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책보다 빛나는 이름 지휘자·비올리스트 이승원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얻는다. 지휘자로서 그의 도전은 그래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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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8월 5일 9:00 오전

THE CHALLENGE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도 알 수 있듯, 이름이 갖는 중요성은 크다. 얼마 전 방영한 드라마 ‘아스달 연대기’에서도 주인공에게 ‘꿈’이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에선 이름보다 직책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름보다 이름 앞에 붙는 것들로부터 존재 가치가 규정된다. 그래서 특히 오래되고 굳건한 직책일수록, 그 직책을 포기하고 다른 것에 도전하기란 쉽지 않다. 노부스 콰르텟 비올리스트 이승원.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약 8년간 노부스 콰르텟을 탄탄하게 일구며 이승원이란 이름 앞에 붙은 그 직책은 그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오래 품어온 꿈을 펼치는 것을 망설이게끔 만들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그 직책으로부터 벗어나 지휘자라는 새로운 직책에 도전했다. 이승원은 그의 이름이 지닌 가치를 오롯이 믿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음악감독을 맡게 됐나? 지휘 공부는 언제부터 시작한 것인가?

2014년 초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음대 학사에 입학했으니 어느덧 공부한 지 6년이 됐다. 이번 가을부터는 함부르크 음대에서 박사를 시작한다.

지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외가 쪽이 다 음악가 출신이다. 태어나기도 전, 이모인 조명희 선생님과 어머니께서 나를 지휘자로 키워낼 생각을 하셨다더라.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지휘자로서 필요한 자질과 음악적 소양을 쌓았다. 4살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초등학교 3학년부터 비올라를 배웠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는 작곡·화성학·청음을 공부했다. 지휘하려면 수학을 잘해야 하고, 암기력도 좋아야 한다. 초·중학교 시절 수학 올림피아드에 나가서 상도 꽤 탔고, 그 덕에 tvN에서 방영한 예능 프로그램 ‘문제적 남자’에도 출연했다.(웃음) 그러다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대로 유학을 떠났고, 어렴풋이 언젠가 지휘자가 돼야겠단 생각은 했지만 비올라 공부에 몰두했다. 독일에 간 지 3년쯤 되던 해 노부스 콰르텟을 만났고, 그로부터 8년간 활동했다.

지휘에 대한 꿈을 늘 품고 있었던 것인데, 이를 노부스 콰르텟 멤버들도 알고 있었나?

초창기 활동할 때는 지휘 이야기를 거의 한 적이 없다. 2013년 비올라로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하면서부터 이제 지휘자 공부를 시작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에 빠졌다. 30대 초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지휘자로 활동하고 싶었고, 적어도 학사·석사 6년은 심도 있는 지휘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지휘를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한 이후에도 노부스 콰르텟 활동을 병행한 건가?

그렇다. 사실 그 기간 형들과 행복하게 활동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것이 많았다. 특히 2017년이 힘들었다. 그 무렵 노부스 콰르텟은 세계적인 연주를 많이 펼치고 있었고, 지휘는 이제 막 공연 스케줄이 생겨나는 때였다. 비록 1년에 5개 남짓한 지휘 스케줄이었지만 놓치고 싶지 않았다. 팀에게도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형들과 깊은 이야기를 나눈 후, 2017년까지 활동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새로운 멤버를 구할 때까지는 사명을 다해 노부스 콰르텟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형들과의 사이는 여전한가?

다수의 인터뷰에서 제2의 가족으로 표현했는데, 실제로는 제1의 가족이다. 유학생이다 보니 가족보다 더 많이 만났다. 새로 합류한 멤버까지 노부스 콰르텟 모두가 현재 베를린에 살고 있는데, 베를린이란 도시가 좁다 보니 길 가다가 마주치고 식당에서 마주치고 연락을 따로 안 해도 마주친다. 너무 반갑다. 함께 활동하지 못하게 된 건 안타깝지만,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진심으로 응원해줬다.

새로운 길, 두렵진 않았나?

두 가지를 놓고 비교했다. 하나는 현재 프로 연주자로 살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지휘자로 전향한다면 과연 밥 벌어 먹고살 수 있을까. 다른 하나는 지휘를 선택하지 않은 걸 평생 후회하진 않을까. 이 고민을 1년 정도 했다. 그러다 지휘를 시작조차 해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쌓다

현재 베를린 바흐 뮤직김나지움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2016년부터 4년째 맡고 있다. 베를린 바흐 뮤직김나지움(Musikgymnasium Carl Philipp Emanuel Bach Berlin)은 베를린 도시를 통틀어서 하나 있는 예고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음악의 본고장인데도 조기교육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본인이 음악을 하고 싶을 때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유일한 예고인 만큼 베를린 필하모닉을 비롯한 유수 오케스트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는다. 학생 대부분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자녀이기도 하다.

어떻게 음악감독을 맡게 됐나?

원래 음악감독을 하시던 분께서 안식년을 갖게 되어 그사이 1년 간 오케스트라를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베를린 바흐 뮤직김나지움과 한스 아이슬러 음대는 연결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지휘과 학생들 중에 추천하게 됐다. 교수님께서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지휘를 가르치려면 실질적인 연주기법에 대해 지적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판단하셨다. 현악기를 하다가 지휘로 전향한 케이스가 지휘과 통틀어서 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음악감독직을 맡게 됐다. 원래 임기는 1년이었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고 학장님께서도 계속 감독직을 맡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지금까지 오게 됐다.

학생들은 잘 따라오나?

나 역시 예중·예고를 한국에서 나왔기 때문에 비교해볼 수 있다. 악기 개개인의 연주는 한국 친구들이 기교적으로 훨씬 뛰어나다. 신기한 건 독일 친구들은 타고난 앙상블을 듣는 귀가 있다. 옆 사람과 소리를 섞는다는 마인드가 장착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좋은 소리를 듣는 기준 자체가 높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는 엄청난 음악적 성숙도가 따라오게 된다.

좋은 소식이 있다. 리카르도 무티 아카데미에 참여하게 됐다고.

리카르도 무티가 주최하고 진행하는 ‘이탈리안 오페라 아카데미’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2015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매년 이탈리아 라베나에서 열린다. 이번에는 도쿄 스프링 페스티벌이 함께 아카데미를 주최해서 봄에는 도쿄, 가을에는 역시 라베나에서 열린다. 지휘의 경우는 콩쿠르가 아니라 마스터클래스조차 300명이 넘는 인원이 지원한다. 이번 역시 영상 심사를 거쳐 12명을 뽑았고, 나를 포함한 4명이 최종 선발됐다. 그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마지막 심사는 베르디 ‘리골레토’ 전곡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어느 범위를 연주해야 하는지 전혀 알려주지 않은 상태에서 포디움에 올라가면, 지휘해야 할 부분을 무티가 즉흥적으로 지정하는 식이었다. 무티는 지원자들이 성악 파트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보기 위해 지원자들에게 이탈리아어로 직접 노래를 부르면서 지휘를 해보도록 했다.

무척 떨렸을 것 같다. 앞으로 아카데미는 어떻게 진행되나?

2021년까지 3년간 베르디 오페라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지난봄 도쿄 공연에선 열흘 동안 무티와 ‘리골레토’에 관해 공부한 다음, 공연은 무티가 직접 했다. 내년엔 ‘맥베스’, 2021년엔 ‘가면무도회’를 차례로 선보이는데, 이때는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학생들이 데뷔하게 된다.

곁에서 본 무티는 어떤가?

이전 동영상이나 음반으로 접했을 땐 독재자나 외골수 같을 거란 편견이 있었다. 곁에서 지켜본 무티는 역시나 엄청난 아우라를 갖고 있다. 그리고 작곡가가 의도했던 악보의 본질을 파헤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스터클래스에서는 4명에게 각각 다른 가르침을 주셨다. 내 경우 어렸을 때부터 음악적 소양을 쌓으며 교육받아온 것이 보이고, 이것이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장점이라고 했다. 지적했던 부분은 언어에 관련한 것이었다. 곡 전체 중 어느 부분을 지휘해도 오케스트라에게 예비 신호를 줄 때, 그 순간 성악가가 부르고 있는 한 단어 한 단어가 무슨 뜻인지, 어떤 장면이나 문맥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어를 2년째 공부하고 있지만, 일상 대화가 될 정도는 아니다. 내년 ‘맥베스’ 때는 무티와 이탈리아어로만 대화할 것을 오케스트라 전 단원 앞에서 약속했다. 지휘자는 오페라 지휘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무티와의 약속이 아니었어도 독일어뿐 아니라 이탈리아어와 불어까지는 섭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연주 일정이 궁금하다.

베를린으로 돌아가자마자 베를린 바흐 뮤직김나지움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가 잡혀 있다. 그동안 콘체르트하우스에서는 자주 연주했지만, 이번에는 베를린 필하모니홀에서 처음 연주한다. 카라얀·아바도·사이먼 래틀이 서던 그 포디움에 오르는 것이다. 물론 오케스트라는 베를린 필이 아니지만, 그 홀에 서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설렐 것 같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지휘 콩쿠르 우승 부상으로 얻은, 루마니아 주요 오케스트라 세 곳과의 연주를 오는 10월부터 펼친다.

이번 촬영 때 지휘봉과 활을 함께 든 컷을 찍기도 했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없나? 노부스 콰르텟 때처럼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이프치히 음대 비올라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고, 베를린에서도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비올라의 경우는 교육자로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하우스 콘서트나 리사이틀, 그리고 솔리스트로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도 종종 한다. 지휘 공부를 처음 시작했을 때 괜히 성숙하지 않은 마음에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지휘자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비올라를 얘기할 때면 나 이제 지휘할 거라고 단호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점차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악기를 오래 연주하면서 터득한 강점이 분명 지휘와도 연계되기 때문이다. 실내악 연주를 통해 화성과 친숙해졌고, 소리의 섞임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얻었다. 지금은 명함에도 지휘자와 비올리스트를 병기한다.(웃음)

지휘로 전향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도 여러 성과와 경험을 얻고 있다.

남들은 비올리스트로 쌓아온 인맥들이 많으니까 일명 ‘빽’이 작용한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 하나는 자부심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정말 제로베이스에서부터 시작하면서 인맥적인 도움은 전혀 없이 순수하게 오디션을 통해 이를 개척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꿈이 있다면?

독일에서 공부를 계속해 온 만큼 독일 메이저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게 현실적인 꿈이다. 욕심이지만 가능하다면 비올라도 놓지 않고 계속 병행하고 싶다.

음악 외 다른 관심사는 무엇인가?

지휘자는 본인이 직접 소리를 내는 게 아니다. 눈빛·표정·제스처·아우라로 정보를 주는 것이다. 몸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에서 댄스·춤·판토마임 같은 것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악기 연주자보다 더 적나라하게 성향이 반영되기 때문에, 보고 듣고 견문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거나 보다 많은 것을 경험하려고 한다. 어떤 장면을 표현하거나 묘사할 때, 내가 직접 본 잔상이 있어야 이미지를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 권하영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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