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늘 새롭고 영원하다.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방랑으로
개성적인 음색과 완벽한 앙상블을 선보여온 반더러 트리오. 올해로 창단 26주년을
맞은 이들이 5월 10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방랑하는 영혼’ 반더러 트리오가 5월 10일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 선다. 이번 무대에서는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Op.70-1 ‘유령’과 슈베르트의 ‘노투르노’ D897, 생상스의 피아노 트리오 2번 E장조 Op.92 등을 연주한다. 지난해 베토벤 피아노 트리오 전집을 낸 이들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와 피아노로 듀오 음반을 내기도 했고, 비올라·클라리넷 주자를 보태 함께 연주도 했다. 내한 공연을 앞둔 반더러 트리오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실내악단 이름에는 유명한 작곡가나 연주자, 아니면 멤버 이름이 붙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인지 ‘방랑자’라는 앙상블 이름이 낯설고 퍽 특이하다.
물론 우리 이름은 슈베르트에 대한 오마주(존경의 표시)이다. 슈베르트는 인간의 심리 상태를 매우 잘 아는 작곡가다. 그의 음악에는 항상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나약함이 담겨 있다. “내가 사랑 노래를 부르려고 하면 고통으로 바뀌었고, 고통을 노래하면 사랑으로 변했다.” 이것은 슈베르트가 쓴 ‘나의 꿈’이라는 알쏭달쏭한 글의 일부인데 이처럼 자신의 음악 세계를 완벽히 보여준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슈베르트의 음악적 분위기는 일정하지 않고 항상 바뀐다. 어디로 향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의 음악의 라이트모티프인 ‘방랑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방황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더불어 음악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 음악가들에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명곡을 해석할 때도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방랑하는 일을 멈춰서는 안 된다.
올해로 창단 26주년을 맞았다. 현재 멤버 구성으로 활동을 계속할 계획인가? 피아노 트리오에서 피아노는 음악적 수명이 긴 편인데 바이올린·첼로의 멤버를 교체하면서 앞으로도 활동을 이어갈 생각인지 궁금하다.
아직 구체적인 은퇴 시기를 정해놓진 않았다. 창단 8년 후인, 1995년 바이올리니스트 장 마르크 필리프 바르자베디앙이 새 멤버로 합류했을 때가 큰 전환기였다. 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10년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는가. 우리는 현재에 충실할 뿐이다.
피아노 트리오에서 피아노의 리더십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반더러 트리오에서 피아노는 주도적인 악기인가, 아니면 반주 악기인가.
실내악에서 피아노는 절대로 반주 악기가 아니다. 더불어 반주는 실내악에 있어 매우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피아노도 다른 악기처럼 자신의 독자적인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주도적인 악기라는 의미는 아니다. 트리오에서 피아노는 화성 부분을 담당하고 있어 다른 악기에 비해 존재가 뚜렷하다. 피아노 트리오곡을 쓴 작곡가들은 본인이 피아니스트 출신이었기에 피아노를 항상 중요하게 취급했다.
작품에 대한 음악적 해석을 두고 각 멤버의 의견 수렴은 어떻게 하나.
멤버들이 피아노 트리오에 대한 음악적 해석에서 크게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이며, 작곡자가 표현하려고 하는 아이디어라는 점에서 생각을 같이 한다. 연주자라면 자존심을 내세우기 위해 음악을 이용할 게 아니라 음악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물론 우리도 약간의 견해 차이는 있다. 특히 레퍼토리 선정에서 그렇다. 장 마르크 필리프 바르자베디앙은 차이콥스키나 스메타나와 같은 슬라브 계통이나 러시아 작곡가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데 반해 뱅상 코크와 라파엘 피두는 슈베르트와 베토벤 같은 빈 악파를 더 좋아한다.
멤버끼리 음악적 의견이 맞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
피아노 트리오에서 문제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멤버가 세 명이기 때문에 대부분 2대 1로 의견이 갈린다.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다수결로 정한다. 하지만 자기와 생각이 달라도 반대 의견에 대해 항상 존중해야 한다. 앙상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 이외의 문제로 서로 다투어선 안 된다는 점이다.
흔히 실내악의 꽃은 현악 4중주라고 한다. 피아노 트리오의 매력은 무엇인가.
피아노 트리오는 현악 4중주와는 매우 다른 장르다. 피아노 트리오 안에는 앙상블 안에서 서로 매우 다른 목소리로 노래하는 세 가지 개성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개성을 십분 살리는 것이 앙상블만큼이나 중요하다. 세 명의 개성을 살리지 못한다면 그냥 앙상블일 수는 있지만 뭔가 부족하다. 세 악기의 개성적인 음색과 앙상블이 완벽한 균형을 이룰 때 훌륭한 피아노 트리오를 만들어낼 수 있다. 혼자 말을 이끌어갈 때도 있고 함께 대화할 때도 있다. 현악 4중주는 네 개의 현악기가 이루는 소리의 동질성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제1바이올린이 실질적인 리더의 역할을 한다. 제1바이올린을 제외한 현악 4중주의 연주자들은 비교적 드러나지 않는 편이다.
특별히 고집하는 피아노가 있는가.
대부분의 다른 피아니스트들처럼 독일산 스타인웨이를 좋아한다. 음질이 뛰어나고 사운드가 오래 지속된다. 음역 간의 균형 감각도 좋다. 야마하도 좋은 피아노다. 하지만 좋은 피아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훌륭한 조율사를 만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행운은 누릴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문 경우다.
창단 과정이 궁금하다. 파리 음악원 동창생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평생 직업 실내악단으로 세 명이 함께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은 언제인가.
우리가 처음 만나 함께 피아노 트리오곡을 연주한 것은 프랑스 남부에서 열린 마스터클래스에서다. 우린 아무런 계획도 없이 참가했다가 쇼스타코비치 피아노 트리오 연주를 즉석 과제로 받았다. 처음인데도 호흡이 썩 잘 맞았다. 그래서 계속 피아노 트리오 활동을 하기로 했다. 몇몇 콩쿠르에 출전해 우승도 했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피아노 트리오라는 정규 앙상블의 모습을 띠게 됐다.
실내악단의 스승은 훌륭한 실내악단이다. 메나헴 프레슬러나 아마데우스 현악 4중주단 멤버에게 어떤 교훈을 얻었나.
훌륭한 음악적 유산을 물려받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도 다른 위대한 연주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았다. 여기에 자신의 경험을 보태어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피아니스트 리언 플라이셔는 “음악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라고 말했다. 많은 위대한 음악가들이 우리에게 남긴 가르침 중 한 가지만 꼽는다면 앞에서 말했듯이, 연주자는 음악과 작곡가를 위해 봉사해야지 음악을 자기를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피아노 트리오 결성을 꿈꾸는 후학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은 앙상블을 만들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만약 자신과 잘 맞는 완벽한 파트너들을 만났다고 생각하면 팀이 잘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때때로 갈등과 긴장,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동료 연주자들을 존경해야 한다. 공동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음악이 되어야 한다.
글 이장직 객원 전문기자(lul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