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카레라스의 ‘미사 크리올라’

황병준의 동그라미를 꺼내다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4월 1일 12:00 오전

중·고교 시절, 대학생 외삼촌을 따라 음악 감상실을 출입하며 생긴 고전음악에 대한 관심은 입시의 부담이 무거웠던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공대생이 당연히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컴퓨터 동아리와 음악 감상 동아리를 놓고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했다. 당시 음악을 선곡하는 디제이가 되려면 30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내가 다녔던 대학의 음악 감상실은 당시 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한 오디오와 상당한 수의 음반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여기에서 수천 장의 음반을 정리해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하는 한편, 새로운 좋은 음반을 찾기 위해 시내의 레코드 가게를 뒤지고 다니곤 했다. 그러던 중 만나 오랫동안 좋은 벗이 된 음반이 호세 카레라스가 솔로를 맡고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곡가 아리엘 라미레스가 지휘한 ‘미사 크리올라’이다.
라틴어 외 자국어 미사에 관한 금지를 철회한 2차 바티칸 공의회 직후에 작곡된 이 곡은 에스파냐어 가사로 쓰여졌다. 다양한 남미 민속 춤곡의 선율과 리듬, 차랑고와 민속 타악기의 사운드가 녹아들어 있어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종교음악과는 사뭇 다른 향취를 뿜어낸다. 바흐·베토벤의 미사 음악의 위대함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또 다른 신선한 생동감으로 가득 찬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다양성을 지닌 문화의 가치에 관해 새삼 생각하게 된다. 호세 카레라스의 미성은 이 관능적인 종교음악과 잘 어울리고, 스페인의 한 교회에서 녹음된 음향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훌륭하다.
석사를 마치고 박사 과정을 위해 도미할 때 내 가방에는 CD 300여 장이 들어있었다. 미국에서 장래에 대한 긴 고민 끝에 전공을 바꿔 보스턴의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레코딩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게 됐지만, 정말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최고의 사운드에 대한 질문을 해결하기에 학교 수업은 부족하게 느껴졌다. 당시 현장 녹음을 배울 곳을 소개해달라고 끈질기게 조른 끝에, 교수님은 그래미상을 여러 번 수상한 사운드미러의 창립자 존 뉴턴을 소개해주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사운드미러를 찾아갔던 날, 존 뉴턴과의 대화 중 어깨 너머로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 보였으니, 바로 ‘미사 크리올라’ 음반이었다. 이 음반이 사운드미러에서 작업한 것임을 알고는 모든 불안과 긴장, 불확실함의 먹구름을 뚫고 비취는 빛을 본 듯 ‘여기가 내가 와야 할 곳이 맞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도 생생하다. 사운드미러 그리고 존 뉴턴과의 인연은 그 후로도 이어져, 귀국해 사운드미러의 한국 지사를 설립하고 작년에는 스승과 함께 그래미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때의 만남과 그 순간, 나에게 용기를 주었던 이 음반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된 순간이요, 음반이라고 할 만하다.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음반 녹음 당시 호세 카레라스는 이미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었다고 한다. 죽음 너머 피안을 지향하며 미사곡을 부르는 그의 음성의 호소력에는 죽음을 더 가까이 느낄 수밖에 없었을 그의 심경도 한몫했을 것이라는 부질없는 상상이 떠오른다.

‘동그라미를 꺼내다’에서는 ‘내 생애 잊지 못할 음반’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이번 호에는 사운드미러 코리아 황병준 대표의 동그라미를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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