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지중배 & 홍석원, 미래를 향한 두 지휘봉

그들이 ‘걸을 길’이 지휘계의 미래이고, ‘걸은 길’이 후배들이 따라갈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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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8월 5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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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배는 독일 트리어시립극장(2012~2015)과 울름시립극장(2015~2018)의 수석지휘자를 역임 후 독일과 한국에서 활동 중이다. 시즌의 엔진이 다시 맹렬히 돌아가는 9·10월에 독일 바덴바덴 필하모닉과 여섯 무대를 치러내야 한다. 홍석원은 2015년부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롤주립극장의 수석지휘자로 활동 중이며, 2019/20 시즌에 모차르트·베르디·푸치니 등 40여회의 오페라공연을 앞두고 있다. 또한 4월 한경 필하모닉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국내활동도 넓히며 말러·브람스 등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유럽의 유명 지휘콩쿠르에서 승전보를 전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이 자리잡기까진 많은 시간이 걸린다. 스타에 대한 열광과 망각의 바퀴가 유독 빠르게 굴러가는 한국에선 꽃 한번 피우지 못하고 잊혀진 젊은 지휘자들도 많다. 한국의 지휘자 역사는 다른 파트에 비해 늦은 편이다. 천재의 반짝임보다 연륜과 경험을 중요시하는 지휘의 특성 탓도 있다. 임원식(1919~2002), 김생려(1912~1995), 김만복(1925~2006), 홍연택(1928~2001), 원경수(1928~), 정재동(1928~2014) 세대는 한국에선 도무지 배울 수 없는 지휘라는 것을 위해, 그것을 찾고 배우기 위해 배회한 세대였다. 그들의 지휘자로서의 정착은 곧 한국 오케스트라의 태동기와 같았다. 이후 박은성(1945~), 임헌정(1953~), 정치용(1957~)은 선대가 이룬 텃밭의 자양분을 섭취한 후 다음의 활성기를 열었다. 하지만 체계화된 국내교육보단 실전을 통해 처음 발을 담근 점은 선대와 비슷했다. 다만 유학을 통해 전문화된 교육을 보다 진하게 체득했고, 돌아와선 ‘악단 만들기’라는 거친 작업보단 ‘악단 가꾸기’라는 섬세한 작업을 진행했다. 또한 서울대, 한국예술종합학교, 한양대 등에 개설된 지휘전공과 지휘과에 녹아 들어가 전문적인 교육으로 후학을 배출하는 엔진이 되기도 했다. 그 물줄기에서 태어난 이들이 오늘날 한국 교향악단의 ‘젊은 허리’를 담당하고 있는 세대이다. 지중배와 홍석원은 그 다음 세대이다. 두 사람을 조금 더 규정짓는다면 ‘유럽 진출 가능 세대’라 명명할 수 있겠다. 두 사람은 1982년 개띠 동갑내기다. 학번(2001)도 같다. 그들의 막역한 사이는 원래 한 몸에서 떨어져 나온 두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술과 차(茶) 같다. 전자가 지중배라면, 후자는 홍석원이다. 뜨겁고 차분하고, 깊이 음미하거나 코끝에 향을 스치게 한다. 성향이 다른 두 지휘자가 만든 길이 앞으로 한국의 젊은 지휘자들이 걸어가야 할 ‘두 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지휘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지중배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다. 서울예고에선 작곡 전공이었고, 동시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서 지휘를 공부했다.

홍석원  첼리스트 어머니(현 부천시향) 밑에서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피아노도 취미로 공부했지만 중학 시절에는 베토벤 협주곡 3번을 협연하기도 했다. 인문계 고교를 다녔는데 2학년 때 지휘자를 꿈꾸게 됐다. 외조부(이강숙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께서 권유도 많이 하셨다.

서울대 01학번. 졸업하던 2007년 독일 만하임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다.

지중배  2007년 부천 필하모닉이 ‘세비야의 이발사’(로시니)를 공연했다. 클라우스 아르프 만하임국립음대 교수가 객원지휘를 맡았다. 강요셉 테너가 도이치 오퍼와 처음 계약하고 섰던 무대이다. 그 프로덕션에 부지휘자로 참여하며 클라우스 교수와 인연을 맺었고, 자연스레 만하임으로 가게 되었다. 군 전역 후 복학까지 남은 한 학기 동안 베를린에서 어학공부를 해서 어학에 큰 문제는 없었다.

홍석원  한국지휘자협회 주최로 지휘캠프에서 크리스티안 에발트 베를린 한스아이슬러국립음대 교수를 만났다. 국내외 유명지휘자들이 그 학교 출신이었을뿐만 아니라 베를린 필,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등 훌륭한 악단들이 많은 도시여서 선망하다가 베를린으로 향하게 되었다.

199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개교 이후 유학을 거치지 않고 해외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국내파’가 생기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휘 유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홍석원 한국에선 서양음악이 전문 교육을 통해 배우는 학문이라면, 유럽에선 일상 그 자체다.

지중배 그렇다. 먼 역사의 작품이지만 생활과 종교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유학을 통해 그들의 생활과 종교 속으로 들어가 보는 체험이 중요하다. 대신 얄팍하게 경험하는 건 위험하다.

만남과 만남이 이어져, 오늘의 내가 됐다

지휘자로 단련하기 위해 특별한 일상을 보낼 것 같다.

지중배 취미는 요리와 양궁이다. 양궁은 어릴 때부터 배우고 싶어 독일에서 정기적으로 배웠다. 지휘대에서의 외로움은 과녁 앞에 선 자의 외로움과 묘하게 닮았다. 처음 만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은 50미터 너머의 보이지 않는 과녁을 향할 때의 마음가짐과도 비슷하다. 과녁에 화살이 어떻게 꽂혔는지는 소리로만 알 수 있다. 아무 악기도 들고 있지 않은데 소리를 내는 지휘나, 날아간 화살이 과녁에 꽂히며 소리를 내는 것도 묘하게 닮아 있다.

홍석원 극장 업무와 연습은 아침과 저녁으로 진행된다. 저녁에 연습하는 게 좀 색다르게 들릴 테지만 공연이나 연습을 모두 ‘업무’로 보는 것이다. 우리 극장만이 아니라 독일어권의 극장 대부분이 그렇다. 평범한 아빠와 지휘자를 매일 병행한다.(웃음) 지휘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기에 잘 먹고 잘 지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올해부턴 한국과 유럽을 오가는 일정이 많아져, 보약도 챙겨먹으며 컨디션 조절에 신경 쓰고 있다.

각자의 극장에 있으면서도 여러 악단의 객원지휘를 맡았다. 단원들의 첫 눈빛은 어떠한가?

지중배 저 사람과 같이 가주어야 할까 고민하는 눈빛, 지휘자로서 선제압을 해야 하는 5분.(웃음)

잘 알려진 명곡을 들고 갈 때와 잘 모르는 곡을 들고 갈 때의 반응이 다를 텐데.

지중배 객원지휘 때는 레퍼토리 폭이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단원들이 연주해본 적이 없는 곡일 땐 첫 ‘5분’이 유리하게 흘러간다.

가장 기억에 남는 ‘5분’이 있다면?

지중배 울름시립극장 최종오디션을 위해 2015년 ‘유쾌한 미망인’(레하르)에 올랐던 때이다. 당연히 성악가·단원들의 얼굴도 모르던 상태였다. 유럽극장의 최종오디션은 리허설 없이 바로 본 공연의 지휘를 맡는 것이다. 몇 주 전에 작품 통보만 할 뿐이다. 홍석원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나는 당시 트리어시립극장에 재직 중이었다. 울름의 악장 타마쉬 퓌체시와 공연 전 악수를 할 때 뭔지 느낌이 좋았다. 그를 다리 삼아 첫 5분 동안 지휘자-악장-오케스트라-무대와의 호흡이 현악4중주처럼 끈끈하게 진행됐다. 울름시립극장을 떠난 지금도 여전히 그와 많은 정보를 주고받는다.

홍석원 그 느낌, 나도 있다. 2014년 티롤주립극장 1차 오디션에 합격하고, 한참 뒤에야 곡목 통보가 왔다. ‘헨젤과 그레텔’(훔퍼딩크)이었다. 하루 전에 도착해 극장의 분위기 훑었고 다음날 바로 무대에 올랐다. 서곡을 연주하는데 1분도 채 되지 않아 오케스트라와 하나가 된 듯 했다. 마치 오랜 호흡을 맞춘 사이처럼 150분이 흘러갔다. 막이 내려오기도 전에 합격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결국 2015년 9월부터 재직할 수 있었다.

최종오디션은 어떤 곡일지 모르니 만반의 준비를 해야겠다.

지중배 그래서 평소에 많은 레퍼토리와 새 작품을 주어진 시간 동안 익힐 수 있는 체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유럽 극장에 입성할 수 있었던 이유 중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홍석원 독일문화부 소속 독일음악협회의 지휘자포럼(Dirigenten-forum)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독일에서 공부하는 예비지휘자를 선발하여 교육하고 지휘 기회를 준다. 무엇보다도 든든한 커넥션 역할을 한다. 김은선도 지중배 주어진 기회의 단계가 차면 후원이 끝난다. 마지막에는 협회가 한 명의 지휘자를 키우기 위해 투자했던 비용이 적힌 서류가 날아온다. 독일 정부와 국·공립 오케스트라들이 그만큼 지휘자에게 투자를 하는 것이다.

홍석원 김은선 지휘자(휴스턴그랜드오페라 수석객원지휘자)도 슈투트가르트국립음대에서 수학하고 이 포럼을 거쳤다.

지중배 요새 한국에선 공부보다는 지휘자포럼만 보고 유학오는 이들도 있다. 포럼 내에선 여러 콩쿠르가 꾸준히 진행된다. 나는 2012년에 지휘자상을 수상했는데 당시 심사위원 중 한명이 트리어시립극장 운영자였다. 나중에 포럼을 통해 그로부터 극장 오디션에 응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오디션 초청받는 이들 중 절반 정도가 포럼 출신이다. 지휘자의 열정, 포럼의 탄탄한 시스템, 지휘자를 꾸준히 육성하겠다는 오케스트라의 사명감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한다.

지중배 서울예고, 서울대, 만하임국립음대 졸업. 독일 트리어시립극장(2012~15) 및 울름시립극장 수석지휘자(2015~18) 역임. 바덴바덴 필하모니 객원지휘 예정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무엇인가?

지중배 2016년 울름시립극장의 바그너 ‘로엔그린’이다. 지휘자들에겐 꿈같은 작품이지 않을까. 나 역시 그 꿈에 몇 년간 빠져 있었다. 3막의 ‘로엔그린’ 중 1막이 끝나면 대형교향곡 한 곡을 끝낸 셈이다. 그 뒤로 더 많은 상상력과 색채로 교향곡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지휘자로서의 음악적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게 된 계기였다. ‘로엔그린’은 내일 당장 투입되어도 가능하다. 홍석원 대학 시절 5여 년 동안 서울대아마추어오케스트라(SNUPO)와 함께 했던 순간, 베를린 한인 성가대와 함께 미사곡들을 연주한 시간들이다. 아마추어들이 무대를 위해 바치는 열정은 어마어마하다. 예술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이젠 연간 50회 이상 무대에 서는 프로가 되었지만, 작은 연주에도 혼신의 힘을 쏟았던 그때의 정신과 자세를 잊지 않으려 항상 노력한다.

홍석원 지휘자는 인스부르크의 평화로운 마을과 닮은 느낌이 든다. 인스부르크 자랑을 한다면?

홍석원 산, 공기, 물 좋은 곳이다. 스와로브스키 본사가 있는 도시로 재정도 탄탄하다. 풍족한 곳간 주인의 인심이랄까. 사람들이 느긋하고 친절하다. 우리 극장 오케스트라도 똑같다.

예정된 지휘자의 갑작스런 부재로 인해 갑작스레 초청된 ‘대타’가 곧 ‘스타’가 된다는 말이 있다. 오케스트라로부터 갑자기 연락을 받으면 어떠한가?

지중배 그런 일이 종종 있다. 바덴바덴 필하모닉에서 금요일 공연인데 화요일에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코다이 ‘갈란타의 춤’, 버르토크 비올라 협주곡, 베토벤 교향곡 4번이었다. 이러한 연락 역시 지휘자포럼을 통해서였다.

홍석원 나도 그런 경험이 적지 않고, 지금도 해야 하는 상황이면 기꺼이 한다. 하지만 갑자기 맡게 된 공연은 무대에서 즐기기 힘들다. 그러면 관객들에겐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기 힘들다. 소중한 돈과 시간을 들여 찾아오는 관객들을 만족시키는 음악가의 의무를 소홀히 하고 싶지 않다.

결국, 내가 곧 음악이다

자신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로 가상의 무대를 구성해본다면?

지중배 바이올린 협주곡을 중심에 놓고 구성해본다. 브리튼(1913~1976)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서곡은 퍼셀(1659~1695)로 대변되는 바로크로, 교향곡은 쇼스타코비치(1906~1975)나 시벨리우스(1865~1957)로 정하겠다.

흥미로운 구성이다.

 

지중배 지난 6월 서울튜티앙상블이 독일 투어를 지휘할 적에 슈타미츠의 바로크, 멘델스존과 라이네케의 낭만주의, 박영희의 현대음악으로 꾸몄다. 바로크는 르네 야콥스처럼 원전과 모던을 혼합한 형식이었다. 다양한 작품이 한데 모이면 지휘자는 물론 오케스트라의 시너지에도 유리하다. 패션쇼의 한 모델이 계속 다른 옷을 입고 나올 때마다 모델에 대한 인상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또 다른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지중배 바인베르크(1919~1996)의 협주곡이라면, 서곡을 아르보 패르트(1935~)의 실내악으로 지휘자 없이 오케스트라의 합주력을 보여주고, 2부에는 칼리니코프(1866~1901) 같은 낭만주의로 가겠다.

낭만주의와 20세기 레퍼토리를 선호하는 것 같다.

지중배 문명의 발달로 인해 당시 작곡가들은 사진이 있고 풍부한 기록을 남겼다. 준비하는 과정에 그들의 역사를 습득해나간다. 그래서 볼프 페라리(1876~1948)의 바이올린 협주곡도 놓칠 수 없다. 비운의 여성 바이올리니스 귈라 부스타보(1916~2000)와의 아가페적인 스토리가 녹아있다. 따라서 클라라 슈만(1819~1896)의 피아노 협주곡도 커플링할 수 있다. 두 작품 모두 스토리가 있는 여성에 의해 탄생한 곡이니까. 교향곡은 여성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아(1931~)의 ‘동화시’로 하겠다.

전곡 연주에 도전한다면?

지중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전곡(15곡)으로 그중 4번 교향곡은 특히 매력적이다.

곡 해석할 때는 어떠한가?

지중배 아는 곡일 경우 어디선가 들은 것을 기억에서 없애려 노력한다. 초연곡은 처음엔 쭉쭉 읽어 그림을 만든다. 그 뒤 꼼꼼히 채색한다.

위와 같은 질문에 홍석원 지휘자의 답변도 궁금하다.

18_지휘자 지중배 & 홍석원, 미래를 향한 두 지휘봉-3 홍석원 서울대, 베를린 한스아이슬러국립음대 졸업.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티롤주립극장 수석지휘자(2015~), 한경 필하모닉 음악감독(2019~)

홍석원 나는 좀 간단하다. 보여줄 수 있는 곡과 좋아하는 곡이 다른데, 베토벤(1770~1827)의 ‘합창’에서 이 두 개가 일치한다. 지휘자를 돋보이게 하고 싶다면 1부는 오페라 아리아로 가져갈 것이다.

아리아라면 오히려 성악가들이 돋보이지 않을까?

홍석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1부는 오페라, 2부는 교향곡을 통해 지휘자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오페라는?

홍석원 지금은 베르디 ‘시몬 보카네그라’를 꼽겠다. 자유를 위한 전투와 희생, 남성들의 갈등과 우정 등이 매력적이어서 공연 후 한동안 그 속에 빠져 있었다.

지중배 최근 했던 작품 중 머지않아 다시 하고 싶은 마스네 ‘베르테르’, 베르디 ‘아이다’와 같은 사랑과 비극에 관한 작품들이다.

 

베토벤의 작품은 어떤 점이 매력인가?

홍석원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시대정신과 철학을 표출하기 위해 작곡을 한 사람이다. 예술가에게 중요한 건 자유이고, 1805년 초연작 ‘피델리오’는 계급 간의 갈등이 심한 시대에 그런 자유를 그린 대표작이다. ‘운명’ 교향곡 4악장도 자유를 갈구하는 외침인 셈이고. 한편 그의 피아노 협주곡의 느린 악장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달콤한 야상곡보다도 더 아름다고 고귀하다. 분석해보면 단순한 화성과 요소들인데, 가장 아름다운 구조를 만들고 있다.

내년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인데 혹시 남다른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가?

홍석원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웰링턴의 승리’처럼 잘 연주되지 않는 곡을 해보고 싶긴 하다. ‘에그몬트’ 서곡도 괴테의 동명연극 음악인데, 성악가와 나레이터를 동원하여 이야기를 곁들인 청소년 음악회로 해보면 어떨까 하는 정도.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홍석원 6월, 말러 1번 교향곡을 선보이며 한경 필하모닉 예술감독으로 취임했다. 한경 필은 20~40대로 구성된 에너지 넘치는 오케스트라이다. 이런 기운을 발판 삼아 국내 민간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장을 열고 싶다. 유럽극장에서 많은 오페라를 지휘하며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접했다. 그러한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지중배 극장과 포럼의 좋은 시스템을 몸소 체험했다. 전(前)고전파라 불리는 만하임악파가 활약했던 만하임국립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바덴바덴 필하모니를 비롯해 독일 여러 오케스트라의 지휘마스터클래스에서 학생 외 젊은 지휘자들을 가르쳤다. 이러한 일들이 나로 하여금 사명감을 갖게 했다. 이 경험들을 여러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사진 강태욱(Workroom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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