니까 반세기 동안,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앙세르메 이후, 폴 클레츠키(1967~1970), 볼프강 자발리쉬(1970~1980), 호르스트 슈타인(1980~1985), 아르민 조르당(1985~1997), 파비오 루이지(1997~2002), 핀커스 스타인버그(2002~2005), 마렉 야노프스키(2005~2012), 네메 예르비(2012~2015)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지냈고, 지휘자 조너선 노트는 2016년에 음악감독으로 임명되어 2017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앙세르메 이후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지휘자는 현재 파리 오페라의 음악감독인 필리프 조르당의 아버지, 아르민 조르당이다. 앙세르메가 20세기 음악과 현대 음악 연주해석의 전통을 세웠다면, 조르당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맥박을 형성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조르당은 결코 지휘 테크닉이 뛰어난 지휘자는 아니었다. 그의 양쪽 팔은 대체로 평행으로 움직였는데, 동작만 본다면 그를 특별한 지휘자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 밤낮으로 악보를 연구했고, 오케스트라 앞에서는 인간적이었으며, 누구보다도 음악을 사랑한 지휘자였다. 현란한 팔의 움직임보다는 시선과 호흡으로 오케스트라와 교감하는 매우 따스하고 민감한 지휘자였다. 그가 사망하기 몇 년 전, 당시 살 플레옐의 보수 공사로 파리의 모가도 극장에서 파리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아르민 조르당을 본 적이 있다. 간결한 지휘였지만, 오케스트라는 따뜻하고 열의가 가득한, 그리고 숨을 쉬는 듯한 음악을 뿜어냈다.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서유럽 오케스트라의 현악파트에서 마치 동유럽 오케스트라 같은 섬세함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소리를 듣기란 쉽지 않다. 서유럽 오케스트라들은 종종 섬세하지만, 차갑고 건조한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유럽 오케스트라들이 따스한 소리를 내는 조건은 오케스트라들의 연주자들이 지휘자를 사랑하는 경우이다. 이들은 스스로 따스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현재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대부분이 조르당을 가장 훌륭했던 지휘자로 꼽고, 어떤 이들은 조르당이 오케스트라의 가장 좋은 친구였다고까지 말한다. 그는 어쩌면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자화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어떤 작곡가의 난해한 작품을 연주하든지, 고전적인 에스프리와 따뜻하고도 투명한 앙상블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역사가 쌓였기 때문일 것이다.

 

©Niels Ackermann/Lundi13/OSR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연주

지난해 11월 26일에서 12월 1일까지 한 주 동안 페스티벌 형식으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창단 10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제네바 빅토리아 홀에서 열렸다. 11월 28일 연주회에서 조너선 노트는 베토벤 ‘전원’을 암보로 지휘하며 섬세하고 현대적인 음향을 선보였다. 영국 태생의 지휘자 조너선 노트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외에도 파리 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유럽 다수의 주요 오케스트라에 정기적으로 초대되어 지휘하고 있다. 그는 파리와도 깊은 인연을 지니고 있다. 바로 1995년에 현대음악 전문단체인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의 음악감독이 되어 2000년까지 5년 동안 활동했던 것.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나무에 비유하자면 뿌리가 깊고, 기둥이 넓고, 가지나 잎도 매우 풍부한 나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고전과 낭만, 20세기의 작품들로 충분히 뿌리를 내리고 기둥을 살찌웠다. 또한 현대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초연과 해석으로 가지와 잎들이 계속 뻗어 나갈 수 있게 하고 있다. 뿌리와 기둥, 가지와 잎, 이들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할 내한 공연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협연으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을 프로그램으로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는다. 현재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수석인 스베틀린 루세프는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으로 있다가 조너선 노트가 음악감독으로 결정된 시기에 이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두 사람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1세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루세프와 손열음은 오케스트라의 수석과 독주자로서 뿐만아니라 듀오 연주도 함께 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슈만 피아노 협주곡에서 관객은 두 사람의 긴밀한 대화, 그리고 루세프로 연결되는 오케스트라와의 긴밀한 대화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앙세르메부터 조르당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쌓아온 지적이고, 따스하고, 섬세한 소리의 역사와 함께 새로운 활력과 유려함의 미학을 추구하는 조너선 노트에 의해 그려지는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은 성격과 색채는 전혀 다르지만, 그가 모던하게 지휘했던 베토벤 교향곡 6번처럼 고전적이면서도 이해하기가 어렵지 않은 작품이다. 다만 말러가 세상과의 불화를 어둡게 그려낸 마지막 악장은 청중에게도 상당한 집중을 요구하는데, 조너선 노트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가 비극이 상실되어 버린 시대의 비극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된다.

김동준(재불음악평론가) 사진 OSR

 

조너선 노트/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협연 손열음)

4월 7일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말러 교향곡 6번·슈만 피아노 협주곡 O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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