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빅 피쉬’

환상과 현실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월 6일 10:42 오전

REVIEW

2019년 12월 4일~2월 9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연극 ‘에쿠우스’는 다이사트 박사의 마지막 대사로 유명하다.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삶의 절정과 환희를 알고 있는 알런을 현실이란 세계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인가에 대한 독백이다. 피터 셰퍼는 실제 말의 눈을 찌른 아이에 관한 충격적인 사건을 듣고 이 작품을 처음 구상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훨씬 낭만적이긴 하지만 뮤지컬 무대에서도 엇비슷한 환상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 있다. 얼마 전 국내 최초로 막을 올린 뮤지컬 ‘빅 피쉬’다. 늘 허풍과 과장 속에 사는 아버지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아들의 묘한 긴장과 교감이 무대 특유의 환상성과 어우러져 여운이 긴 뒷맛을 남긴다.

뮤지컬 ‘빅 피쉬’는 영화가 원작인 무비컬이다. 독특한 색감과 이미지, 기괴한 소재를 다루기로 유명한 팀 버튼 감독이 2003년 발표했던 작품이다. 팀 버튼의 활동영역은 영화계가 주 무대이지만, 그의 콘텐츠들은 무대와 영상을 오가며 다양한 활용을 경험케 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1990년 발표한 ‘가위손’은 매튜 본의 댄스 뮤지컬로 탈바꿈되기도 했고, 2005년 만든 ‘찰리와 초콜릿 공장’도 ‘시스터 액트’ ‘시애틀의 잠 못 드는 밤’ ‘헤어스프레이’ 등으로 유명한 마크 셔먼이 뮤지컬로 선보인 바 있다. 지난여름 개막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비틀쥬스’ 역시 1988년 팀 버튼이 발표했던 동명의 영화가 원작이다.

스크린과 무대를 넘나드는 인기는 그의 작품에 담긴 독특하고 인상적인 비주얼과 특이한 소재가 주는 참신함에 기인한다. ‘팀 버튼스럽다’는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로 다른 작품들에서 만날 수 없는 특별함이 존재한다. ‘빅 피쉬’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가 제작된 당시 실제로 팀 버튼은 아버지를 여의는 경험을 했는데, 작품에 담긴 페이소스나 그리움의 감수성은 그의 개인적 체험과 무관하지 않다는 후문도 있다.

‘빅 피쉬’가 무대용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은 2013년이다. 2000년대 가장 왕성한 활동을 선보이고 있는 여성감독인 수잔 스트로만이 연출과 안무를 맡았고, 시카고 오리엔탈 극장에서의 트라이 아웃 공연을 거쳐 브로드웨이 닐 사이몬 극장에서 첫선을 보였다. 많은 무비컬이 그러하듯 뮤지컬 ‘빅 피쉬’ 역시 단순한 영상의 무대에 머물지 않고, 영화의 원작이었던 1998년 작 존 어거스트의 소설까지 아울러 무대만의 묘미와 감상을 이끌어내는 실험을 더했다. 2017년 호주 시드니 프로덕션에 이어 같은 해 영국 런던에서도 막을 올려 인기를 끌었다.

독특하게도 이번에 막을 올린 한국 공연은 영미권과는 다른 매력을 지닌다. 영화에서도 그랬듯 초연에서는 주인공인 에드워드 블룸 역할을 젊은 배우와 원숙한 배우 두 명이 소화했던데 반해, 이번 우리말 공연에서는 한 배우가 50여 년의 세월을 소화해내는 다양한 연기 변신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배우의 폭넓은 연기를 즐기는 국내 관객의 취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소설과 영화에서 구현된 판타지를 무대라는 현장성 안에서 재연하는 비주얼적인 재미도 특별하다. 요즘 대한민국 라이선스 뮤지컬에서 만날 수 있는 ‘로컬화’된 완성도와 예술성의 조화를 이 작품에서도 만끽할 수 있다.

주제가 격인 ‘이야기의 주인공(Be the Hero)’은 한참이나 입가를 맴돈다. 1막 마지막, 무대 깊숙이 펼쳐지는 수선화 꽃밭과 함께 낭만적인 이 작품의 매력을 잘 전달해준다. 올겨울, 가장 따뜻한 뮤지컬이다.

원종원(뮤지컬 평론가)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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