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가 차진엽

몸의 언어로 그리는 시간의 지도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6월 1일 12:00 오전

얼굴이 명함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가 스튜디오로 성큼성큼 걸어왔을 때, 큰 키와 긴 목, 그리고 작은 얼굴 안에 깃든 눈코입이 ‘아름답다’라는 느낌보다는 무언가 ‘멋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촬영에 준비된 옷이 없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했을 때도 나는 놀라지 않았다. 이것이 그이고, 또 우리는 그를 있는 그대로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았기 때문에.

현대무용가는 공장의 노동자와도 같은 수고를 감내하나요?
차진엽에게 물었다. “그럼요.” 그는 춤이라는 형식은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는 영역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 입고 온 옷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걸까’ 느끼면서도 그에게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것만 같았다. 편안한 부츠와 아래 위가 붙은 요즘말로 ‘점프슈트’를 입은 차진엽. 지난해 다른 일로 나눴던 통화, 그리고 오늘의 섭외까지 느꼈던 인상은 ‘그는 친절하다.’
“모든 춤이 그렇겠지만, 현대무용 역시 굉장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죠. 특히 협업에서는 더 할 거예요. 나의 몸만을 거동시키는 문제를 넘어서서 모두가 함께 공감하는 것이 작업의 1순위가 되니까요.”
최근 무용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은 ‘차진엽’이다. 2012 한국춤비평가상 ‘베스트 작품상’, 2009 무용예술상 ‘연기상’에 빛나는 그는 요즘 그야말로 ‘바쁜 무용수이자 안무가’다. 안무가와 무용수의 경계가 잘 느껴지지 않는 무용계의 동향, 특히 젊은 현대무용가들 사이에서 늘 궁금한 것은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다.
“저는 무용수예요. 그러나 작품도 만들죠. 안무가라는 이름은 아주 위대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피나처럼 무언가 만들어낸다는 것은 아직은 젊어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러나 저는 춤을 만들죠. 아직 안무가라는 이름은 저에게 너무 무겁다고 생각해요.”

춤과 차진엽
차진엽은 일곱 살 무렵에 리듬체조와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여느 무용수들과 마찬가지로 동네 학원에서 무용을 배우다 선생님의 추천으로 더 깊고, 넓게 학습하기 위해 큰 선생님을 만나고, 예고에 진학, 대학을 거쳐 전문 무용단 생활을 지냈다.
“중학교 때 만난 선생님이 최태지(현 국립발레단장) 선생님이세요. 저는 참 운이 좋았죠. 그렇게 선생님께 발레를 배우다가 서울예고에 진학했는데, 고등학교 2학년 때 현대무용으로 전공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멋있게 말하면 ‘자유’이지만, 고등학교의 감성으로 다가가자면, 항상 단정하게 올려 묶어야 했던 머리도 풀 수 있다고 하고, 수업을 오셨던 선생님들도 굉장히 세련됐다고 느꼈어요. 자유로운 옷차림이 멋있었죠. 저는 당장 현대무용을 하겠다고 했어요. 원래 고민을 오래 하지 않는 편이라 누가 만류해도 결국 하고 말았거든요.”
발레를 하던 어린 여고생이 현대무용을 만나 한국예술종합학교 2기 현대무용 전공으로 입학했다. 졸업 후 LDP무용단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던 그는 영국으로의 유학을 결정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를 지켜봤던 전미숙 교수의 지도도 있었겠지만 당시 현대무용으로 유학을 선택하면 흔히 미국이었던 추세 속에서 그는 석사과정을 영국 런던 컨템퍼러리 댄스 스쿨로 정했다.
“학교의 시스템은 철저하게 무용수를 만들어내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교양을 비롯한 이론 수업은 모두 오전에 있었고, 점심 후는 무조건 실기 수업이었어요. 보통의 무용단 시스템을 학교에서 미리 제시했다고 생각해요. 학기를 배분해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경험하게 했죠. 당시 호페시 쉑터가 수업을 왔는데, 자신의 무용단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고 했어요. 그 후 학교 생활과 무용단 생활을 병행했죠. 호페시 쉑터 컴퍼니·네덜란드 갈릴리 무용단에 있었어요. 유럽 생활은 제게 적극적인 충격과 생각을 줬던 것 같아요. 공연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나 문제의식 등….”

콜렉티브 에이(Collective A)의 이름으로 올린 첫 작품, ‘로튼 애플’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로튼 애플’은 여러 사람들이 둘러서서 이루는 탐욕의 내용을 담고 있어요. 현장에서 사용되는 모든 색을 화이트로 정했는데, 무리수는 있지 않을까도 염려했죠. 그러나 사과는 더욱 선명해졌어요. 무용수들이 입은 의상은 30년이 넘은 드레스, 그리고 스타일이 있었죠. 조명과 공간, 설치미술을 이용해 색다른 이야기를 끌어내고 싶었어요. 그러한 스타일과 색감이 풍기는 또 다른 미묘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후로도 색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고요.”
그것은 감각이다. 자신이 보고 있는 감각계를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어쩌면 작가적 정신이 마치 소설책을 만나는 기분이라고 할까. 또한 그러한 감각은 아마도 그가 살아온 안목과 배경이 접점을 이뤄야 하는 부분이므로 누가 흉내 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의 몫도 컸어요. 오래된 옛 서울역 공간을 활용했는데, 그곳은 조명이나 음향을 끌어내기에는 굉장히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어요. 대신 나름의 색깔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로튼 애플’은 더욱 빛을 발했을지도 몰라요. 공간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아우라’ 같은 것이 함께 만났기 때문에요.”
공간, 그것을 무용에 활용한다는 것은 보통 영리한 사람이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다. 창고나 감옥 등 밀폐된 공간을 활용하는 천재적인 안무가들을 종종 목격할 때가 있는데, 정면 무대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열린 공간을 통해 감동을 자아낸다는 것은 훨씬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가능하다. 요즘 대중의 안목은 보통 이상이다.
“저는 확장된 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동네를 걸어다녀도 같은 길을 다닌 적이 없죠. 공사장이 있으면 꼭 들어가보기도 했고요. 지금도 가봤던 곳보다는 새로운 카페를 찾죠.”
공간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걸까? 유튜브에서 그를 검색하면 만날 수 있는 영상에서 그는 한 건물의 옥상에서 춤을 춘다. 무대 장치와 조명의 요소가 없는 곳에서 오로지 신체를 통해 말을 할 뿐이다. 고고한 ‘로튼 애플’의 이미지와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그는 신체와 공간을 활용할 줄 아는 현명한 무용수다.
공간을 벗어나면 조금 더 사고의 확장을 얻게 되느냐 묻자, 그는 아무래도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작품은 다시 공간에 따라 또 다른 메시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기자의 생각이다. 차진엽 역시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부분이라고 했다. 모든 작가들이 그렇듯 작품은 단기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꾸준히 고민해온 영역의 반영이다. 그랬을 때 스스로도 만족하고, 관객도 만족하는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 면에서 2005년부터 생각해왔다는 실험적 작품의 공간·의상·무대 배치적 안목은 성공적으로 구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용은 작품의 신작을 이해하려면 전작을 봐야 하는 ‘연속성’은 없나요?” “물론 그렇게 되면 더더욱 좋죠. 저도 바라는 바고요.” 작품의 영감을 자신의 작품에서 변증법적으로 얻어가는 작가야말로 타고난 작가요, 학자가 된다. 차진엽을 향해 이러한 질문이 생겨나는 것은 그가 하는 생각이나 자유분방한 의식이 굉장히 주변적이면서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쩌면 좋은 종류의 ‘가벼움’에서 시작되는 것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필요와 충분에 의해 작품을 만들고 그 속에서 많은 작가들과 교감하는 것을 그는 지금 즐기고 있는 듯 말이다.

소통 없는 세상은 안 되는 거겠죠?
“저도 한때는 혼자 작품 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왜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함께 만나면 더 좋은 이야기가 만들어져요. 그 속에는 소통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그렇죠. 모두가 다 일류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부분은 서로가 모자란 부분을 채우게 된다는 거예요. 그게 ‘콜렉티브 에이(Collective A)’의 실질적인 모토인 것 같아요. 추구하고 싶은 방향이요. A는 아트(Art)의 A가 되기도 하고, ‘하나’를 의미하는 A가 되기도 하죠.” 단 하나. 그들의 대화나 교감, 소통이 만들어낼 수 있는 단 하나의 지점은 정말 유일무이해보인다. 작품은 고통 속에서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까? 묻고 싶었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질문이다. 그는 예술 사이의 대화와 언표를 즐기며 그 속에서 발견되는 어떠한 접점에 대해 옮기려 하는 철저한 감독 정신이 있었다.
“기쁨이 계속되면 난 왜 지금 슬프지 않은 거지? 고독을 찾고 싶어 끝까지 내려가기도 해요. 그렇지만 자연스러운 것이 좋죠. 얼마 전 인도 여행을 다녀왔어요. 집에서는 난리가 났죠. 위험한 곳에 여자가 겁도 없이 간다고요.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비행기 티켓만 끊었어요. 현지인들이 타는 버스도 타고요. 한 남자가 다가와서 ‘여기 위험한 곳이야. 이렇게 혼자 다니면 안 돼’라고 말해줄 정도였죠. 공항 들어왔을 때는 거의 집시 같은 수준이었나 봐요. 그래도 저는 좋았어요. 그곳에서 얻은 것이 있으니까요.”
그가 삶을 대하는 씩씩한 자세는 그가 신은 엉성한 부츠만큼이나, 그가 가방에서 꺼낸 아이패드의 너덜한 케이스만큼이나 운치 있었다.
“우리는 그저 숫자가 아니다. 값싼 노동도, 값싼 생명도 아니다. 우리는 당신과 같은 인간이다. 우리의 삶도 당신의 삶처럼 소중하다. 우리의 꿈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 방글라데시 다카의 한 의류공단이 붕괴되는 사건이 있었다. 다 쓰러진 건물의 잔재 속에 끌어안고 생을 마감한 남녀의 모습을 찍은 어느 사진작가가 한 말이다. 차진엽 역시 이 글을 보고 있었다. 명쾌하면서도 작은 것을 볼 줄 알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들을 줄 아는 안무가 차진엽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글 정우정 기자(wjj@) 사진 박진호(studio B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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