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본질을 상실한 타자의 역사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3년 6월 1일 12:00 오전

서울연극제 기획초청작 무브먼트 당당의 ‘소외’는 역사적 선언문들과 사회의식이 담긴 시ㆍ노래ㆍ책을 발췌해 구성한 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다. 특히 공연 의도에 공감한 100명의 배우ㆍ음악가ㆍ무용가 등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공연 안에서 다양한 형식의 실험이 이뤄졌다.
5월 9~1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글 이은경(연극평론가) 사진 무브먼트 당당

‘소외’(김민정 구성ㆍ연출)는 직설적이고 도발적이며 선동적인 공연이었다.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이전 작품이자 마르크스주의자 박헌영의 일대기를 그린 ‘인생’, 프랑스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와 아내 엘렌을 다룬 ‘루이의 아내’와 연장선상에 놓인 이 작품은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계급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역사적 글들로 구성된 대사와 노래, 기타와 색소폰의 라이브 연주, 다큐멘터리 영상 그리고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운다. 허구를 배제하고 현실을 내세우며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문ㆍ1960년 4.19혁명 선언문 등과 윤동주ㆍ신동엽ㆍ김남주 등의 시, 백장미의 수기ㆍ전태일 평전 등과 같은 저서의 구절들을 몽타주한 이 작품은 사회적 안전망에서 소외된 타자들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그린다. 그렇기에 극 속의 개별적 캐릭터 대신 역사 속에 희생되고 사라진 대다수 민중을 표상하는 집단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무대는 텅 비어 객석으로 열려 있다. 2층 발코니에는 라이브 연주와 혁명 선언문 낭독이 이뤄지고, 뒷벽에는 시위 현장과 진압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이 투사된다. 공연은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인물들이 등장해 “우리,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 얻을 것은 세계다!”라고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바로 이어진 장면에서 광대들은 소외의 의미에 대해 강의하며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시작부터 작품이 지향하는 주제의식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소외되어왔던 타자들이 역사적 주체임을 선언하는 이 공연은 서사극적 연출을 통한 이화 효과로 관객의 의식 변화까지 의도한다.
타자들의 현실은 조율된 움직임과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된다. 인간의 자유ㆍ평등ㆍ존엄성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에서는 두 인물이 벗은 몸으로 등장한다. 창살 조명으로 인해 감옥처럼 보이는 공간에서 사다리를 오브제로 활용한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내용과 행위의 어긋남 때문에 아이러니가 창출된다. 희화화되고 과장되게 연출된 5.18광주민주화운동 장면은 웃음으로 인해 오히려 비극성이 강조된다. 양식적인 움직임으로 인형극처럼 연출된 할머니 장면에서는 과거를 소환하고, 무대 뒷벽에 군상처럼 세워놓은 여성들 장면은 성 노예로 희생되어온 여성의 수난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프롤레타리아의 의미와 쌍용 자동차 사태의 진실에 대해 강의하는 렉처 시어터 장면에서는 의도적인 대사 실수를 통해 무대의 환상을 해체하여 현실을 환기시킨다. 봄비가 내리는 날, 비닐 우산을 쓴 인물들의 움직임을 미학적으로 보여주면서 공연은 끝난다. 결국 모든 생명을 소생케 하는 봄비처럼 우리 사회에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기를 기원하는 의식으로 마무리 된다.
이 작품은 역사의 중심에 비껴나 부당하게 억압당하고 희생당해온 타자들의 역사를 되살려낸다. 예술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연극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반성적 성찰도 요구한다. 하지만 연극적 구성보다 에피소드의 나열에 집중해 설명적으로 극이 진행된 점, 주제의 당위성에 경도된 듯 주제를 직설적으로 전경화시켜 선동적인 분위기가 강하게 드러난 점이 아쉬웠다. 또한 소재의 외연을 넓혀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넘치는 형식 실험을 시도한 의욕 과잉도 지적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의 진정성은 객석으로 충분히 전달되었다. 창의적인 기획력, 100명의 자발적 참여자들을 조율해 풍부한 장면을 보여준 연출가의 능력과 몸을 아끼지 않은 배우들의 열정이 어우러진 매우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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