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윤이상의 고향 통영 바다에 음악이 흐른다. 조그마한 갈매기 날아 벗하고, 면면에 튀어오르는 멸치 떼 위로, 봄이면 어김없이 이 바다에 음악이 출렁인다. 배 여울을 눈에 담고 있으면 귓가에 일렁이는 음악… 이것이 바로 내 바다 봄마중의 프린지 풍경이다.
나 어릴 적 통영은 고요하고 고풍스러웠다. 잦은 음악은 없었고, 언제 한번 방송국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찾아왔을 때, 도남동 건물 옥상까지 사람들이 올라 구경했던 것 외에는 시끄러운 음악은 기억에 없다. 한산대첩 대취타나 초등학생들이 한 번씩 노란 옷에 양악 브라스를 이끌어 군악대회를 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큰 길을 점령하고 음악을 울렸다. 그러면 사람들은 일제히 일을 멈추고, 멸치 상회 아저씨, 누비 집 아주머니, 목욕탕 큰엄마 모두 나와 음악을 구경했다.
확성기가 없어도 땅 바다를 뒤흔들며 전진해나가는, 밤에는 뱃전에 모여 불을 태우며 ‘남해안별신’ 굿소리로 바닷물을 일렁이게 하는 그런 음악. 적어도 나에게 ‘길 위에서’의 음악은 이러한 모습이었다.
오늘도 ‘길 위에서(On The Road)’ 음악이 열린다. 이와 같은 슬로건은 대개가 작위적이지만, 왠지 통영에서의 ‘On The Road’는 낯설지 않다. 어릴 적 풍광을 회상하며 나는 바다로 나갔다. 시간도 장소도 무한대이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 길 위의 음악은 단정한 모습이다. 길가로 가니 종이를 나눠준다. 눈에 띄는 시간표에는 몇 시에 어디로 가면 어떤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귀를 아프게 하는 커다란 음향기계가 흉물스럽게 들어서 있고, 그 안에는 아마추어 음악가들이 곤조를 부리며 노래한다. ‘음악’이라는 아우라를 상실한 대상에 통영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데낄라, 육십 템포로!” 리더가 외치자 고령의 트럼펫 연주자는 앞으로 나와 카덴차를 연주했다. 어린 아이들은 악기를 구경하려 올망졸망 맨 앞에 가 앉았다. 악보가 바람에 날리면 빨래집게를 집어주기도 한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윤이상은 독일에서 이 바다를 수도 없이 그리며 묻고 또 물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어떤 진리의 표준을 가지고 있는지….” “나의 고향 통영의 거리거리를 찾아다니며 소리치면서 물어”보겠노라고. 어느 방향도 제한하지 않는 열린 형식의 이곳 공연에서 윤이상이 찾는 진리의 모습을 만나볼 수 없겠지만 ‘오늘’이 이야기하고 있는 대상과 사고는 여실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 그가 찾아와 목격할 거리의 음악은 더욱 적극적으로 오늘을 담고 있어 보인다. 우리는 허섭한 ‘사랑’을 말하고, 의와 참에 대항하는 ‘자유’가 아닌 물질적 ‘자유’와 ‘고독’을 노래하고, 기계와 유물의 배치 속에 음악이 들어갈 수 있는 틈바구니를 찾아 오늘도 이렇게 힘겹게 서 있습니다. 라랄라, 우리 한 번 이야기해 볼까요, 민중의 노래.
여기 앉아있는 꼬마 아이가 훗날 어떤 회고를 하며, 윤이상의 ‘나모’와도 같은 곡을 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기대되는 무대 프린지. 이곳에서 지금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돌이켜보라. 축제의 범주를 벗어나 땅과 사고를 활용하는 음악으로, 대상을 크고 넓게 확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윤이상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어떠한 시도라도 나의 바다는 묵묵히 무릎을 내어줄 테니.
글 정우정 기자(wjj@) 사진 김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