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

첼로, 계절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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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12월 9일 11:05 오후

WELCOME INTERVIEW

한없이 부드럽다가도 어느새 강렬하게 가슴을 파고든다. 함께 있을 때는 물론 홀로 서 있는 모습도 매력적인 악기, 첼로는 이렇게 모든 계절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지난 11월 8일, 진하디진한 프로코피예프의 선율이 롯데콘서트홀에 흘렀다. 서울시향과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협연 무대. 오케스트라와 역동적으로 부딪히는 선율, 강렬한 비브라토와 피치카토, 긴 호흡으로 흐르는 서정적 멜로디와 격렬한 아르페지오까지, 오케스트라를 타고 흐르는 다니엘 뮐러 쇼트의 첼로는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공연 당일, 서울시향과의 리허설을 몇 시간 앞두고 만난 그는 무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빨간 목도리에 파란 패딩, 어깨엔 악기 가방을 메고 킥보드캐리어를 탄 모습이 지극히도 인간적이었다. 인사동의 한 호텔에서 광화문 거리를 지나 경복궁까지 그와 함께 걸으며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경복궁을 찾은 다니엘 뮐러 쇼트

서울시향과 협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 2012년 이후 7년 만에 함께하는 연주인데, 어떤 기대를 가지고 왔나.

먼저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한국 관객은 항상 클래식 음악에 대한 감사함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함께한 시간이 많아질수록 관계가 더욱 무르익듯, 음악을 통한 만남 또한 마찬가지이다. 음악가들과 만남을 더해갈수록 함께 나누는 음악도 더욱더 깊어짐을 느낀다. 다시 만난 서울시향과의 협연 무대도 그러할 것이라는 기대다.

공연 전 마스터클래스도 가졌다고. ‘랩소디 인 스쿨’ 등을 통한 교육 활동에도 열성을 보이는데, 교육에 있어 당신이 지닌 사명이나 철학이 있는가?

나의 음악적 경험을 공유하고 또, 내가 음악을 통해 얻은 것을 다시 나누어 주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다. 나는 모든 아이들이 음악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음악에 대한 사랑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평생 그 곁을 머무르며 당신의 삶을 뒷받침해줄 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한 젊은 음악가들과의 만남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삶은 배움의 연속이다. 마음을 열고 본다면 가르치는 것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나는 첼로를 선택하고, 음악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한 모든 젊은 음악가들을 매우 높이 평가한다. 첼로와 함께했던 내 경험과 기억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연주했던 레퍼토리를 그들과 나누는 것이 기쁘다.

당신과 첼로의 첫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나?

첼로를 연주하기 시작한 것은 여섯 살 때부터였다. 하프시코드와 피아노를 연주하셨던 어머니가 하루는 오케스트라 리허설에 데려가 주셨다. 마침 슈만 첼로 협주곡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첼로가 내는 소리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나중에 그 리허설의 주인공이 첼리스트 요요마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그에게 전해주었더니 무척 기뻐하더라.

음악가로서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나?

첼로를 배운지 몇 년이 지나고 랄로 협주곡을 배우게 되었다. 작품은 너무 좋아했는데, 테크닉적으로 극복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작품을 확실히 마스터할 수 있겠다.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것이 내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왔는지! 그때부터 첼로와 평생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열세 살, 이때가 나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잊지 못할 무대가 있는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렵지만, 1992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차이콥스키 콩쿠르 무대와 1997년 카네기홀 데뷔, 1998년 베를린 데뷔, 그리고 2018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바흐를 연주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음악가들과의 기억이고, 공연 중에 느꼈던 에너지에 대한 기억이다.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이 있다면.

음악가마다 자신의 스타일과 캐릭터가 있고, 음악을 바라보는 방식과 표현하고 느끼는 방식이 다를 것이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 그것을 음악에 투영해 보는 것. 다른 분야에 관한 공부나 사람들과의 만남 등 지금 내 앞에 놓인 악보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것을 배우는 시간도 중요하다. 이렇게 쌓인 시간과 경험을 통해 작품에 대한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첼로의 가능성을 탐구하다

얼마 전 새 앨범(#CelloUnlimited)을 발매했다.

첼로 레퍼토리를 탐구하는 것은 언제나 즐겁다. 특히 솔로 음반 작업은 작곡가들이 실제로 악기의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볼 수 있어 의미 있다. 이번 음반에는 내가 처음으로 첼로를 위해 작곡한 곡도 수록했다, 그동안 카덴차를 쓰긴 했지만, 이번에는 온전히 독주를 위해 만들었다. 머릿속 수만 가지의 아이디어를 빈 종이 위로 그려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던지, 이번 작업을 통해 작곡가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졌다.

음반에 수록된 레퍼토리는 어떻게 구성했나.

18세기 초반 바흐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작곡한 이후 그 어떤 작곡가도 첼로 독주를 위한 작품에 도전하지 않았다. 1915년 헝가리 출신의 작곡가 졸탄 코다이가 그의 거대한 솔로 소나타를 작곡할 때까지 이 장르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30여 분에 달하는 코다이의 소나타는 마치 거대한 에베레스트산처럼 높이 솟아오르며 첼로 독주곡이란 장르의 또 다른 시작을 알렸다. 프로코피예프와 힌데미트, 헨체 등 앨범에 수록된 또 다른 작품들은 아주 개인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졌다.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음악들이며 수년간 전 세계를 돌며 여러 차례 연주했던 작품이다.

이 외에도 조지 크롬, 파블로 카살스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번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작품은 작곡가들의 초기작에 속한다. 크롬과 힌데미트의 첼로 소나타는 그들의 20대에 작곡된 것이고, 코다이 또한 소나타 Op.8을 작곡할 당시 겨우 33세였다. 헨체의 ‘세레나데’도 그의 나이 26세에 작곡한 것이고. 젊은 나이에 독주 악기로서의 첼로의 매력에 끌려 그 잠재력을 탐구하고자 했던 작곡가들의 조합이 흥미롭다.

이 음반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첼로가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가졌는지, 무엇을 표현할 수 있는지 듣고 놀랄 것이다. 모든 작품에는 그 당시 작곡가들이 영향을 받았던 음악적 스타일이 담겨있다. 그 다양한 목소리가 첼로를 통해 나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수많은 음반 작업을 이어왔다. 이런 작업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보물처럼 귀중한 첼로 레퍼토리들을 녹음할 수 있어 감사하다. 녹음 작업을 통해 음악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해석도 더 심화되는 것을 느낀다. 한편으론 모든 음악을 항상 새롭게 바라보려 한다. 음악과 항상 처음 만나는 것처럼 무대를 선보이는 것이 내 목표다. 오래된 방식이나 해석,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첫 만남의 설렘으로 새롭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공연장에는 언제나 내가 연주할 곡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녹음과 공연을 통해 새로운 접근 방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020년에 바흐를 다시 녹음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바흐 이외에 다시 작업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바흐와 베토벤은 모든 음악의 중심에 있다. 이 두 작곡가의 작품을 20년 동안에 다시 녹음할 계획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

음악의 가치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음악은 우리의 내면세계와 연결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음악을 나누며 더 큰 공감을 얻는 법을 배운다. 물론 이 외에도 음악에는 무수히 많은 가치가 존재한다.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술적이고 창조적이며 영적인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행운을 지닌 사람. 굉장한 축복이다.

서울시향 협연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동시대 예술가 중 당신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아주 많다. 영화와 음악, 음식, 문학 등 대체로 모든 예술에 열려있고, 이러한 다른 장르들을 통해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한다. 현대음악 작곡가인 터니지부터 앤디 워홀, 찰리 채플린까지 모든 것이 새로운 창을 열어줄 수 있다.

보드나 그라피티 등의 취미생활도 즐긴다고.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는 열린 태도와 마음가짐이 내게 가장 중요하다.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있다면 시도해 본다. 무언가를 그려본다거나 혹은 이번 앨범에서처럼 작곡을 해본다거나. 한번 시도해 보는 것이다. 스포츠도 즐긴다. 축구나 스키, 테니스 등의 운동은 음악가로서 건강을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가.

도전을 즐기는 편이다. 음악에 있어서는 많은 작품들이 세상의 첫 빛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요즘은 독일 작곡가 외르크 비트만의 현악 4중주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2020년 1월 안네 소피 무터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와 뉴욕에서 선보일 완전히 새로운 언어다.

 

이미라 기자 사진 백상현(fij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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