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피스트 자비에르 드 매스트로, 현 끝에 반짝이는 아르페지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5월 18일 9:00 오전

HIS WAY

 

현 끝에 반짝이는 아르페지오

 

하피스트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

 

다양한 연구로 하프의 가능성을 넓혀온 그의 음악적 행보

 

©Gregor HohenbergSony Classical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강혜정 듀오 리사이틀

5월 31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포레 ‘달빛’,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외

 

 

“아홉 살에 사랑에 빠졌어요. 하프를 가르치는 사람이었죠. 그녀가 좋아하는 악기를 나도 잘해보고 싶어 시작했어요. 결국 난 하프와 사랑에 빠져버렸지만요.”

거리낌 없이 이런 고백을 들려주는 걸 보니 영락없는 ‘낭만의 나라’ 프랑스 출신인가 싶다.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1973~)라는 그 이름도 어찌나 부드러운 소리를 지녔는지! 그런데 그의 음악적 행보는 곧장 다른 길로 안내한다.

한때 동유럽 지역의 슬라브 문화에 흠뻑 빠진 그는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중 ‘몰다우’를 직접 하프를 위한 작품으로 편곡해 타이틀곡으로 실은 음반 ‘몰다우’(2015, 소니 클래시컬)를 발매했다. 우크라이나 출신 작곡가인 글리에르의 하프를 위한 협주곡은 그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데뷔 이후 꾸준히 관심을 보여 온 스페인·라틴 음악에 대한 열정은 2018년 발매한 음반 ‘스페인 세레나데’로 터져 나왔다. 스페인의 캐스터네츠 연주자인 루체로 테나와의 듀오 영상은, 탱고 무용수와 함께한 음반 재킷 사진이 주는 신선함의 몇 배쯤 될 터이다. 그렇게 그는 프랑스를 벗어나 항해를 계속했다. 이토록 거대한 악기, 하프와 함께.

다양한 음악에 대한 관심은 곧 하프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다. 악기의 음색과 더불어 연주 편성의 영역도 대폭 확장시킨 것. 봄의 끝자락을 붙잡고 한국을 찾는 자비에르 드 매스트르는 하프와 성악의 이색적인 만남을 선보인다. 소프라노 강혜정과 함께 포레 ‘달빛’,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 슈만 ‘호두나무’, 리스트 ‘나이팅게일’ S250 등 여러 가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여전히 하프 음악의 새로운 영역을 찾고 있다는 그에게 이 악기의 매력을 물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여러 공연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을 것 같다. 근황은 어떤가. 유럽 전역에 코로나19의 확산이 심각해지기 시작했을 때, 호주에서의 투어 일정을 막 끝낸 참이었다. 상황이 나빠 프랑스로 돌아오는 게 쉽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프랑스 대통령의 연설을 들었는데, 모두가 자택에 머물러야 한다더라. 스페인·스코틀랜드·미국·러시아 등에서 연주가 예정돼 있었는데 말이다. 정말 모든 게 취소되어버렸다! 안타깝지만, 이 시기를 활용해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습하고 있다. 지난 몇 달간 굉장히 바쁘게 지냈으니 휴식도 취하면서.

일찍이 하프를 시작했지만, 대학에선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학교에서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었다. 부모님께서는 가족 중 음악가가 나온 전례가 없어서 음악을 한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정치학과 경제학에 관심이 있어 결국 프랑스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학교 중 한 곳인 파리 정치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언제나 알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음악이었다는 사실을!

1998년 미국 블루밍턴 하프 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빈 필하모닉에 최초의 프랑스인으로 입단했다. 빈 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단이다. 어릴 때부터 매년 신년 음악회를 보며, 이 악단의 단원이 되는 꿈을 꿨다. 그곳에서 일한 10년간 즐거웠다. 아르농쿠르, 바렌보임과 같은 지휘자 아래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오페라 무대에 서는 성악가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어간 경험은 밑거름이 되었다.

드뷔시의 작품으로 꽉 채운 ‘별의 밤(Nuit D’Etoiles)’(2008/RCA)처럼 프랑스의 낭만을 전하는 음반을 여럿 발매했다. 한편, 로드리고·파야·그라나도스 등 스페인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해 실은 ‘아란후에즈’(2010/RCA)가 나오기도 했다. 모차르트·하이든·비발디 등 고전시대 작곡가에 헌정한 음반들이 있는가 하면, 장 밥티스트 크럼폴츠나 요한 다비드 헤르만 등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의 하프 작품도 소개했다. 일련의 디스코그래피는 ‘하프’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는데. 하프는 놀라울 정도로 넓은 색채의 스펙트럼을 가진 악기다. 그럼에도 ‘천사 같은’ ‘살롱에 어울리는’ 등의 수식어를 줄곧 벗지 못했다. 그 오명을 벗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해왔다. 하프는 사실 해머나 활 없이 손가락으로 직접 음을 만들 수 있는, 몇 없는 원초적인 서양 악기 중 하나다. 특히 스페인·라틴 음악에 굉장한 애정을 품고 있다. 하프는 이 음악에 특히 잘 들어맞는 악기다. 마치 피아노의 넓은 음역대와 다이내믹한 기타의 음색 사이에서 완벽한 타협점을 찾은 것 같다.

하프가 독주 악기로 크게 성장하는데는 20세기 스페인 출신의 하피스트 나카노르 사발레타의 공헌이 컸다. 그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했나? 노장이 된 사발레타를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악기를 계속해야 할지 주저하며 정치·경제 분야로 돌아갈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 고민을 들은 그는 한 마디를 건넸다. “세상에 대단한 변호사들은 정말 많지만, 당신 같은 하피스트는 유일무이해요!” 그 한 마디에 결단을 내렸다.

직접 작품을 편곡해 연주하곤 한다. 하프는 청중의 마음을 금세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을 지녔다. 우리가 이를 잘 모르고 사는 이유는 비교적 레퍼토리의 폭이 좁고, 유명 작곡가의 작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주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드뷔시·하이든·모차르트·스메타나·슈트라우스 등 유명 작곡가의 작품들을 편곡해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처음 작업한 작품은 스메타나 ‘나의 조국’ 중 ‘몰다우’였다. 관현악 작품으로 굉장히 잘 알려져 있는데. 사람들은 이 작품이 하프 독주에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발견할 때마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프는 연못·폭포·님프 등에 연관된 음색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악기이지 않나. 하프로 잡지 못하는 코드는 좀 더 자유롭게 풀어냈다. 예를 들면 반짝이는 아르페지오로 흩뿌리는 거다. 편곡하기 굉장히 쉬운 패시지도 있었다. 원곡에서는 플루트로 연주되는, 고르고 유연한 사운드가 특징인 곡의 도입부가 그랬다. 편곡할 작품을 선정할 때는 굉장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기술적으로 연주 가능한 것으로만 바꾸는 게 아니라 음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작품에 새로운 빛을 들이는 작업이기에 보다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최근 동시대 작곡가에게 새로운 하프 레퍼토리를 의뢰하고 초연하며 하프 음악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내 음악 세계가 좀 알려지고 나서는 현대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제는 잘 안다. 오늘날 현존하는 위대한 작곡가들을 독려해 이 악기를 위한 작품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 바로 나의 의무라는 것을. 작곡가 카야 사리아호는 내게 아름다운 협주곡 ‘트랜스’(2015)를 헌정해주었다. 이미 전 세계 10개 이상의 악단과 함께 연주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페테르 외트뵈시에게 작품을 의뢰했는데 그가 승낙해 굉장히 설렌다.

이번 내한 공연은 어떻게 꾸밀 예정인가? 소프라노 강혜정과 함께 여러 가곡을 연주한다. 사람의 음성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악기다. 그중 소프라노와 하프의 조합은 가장 독창적이면서도 조화롭다. 현재까지 소프라노 디아나 담라우·바바라 보니·캐슬린 배틀 등과도 여러 차례 협연해왔다. 다양한 곡들을 통해 하프에서 가능한 모든 음색을 선보이고자 한다. 내 예술의 모든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바닷가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여럿이다. 여가 시간에는 주로 바다에서 수상 스포츠를 즐긴단다. “I’m a water person”이라 강조하니, 그 끝을 알 수 없는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흐르는 물의 신비로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악기 하프는 그에게 운명이 아니었을까.

글 박찬미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하프 악기 탐구

47현 무게를 감당한

천상의 소리

 

 

초보자를 위한 레버 하프

하프는 크게 페달이 있는 하프와 페달이 없는 하프로 나뉜다. 어린아이나 직장인이 취미로 하프를 배울 때 처음 접하게 되는 하프는 페달이 없는 레버 하프. 발로 페달①을 밟는 대신 레버②를 손으로 올리고 내려 반음을 조절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하프는 발로 페달을 밟아 레버를 조정하도록 개량된 것다. 온음을 한꺼번에 올리지 못하고 반음씩만 올릴 수 있는 게 단점이다.

① 발로 밟는 페달

② 레버

 

콘서트용 그랜드 하프

레버 하프를 연주하는 사람은 하퍼라고 부르는데, 페달이 달린 하프를 연주할 줄 알아야 드디어 하피스트로 불릴 수 있다. 더블 액

션 하프라 불리는 콘서트용 하프는 크게 기둥·목·울림판·받침대·몸통으로 구성되며, 악기가 작을수록 울림판과 몸통이 작아지고 음량도 줄어든다. 콘서트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47현 외에 36·40·42현 등 줄의 수도 다양하다. ‘페달이 달린 하프’라고도 부르며, 발로 페달을 밟아 레버를 움직일 수 있게 된 1차 개발에 이어 온음을 올릴 수 있게 된 2차 혁명이 이루어진 후 현재까지 그 형태가 지속된다.

 

디스크③가 돌아가면 각 디스크에 부착된 두 개의 포크④가 줄을 잡아당겨 현의 음높이를 높여주는데, 이러한 디스크가 아래위로 두 개씩 달려 있어 온음 이동이 가능해졌다. 계이름마다 하나씩의 전용 페달이 있어 초보자들은 어떤 페달을 밟아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프로 연주자들도 무대 위에서 ‘오로지 감각’으로만 본능적으로 밟을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사실 큰 실수들이 생기기도 한단다.

③ 디스크   ④포크

 

다양한 주법

말러 교향곡 1번 중 하프에서 ‘턱턱’ 막힌 소리가 난다. “에투페라는 기법이에요. 보통 하프는 현의 가운데를 뜯기 때문에 진동이 멈추지 않아 피아노처럼 정확한 스타카토 효과를 내지 못합니다. 현을 뜯자마자 손바닥으로 막아 울림을 방지하여 꽉 막힌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기타처럼 울림을 적게 해 코맹맹이 같은 소리를 내려면 현 아래쪽에서 뜯으면 된다. 이 주법의 이름은 프레 드 라 타블. 현대곡이나 재즈에 많이 사용된다. 하프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아름다운 아르페지오는 한 번에 8화음까지 낼 수 있다. 여덟 개의 손가락만 이용하기 때문인데, 음의 간격이 같을 경우엔 연주하기 쉽지만, 간격이 달라지면 어려워진다.

 

 

현대음악의 친구

하프는 타악기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손톱을 이용해 날카로운 소리를 낼 수도 있고, 심지어 연필이나 스크루 드라이버를 사용하기도 한다. 종이를 끼워 천둥 소리를 흉내 내기도 한다. 솔로 레퍼토리가 많지 않은 하프 연주자들에게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관심은 고마울 수밖에 없을 터. “악기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가끔 황당한 주문을 할 때가 있어요. 어느 날은 한 친구가 유리 조각으로 그어봐달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되물었죠. ‘네 바이올린을 유리 조각으로 연주하라면 하겠어?’라고요. 그럴 때면 친구들을 연습실에 한가득 데려와 ‘하프 특강’을 열어주곤 했죠.”

 

*객석 2014년도 3월호 악기탐구 시리즈에서 발췌·재구성

까다로운 악기 관리법

하프는 악기에 대한 일반 상식과 살짝 비껴가는 부분이 많다. 하프도 일종의 현악기지만, 바이올린과 같은 다른 현악기와 달리 최근에 만들어진 악기가 더 좋다는 것. 이 점은 관악기와 비슷한데, 관악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금으로 도색되어 있다고 해서 값이 훨씬 비싸지거나 소리가 더 좋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취향에 따라 금색과 원목 중에 선택한다.

몇천만 원을 호가하는 악기의 수명을 최대한 늘리는 법은 까다로운 특성을 잘 어루만져주는 것뿐. 겨울에도 히터를 틀지 못하고 1년 내내 같은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방에서 보관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환경을 유지해도 주기적으로 전문가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

 

기타 대신 하프!

기타와 하프는 비슷한 점이 많다. 줄을 튕기는,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현악기라는 점. 그리고 특별한 기술을 배울 필요 없이 양손으로 악기를 감싸 안고 쉽게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초심자를 위한 취미용 악기로 적격이다. ‘비싸다’는 하프에 대한 편견의 소리가 여전히 들려오지만, 제자를 키우는 데 전념하던 과거에 비해 학원을 차리는 등 대중화에 앞장서는 하프 연주자들이 많아졌다. “다른 현악기는 활을 이용하고, 기타도 손톱이나 피크를 이용하는데 하프는 손끝을 자극해서 치매 예방에 아주 좋습니다. 얼마 전 홍콩에 다녀왔는데, 홍콩에는 취미로 즐기는 중장년층 인구가 아주 많아요.”

 

 

몸체를 두드려 타악기로도 활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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