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독 데이비드 앤드루스 로저스

피트 안에서 무르익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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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2월 9일 11:13 오후

WELCOME INTERVIEW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 프로덕션을 지휘하며 한국을 찾은 그, 어떠한 음악을 들려줄까

 

흔히 뮤지컬의 뿌리를 오페라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노래가 서사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명백히 다른 장르로 발전해 온 두 장르를 적절히 버무려내기는 쉽지 않다. 뮤지컬계의 대부로 불리는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클래식 음악에 능통했던 그의 자질을 십분 활용해, 영리하게 오페라와 뮤지컬을 엮었다. 자신 또한 클래식 음악을 작곡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작품이었다는 설이 있을 만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웨버의 역작으로 꼽힌다. 1986년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1988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30년 이상 두 곳에서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유일한 작품이다. 한국에서는 2001년 라이선스 프로덕션으로 선보이며 국내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견인했다. 이번 공연은 7년 만에 돌아온 월드투어 프로덕션으로, 역대 최연소 유령이자 웨버의 대표작인 ‘오페라의 유령’ ‘에비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등에서 주역을 차지한 조나단 록스머스가 팬텀 역을 맡는다. 웨버의 음악이 지닌 감동을 고스란히 전해줄 수장은 음악감독 데이비드 앤드루스 로저스로, ‘오페라의 유령’ 뿐 아니라 ‘캣츠’ ‘레 미제라블’ 등의 대작들을 지휘했다. 부산에 이어 서울·대구 공연을 이어가며 국내에 잠시 머물게 될 그는 이번 공연을 새로운 모험에 비유했다. 이번 여정이 너무도 기대된다고 말하며 유쾌하게 웃는 그를 만났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속 드러나는 클래식 음악적인 요소를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극 중 팬텀은 작곡가다. 따라서 그가 작곡한 세 개의 오페라가 등장한다. 차례로 ‘한니발’ ‘일 무토’ ‘돈 주앙의 승리’다. ‘한니발’은 현재로 비유하면 ‘아이다’와 같은 작품이고, ‘일 무토’는 모차르트가 썼을 법한 익살스러운 작품이다. ‘돈 주앙의 승리’는 당대 시대적 배경을 고려했을 때 상당히 현대적인 작품이다. 놀라운 점은 이렇게 다양한 요소와 배경을 가진 오페라 곡들이 하나의 뮤지컬 작품 속에서 통일성 있게 어우러진다는 점이다.

극중극 형태를 띤다는 말인가?

그렇다. 크리스틴의 대표적인 넘버 ‘Think of Me’는 오페라 ‘한니발’ 중 등장하며, ‘Poor Fool, He Makes Me Laugh’는 ‘일 무토’, 피앙지로 분한 팬텀과 크리스틴이 부르는 ‘The Point of No Return’은 ‘돈 주앙의 승리’ 공연 중 흘러나온다. 전체 기승전결 구조 속에서 세 개의 오페라가 등장하나, 이들이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훌륭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조금만 잘못 사용됐을 때는 이야기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들이 극중극 형식을 띠고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자 해당 곡들은 대화나 액션 시퀀스에 의해 중단된다.

가수들이 부르는 각각의 넘버들에도 클래시컬한 요소들이 녹아있나?

물론이다. 작품의 배경부터가 파리 오페라하우스이며, 주인공인 크리스틴은 소프라노다. 배우들 역시 오페라식 발성으로 노래하며, 반주 역시 풀 편성의 오케스트라가 맡는다. 그러나 전체 프로덕션 넘버 중 단 두 곡, 서곡과 ‘The Phantom of the Opera’만이 하드 록적인 스타일을 띤다. 그렇다고 해서 배우들이 록 발성으로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이 곡 자체만 두고 보면 엄청난 명곡이지만, 뮤지컬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다른 곡들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스타일을 띤다. 오케스트라가 이끌어가던 극에서 갑자기 강렬한 오르간·드럼·일렉트릭 기타·베이스 소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기자 역시 해당 곡으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에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중독성이 강한 곡이다. 웨버는 어떠한 의도로 이 곡을 작곡했을까?

이러한 불일치는 의도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오페라 하우스에 침입하는 팬텀’의 이미지를 상징하고자 클래시컬한 전체 분위기와는 상반되는 하드 록 스타일의 노래를 채택한 것이다.

재밌다. 이 곡 외에도 음악적으로 봤을 때, 역동적이면서도 강약과 고저를 넘나드는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이러한 넘버들을 지휘할 때 특별히 염두에 두는 점이 있나?

‘놀라우면서도 필연적인(Surprising and Inevitable)’. 웨버가 가장 처음 해 준 말이 ‘노래 자체가 팬텀의 성향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팬텀의 성격 자체가 예측 불가하기 때문에 음악적으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이내믹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1차원적으로 유령이 지닌 무서운 느낌만을 표현하려고 한 것은 아니다. 크리스틴을 파괴하려고 할 만큼 무서운 캐릭터였다가, 남을 조종하려고 하는 교활한 캐릭터였다가, 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캐릭터의 다양함이 음악적인 기승전결 안에서 묻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캐릭터의 성향을 반영한 음악

팬텀의 무서우면서도 기괴한 부분을 부각하기 위한 음악적인 장치가 있을까?

기괴하다기보다는 크리스틴을 유혹하려는 부분에서 확실하게 흘러나오는 넘버가 있다. 웨버가 천재적인 이유 중 하나는 음악을 통해 캐릭터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캐릭터의 감정을 함께 전달하는 것에 굉장히 능숙하다는 점이다. 2막 ‘The Point of the No Return’에서 깔리는 오케스트라에서는 라틴 음악적인 성향이 다분하게 느껴진다. 음악을 통해 이 장면에서 하고 싶은 말이 유혹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팬텀의 낭만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곡도 있다. 크리스틴에게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어둠의 세계를 소개해주는 부분에서 중저음의 바리톤 음성으로 울려 퍼지는 ‘The Music of the Night’는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에스앤코

크리스틴의 음악 또한 궁금하다. 그녀의 성향을 잘 표현하는 넘버는 무엇일까?

크리스틴은 매우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지만 순수하기 그지없는 소녀로 시작한다. 그러나 극의 후반에 가서는 음악적으로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큰 성장을 한다. 크리스틴의 넘버 중 잘 알려지지 않은 넘버를 이야기하게 될 것 같은데, 2막의 2번째 ‘매니저의 사무실’ 신에서 흘러나오는 ‘Twisted Every Way’라는 곡이다. 이 곡에서는 그녀가 처한 딜레마가 직접적으로 표현된다. 그녀는 팬텀에게 매료되어 있지만 약혼자인 라울도 사랑한다. 라울이 안전한 상대라면 팬텀은 너무도 위험한 유혹자다. 사무실의 직원들은 모두 크리스틴이 새로운 오페라에 출연할지 말지에 대한 확답을 기다리는 상황이고, 크리스틴 역시 이를 고민하고 있다. 신기한 것은 이 곡의 멜로디가 1막에서 프리마돈나인 칼롯타가 불렀던 노래의 멜로디를 완전히 반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녀들의 뒤집어진 운명을 음악 안에서 천재적으로 표현했다.

멜로디를 반대로 표현했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

이 주법은 클래식 음악에서는 자주 사용되는 기법이다. 심포니·소나타·콘체르토와 같은 양식에서 앞서 있었던 멜로디를 반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정보 전달을 하기 위해 멜로디를 뒤집기도 하나, 처음 듣지만 익숙한 것 같은 느낌을 주고자 주로 활용한다. 웨버가 클래식 음악에 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장 애착이 가는 넘버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이 질문은 마치 어느 자식이 가장 예쁘냐고 묻는 것과 똑같은 것 같다.(웃음) 현재 지휘를 하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지는 넘버는 1막의 ‘Notes/Prima Donna’이다. 팬텀이 크리스틴을 은신처로 데리고 간 상황에서 오페라하우스 극장주, 후원자 라울, 프리마돈나 칼롯타 등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7명의 배우가 각자의 의견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장면이다. 한 사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른 사람의 말이 시작되는 등 열띤 대화를 펼치는데, 각자 자신의 업적을 망칠까 봐 용을 쓰고 떠들어댄다. 신기한 것은 이렇게 정신없는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지금 무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두 이해할 수 있다. 구조가 탄탄하게 짜여있을 뿐 아니라 듣기에 흥미롭기까지 하다. 웨버의 천재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곡이다.

 

새로운 여정을 앞두고

이번 월드투어 프로덕션에 참여하게 된 소감이 궁금하다.

지금까지 감사가 깊이 묻어나는 삶을 살아왔다.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올리는데 작은 부분이라도 협조하고 있다는 것,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 게다가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스스로 운이 좋다고 느낀다. 특히 관객이 또 하나의 신(scene) 파트너라는 말을 자주 한다. 매일 다른 관객을 만난다는 건 매일 다른 상대 배우와 함께한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피트 안에서든 백스테이지에서든 항상 관객들의 새로운 기운을 느낀다.

작품을 지휘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첫 번째는 공연 시작 전이다. 관객들이 얼마나 기대에 차 있는지 느껴지는 순간이다. 두 번째는 공연 종료 직후다. 넘버가 모두 끝나고 연주되는 메들리가 있다. 모든 뮤지컬이 그러하듯 관객이 나갈 때 연주되는 곡이다.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의 경우,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많은 관객이 극장을 나가지 않고 오케스트라 피트 안을 궁금해하며 들여다보시더라. 다행히도 그들의 표정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기회를 만끽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권하영 기자 사진 클립서비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12월 13일~2020년 2월 9일 부산 드림씨어터

2020년 3월 14일~6월 26일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2020년 7월~ 대구 계명아트센터

데이비드 앤드루스 로저스(음악감독)/ 라이너 프리드(협력연출)/조나단 록스머스(유령)/ 클레어 라이언(크리스틴)/맷 레이시(라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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