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고르 레비트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집

인간 그 자체로의 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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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0월 2일 9:00 오전

FOCUS REVIEW

 이고르 레비트(피아노) Sony Classical 19075843182 (9CD)

 

베토벤 서거 190주년인 2017년부터 이어져 온 수많은 베토벤 시리즈가 탄생 250주년을 맞는 2020년에는 더 풍성하게 펼쳐질 예정이다. 전 세계 주요 악단과 공연장, 그리고 음악가들 모두 이를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음반사도 예외는 아니다. 저마다 베토벤 전 작품을 집대성한 기념박스물을 선보이기 위한 작업에 열심이다. 9월 13일, 소니 클래시컬에서는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는 첫 타자로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을 선보였다.

음악사에 있어 베토벤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존재다. 음악의 모든 장르에 있어 혁명가와 같았던 그이기에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탐구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피아니스트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베토벤은 피아니스트 백건우에게 “넘어야 할 산”이자 “최대의 경험을 안겨준 존재”이고, 부흐빈더에게 “삶의 중심점”이었으며, 프레데리크 기에게 그는 “가장 인간적인 작곡가”였다. 그렇다면 이고르 레비트는 그를 무어라 표현할까.

1987년 러시아에서 태어난 레비트는 만 3세에 처음 피아노를 시작했다. 1995년 독일 하노버로 이주해 음악 공부를 이어간 그는 2005년 루빈스타인 콩쿠르에서 2위와 함께 청중상·실내악 연주상·현대음악 연주상까지 받으며 단숨에 국제무대로 비상했다.

그는 베토벤만큼 자신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작곡가는 없다고 말한다. 13세에 처음으로 들었던 ‘장엄미사’는 레비트와 베토벤의 첫 정서적 교감이었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번은 이후 레비트가 음악을 만들어 가는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일까, 이번 전집의 첫 장에 담긴 소나타 2번은 한층 신중하다. 네 개의 악장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지만, 따로 떼어 놓고 보아도 손색없을 정도로 각 악장의 개성이 잘 드러나 있다. 특히 2악장(Largo appassionato)에서 순간적인 다이내믹의 변화를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레비트는 베토벤을 ‘인간(human being)’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환희와 기쁨·절망·상처·아픔·고독·고뇌 등 인간의 가장 밑바닥부터 가장 높은 곳까지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

8번 ‘비창’(CD 3)과 17번 ‘템페스트’(CD 5), 21번 ‘발트슈타인’과 23번 ‘열정’(CD 6)은 베토벤의 폭풍 같은 감성이 잘 드러나는 곡이다. 특히 8번은 이전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긴장감과 강렬함으로 베토벤의 드라마틱한 모습을 전면에 드러내고 있으며, 21번은 “피아노 음악은 ‘발트슈타인’ 전과 후로 나뉜다” 할 정도로 굉장히 혁신적이다. 모두 극단적인 감정 대비를 통한 드라마틱한 효과를 느낄 수 있다. CD 8과 CD 9에는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 5개가 나뉘어 있다. 그의 후기 소나타들은 소나타 형식에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극적 요소를 담고 있다. 그중 29번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 자신이 “이 곡은 50년 후에나 연주될 것”이라 말했을 정도다. 레비트는 여기에 충동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감정들을 ‘절제’하며 듣는 이에게 여백을 남긴다.

이처럼 이번 전집에는 무엇보다도 ‘절제미’가 돋보인다. 페달링을 비롯해 템포의 선택이나 건반의 터치에서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는 의식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절정에 달했을 때조차 절제미가 느껴지는 것은 이고르 레비트가 고집하는 베토벤의 해석일 것이다.

음반 전반에 걸쳐 겉으로 드러나는 파괴적인 자유로움보다는 내면의 자유로움이 더 강하다. 커다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연주자 본인이 흔들리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듣는 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준다.

이미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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