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 슈만 탄생 200주년, 사랑과 우정의 선율을 기억하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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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6월 10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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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오직 클라라만을 위한 앨범

19세기 대부분의 음악가는 연주와 작곡을 병행했다. 그런데 누구는 작곡가로 기억되어 오늘날에도 꾸준히 연주되고 있고, 누구는 연주자로 기억되어 작곡가의 에피소드에 등장할 뿐이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은 안타깝게도 후자에 속한다. 슈만의 부인이자, 브람스가 품었던 애틋한 감정의 주인공인 그녀. 그래서인지 슈만이나 브람스와 함께 녹음된 음반은 셀 수 없이 많은 반면, 독집은 손에 꼽을 정도다. 클라라를 주목하는 이번 지면에서는 그녀가 주인공인 음반들을 골라보았다.

 

 

1 콘스탄체 아이코어스트가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

클라라의 작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는 피아노 음악이다. 그녀는 남편인 슈만처럼 소품 모음을 많이 작곡했지만, 음악적 내용은 남편의 성격 소곡과는 차이가 있다. 초기에는 쇼팽의 영향이 많이 보이며, 후기에는 브람스의 진지함에 가깝다. 주로 형식적인 제목을 갖고 있다는 점도 그러하다. 이러한 특징은 클라라의 주요 피아노 작품들을 녹음한 콘스탄체 아이코어스트의 음반에서 더욱 부각된다. 아이코어스트의 음반에서는 10대 후반 작곡을 시작했던 초기곡인 ‘음악의 밤’(1836)부터 작곡 활동을 사실상 마무리했던 시기의 ‘로망스 가단조’(1853)까지 20년의 음악 활동을 스펙트럼처럼 펼쳐놓으며, 쇼팽의 영향을 받고 브람스의 후기 피아노곡을 예견하는 클라라 슈만의 독창적인 매력을 전한다.

 

2 라냐 쉬르머가 연주하는 피아노 협주곡

클라라 슈만의 작품목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작품은 피아노 협주곡(1836)이다. 이 곡은 클라라가 불과 17세에 작곡한 작품으로, 화려한 장식음과 서정적인 멜로디가 가득한 피아노 독주와 이를 뒷받침하는 관현악 등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상시킨다. 그런데 클라라에 대해 깊이 연구한 라냐 쉬르머는 이 곡에 담겨 있는 비밀 메시지를 읽어냈다. 그녀의 섬세한 터치와 감각적인 음색을 듣고 있으면,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이 짝사랑에 대한 비밀편지였듯이 슈만에 대한 클라라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이듬해 슈만이 클라라에게 고백했을 때 클라라가 이를 바로 받아들인 것을 보면, 당시 클라라의 마음속에는 슈만에 대한 짝사랑이 자라고 있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그리고 클라라 슈만이 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의 카덴차가 수록되었다는 것도 이 음반의 또 다른 매력이다. 1악장과 3악장에서 카덴차가 등장하는데, 쉬르머는 이를 약간 축소하여 녹음했다.

 

3 겔리우스 3중주단이 연주하는 실내악곡

클라라는 단 두 곡의 실내악곡을 남겼을 뿐이다. 피아노 3중주(1846)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로망스’(1853)가 그것으로, 모두 완숙한 시기의 작품으로서 수준 높은 완성도를 들려준다. 특히 ‘세 개의 로망스’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지닌 낭만시대의 보석과 같은 소품으로, 연주와 녹음이 다수 이루어지고 있다. 고전미가 물씬 풍기는 피아노 3중주는 브람스가 이 곡을 참고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장중한 멋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스레텐 크르스티치의 절제미와 피아니스트 미카엘라 겔리우스의 담백함은 음악에 깃든 애수를 잔잔하게 끌어내 감동의 파문을 일으키고, 슈테판 하크의 첼로는 역할이 그리 크진 않지만 두 악기 사이에서 음색의 존재를 드러내며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4 수잔 그리튼과 슈테판 로게스가 부르는 가곡

 

클라라는 1830년대 초반에 몇 개의 가곡을 작곡한 후, 슈만의 ‘가곡의 해’라고 불리는 1840년부터 다시 가곡을 작곡하기 시작하여 작곡 활동을 거의 마무리했던 1855년까지 꾸준히 작품을 썼다. 그녀의 가곡은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연결고리로서, 클라라는 음악적으로 슈만보다는 브람스와 더욱 깊은 교감을 나누었을 것이다. 특히 운명적인 애수와 염세주의적인 체념이 깃들어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며, 심지어 말러를 예견하는 제스처나 화음도 언뜻 들린다. 소프라노 수잔 그리튼과 바리톤 슈테판 로게스의 맑고 깨끗한 음성은 밝고 극적인 작품에서조차도 이러한 내면을 포착한다. 이들은 유진 애스티의 무게감을 뺀 피아노와 함께, 브람스나 말러보다는 클라라가 잘 알았을 슈베르트를 지향한다. 그래서 이들의 연주는 과하지 않으면서 매우 자연스럽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Ⅳ. 올해 클라라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공연

국내외에서 클라라 슈만의 발자취를 기념하는 공연이 활발하게 펼쳐진다. 많은 공연에서 그녀가 작곡한 곡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슈만과 브람스의 음악을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일부 아쉬움이 남지만, 그들의 사랑과 우정이 깃든 음악을 통해 그녀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국내에서 눈에 띄는 공연은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첫 전국 투어를 갖는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나의 클라라’다. 지난 5월 16일부터 6월 1일까지 전국적으로 펼쳐진 공연에서 그는 클라라·슈만·브람스의 곡을 한 곡씩 연주했다. 클라라가 태어난 9월, 피아니스트 김정원은 피아니스트 김규연과 함께 클라라 슈만 ‘세 개의 로망스’를 연주·해설한다. 김정원이 진행하는 음악신보의 올해 주제가 브람스인 만큼, ‘가깝고도 먼’이라는 주제를 통해 클라라와 브람스의 우정을 깊게 조명한다. 지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에는 테너 김세일과 피아니스트 손민수의 연주로, 클라라의 소품들과 슈만의 연가곡 ‘시인의 사랑’을 들을 수 있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부활절 축제에서 울려퍼지는 오페라

현대적인 감성으로 재탄생한 클라라

클라라의 고향인 독일에서는 그의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공연이 펼쳐진다. 특히 라이프치히에서는 ‘CLARA 19’라고 불리는 프로젝트를 통해 일 년에 거쳐 클라라를 기린다. 그녀의 곡들은 최근 유럽 문화유산(European Heritage Label)으로 지정된 공연장에서 연주되고 있으며, 이번 축제의 목적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19세기 다른 여성들과는 차별화된 삶을 살아갔던 클라라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CLARA 19’는 9월 12일부터 29일까지 개최하는 ‘슈만 페스티벌 위크(Schumann Festival Weeks 2019)’에서 정점에 달한다. 9월 13일은 클라라의 생일이며, 9월 12일은 슈만과의 결혼기념일이라는 점에서 축제 개최 시기가 흥미롭다. 9월 12·13일에는 안드리스 넬손스/게반하우스 오케스트라와 피아니스트 라우마 스크리데의 협연으로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 7번이 연주된다. 그녀의 삶을 기념하는 오페라 역시 주목할 만하다. 2019년 베를린 필하모닉 부활절 축제에서는 4월 14·17·21일에 거쳐 세계 초연 오페라 ‘클라라’가 공연됐다. 독일 바덴바덴 페스티벌 하우스에서 개최한 이번 공연은 미국 지휘자이자 작곡가인 빅토리아 본드가 참여한 작품으로, 클라라와 슈만, 브람스의 삶을 오직 오페라만이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풀어나갔다. 오페라 ‘클라라’는 본드가 바덴바덴 소재 브람스 하우스에서 활동할 무렵 작곡됐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각국 역시 분주하다. 지난 4월 13일,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는 ‘음악과 운명(Music and Fates)’이라는 주제로 클라라·슈만·브람스의 곡들이 울려 퍼졌다. 그에 앞서 2월 26일 밀턴 코트홀에서는 홀 상주 음악가인 바리톤 로데릭 윌리엄스의 목소리로 브람스와 클라라의 곡들이 연주됐다. 다가오는 9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역시 클라라의 서거 200주년을 크게 기념한다. 바흐, R. 슈트라우스와 같이 클라라의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던 이들의 음악 뿐 아니라 현대음악의 대모로 불리는 여성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의 곡까지 연주된다는 점에서, 색다른 레퍼토리로 클라라 슈만을 기릴 수 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피아니스트 레이코 후지사와는 독립된 주체로서의 클라라를 기념하기 위해 해설 콘서트, 실내악 및 협주곡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지난 시즌부터 진행하고 있다. 오는 6월 18일 영국 하워드 극장에서 펼쳐지는 ‘케임브리지 여름 음악 축제’가 대표적인 예다.  

글 권하영 기자

‘CLARA 19’에서 제공하는 씨앗 혼합물. 이 씨앗을 심고 꽃을 피워낸 사진을 찍어 ‘슈만하우스’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사람 중 상품을 수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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