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음악, 같은 연주라도 우리 각자가 다르게 듣고, 느끼고, 다른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음악이 위대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런 관점에서 ‘거장’의 정의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아니, 확대될 수 있다. 자신의 해석을 확고히 하기 위해 고유한 소재로 청자를 놀라게 하고, 결국 수긍케 하는 음악가가 있는가 하면, 음악의 본연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데 주력하는 경우도 있다.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는 후자의 대표이자 모범적 사례였다. 2월 28일ㆍ3월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글 박용완 기자(spirate@) 사진 김윤배/빈체로
브리튼 ‘네 개의 바다 간주곡’은, 헨델부터 브리튼까지 영국이 키워낸 작곡가라면 자의든 타의든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한 연주였다. 곧은 것보다는 뒤틀린 것, 중심 보다는 주변, 햇빛보다는 잿빛에 이끌렸던 브리튼조차 그 음악 안에 반짝반짝하고 번쩍번쩍한 순간을 가득 채워 넣었다는 사실을 런던 심포니가 역설했다. 각각 ‘새벽’ ‘폭풍’ 같은 표제 하에 놓여 있다 해도, 금관의 짱짱한 울림이 ‘환호’가 ‘울부짖음’이라 해도 런던 심포니 금관 파트에서는 오랫동안 체화된 ‘승리의 사운드’가 녹아났다. 피터 그라임스의 자아분열은 그래서 더욱 또렷이 우리 앞에 드러난다. 현악기의 개방현을 그었을 때처럼 밝고 선명한 사운드. 피터 그라임스의 내면은 숨을 곳이 없었다.
뒤이어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이 연주됐다. 성근 삼베 치마저고리를 입은 아낙의 모습처럼, 소박하고 정감 가는 차림의 마리아 주앙 피르스가 17년 만에 한국 청중 앞에 등장했다. 피르스의 모차르트 사운드는 ‘고유하다’라는 표현으로 모자랄 만큼 고유했다. 피아노 건반 깊숙이까지 힘이 닿았음이 분명하나, 그 소리는 따스한 공기를 가득 머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피아니시모부터 메조포르테까지가 전부’였던 다이내믹의 좁은 폭 안에서 다양한 크기와 질감의 디테일들이 조곤조곤 대화를 이어갔다. 브리튼의 금관 사운드에 익숙해진 귀는 그 작은 세상을 경청하기 위해 더 커지고, 갈구했다. 우리는 숨죽이고 피르스의 작고 아름다운 목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진 베토벤 교향곡 7번은 청중을 만취 상태로 몰고 갔지만, “이것이 절정이다!”라며 모든 걸 펼쳐내지도 않았다. 특히 2악장에서 끊임없는 ‘반복과 변형’에 의한 절정을 기다렸건만, 어느덧 악장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미친 듯 절정을 향해 달려갔으나, 이 본능의 질주에서 절정을 느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상황은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이튿날, 2월에서 3월로 달이 바뀐 1일에 두 번째 공연이 펼쳐졌다.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의 마리아 주앙 피르스 역시 어제와는 다른 터치를 선사했다. 훨씬 단단하게 굳어진 소리의 심지, 다이내믹의 범주도 몰라보게 넓어졌다. 그럼에도 피르스 고유의 순수한 동화 같은 음향은 유지됐다. 알베르티 베이스처럼 참으로 단순명료한 화성의 재조합조차 신비롭게 들려왔다. 런던 심포니의 성부 간 밸런스 감각은 탁월했다. 현 파트의 밸런스는 완벽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디어 이번 내한 공연의 진정한 대미인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이 청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날 공연에서 브리튼은 물론이요, 베토벤 교향곡에서도 부진과 선전을 오갔던 팀파니 주자 대신 젊은 팀파니스트가 무대 상단을 차지했다. 호쾌하고 짜릿한, 끝을 모르는 팀파니의 트레몰로. 현악기 군단 역시 이 거대한 우주의 양감을 채우는 데 혼신의 노력을 쏟았다. 우주의 작은 먼지처럼 현악 주자 한 명 한 명은 분명 ‘일부’로서 기능했지만, 자신이 음악의 전체인 듯 트레몰로ㆍ스타카토 같은 ‘충전재’에 열중하는 모습은 브루크너 실연의 ‘보이는’ 감동 요소였다. 수많은 선율이 나타나는가 하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고… 그렇게 화합과 충돌이 반복되는 동안, 어디쯤 서 있는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혼을 빼놓은 채 순간의 선율과 순간의 음에 반응하는 ‘나’는 우주의 미아가 된다.
우리에게 말러가 있었기에, ‘표제 없는’ 브루크너 교향곡은 더욱 순수한 ‘순수음악’으로 남았다. 그 안에서 다양한 의미를 청자 스스로 창출하고 깨닫게 만든 존재는, 바로 거기 서 있는 하이팅크와 런던 심포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