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쇼르스케는 세기말의 빈이 몰역사적인(a-historical) 우리 세기의 문화를 싹틔운 가장 비옥한 온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올해 서울시향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의 첫 공연의 주제는 빈이었다. 특히 세기 전환기부터 지금까지 약 100년간 빈이 남긴 음악들, 빈에 남은 음악들의 궤적을 살피는 레퍼토리는 20세기 초 빈 음악과 이후 세대들의 화답으로 느껴졌다. 4월 16일, 세종체임버홀.
글 신예슬(2013객석예술평론상 수상자) 사진 서울시향
서울시향 ‘진은숙의 아르스노바’. 20세기 이후 현대음악을 선보이는 이 시리즈는 쉽게 접하기 힘든 최근의 작품들을 소개해주는 고마운 공연이다. 1년에 네 차례 공연되는 시리즈의 올해 첫 공연인 ‘아르스 노바 – 빈’이 지난 4월 16일, 세종체임버홀 무대에 올랐다.
공연의 주제가 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은 서양음악사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도시이다. 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슈베르트·말러 등 셀 수 없이 많은 음악가에 의해 클래식 음악이 꽃피던, 가히 음악의 중심지 아니던가. 많은 이들이 ‘음악과 빈’을 생각하면 ‘빈 왈츠’ 혹은 ‘빈 신년 음악회’ 등을 떠올리겠지만, 이날 공연은 지금으로부터 약 100 년 전, 20세기부터 시작된다.
20세기 무렵, 빈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무의식의 세계가 분석되기 시작했고 문학·철학·정치· 미술·음악 등 각 분야는 이전 시기와의 단절을 선언하고 분열되었으며, 모더니즘의 정신이 꿈틀거렸다. 이번 ‘아르스 노바’는 바로 이때, 세기 전환기부터 지금까지의 약 100년간 빈이 남긴 음악들, 혹은 빈에 남은 음악들의 궤적을 살폈다.
첫 곡은 20세기 초에 빈에서 활동했던 알반 베르크의 ‘서정 모음곡’. 동료 작곡가 쇤베르크와 베베른에 비해 낭만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베르크답게 후기 낭만주의의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강하게 흘렀다. 두 번째 곡은 쇤베르크의 ‘피아노 단편곡’을 한스 아브라함센(1952~)이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작품으로, 명쾌하고 투명한 쇤베르크의 스케치에 아브라함센이 색을 입혔다. 피아노가 아닌 관현악에 의해 음이 지속되었고, 마치 거대한 음향이 악기들을 떠도는 듯한 음향적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세 번째 곡은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했던 배동진(1977~)의 ‘아타카 수비토(Attacca Subito)’. ‘바로 이어서’라는 의미로 주로 악장과 악장 사이를 잇는 데 사용된 이 말은 작품 안에서 작은 음악적 요소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작품의 조심스러운 시작과 마무리로 인해 작품이 연주되기 전과 연주된 후의 시간을 ‘아타카 수비토’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네 번째 곡은 오스트리아에서 활동 중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하스(1953~)의 ‘10명의 연주자를 위한 자유로운 존재들의 합일’이었다. 열 개의 악기들이 각각의 선율을 연주하는 이 작품은 전체를 위한 개인이 아닌, 개인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작품으로 다분히 유토피아적 철학을 담고 있었다. 마지막 곡은 역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 중인 올가 노이비르트(1968~)의 독주 피아노와 앙상블을 위한 ‘장소…안쪽…혼자서(Locus…Doublure…Solus)’로, 피아노 선율을 그림자처럼 따라가는 신시사이저의 선율과 앙상블의 터질 듯한 음향의 홍수가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이날의 프로그램은 지난 세기의 빈 음악의 궤적을 살피는 동시에 20세기 초 빈 음악과 그에 대한 이후 세대들의 화답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1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20세기 초 음악들은 고전이 되기도 하고 또다시 타파해야 할 전통이 되기도 했지만 확실한 것은 20세기 초의 음악들은 지금 우리시대 현대 창작음악계의 시작점이 된다는 것이다. 칼 쇼르스케는 세기 말의 빈이 몰역사적인(a-historical) 우리 세기의 문화를 싹틔운 가장 비옥한 온상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빈 왈츠의 시대는 끝났을지언정, 빈이라는 도시에서 음악의 역사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