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선우예권 WITH MOZART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월 11일 9:00 오전

WITH MOZART

 

서른둘, 모차르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모차르트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와 함께했다. 음반에 담지 못한 모차르트 이야기

 

 

푸른 별을 가진 영혼, 시간의 틈에 끼워 놓은 아침을 지닌 영혼, 꿈과 노스텔지어의 옛이야기가 소곤대는 정결한 구석들을 가진 영혼은 가장 높은 하늘과 맑은 물길을 품고 있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이다. 1756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35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모차르트. 그의 음악은 죽음으로부터 2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우리 곁에 맴돈다. 어떤 음악가는 그의 음악과 함께 하며 인생의 중요한 순간과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30대 중반에 별이 된 모차르트와 이제 서른둘의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만남도 그러하다.

“30대에 들어서며 모차르트가 조금씩 더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2016년 미국에서 독일로 생활을 옮기며 찾아온 변화도 영향을 주었죠. 조용히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들이 삶과 음악에 여유를 선물해주었습니다. 바로 코앞에 두고 보고 듣던 제 음악을 한걸음 뒤에서 볼 수 있게 해주었달까요.”

두 사람을 둘러싼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서로를 향한 시각은 둘 사이의 기나긴 시간을 관통하고 있다. 그런 선우예권에게 모차르트는 유난히 더 잘 맞는 옷처럼 보인다. 모차르트는 그의 중요한 순간마다 함께했다. 커티스 음악원에서의 유학 초반, 전 세계에서 모인 재능 있는 친구들 사이 주눅 들어 있던 그에게 처음으로 음악적 자신감을 준 것도 모차르트(소나타 13번)였고, 반 클라이번 콩쿠르 세미파이널 무대에서 함께한 것도 모차르트(협주곡 21번)였다. 콩쿠르 우승 1년 뒤, 같은 무대에서 선보인 리사이틀에서도 그는 모차르트를 선택했다. 그 뒤엔 항상 좋은 결과가 따랐다.

“성격적인 면에서 모차르트와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는 철없고 아이 같은 면 외에도 예민하게 요동치는 감정을 지녔으며, 당돌하고, 직설적이고, 솔직했죠. 이런 캐릭터들에 많은 부분 공감됩니다. 저 또한 솔직하고 음악에 있어 고집스러운 편이거든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잘 흔들리지 않고 결국에는 제 생각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편이죠.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상대를 설득하기도 하고요.(웃음)”

감정의 소용돌이 안에서
클래식 음악에서 ‘천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모차르트다. 그는 지금까지도 가장 축복받은 재능의 상징이다. 그러나 당연히 ‘타고난 것’이라 여겼던 그의 천재성은 시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그의 음악적 탁월함은 생물학적인 것만이 아닌, 그가 살아내야 했던 환경과 시대에 적응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모차르트의 음악 안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요동칩니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악장 안에도 얽히고설킨 복잡한 드라마가 있죠. 많은 사람이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 같은 후기 낭만 시대의 작품을 더 감성적이고 예민하게 느끼지만, 제겐 모차르트가 더욱 가슴으로 다가옵니다. 단순한 멜로디 라인에도 인생이 담겼고, 특히 느린 악장을 들으면 살며 느끼는 모든 감정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멜로디 안에 느끼는 다양한 감정이란 여러 경험과 감정의 기억들이 축적되어야 가능한 일일 테다. 선우예권은 어떤 시각의 통로로 모차르트 음악에서 한 편의 인생을 보았던 것일까.

“단순한데 복잡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사람에게는 단순하게, 복잡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음악이 모차르트죠. 그의 음악을 연주할 때면 세포 하나하나가 쉴 새 없이 반응합니다. 2~3마디마다 변화무쌍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하나의 감정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채롭죠. 예컨대 ‘행복’이란 감정도 단순히 기분 좋고, 유쾌하고, 해맑게만 보는 것이 아니라, 때론 귀엽게 혹은 짓궂게 나타냅니다. 이런 미묘하고 다양한 변화들은 연주자에게 더욱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고요. 모차르트 음악을 ‘단순’하다 말하지만, 사실 굉장히 ‘복잡’합니다.”

연주자가 한 작곡가를 이해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와 관련된 수많은 문헌을 읽고, 머물렀던 장소를 직접 찾고, 음악 자체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한다. 그는 후자를 통해 음악적 영감을 얻곤 한다.

“모차르트는 악보 안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세하게 제시합니다. 음의 배열이나 화성적 진행만 보아도 그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 수 있죠. 모차르트의 악보를 특히 더 많이, 더 깊이 들여다본 이유입니다. 악보를 통해 답을 찾아가곤 하지만, 그 위에 무언가 적어두는 편은 아닙니다. 기록하는 순간, 노트 안에 제 생각이 갇히는 것 같아서죠. 오히려 비움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달까요.” 

 

 

음반으로 만난 아홉 모차르트  

지난해 12월, 선우예권은 첫 스튜디오 앨범 ‘모차르트’(Decca)를 선보였다.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3년만. 이번 녹음은 독일 노이마르크트 홀에서 5일간 진행됐다. 공간의 울림이 적당할 뿐 아니라, 상주 조율사가 녹음 내내 함께해 피아노의 컨디션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워낙 명반이 많아 고민되었지만, 지금 제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모차르트가 분명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보편적으로 ‘모차르트는 어린 나이에 연주해야 잘 어울린다’고들 하죠. 그러나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순간순간 변하는 감정들, 그 모든 감정을 온전히 흡수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건 어느 나이에서도 가능한 일이고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며 회피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지난해 12월, 선우예권은 첫 스튜디오 앨범 ‘모차르트’(Decca)를 선보였다. 2017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이후 3년만. 이번 녹음은 독일 노이마르크트 홀에서 5일간 진행됐다. 공간의 울림이 적당할 뿐 아니라, 상주 조율사가 녹음 내내 함께해 피아노의 컨디션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워낙 명반이 많아 고민되었지만, 지금 제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모차르트가 분명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보편적으로 ‘모차르트는 어린 나이에 연주해야 잘 어울린다’고들 하죠. 그러나 ‘어린아이 같다’는 것은 순간순간 변하는 감정들, 그 모든 감정을 온전히 흡수하고 진심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건 어느 나이에서도 가능한 일이고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고, 느끼는 감정에 솔직하며 회피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그의 음악적 신념은 2020년 12월 30일부터 2021년 1월까지, 6개 도시(대전·부산·대구·서울·울산·제주)로 이어지는 무대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공연에서는 모차르트와 함께 쇼팽을 연주할 예정이다. 쇼팽과 모차르트의 음악은 모든 사람이 쉽게 다가가고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보편적인 언어(Universal language)’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마지막 질문에 그는 “사는 동안은 평생 연주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답했다. 이 말을 듣고 문득 한 영상이 떠올랐다. 그 영상 속에는 등이 굽은 한 고령의 노인이 베토벤 월광 소나타 1악장을 연주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노래 ‘산타 베이비(Santa Baby)’로 유명한 미국의 작곡가 필립 스프링어(1926~)였다. 지그시 눈을 감고 연주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평생을 연주자로 산다는 것은 아마 가장 궁극적이면서도 어려운 목표일 테죠. 나이가 들며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칠 테지만, 음악에 대한 사랑과 열정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음악가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열정적인 연주를 선보이는 것. 제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삶의 모습입니다.”

글 이미라 기자 사진 마스트미디어


음악과 함께 읽는 그의 이야기

 

모차르트 | Decca DD41213(2CD)

 

“두 장의 CD로 구성했다. 1CD는 낮에 드라이브하며, 2CD는 저녁에 자신만의 공간에서 조용히 사색하며 들어보길 추천한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단어는 ‘위로’이다. 다양한 감정을 품은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해 삶의 위로를 얻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CD 1] 
Track 1 | 소나타 10번 K330   
첫날 녹음한 작품이다. 1·3악장은 발랄한 분위기의 댄스 리듬이 돋보인다. 순수하고 어여쁜 아이가 뛰노는 듯하다. 2악장은 반전의 분위기를 제시한다. 인생의 모든 굴곡을 겪은 노인이 자신의 인생을 회고하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현악적인 느낌을 준다.
Track 2 | 소나타 13번 K333 
커티스 음악원에서 처음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던 바로 그 작품! 다른 수록곡보다 조금 더 화려하고 선율적인 면모로 이목을 끈다. 이 곡의 2악장 역시 10번의 2악장과 분위기가 비슷하다. 소리에 집중한 순수한 울림이 목관악기를 연상케 한다.
Track 3 | 소나타 11번 K331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즉흥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1·3악장은 기악적 측면이 강하고, 2악장은 마치 오페라 아리아 같다. 각 변주에 담긴 다채로운 성격과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1악장이 가장 어려웠다. 녹음에만 무려 3일이 걸렸다. 모차르트의 아티큘레이션과 개성, 내가 원하는 소리 사이의 균형을 찾아가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여러 차례 녹음을 진행했는데 결국 첫 번째 테이크를 담았다).

[CD 2] 
Track 4 | 글라스 하모니카를 위한 아다지오 C장조 K356/617a 
Track 5 | 환상곡 C단조 K475 
같은 C조의 K356/617a와 K475를 나란치 배치했다. 이를 통해 베토벤보다 더욱 극과 극을 넘나드는 모차르트 음악 속의 상반된 캐릭터들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아다지오’는 신비로운 느낌을 담고 있다. 글라스 하모니카 소리를 위해 하늘에 떠 있는 소리를 상상했다. ‘환상곡’(K475)은 오페라적 요소로 가득하다. 10여 분의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이 펼쳐진다. 지상과 천상을 넘나드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매력적이다.
Track 6 | 소나타 16번 K545 
가장 대중적인 곡 중 하나. 1·3악장에서는 나만의 꾸밈음을, 1악장에는 악보에 없는 음을 살짝 추가했다. 2악장은 종종 앙코르로 연주할 만큼 좋아한다. 아주 짧지만, 많은 생각이 담겼다. 전체 녹음 중 이 곡의 3악장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모차르트 후기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고, 드라마틱한 요소도 있다.
Track 7 | 환상곡 D단조 K397  
오페라 ‘돈 조반니’의 극적인 느낌이 담겼다. 아리아적 요소도 다분하다. 단순한 아르페지오 구성으로 곡 전체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오프닝이 굉장히 특별하다.
Track 8 | 소나타 8번 K310 
8번의 2악장도 가장 좋아하는 부분 중 하나다. 환상곡 C단조처럼 모차르트의 상반된 모습이 확연하게 보인다. 폭풍우가 몰아치며 갈등이 고조되는 격정적인 작품이다. 만족스럽게 표현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Track 9 | 론도 A단조 K511 
음반 속에 담긴 자필 악보가 이 곡이다. 유일하게 헨레 판으로 연주했다(나머지는 베렌라이터 판). 악보 첫 부분에 “현악 4중주를 상상하라”는 노트를 남겼다. 보컬적 성향이 강하고, 악보 안에 표현해야 할 요소가 많아 템포를 조금 더 늦췄다. 지금 내게 가장 이상적으로 들리는 속도의 연주다. 

 

Pick! 선우예권 추천 책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저 (박미애 역) | 포노

 

“음반 녹음 이후 최근에 읽은 책이다. 일반적으로 생각지 못했던 모차르트의 다양한 면모를 제시한다. ‘신동’과 ‘천재’라는 타이틀 안에서 수많은 명곡을 남기며 짧은 생을 살다 간 모차르트. 장난기 어린 얼굴 뒤 누구보다 고단하고 한편으론 불운한 삶을 살았던 그의 모습이 담겨있다. 모차르트라는 ‘사람’에 대해 알고 싶고, 그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한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의학과 철학, 심리학을 망라한 현대 사회학계의 거장이다. 저자는 모차르트를 ‘만들어진 천재’라 말하며 모차르트를 둘러싼 겹겹의 사회적 환경을 폭넓게 서술한다. 그의 천재성과 인간성을 분리해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깨뜨린다. 책을 읽다 보면 모차르트가 지닌 음악적 탁월함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그가 살아내야 했던 환경과 시대에 적응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게 된다.

 

선우예권 피아노 독주회

12월 30일 광주문화예술회관
1월 15일 대전예술의전당
1월 23일 부산 영화의전당
1월 2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1월 26일 롯데콘서트홀
1월 28일 울산 현대예술관
1월 29일 서귀포예술의전당
모차르트 소나타 K310·환상곡 K475,
쇼팽 녹턴 op.55-1·‘돈 조반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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