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필하모닉 & 크리스티안 틸레만 (1)

브루크너 정신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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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21일 9:00 오전

COVER STORY

 

지휘자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서울에서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한다. 이 작품은 브루크너가 노년에 스타가 된 후 큰 주목과 관심을 받으며 탄생한 첫 작품으로, 빈 필하모닉이 역사적인 초연을 맡았다. 역사적인 이번 무대에서 균형과 조화를 중시하는 틸레만의 지휘 아래 변치 않는 빈 필하모닉의 사운드로 진정한 브루크너를 듣게 될 것이다

 

2008년 ‘그라모폰’지가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를 당대 최고의 악단으로 선정하기 전까지, 빈 필하모닉은 베를린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오케스트라의 양대 거목이었다. 1973년 클라우디오 아바도 통솔로 이화여대 강당을 찾은 이후, 로린 마젤(1980), 오자와 세이지(1993~2004), 주빈 메타(1996~2003), 발레리 게르기예프(2006), 투간 소히예프(2009), 크리스토프 에센바흐(2015), 정명훈(2016)이 간헐적으로 보인 빈 필 기량은 경우에 따라 실망을 안겼다. 2진 논란을 거론한 국내 언론도 있었고, 대개 단원들의 시차 부적응이 사유로 지적됐다. 이번엔 다르다. 빈 필은 10월 21일 마카오를 시작으로 11월 15일 산토리홀까지 26일 동안 총 19회에 걸친 한·중·일 공연을 가진다. 한 달 가깝게 본거지를 비우는 결정은 1900년 말러 지휘로 처음 파리로 투어를 나간 이후, 빈 필 역사에 전례 없는 일정이다. 11월 3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 에스트라다, 11월 1·2일 예술의전당에 틸레만이 오른다. 맡겨만 주면 훌륭하게 마무리 하는 에스트라다에, 현재 빈 필과 가장 관계가 원만한 틸레만으로 투어가 짜였다. 빈 필에는 음악감독이 없지만, 열 한 번째 내한의 중심은 틸레만이다. 빈 필은 1842년 창단 이래, 최상의 레퍼토리를, 최고의 단원 구성을 통해, 최적의 방법으로 완수하는 목표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레퍼토리는 오스트리아에서 나고 자라거나 활동한 작곡가들의 수작으로 추려진다. 바그너, 브루크너, 브람스, 말러,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영합적으로 보일만한 수사로 빈 필의 진가를 칭송했다. 의사 결정의 전권은 단원 조합에 있고, 다수결에 따른 민주적 절차에 따라 작품과 지휘-협연자를 선정한다. 신년음악회 지휘자 뿐 아니라 무지크페라인 정기 연주회 진용, 쉔부른 하계 야외 공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해외 투어 아티스트도 모두 단원들이 추인한다. 1933년부터 객원 지휘자 제도를 정착했고, 오랜 세월 동안 특별한 인연을 이어온 지휘자들에겐 명예 지휘자(뵘, 카라얀), 명예 단원(번스타인, 무티, 세이지)을 부여했다. 빈 슈타츠오퍼에서 3년간의 시험 기간을 거치며 빈 필 대기 단원으로 활동하는 역량을 평가해 정단원을 채용하는 인사 제도를 1973년부터 유지한다. 오페라 기회가 제한적인 베를린 필과 비교해 오페라와 관현악 모두 최고 수준의 연주력을 보존한다. ‘빈 필 창단 175주년 에디션’(DG, 44CD)이 20세기 중후반을 정리하는 빈 필하모닉 연대기의 축소판과 다름없다. 전통적으로 빈 국립 음대 사제 관계로 빈 필 특유의 연주 관습을 사전에 길들이는 도제 관계가 존재했고, 2018년부터 베를린 필 아카데미 방식과 흡사한 빈 필 아카데미를 발족했다. 프로 경력 이전의 주니어를 대상으로 2년 동안 빈 필 뿐 아니라 저명 악단에 입단할 기본 기량을 전수한다. 빈 필 아카데미 발족에 복수의 한국인 후원자가 참여했고, 조한나(바이올린), 정하나(더블베이스)가 몸담으면서, 빈 필은 한국과 새 인연이 생겼다. 음악계에 통용되는 ‘빈 필 사운드’는 흔히 오스트리아-독일, 혹은 구 합스부르크 제국령에서 나고 자란 남성 단원군의 예술적 운신을 포괄해 임의로 의미가 조명됐다. 2011년 소피아 출신의 알베나 다닐로바가 악장에 참여하기 전까지 빈 필의 모든 악장은 남성이었고, 베를린 필과 달리 악장 자리에 동양인을 포용하지 않는다. 빈 슈타츠오퍼까지 내려가면 대략 15명의 여성 주자가 빈 필에 예비-정단원으로 참여한다.

‘따뜻하고 풍부한’ ‘벨벳 같은’ ‘고급스러운’의 형용사 수준을 넘어 빈 필 소리 자체를 실증적으로 규명한 곳은 ‘뉴욕타임스(NYT)’지다. NYT 클래식·발레 필자 마이클 쿠퍼는 영상 취재와 기고문을 통해 빈 필 사운드의 변별 원인을 특별한 악기 사용과 대대로 계승된 연주 관습으로 정리했다. 특수 악기 사례로 쿠퍼는 호른과 오보에를 예증했다. 여타 악단에서는 F조와 Bb조를 하나로 합친 더블 호른을 사용하지만, 빈 필은 포르티시모에서도 깨지는 소리 대신 다른 관악기와 블렌딩이 수월한 빈 스타일의 싱글 호른을 쓴다. 빈 필에선 파리 음악원 교수들이 잡던 ‘콘서바토리 오보에’ 대신 그것보다 길이는 짧지만 선명하고 또렷한 음상을 맺는 ‘빈 오보에’를 다룬다.

1992년부터 빈 필 악장을 맡은 라이너 호넥은 NYT 카메라 앞에서 빈에서 생활한 카를 미하엘 치러, 로베르토 슈톨츠, 리하르트 호이베르거, 요제프 헬메스베르거 같은 토박이들이 구현한 유행가 스타일을 현지 방식으로 시연했다. 가령, 3박자 왈츠에서 빈 필은 악보에 적힌 1-2-3의 템포 대신, 2-3 사이를 2–3이나 2—3으로 소화하면서 독특한 운치를 더했다. 춤곡에 우아함을 담아내는 빈 사람들의 습속이다. 여성의 인권 신장, 교육 제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빈 필의 주도권은 2020년대에도 조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백인 남성들이 행사할 것이다. 단일한 지휘자의 개성이 악단에 과도하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빈 필은 지휘자들과 친소관계를 유지했다. 단적으로 2017년 신년음악회에서 확인한 두다멜의 몰개성이 바로 빈 필이 지향하는 바다. 종합하면, 지휘자를 수장으로 두지 않는 빈 필이 신뢰하는 지휘자상은 지역과 악단에 존재하는 전통을 존중하면서 특히 오페라에서 이상적인 소리를 형성하는 남성 독일어 모국어자로 특정 인물이 도출된다. 과거에는 뵘이였고 지금은 틸레만이다.

 

자연에서 탐색하는 음악적 영감

1959년 서베를린에서 태어난 틸레만은 카랴얀이 도시에 남긴 유산으로 성장했다. 어려서 보고 들은 공연이 카랴안 시절의 베를린 필 콘서트였고, 비올라와 바이올린을 배운 곳도 카라얀 재단 산하 아카데미였다. 스무 살도 되기 전인 1978년 서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오페라 코치로 채용됐고, 카라얀 베를린 필의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 투어에 동행하면서 오페라와 오케스트라 양면에 대한 연구를 심화했다. 1980년 베를린 필의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공연에 하프시코드 주자로 먼저 베를린 필에 데뷔했다. 1980년대 초반, 겔젠키르헨, 칼스루에, 하노버에서 전막 지휘 경험을 쌓았고 1987년 빈 슈타츠오퍼에 ‘코지 판 투테’로 데뷔했다. 1988년 스물 아홉에 뉘른베르크 오퍼 총감독이 됐다. 당시 기준으로 독일권 최연소 오페라 극장 예술감독이었다. 그러나 틸레만은 예술적 책임을 맡는 족족, 조직과는 분쟁으로 관계를 마감했다. 뉘른베르크 오퍼(1988~1992), 베를린 도이치 오퍼(1997~2004), 뮌헨 필하모닉(2004~2010) 모두 시 정부나 행정감독과 갈등이 극에 달했다. 2013년부터 예술감독을 맡은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도 마찬가지다. 행정감독 니콜러스 바흘러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히며 자질을 공개 비난했다. 올해로 육십에 이른 틸레만의 인생에 예술 고위직에 오른 중량급 인물은 파트너로 존재하지 않는다.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빈 필처럼 가치를 숭상하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곳에서 틸레만은 환영받는다. 2015년 베를린 필 단원들의 감독 선출에서 소외된 이후, 틸레만은 2012년 감독에 오른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SKD),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빈 필을 삼각축으로 활동을 전개한다. 직간접으로 오페라를 매개로 한 독어권 조직으로 반경이 위축됐지만, 빈 필에선 감독직을 놓고 누군가와 겨룰 스트레스가 없으니 틸레만에겐 바이로이트처럼 편안한 공간이다. SKD가 잘츠부르크 부활절 축제에 편입된 공로와 마찬가지로, 만일 상주 악단에서 제외된다면 사유는 틸레만 리스크다. 틸레만은 사사로운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에서 영감을 탐색하고 고취하는 입장을 견지한다. 태양이 뜨고 지고, 새가 짖는 자연 현상에서 베토벤 ‘에그몬트’를 유추하고, 초자연성과 폭력은 동전의 양면임을 확인하는 식이다. 빈 필 입장에선 2000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알프스’ 교향곡으로 틸레만을 처음 만날 때, 자신들과 같은 음악 언어를 구사하는 인물임을 확인했다. 리허설부터 음악을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하는 수완이 특출했고, 데뷔 공연 전까지 틸레만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기대한 역량이 결국 단원들의 기쁨으로 돌아왔다. 음악감독은 없지만, 단원들이 절대적으로 그를 신뢰하는 이유다.

 

틸레만이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2018잘츠부르크 부활절 페스티벌의 오페라 ‘토스카’ ©OFS Forster

 

 

 

 

 

 

 

 

 

 

2000년대 베를린 필은 영국의 계몽시대 오케스트라와 역사주의 연주 경험을 쌓은 래틀의 절충식 연주를 베토벤에 반영했지만, 빈 필은 2008년부터 본격화된 틸레만과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통해 오스트리아 음악을 대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래틀이 노링턴부터 예르비로 이어지는 시대 고증을 토대로 한 변증법으로 베토벤을 바라봤다면, 틸레만은 1960~1970년대 카라얀식 베토벤 사관의 연장이었다. 2000년대 초반의 시대 악기 풍조를 거스르는 대형 편성과 1-2 바이올린을 양단에 배치하면서 로맨틱과 스케일을 강조하는 베토벤 전집은 단숨에 ‘거장 시대’를 회고하게 했다. 연주에선 극도로 흥분을 자제했지만 커튼콜에서 포디움에 점프를 하면서 내는 굉음이 틸레만의 정체다. 빈 필과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베토벤과 브루크너를 섭렵했고 말러는 성악이 부수된 곡 위주로 함께 했다.

 

치밀하면서 분석적인 접근으로 독일 음악의 핵심 가치를 명찰하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균형감 있는 음악을 만드는게 목표다

 

 

해마다 세계 음악 애호가들이 찾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본질을 꿰뚫는 치밀한 분석가

틸레만은 11월 1일 공연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연주한다. 과거 베를린 필, 뮌헨 필에선 노박 에디션을 썼지만 이번엔 하스 판이다. 빈 필과는 지난 5월부터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인 2024년까지 유럽 주요 성당과 극장에서 브루크너 전집을 소화한다. 협력 악단의 외연을 넓히면 틸레만의 최고 장기는 바그너다. 음악이 진행되면서, 울림이 점점 좋아지는 현상은 악단원과 가수들이 일제히 밝히는 틸레만표 바그너의 미덕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이 일류인가, 초일류인가에 물음에 다다르면, “이 시대 최고의 바그네리안”이란 판정도 절대평가인지, 상대평가인지 물음으로 돌아간다. 왜 틸레만의 바그너는 특별한가? 빈 슈타츠오퍼에서 틸레만을 경험한 베이스 박종민은 그의 장점으로 “독일 음악의 본질에 대한 차분한 이해”를 든다. 학습과 경험을 통해 계산적이고 치밀하면서 분석적인 접근으로 독일 음악의 핵심 가치를 명찰하는 점을 높게 평가한다. 그래서 틸레만 공연에는 슈퍼스타의 초능력에 기대어 전막을 성공시키는 경우보다, 가수를 오케스트라 악기로 간주해서 주역이라도 특정 가수가 튀는 걸 방지하는 모습이 뚜렷하다. 돋보이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 할 때 가수가 받는 열패감보다, 균형감 있는 음악을 만드는 목표가 우선이라는 데 제작진이 합의를 본 상태로 틸레만 팀은 전막에 들어간다. 틸레만이 디테일을 다루는 방식은 2011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당시 ‘그림자 없는 여인’을 제작하는 다큐에 잘 드러났다. 틸레만은 연출의 변화에 초점을 둔 세태와 무관하게, ‘악보는 텍스트에 맞춰 작곡됐다’는 점을 가수진에 강조하며 독일어 발음과 억양을 교정한다. 철저하고 집요하게 모든 자음을 놓치지 않고 발음을 요구하는 틸레만의 성화를 외국인이 받아내긴 쉽지 않다. 개인의 감정 굴곡에 따라 작품의 전경과 템포를 바꾸는 지휘자들과 달리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머리 속에 보관한 음악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침착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래서 리허설과 본 공연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출연진의 긴장은 리허설부터 그대로 이어진다. 오페라 코치로 극장 경력을 시작해서 모든 것을 자신이 관장해야 제대로 된 예술이 완성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본인의 예술을 추구하는 나머지, SKD 신년음악회 선곡 해프닝처럼 나치의 프로파간다에 쓰인 음악들을 쓰면서도, “무슨 문제냐”는 식으로 나오면 그를 방어할 주변인은 없다. “때때로 나는 작곡가가 누군지 모른다”는 그의 변명을 거들 셀럽도 없다. 앞으로도 틸레만은 해석의 탁월함으로 예술가들을 감득시킬 수밖에 없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부터 크나퍼츠부쉬, 푸르트뱅글러, 카라얀으로 대표되는 독일-오스트리아계의 위대한 지휘자들은 예외 없이 관현악과 오페라를 동시에 전문으로 했지만, 지금은 파보 예르비처럼 전막 오페라에 경험이 일천해도 베를린 필 정기 연주회에 오르는 시대다. 독어를 모국어로 하는 마렉 야노프스키가 뒤늦게 바이로이트에 입성하고, 베를린 필이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감독 출신을 새 수장으로 앉힌 것도 틸레만이 세기말부터 독일 오페라의 장인으로 우뚝 선 주변 여건과 무관하지 않다. 통독 후 태어난 독일 인재 중에는 틸레만 식의 교육 배경이 없으니, 독어권 최상위 음악 조직은 페트렌코, 유롭스키, 쿠렌치스로 눈 돌릴 게 된다. 그럼에도 거장 부재의 시대에 틸레만이 각광받는 이유는 결국 그의 비범한 음악성이다. 폭풍 전야의 고요가 틸레만의 잠재력이었다면 폭풍우에도 묵묵히 자신만의 음악관을 지키는 게 그만의 저력이다. 이번 내한에서도 그의 내공 안에 깃든 숨은 다이내믹을 기대한다.

글 한정호(음악 칼럼니스트)

크리스티안 틸레만/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11월 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루크너 교향곡 8번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공연(협연 예핀 브로프만)

11월 3일 오후 5시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 ‘신세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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