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객석’ 기자들이 꼽은 화제의 무대 (2) 뮤지컬 국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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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1월 6일 10:34 오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유령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낭만

2019년 12월 13일~2월 9일 부산 드림씨어터

 

©에스앤코

국내에서 소위 ‘대작’으로 불리는 라이선스 뮤지컬의 공연 순서를 고려했을 때, 서울을 거쳐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특히 장기간 공연되는 서울과 달리 지방의 공연 기간은 턱없이 짧다. 이러한 통념을 바꾸고자 시도하고 있는 곳이 기획사 클립서비스로,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의 첫 공연지는 대구였으며, 7년 만에 공연되는 ‘오페라의 유령’ 역시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시작됐다. 공연 기간도 약 2개월로, 꽤 길다.

단순히 첫 공연지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지역문화발전’이라는, 추상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하려는 현실적인 행동지침으로 풀이된다. ‘대작’들이 지방에서 공연되는 경우, 수도권으로부터의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실제 ‘오페라의 유령’ 부산 프레스 투어에는 장거리라는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기자가 참여해 공연의 열기를 실감케 했다. 지역의 공연장을 알리고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데, 양질의 공연을 선공개하는 것이야말로 획기적인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수도권에서의 관심뿐 아니라 부산 관객들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첫 공연이 열린 주말 기준으로, 약 60%의 관객이 부산 시민이라는 의견이 나올 만큼 로컬화에 성공했다. 다만, 아직 완공되지 않은 문현금융단지에 위치해 있어 주변 환경이 어수선했다. 올해도 국내 초연작인 ‘워 호스’ 뿐 아니라 이전 공연에서 서울 다음으로 긴 공연 기간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캣츠’의 장기 공연을 앞두고 있어, 머지않아 더욱 정돈된 공연장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이제는 공연이다. 1986년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1988년 브로드웨이 초연 이후 30년 이상 두 곳에서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유일한 작품인 만큼 짙은 작품성을 자랑했다.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3개의 오페라 작품들이 극중극 형식으로 등장하는데,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음악은 극의 통일성을 해치지 않고 조화롭게 녹아들었다. 특히 2막 오페라 ‘돈 주앙의 승리’에서 흘러나오는 듀엣곡 ‘더 포인트 오브 노 리턴’에서 유령의 실체가 공개되는 순간까지는 급박함을 자랑했다. 전체적인 스토리 라인은 다소 익숙하지만, 유령의 과거사를 어설프게 드러내는 것보다는 끝까지 미스터리한 존재로 남겨두는 것이 작품의 완성도에 기여했다. 극의 마지막, 크리스틴을 떠나보내고 망토를 뒤집어쓴 유령이 급작 사라지는 장면은 마법과도 같았다.

공연의 백미로 알려진 거대한 샹들리에의 추락 장면이나 지하 호수 사이로 등장하는 나룻배 장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다만, 최근 화려해진 무대 기술이나 영상 등에 익숙해진 관객이라면 듣고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라는 아쉬움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이러한 관객을 사로잡고자 이번 공연에 등장하는 샹들리에는 경량화의 과정을 거쳤다. 알루미늄 등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여 2012년 내한공연보다 추락 속도를 1.5배 빠르게 함으로써 박진감을 제공한다. 객석 1열부터 약 12.5m 높이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분노한 유령의 조종으로 추락한다. 3m/s의 속도로 움직이도록 설계된 샹들리에는 곡선을 그리며 무대로 내리꽂힌다. 위협적인 유령의 모습을 음악적으로도, 무대적으로도 완벽하게 구현했다.

홀연히 사라진 유령을 떠나보내며 남은 것은 그의 음악이었다. 그리고 크리스틴의 진심 어린 키스에 모든 분노가 사라진 채 그녀를 떠나보내는 한 명의 인간이었다. 흉측하지만 이 정도로 낭만적인 유령이라면! 극장을 찾은 사람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듯하다.

권하영 기자

 


 

음악극 ‘붉은 선비’

 

국악극이라는 복잡한 실타래

11월 19~23일 국립국악원 예악당

 

국립국악원은 ‘현의 노래’(2016) ‘꼭두’(2017) ‘까막눈의 왕’(2018) 등을 국악극(혹은 음악극이나 소리극)이란 이름으로 제작해왔다. 지난 연말 예악당 무대에 오른 음악극 ‘붉은 선비’(2019)는 그 연속 선상에 있다. 2년 만에 국립국악원 산하 네 개 단체(정악단·민속악단·무용단·창작악단)가 모인 대형 프로젝트였다.

‘붉은 선비’는 한 여인이 자연의 금기를 어긴 남편을 구하기 위해 대망신(구렁이신)에 맞선다는 내용의 한국 신화 ‘붉은선비와 영산각시’를 바탕으로 한다. 이는 망자의 넋을 기리며 산천에 기도하는 함경도 산천굿에서 불리는 무가를 서사화한 것이다. 국립국악원은 ‘꼭두’에서 영화와 협업을 시도하며 영화감독 김태용에게 각본과 연출을 맡겼듯, 이번엔 뮤지컬 ‘김종욱 찾기’ ‘풍월주’의 연출가 이종석을 기용했다. 판타지 음악극을 표방하여 뮤지컬의 화려한 외형을 빌리기 위해 뮤지컬이란 장르를 택했다고 짐작된다. 국악과 다른 장르를 매개해온 작곡가 이지수가 음악감독을 맡았다. ‘붉은 선비’는 마치 이전까지의 국악 공연과 차별화하려는 것처럼 제작발표회부터 새로운 형식을 취했다. 뮤지컬 리뷰 채널을 운영하는 유튜버를 사회자로 섭외해 출연진 및 제작진과 토크쇼처럼 진행한 것이다. 국악극에서 뮤지컬에 더욱 무게중심을 둔 데서 대중적인 국악, 젊은 국악을 향하는 국립국악원의 방향성이 엿보였다.

뮤지컬, 국악에 화려함을 입히다

우선 ‘붉은 선비’는 동시대 관객과의 공감대를 넓히도록 옛 신화를 무대화하며 각색의 과정을 거쳤다.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바꿔 선비를 고등학교 선생님 이지홍으로 재설정했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라는 원작의 메시지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환기했다. 그렇게 쓰레기 매립지였던 생태공원으로 체험학습을 하러 갔다가 산불에 조난당한 선생님이 저승세계에서 겪는 이야기라는 시놉시스가 탄생했다. 또한 외부 연출가의 작품으로는 이례적으로 전 배역을 국립국악원 소속 단원들로만 캐스팅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배역을 두고 이승에서는 정악단 단원이 노래로, 저승에서는 무용단 단원이 춤으로 표현하는 1역 2인의 연출 방식을 택했다. 무대는 어떤 국악 공연보다 화려했다. 몇 차례의 무대 세트 전환, 현장감이 느껴지는 생생한 음향효과, 환상적인 분위기를 배가하는 영상효과 등등. 특히 영상의 경우 오히려 전통예술과 첨단기술의 만남을 앞세웠던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처용’보다 퀄리티와 기술의 활용 측면에서 돋보였다.

정악단·민속악단·창작악단으로 구성된 악단은 피트가 아닌 무대 위에서 국악의 존재감을 뿜어냈다.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음악감독 이지수는 “이야기상 흥미로운 부분엔 민속악을 배치하고, 정악으로는 낯선 판타지 세계를 표현했으며, 급박한 위기상황 등 감정이 고조되는 장면은 창작음악으로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붉은 선비’는 삽입곡을 고르는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이북에서 전해 내려온 신화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풍구소리’ ‘산염불’ 등 황해도 지방의 민요를 주로 사용했다. 지홍이 첫 번째 금기를 어기는 장면에서는 ‘화초타령’을 삽입했다. 저승세계에서 금기를 어긴다는 것은 이승으로 회귀할 수 없음, 즉 죽음을 의미한다. ‘화초타령’은 굿청을 꾸밀 때 사용되는 살잽이꽃을 만들며 부르는 곡이다. 해당 장면에서 무용수들이 쓰고 나오는 겹겹의 둥근 모자가 이 살잽이꽃 모양을 본뜬 것으로, 살잽이꽃은 죽은 이도 살리는 생명의 꽃을 상징한다. 지홍이 살아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아내 영산의 마음을 대변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감동 없는 볼거리, 그리고 이 시대 국악극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이렇게 많은 볼거리, 들을거리에도 불구하고 감흥이 생기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전통과 현대, 계승과 창작, 국악과 다른 예술 사이에 벌어진 이음새는 ‘붉은선비’가 국악극이든 혹은 다른 무엇이든 간에 총체적인 극으로서의 완성도를 낮췄다.

첫째, 빈약한 스토리텔링 탓에 특별한 ‘신화’는 일반인을 향한 ‘서사’가 되지 못한 채 현실과 동떨어진 교조적 메시지로만 남았다. 신화를 소재로 한 많은 창작품이 겪는 시행착오이기에 예측 가능한 실패라 할 수 있겠다.

둘째, 모든 출연진을 국립국악원 단원으로 구성하는 순혈주의가 공연으로서 국악극의 질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의 꼴을 취해서 국립국악원 단원들은 뮤지컬식 연기와 노래를 소화해야 했으나, 전문 분야가 아닌 만큼 아마추어적인 면모가 드러났다. 부자연스러운 말투와 과잉된 감정 연기는 종종 부담스럽게 다가왔고, 갑작스레 시작되는 이질적인 뮤지컬 넘버는 중간중간 맥을 끊었다.

셋째, 무엇보다도 ‘붉은 선비’ 제작진은 전통예술 활용 자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됐다. 국악극은 국악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대중을 타깃으로 한다.

일반 관객은 국악을 포함한 공연을 직관적으로 느낄 뿐, 그 너머의 의미까지 알기 어렵고 알 필요도 없다. 예컨대 “전통신화에 기반을 두었으니, 개연성이 부족한 스토리는 정상 참작해주자”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창작)국악극’이란 용어가 전통공연예술계에서 독립된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가 활발히 쓰이기 시작한 것이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의 ‘창작국악극 공모전’(2014) 등을 통해 공신력 있는 장르로 안착하고 있다. 개념의 명확성을 따져보지 않을 수는 없으나, 중요한 것은 국악극의 불분명한 미학적 가치는 여러 작품의 지속적인 생산을 통해 점차 분명함을 띠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새롭게 창작해야 한다. 이는 온고지신의 보편적 상식을 말하는 듯하지만, 그 대상이 전통공연예술이 되면 쉽게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된다. 지금 시대에 전통문화를 어떻게 보존하고 전승해야 하는가의 물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그 주체가 전통문화예술의 보고(寶庫)를 자처하는 국립국악원일 때는 더욱이 그렇다.

이러한 관점에서 ‘붉은 선비’로 들여다본 국악극은 정의 내리기도 전에 전통과 창작 사이에서 꼬여버린 실타래 같이 느껴진다. 엉킨 실타래는 하나씩 풀어가야 한다. 결국은 극이다. 감동 있는 공연이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게 하는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박서정 기자 사진 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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