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루비모프 피아노 독주회

유니크한 개성 돋보인 무대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30일 9:00 오전

REVIEW

9월 26일 금호아트홀 연세

 

인간의 사고력과 상상력의 자유로움은 ‘모든 것에는 적절한 때가 있다’는 진리를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시공간을 초월한 예술가의 자유로움은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믿게 하는 강한 자신감과 용기 없이 존재하기 어려우며, 그 확신이 만들어낸 ‘선택’과 ‘집중’은 때로 예술가들의 생애를 설명하는 덕목이 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그래서 누구도 걷지 않은 길을 골라 홀로 전진 해 온 알렉세이 루비모프는 이른바 소비예트의 음악가로서는 매우 이색적인 프로필을 지니고 있다. 건반악기로서 시대적인 접근과 마니아적 열정이 필수적인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하거나, 아르보 패르트, 알프레드 슈니트케와 존 케이지를 동시에 무대에 올려 해석하는 일 등은 모스크바 음악원의 명교수 겐리흐 네이가우스를 사사한 마지막 세대의 모습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러시아 피아니즘의 계보와 성격에 상반되는 루비모프의 이미지가 굳건해질 수 있었던 힘은 다름 아닌 꾸준한 노력으로 다져진 내공과 현장에서의 노련함, 이와 더불어 타고난 감성과 즉흥적 기질로 빚어내는 독자적인 악상의 매력이라고 하겠다. 이번 모차르트 무대는 모처럼 현대 악기로 무대에 오른 그의 근황을 확인한 기회였다.

환상곡 K397이 음악회의 문을 열었다. 과도하지 않은 다이내믹 변화에서 흘러나오는 우아한 뉘앙스들과 세련된 아고긱은 5분 남짓의 소품을 묵직한 품격의 대곡으로 만들었으며, 그 무게감은 자연스레 다음 작품인 소나타 K311로 이어졌다. 공연장의 풍부한 공명이 뒷받침된 악기의 음상은 부드러웠으며, 루비모프는 홀의 구석까지 그 울림을 통제하는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음의 끝부분이 둥글고 뭉툭하게 다듬어져 듣는 귀를 편안하게 만드는 루비모프의 솜씨는 작품에서 요구되는 자연스런 비르투오시티를 무리없이 받아들이게 만들었는데, 3악장 론도의 즐거움과 흥겨운 정서는 그 중 특별했다. 파토스가 자리잡아야 하는 소나타 K310 역시 루비모프의 노련한 템포감각과 예측불허의 프레이징이 승리를 거둔 케이스였다. 루비모프의 템페라멘트는 꾸밈음과 트릴로 이어지는 장식을 절묘하게 늘어놓는 루바토로 흥미롭게 나타났다. 살롱풍으로 소담스럽게 이어지던 분위기를 순식간에 커다란 스케일을 지닌 비극적 장면으로 탈바꿈시켰던 2악장은 오래 기억에 남을 듯하다.

이 날의 모차르트를 굳이 규정하라면 풍성한 양감의 소리로 빚어진 솔직한 악상의 당당함이었다. 후반 첫 곡으로 연주된 K545의 해석이 그러했다. 의식적인 무게조절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유려한 흐름과 작거나 단순한 작품이라는 선입견을 지니지 않은 진지한 접근 방식이 그 자체로 이색적이었다. 연주자의 기질과 경험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는 즉흥성이 전반적인 콘셉트였다면 막시밀리안 슈타틀러가 보완한 미완성의 환상곡 K396은 가장 훌륭한 본보기였다고 생각된다. 고전파 황금시기 나타났던 과도한 감성은 여과되지 않은 공격성과 이를 과감하게 수행하는 강한 타건으로 나타났으며, 정돈되지 않은 프레이즈조차 저마다의 생명력을 부여해 적절한 역할을 수행시키는 해석자의 통찰력도 빛났다. 베토벤을 예견했다는 평을 듣곤 하는 K457에서 그는 잘 다듬어진 감성과 스피디한 손놀림으로 개운한 맛을 전달했다. 수없이 많은 모차르트 연주자들 중에서도 다시 없을 유니크한 개성으로서의 루비모프를 확인시켜 주는 시간이었다.

김주영(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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