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석훈, 내 안의 아름다운 것

클래식 음악처럼 따뜻하고 편안한 매력으로 시청자와, 관객, 청취자를 사로잡는 그만의 연기, 그만의 음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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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4월 8일 9:00 오전

INTERVIEW

‘아름다운 당신에게 김석훈입니다’ 라디오를 사랑하는 청취자들에게 배우 김석훈의 음성은 따뜻한 친구의 다정한 아침 인사였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2018년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줄리안 마쉬 역으로도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던 그는 배우로서 뿐 아니라 다양한 공연장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해주는 메신저로서도 청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CBS 음악 FM ‘아름다운 당신에게 김석훈입니다’를 통해 라디오 진행자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후 공연장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해설하고 소개하는 사회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인연이 닿은 것인가. 어린 시절부터 워낙 라디오 듣기를 좋아했다. 라디오는 귀로만 듣는 거라 훨씬 상상력과 감성이 풍부해질 수 있는 분야고 훨씬 친밀하게 가까워질 수 있는 매력이 있다. 2014년 CBS 음악 FM에서 오전 프로그램 진행 제안이 왔다. 좋아하는 분야기도 했지만 당시 내게도 바쁜 삶에 위로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내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이었고 좋은 음악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예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클래식 음악이 많이 소개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부담은 없었나.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다. 당시 클래식 음악은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여서 오히려 알아가는 마음으로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해 마음이 편했다. 청취자의 편안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 조금 모자란 친구(웃음)가 되어서 같이 알아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르는 것은 직접 찾고 물어가면서 진행하다 보니 어느새 클래식 음악의 매력이 무엇인지 느껴졌다.

클래식 음악의 어떤 매력을 느꼈나.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준다는 걸 느끼면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내 안의 감성을 깨워주었고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좀 더 다양하고 깊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은 소란한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매력이 있었다.

청취자로서 진행자의 목소리가 참 따뜻하고 편안하다고 느꼈다. 소소한 사연들을 읽고 음악을 전하면서 나도 위로를 많이 받았다. 진행도 연기도 결국 내 안의 나를 보여줄 수밖에 없고 그 작업이 나를 나답게 하고 보람 있게 하고 감사하게 한다. 방송을 하며 느낀 건 클래식 음악은 결코 어렵지 않고 우리의 삶에 함께 하는 존재하면서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라디오와 클래식 음악은 스피드를 중시하는 현재와는 맞지 않는 분야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정신을 담아 만든 예술을 보고 듣는 것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물론 클래식 음악이 모든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한번쯤은 접해 보고 들어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접근 방식이 너무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게 시도된다면 ‘아! 클래식 음악도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구나’ ‘언젠가 들었던 음악이었네’ 하면서 더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음악과 공연이 인상적이었나.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공연장에서 직접 연주를 들을 기회들이 생겼다. 공부하며 알게 된 음악들을 직접 들으며 즐거움과 신선함, 그리고 예술에 대한 겸허한 마음이 들었다. 특히 고음악을 들으며 느낀 감정은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소리에 대한 신선한 감동이었고 배우로서 표현해야 할 다양한 감정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클래식 음악은 커다란 세계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인간을 이해하고 포용해야 하는 직업인 배우에게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의 ‘마태수난곡’, 통영국제음악제 때 보았던 헨델의 오페라, 성공회대성당에서 보았던 비올라 다 감바 주자인 지키스발트 쿠히겐 공연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성남 마티네 콘서트 등 다양한 공연장에서 클래식 음악 사회와 해설 음악회 등을 통해 청중과 만나는 기회도 많다. 클래식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되도록 편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음반과 라디오로 듣는 음악과 실황으로 듣는 것은 다르기 때문에 공연장에 온 분들의 마음에 공연에서 받는 감동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으면 좋겠고 음악을 이해하는데 해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

배우로서 TV 브라운관과 연극, 뮤지컬 무대에서 자신만의 색깔로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하며 사랑받았다. 작년에는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3년 뮤지컬 ‘왕과 나’로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섰다. 사실 화려한 춤과 노래가 중요한 요소인 뮤지컬 장르와는 그리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다. 외국에서 뮤지컬을 보면 굉장히 텍스트를 중시하고 주제와 본질에 접근하기 위한 안무와 노래로 무대가 만들어지는데 우리나라는 텍스트보다는 화려하게 보이는 부분에 더 치중해서 연출되다 보니 가끔은 전혀 느낌의 뮤지컬이 되어버린 느낌을 받았다. 그런 부분에서 좀 더 작품 내용과 주제에 더 충실한 그런 뮤지컬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국립극단 출신이다. 그동안 연극 ‘햄릿’ ‘위대한 유산’ ‘밤으로의 여정’ 등 많은 무대에 서 왔다. 그런 면에서는 연극 무대가 고향처럼 편할 것 같다.연극은 텍스트를 전달하기에는 굉장히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되는 무대다. 하지만 무척 떨린다.(웃음) 나이가 들수록 관객 앞에 서는 것이 더 두려워진다. 특히 무대에 서서 조명이 꺼지고 관객이 보이지 않을 때 마치 길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하늘을 걷고 있는 기분이 든다. 그것이 배우의 운명이고 또 그 맛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겠지만 무대에 선다는 건 내 자신이 누군가의 앞에 세워지는 굉장히 떨리고 두려운 일이다.

다양한 역할을 연기한 가운데 선하고 정의로운 캐릭터가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로 인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낀 적은 없나. ‘신들린 연기’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사라지고 그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될 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예술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 캐릭터에 입혀진 연기여도 그 연기를 하고 있는 내가 사라질 수는 없다. 어떻게든 나의 내면은 묻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내 안에 있지 않은 것을 억지로 연기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안에 없는 것들도 있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역할들은 어떤 모양으로든 내 안에 있던 것들이었다. 아마 클래식 음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도 내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인간의 유형이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없는 것을 하려 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배우는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많이 알아야 하고 익혀야 한다. 사람에 대한 공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책도 많이 읽고, 시장도 가보고, 여행하며 여러 방면으로 사람을 이해하고 여러 감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야 말로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다.

앞으로 어떤 삶을 꿈꾸나.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발견해 의미 있는 것들, 가치 있는 것들을 전하고 알려주는 연결자가 되고 싶다. 그것이 무대에서든 방송에서든 좋은 무엇인가가 사람들의 마음에 남겨졌으면 좋겠다. 싱글 라이프가 대세가 된 요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와 연결되고 싶어 한다. 우리 안의 아름다운 것들을 이제는 세상에 흘려보내야 할 때이다. 김석훈의 말처럼 가치있는 것들을 전하고 연결해주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소란한 마음을 잠재우고 정화시켜주고 사색하게 하는 클래식 음악. 어느덧 그 아름다움 속에 선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배우 김석훈이 스며들어 있는 듯했다.

글 국지연 기자 사진 심규태(H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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