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다’

기시감과 같은 삶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1월 1일 12:00 오전

친구의 첫 번째 제삿날, 네 명의 동창생이 모였다. ‘사라지다’는 여자들의 단순한 수다가 아니다. 극은 여성과 남성,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인생의 슬픔을 수면 위에 올려 공감하며 위로한다. 삶이 가로막히는 순간에도 계속 살아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1월 20일까지, 남산예술센터.

극단 고래, 이름이 재미있다. 극단 고래는 배우이자 작가·연출가인 이해성이 2011년 창단한 신생 극단이다. 극단 고래의 이름은 2008년 이해성 작가의 첫 연출작이었던 ‘고래’에서 따온 것이다. 고래는 깊은 바다 속, ‘심연 속에서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인간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다.’(극단 고래 소개의 글에서) 해저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고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거친 호흡을 뿜어내며 장관을 보여주는 것처럼 배우 이해성이 작가로, 연출가로, 그리고 극단 대표로 떠오르면서 기대되는 장관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해성 작가와 남산예술센터의 인연 또한 깊다. 이해성의 ‘살’(안경모 연출)이 2011년 봄 남산예술센터 시즌 개막작으로 올라갔었고, 연달아 같은 공간에서 이해성 작·연출의 ‘사라지다’가 올라가는 것이다. 젊은 작가·연출가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남산예술센터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살’은 ‘고래’ ‘빨간시’에 이어 이해성의 세 번째 연출작이다. 이해성이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연출가로서 어떤 성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 궁금함을 안고 연습실을 방문했다.

남성 작가가 쓰는 여성들의 이야기
‘사라지다’는 친구의 첫 번째 제삿날에 모인 네 친구의 이야기다. 친구 윤주의 제삿날에 신정·동지·청명·상강의 네 친구가 모였다. 이들은 고등학교 친구들이다. 나이 삼십대 중반, 이십년 지기 친구들이 친구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다시 만났다. 친구들, 그것도 여자 친구들의 이야기. 한편으로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여러 명의 여성인물들이 등장해서 수다와 함께 인생을 나누는 이야기들은 많다. 이 작품에서 이러한 익숙한 이야기를 낯설게 만드는 것은 윤주의 이모 말복의 존재다. 말복은 트랜스젠더이다. 트랜스젠더 말복 또한 여자이니 다섯 여자들의 이야기다. 여자들의 평범한 이야기지만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가 상대화되고 있다.
평범한 여자들의 이야기를 낯설게 만들고 있는 것이 또 있다. 여자의 이야기를 여성 작가가 아니라 남성 작가가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렇다. 예컨대 여자들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수다도 진한(?) 음담패설로 이루어져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비밀 얘기 전담반 역할을 맡고 있는 청명 역의 우수정은 말한다. “여자들끼리 이렇게 음담패설을 대놓고 말하진 못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본 이야기들이다. 대사를 반복해서 연습하면서 재밌고 시원했다.” 유부남과의 금지된 사랑에 빠져 있고 심한 변비에 시달리는, 자칭 ‘욕망과 배설’을 담당하는 작가 동지 역할의 황세원도 이 작품의 매력으로 같은 입장의 여자 이야기를 남성 작가의 시선에서 객관화시켜서 바라보게 된다는 점을 꼽는다. “남성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여자들의 이야기를 오히려 한 편으로 비켜서서 바라보는 것이 생겼다. 여자들의 심리도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고추 먹고 싶다’와 같은 대사는 여성의 언어로는 부적당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런 표현을 하면서 개방적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작가이자 연출가인 이해성에게도 여자 이야기는 낯선 주제다. 동해안 바닷가로 침투 중인 북한 잠수정의 무장공비 이야기를 다룬 ‘고래’도 그렇고, 고액 연봉의 외환 딜러 이야기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비만한 자본의 논리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다루었던 ‘살’도 그렇고, 이해성의 전작들은 주로 남자 배우들이 많이 나오는 작품들이었다. 그 변화의 계기가 궁금했다. 이해성은 말한다. “이 작품은 내 삶의 기준과 경계가 많이 허물어지고 달라진 때 쓴 작품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에서 쓴 작품이다. 이혼을 하면서 내가 그동안 세상을 바라보았던 시선이 남성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힘으로만 밀어붙이려고 하고. 내 개인적인 상처를 통해 반성 많이 했다. 여성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다. 2007년 처음 쓸 때는 여성의 관점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고, 이번 공연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과 경계를 넘어서 인간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이 작품은 작가 이해성이 쓰는 인생 반성문 같은 극인 셈이다.

어떤 제삿날의 기시감
이 작품이 연극적으로 흥미로운 점은 먼저 여성·남성의 이야기, 삶·죽음의 이야기를 ‘우주의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우주의 시선’이라고? 표현이 재미있다. 이해성 연출은 “이 작품은 무대 공간 자체가 우주 속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려고 한다. 배경이 되는 실내 공간이 우주에 떠 있는 무대 이미지를 보여줄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큰 어둠 속에 들어있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랬을 때 우리의 삶을 객관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남산예술센터의 돌출무대는 연출가와 무대 디자이너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는 면이 있다. 이번 작품의 무대는 최학균 무대 디자이너가 맡았다. ‘언니들’과 ‘영원한 평화’의 무대 디자인을 맡으며 연극계에 새롭게 얼굴을 알린 디자이너다. 젊은 연출가 이해성과 무대 디자이너 최학균이 남산예술센터의 무대를 어떻게 새롭게 보여줄지 기대된다.
다음으로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죽은 윤주의 존재다. 연극적으로 유령은 흥미로운 존재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선왕의 유령이나 ‘맥베스’에서 뱅쿼의 유령처럼 극적으로 강력하고 매력적인 장치도 없다.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이해성이 유령이라는 장치를 얼마나 능숙하게 극적으로 살려낼지 궁금하다. 윤주의 첫 번째 제삿날 친구들이 모여들고 이모 말복이 제사음식을 장만하고 있다. 윤주는 죽어 없지만 윤주의 존재는 말복이 첫 장면에 들고 들어오는 한 아름의 수선화 꽃다발로 처음부터 강하고 환하게 환기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마이크를 통해 어떤 음성이 나직이 들린다. 유령을 유령처럼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말도 아닌, 등장인물들 사이의 대사도 아닌 문학적 표현의 내레이션으로 처리하고 있다. 마이크의 내레이션으로 들리는 윤주의 음성은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극 후반에서야 친구들에 의해 “윤주!”라는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윤주는 자신이 좋아했던 수선화 옆에 들어와 앉는다. 그 순간 청명은 윤주의 죽음 이후 앓고 있었던 우울증 증상으로 쇼크 상태에 빠지고, 말복은 잠시 윤주의 모습을 본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쇼크 상태에서 벗어난 청명은 말한다. “지금 이 상황 언젠가 있었던 일처럼 느껴져.” 데자뷔, 기시감의 순간들이다.
기시감. 말로 설명할 수도, 증명할 수도 없지만 느껴지는 감각. 삶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가끔 그런 신비스러운 모습도 있다. 말복이 트랜스젠더로서의 삶을 선택하기 이전에 결혼했던 전처 역할의 배우 강애심은 말한다. “이 작품은 사람들 각자의 삶 속 슬픔을 다루고 있다. 친한 친구의 죽음, 이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등 각자의 슬픔이 다양하게 부각되어 있다. 특별한 주제의식은 없지만 내 삶을 가로막는 그런 순간들에도 계속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기시감과 같은, 현실과는 다른 것이지만 그런 것도 삶에는 포함되어 있다.” 배우 강애심이 맡고 있는 말복의 전처 역할은 남성·여성, 삶·죽음, 행복·불행의 경계 선상에서 흔들리고 있는 다섯 명의 여성 인물들과 대척적인 지점에 서 있는 역할이다. 트랜스젠더로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가정을 버린 말복을 대신해 20년 동안 혼자 딸을 키우고 그만큼 현실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하는, 남자가 되어야만 살 수 있는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극 후반 단 한 장면이지만 마치 굵은 나무 한 그루가 무대 바닥에 굳게 뿌리박고 서 있는 것처럼 강인한 모습을 보여준다. 2009년 ‘다윈의 거북이’(김동현 연출) 이후 최근작 모노드라마 ‘넙쭉이’(손기호 연출)에 이르기까지 무대 위에서 굳건하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의 모습으로 강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강애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강렬하고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트랜스젠더 역할을 맡고 있는 배우 박용수도 마찬가지이다. 박용수는 이번 무대에서 35년 연기인생 최초로 트랜스젠더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 트랜스젠더의 역할을 어색해 하기보다는 “내 안에 여자 있다!”라며 역할 자체를 즐기는 모습이다. 트랜스젠더 ‘이모’로서의 말복 역할은 상처받은 서른 중반의 여성들이 각자의 상처 속에서 고립되고 단절되어 있을 때 역설적으로 강한 여성적 유대감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복은 이해성 작가가 고민하고 있는 여성적 가치에 대해서 새롭게 환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정신과 의사 상강 역할의 김원정은 트랜스젠더의 존재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어렵지만 인정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성(性)으로서의 여성이 아닌 사회적 성 역할의 젠더(gender)로서 여성·남성의 역할 구분 또한 객관적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이번 작품은 작가로서 이해성이 연출가로 어떤 성장과 도약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무대가 될 것이다. 여성·남성, 삶·죽음의 경계를 넘어 사고하고자 하는 이 작품의 주제처럼 이해성이 작가·연출가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어떤 균형감으로 경계를 가로질러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지, 성장하는 젊은 연극인을 지켜보는 떨리는 무대가 될 것이다.

글 김옥란(연극평론가) 사진 남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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