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이스트 프랑수아 를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2월 8일 9:00 오전

MEET THE ARTIST

플루티스트 최나경이 만난 세계의 음악인 ⑥

오보이스트 프랑수아 를뢰

긍정의 숨으로 뿜어내는 자유

 

한국과 미국, 오스트리아로 사는 곳이 바뀌면서도 늘 마음이 가장 잘 맞는 친구들은 신기하게도 오보이스트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오보에 대가들의 이름을 많이 듣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모두가 극찬하는 ‘오보이스트들의 오보이스트’, 프랑수아 를뢰(1971~)가 항상 궁금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오보에라는 악기는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악기의 고정관념이나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라지고, 그저 순수한 음악만이 넘실거리며 춤을 춘다.

몇 년 전, 를뢰를 직접 만날 기회가 생겼다. 지휘자와 플루트 수석으로 함께 공연한 것이다. 파리 오페라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에서 오랫동안 오보에 수석으로 활동한 그는 포디움에서 오케스트라를 이해하는 능력도 남달랐다. 마침 플루트 솔로가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금세 친해지게 되었고, 지난해 내 유튜브 채널에서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와 함께한 생방송 인터뷰에는 깜짝 게스트로 출연해 주기도 했다.

한국인으로서 클래식 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서양음악의 본고장에 가서 새로운 언어와 문화, 정서까지 습득하면서 어떤 무언가를 ‘해내야 하는’ 느낌이 강하다. 누구나 거치는 과정이니 그렇게 고생하면서 음악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길 정도다. 하지만 를뢰에게 음악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임과 동시에 행복 그 자체라는 인상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의 무한한 자유로움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수많은 궁금함을 풀고자 프랑스에 있는 그와 영상으로 만났다. 그는 친절하게도 모든 궁금증을 성의껏 해결해 주었다. 거침없는 답변과 끝없는 유머 감각 덕분에 참으로 유쾌했던 시간. 지면에 대부분의 인터뷰 내용을 담지 못하는 아쉬움이 크지만, 유튜브를 통해 전체 인터뷰 영상을 만나볼 수 있다. (영상은 QR코드 참조)

 

 

바흐

‘불쌍히 여기소서’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1번 연주

 

 

를뢰 인스타그램

 

 

 

최나경 인터뷰 영상

 

 

미래의 씨앗을 심어야 할 때

한국인이 열렬하게 아끼는 아티스트 중 하나인데, 그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나도 굉장히 열정적이고 감정이 풍부한 한국을 사랑한다. 한국과의 인연은 정명훈 지휘자 덕분에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나의 첫 직장이었던 파리 오페라의 음악감독이었다. 32세의 젊은 지휘자였고,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단원으로 와서 놀랐던 것 같다(당시 를뢰의 나이는 18세였다). 지금까지도 내가 진심으로 존경하는 지휘자인 그의 영향으로 한국이라

는 나라는 항상 내 마음속 깊은 곳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특별하게 남은 경험이 있었나? 한동안 연주가 없다가 4월 14일, 오랜만에 가졌던 연주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내 아내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인 리사 바티아슈빌리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아우디 여름콘서트였는데, 그날 온라인 스트리밍이 3일 만에 5천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또한, 감사하게도 2020년에 세 장의 음반이 나왔는데 각각 ‘비제·구노’(Linn)에선 지휘자로, ‘로맨틱’(Warner Classics)에선 실내악 주자로, ‘프랑스 오보에 작품집’(Warner Classics)에선 솔리스트로 참여했다.

음악가들이 굉장히 유연한 태도를 지니게 된 한 해였다. 코로나 덕분에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가 온라인으로 많이 노출되며 청중과 더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클래식 음악 공연이 부담스럽게 느껴져서 선뜻 공연장에 가지 못했던 많은 사람도 집에서 쉽게 음악회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힘든 시기임에는 분명하지만, 찬란한 미래를 위한 씨앗을 심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 아닐까.

음악은 투쟁이 아니다

당신의 오보에 연주는 “참 수월하게 연주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오보에가 어려웠던 적이 있었는지? 열일곱 살 때였다. 리사이틀이 끝나고 한 관객이 내게 오더니 “연주는 정말 좋았는데 오보에를 불다가 머리가 터져나갈까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공연을 찾았을 관객에게 다시는 걱정을 안겨주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연주자가 무대에서 편안해 보이는 것은 그렇게 되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최나경과 온라인으로 대화 나누는 프랑수아 를뢰

리드도 잘 만든다고 들었다. 리드를 만드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처음부터 아주 좋은 소리를 내야만 한다는 완벽주의는 버려야 한다. 음정을 봐가며 처음에는 반만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고, 며칠 기다렸다가 다시 불어보면서 완성해가면 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리드도 그렇지만 우리의 몸도 매일 다르다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능력이다. 그렇기에 귀 기울여 잘 들어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리드를 하루에 다 완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예전에 보았던 당신의 인터뷰 중 한 구절이 생각난다. 학생들에게 “쉬어가며 연습하라”고 조언했었다고. 매일 연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너무 많이’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시간을 두고 몸과 머리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좋다. 같은 곡을 어느 정도 시간의 간격을 두고 익히면 더 쉽다. 강제로 한 번에 익히려고 하면 안 된다.

오보이스트, 그리고 지휘자

같은 오보에지만, 프랑스식과 미국식 연주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 스타일의 오보에 연주방식을 가져온 사람은 프랑스인 마르셀 타비토(1887~1966)였다. 타비토가 시작한 색다른 리드 깎는 방식(거의 튜브까지 리드를 깎는다)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이야기가 숨어있다. 교통사고로 인해 입술이 마비되는 바람에 그가 수정한 방식이란 사실이다. 하지만 프렌치 오보에, 아메리칸 오보에, 빈 오보에처럼 이렇게 서로 다른 연주방식이 있다는 것은 다양성 면에서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이제까지 많은 한국인 학생을 만났을 텐데, 그들에 대한 견해는? 올해 뮌헨 국립음대에 합격한 네 명의 제자 중 세 명이 한국인(김수아·서현덕·허정훈)이다. 다들 정말 대단한 학생들이다. 한국 학생들은 소리가 정말 좋고, 스승을 잘 따른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어든 독일어든 언어적인 부분에서 편하지가 않다는 것인데,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의 언어를 열심히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오보에를 배우거나 연주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연주할 때에는 ‘조용히’ 있는 것이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하다. 이것은 ‘좋은 호흡’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런 긍정의 숨을 가지고 있으면 훌륭한 목관악기 주자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덤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된다. 이런 점에 있어 오보에는 내게 에너지 공급원이 된다. 악기를 불수록 피곤하기는커녕 더 큰 힘이 솟는다.

지휘자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지휘 테크닉은 로린 마젤을 비롯해, 다니엘 바렌보임과 앨런 길버트에게 배웠다. 지휘하는 것이 참 즐겁지만 자주 하지는 않는 이유는, 솔리스트 활동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휘자의 삶은 외롭다. 내겐 가족과의 시간이 더 중요하다.

오랜 오케스트라 활동이 지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 단원들에 대한 이해나 눈치가 빠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디움에서 그들을 ‘지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케스트라 단원 중 한 사람으로 그들과 ‘함께’ 연주하는 거라고 느낀다.

 

지금, 이 순간을 완전히 살기

삶에 있어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지? 24세에 입술에 문제가 있었는데, 당시 로린 마젤이 해준 말 덕분에 재기할 수 있었다. 그는 연주할 때 곡을 끝까지 완주할 생각보다는 한 번에 하나씩 떨어지는 물방울을 생각하며 그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해보니 입술 문제도 사라졌다! 음악도, 우리의 삶도 지금에만 완전히 존재한다.

2021년의 주요 연주 일정이 궁금하다. 버밍엄 심포니·네덜란드 필하모닉·서독일 방송교향악단(WDR) 등과 지휘로 만날 예정이다. 특히 스트라빈스키 ‘불새’, 슈베르트 교향곡 9번 등의 레퍼토리가 기다려진다. 9월 내한 공연도 주요 일정 중 하나다. 최근 발매한 음반 ‘프랑스 오보에 작품집’ 속 레퍼토리를 가지고 피아니스트 에마뉘엘 슈트로세와 함께 서울·대구·통영에서 공연한다. 한국의 화끈한 관객들과 어서 다시 만나고 싶다.

를뢰는 삶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모든 것에 감사한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그가 뿜어내는 자유로움과 건강한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긍정의 숨, 그리고 삶을 향한 깊은 감사였다.

 

글 최나경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1학년 재학 중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커티스 음악원·줄리아드 음악원을 졸업했다. 신시내티 심포니 부수석, 빈 심포니 수석을 역임했으며, 현재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 머물며 솔리스트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유튜브 채널 ‘플루트 최나경’를 비롯해 다양한 SNS 채널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프랑수아 를뢰(1971~)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14세에 파리 고등음악원에 입학했고, 18세에 파리오페라의 오보이스트 수석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과 체임버 오케스트라 오브 유럽에서 수석을 역임하고, 현재 솔리스트와 지휘자, 그리고 목관 5중주단인 레 벙 프랑세의 멤버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예술 파트너이자 버밍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음악가이며, 뮌헨 국립음대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프랑수아 를뢰·에마뉘엘 슈트로세 듀오 리사이틀

9월 9일 금호아트홀 연세
9월 10일 대구콘서트하우스
9월 11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프랑스 오보에 작품집
(Warner Classics 0190295249571)

프랑수아 를뢰(오보에)/ 에마뉘엘 슈트로세(피아노) 생상스 소나타 op.166, 뒤티외 소나타, 드뷔시 랩소디, 티에리 페코 소나타, 외젠 보자 ‘전원 환상곡’ op.37, 피에르 상캉 소나티네, 피에르네 ‘소품’ op.5

 

 

 

비제·구노
(Linn Records CKD 624)

프랑수아 를뢰(지휘)/ 스코티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비제 ‘카르멘’ 모음곡 1번·교향곡 1번, 구노 작은 교향곡

 

 

 

 

로맨틱
(Warner Classics 0190295285685)

레 벙 프랑세(에마뉘엘 파위·폴 메이어·프랑수아 를뢰·질베르 오댕·라도반 블라트코비치)/에릭

르 사주(피아노) 클루크하르트 목관 5중주

op.79, 온슬로 목관 5중주 op.81, 슈포어 피아노와 목관을 위한 5중주 o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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