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훼손하지 않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가장 단순한 논리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국내 첫 내한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은 전성기 시절 오케스트라 진용을 그대로 꾸린 채 무대에 올라 마리스 얀손스 체제에서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오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2012년 11월 20~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빈체로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하 BRSO)의 전성기를 일구었던 1964년, 라파엘 쿠벨리크가 지휘하는 리허설 사진을 보면 제1·2바이올린이 좌우로 갈리고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중앙에서 왼쪽 사선으로 뻗는 독특한 악기 배치가 눈에 띈다. 당시 므라빈스키가 이끄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제외하면 대부분 오케스트라가 고음과 저음 현악기를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는 음향 효과 위주의 편성을 취해왔다. 그러나 BRSO는 진작부터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며 고유의 색깔을 잃지 않았다. 지난 11월 20~21일 예술의전당에서 사상 첫 내한 공연을 가진 BRSO는 드디어 신비의 베일을 벗어던지며 국내 팬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선배들이 구축한 전통을 훼손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가장 단순한 논리는 그대로 적중되었다. 1964년 사진 그대로 진용을 꾸린 BRSO는 마리스 얀손스 체제 에서 제2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내심 음반으로 출시된 브루크너의 교향곡을 실연으로 듣고 싶었지만 BRSO가 선곡한 것은 베토벤이었다. 정확히 53명의 단원이 먼저 무대로 등장해 교향곡 2번 1악장 서주를 거쳐 ‘알레그로 콘 브리오’의 주부로 가열되어갈 때부터 이미 객석은 넋을 놓았다. 아! 교향곡 2번이 이토록 청아하고 사무치도록 아름다웠던가. 현악기의 소릿결은 더할 나위 없이 고왔고, 그 이면에는 독일 정통 악단 특유의 중후함이 동시에 배어 있었다. 가식적인 화장기를 온전히 걷어내고 담백한 느낌을 극대화시킨 얀손스의 해석은 젊은 베토벤의 질주하는 속도를 다독이며 제어했다. 2악장 라르게토 시작 부분의 서늘한 기운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지휘봉을 왼손으로 가져가며 어깨를 활처럼 구부리고 오른손으로 휘젓는 ‘얀손스 표 액팅’은 느린 부분에서 어김없이 나와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켰다.
나이와 삶의 질곡은 그의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도 변화시켰다. 영상으로 보았던, 1989년 일본 도쿄에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이끌고 지휘한 ‘환상 교향곡’의 엄청난 광기는 온데간데없이 감정을 절제하고 감성보다는 이성에 부등호 방향을 틀었다. 교향곡 3번 ‘에로이카’ 2악장 ‘장송 행진곡’의 러닝타임은 웬만한 역사주의적 연주보다 빠른 12분에 주파하며 초고속 행진을 거듭했다. 이렇게 아껴둔 에너지는 4악장에서 마침내 폭발했다. 앙코르로 들려준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세레나데’는 단원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며 지그시 쳐다보는 지휘자의 믿음이 그대로 전해졌다.
둘째 날, 교향곡 6번 ‘전원’은 오케스트라와 합일한 지휘자의 ‘무념무상’의 세계였다. 바렌보임의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출신의 젊은 연주자 라몬 오르테가 케로의 오보에가 1악장 도입부에서 낭랑하게 노래할 때 시정(詩情)에 젖었다. 2악장, 목관군의 대화는 세속의 소리를 들을 수 없어 오직 천상의 소리만을 받아들였던 베토벤의 순진무구한 영혼에 다름 아니었다. 교향곡 7번은 그야말로 박진감 넘치는 남성미와 섬세하게 조탁된 여성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베를린 필의 내한에서 맛봤던 컴퓨터처럼 정확한 기교의 난타전이 아니었다. 세계 정상에 자만하지 않고 피나는 리허설을 감내하며 지휘자를 신뢰하고 따르는 겸양의 미덕이 여기 있었다. 숨 가쁘게 바쁘지만 충분한 연습 시간만은 반드시 확보하는 얀손스의 고집은 첫 한국 무대에서 소리보다는 음악을 앞세우게 했다. 그가 늘 말하는 위로 솟구치는 음악, 역시 악보는 목표가 아니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